문창극에 대한 kbs의 보도후의 파장을 보면 언론의 힘이 정말 막강하며 어떻게 보도하느냐라는 것은 엄청나게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창극 총리 후보 "일제 식민지배가 하나님의 뜻 " 이러면 없는 말을 한 것은 아니기에 언뜻 문총리가 일제 식민지배를 잘 한일이라고 생각한다는 인식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풀버젼을 보고 사리판단을 하겠습니까?

그런데 문창극의 교회 강연을 보고 저는 종교 자유라는 측면에서 옹호를 했지만 다시 한번 살펴본 바로는 그가 신앙적 관점에서 근대사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신앙적 관점은 옷에 불과하고 내면이나 생각 그리고 목적은 신앙이나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라 미국에 대한 절대적 예속 그리고 이승만을 비롯한 반공세력의 정당화를 위한 것입니다.

그의 강연 서울대학교에서의 강의내용의 진정한 의미를 판단하려면 그가 재직하면서 수많은 칼럼 사설 기사를 썼던 중앙일보를 찾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사회가 대상이 누구든지  파편적인 한 두마디의 발언이나 실언으로 떠들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내면의 사상이나 생각을 외적으로 말이나 행동으로 어떻게 표현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총리나 공직 후보자라면 그 사람의 신념, 가치관 국가관등을 살펴야 하는데 한두마디 발언이 아니라 그 사람이 일관되게 말하고 행동하는 과정을 전체적으로 살펴서 따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충 살펴본 바로도 문창극은 총리로서 적합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보수 정권이 집권하고 있지만 엄연히 50%에 가까운 국민들이 현 집권세력이나 보수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고 있는데 문창극처럼 극우노선을 걷는 사람이 총리를 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문창극의 주장들 대부분이 주관적인 관점이나 협량한 소견을 가지고 하는 것이라서 보편성이나 합리성이 떨어집니다.
또한 국가나 정부의 연속성을 생각할 때 전임정부에서 확정하거나 법률로 성안된 내용들을 부정하는 사람은 공직자로서 자격이 없습니다.
그는 그냥 보수언론의 필자로서 할말 하면서 사는 것이 본인도 좋고 국민에게도 이로울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에 대한 오해가 있는데 식민지배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볼지라도 그 식민지배가 정당하다는 의미는 아니며 일본보다 우리 민족의 입장에서 우리에게 그것이 유익을 가져온 점이 있다는 식의 해석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은 잘 못 남용하면 안됩니다.

로마서에 위에 있는 권세는 하나님이 주셨기에  복종하라는 말씀을 가지고 독재정권 시절 보수목사들이 데모하는 것을 비판하였는데 이것은 잘 못입니다.
먼저 전제가 있습니다.
권세를 하나님이 주셨지만 그 권세는 백성을 돌보고 정의를 실현하라고 주신 것이고 합법적인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즉 국민의 지지와 정당한 절차지요
그런점에서 군사독재는 하나님이 주신 권세가 아니라 자신들이 자의적으로 찬탈한 권세인 겁니다
따라서 민중혁명으로  새로운 정부가 수립이 되면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주신 권세가 되고 이에 복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김홍도등 당시 보수 목사들이 김대중때 진보 정권에 복종을 안하고 시청앞에서 데모하고 그러는 것은 자기 모순이지요


마지막으로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하나님의 뜻이 인구에 회자가 되었는데 혹자는 신정론이라하는데 신정론이 아니라 섭리론입니다.
신정론은 악의 문제 의인이 고난을 받는 문제이고 하나님의 계획과 뜻은 섭리론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기독교에서는 기본적으로 온 세계가 하나님의 피조물이고 하나님은 자신의 주권을 행사할 수 있기에 하나님의 섭리아래 모든일이 일어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조금 더 각론으로 들어가면 하나님이 적극적인 의지로 행하는 일이 있고 허용하는 일이 있고 그냥 일어나는대로 보고있는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죄성이나 악함때문에 일어나는 일이 있는데 하나님이 버려두신다고 말합니다.

아울러 지진이나 쓰나미등처럼 자연법칙에 맡겨서 섭리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아무리 신실한 신자라도 과속을 하거나 졸음운전을 하면 사고를 당하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죽거나 크게 다치는 일등입니다.


또한 섭리론은 결과론적인 입장에서 신앙적 해석에 가깝습니다.
즉 이미 일어난 사건 속에서 신앙적 의미 자신의 실존적 의미를 찾고 삶의 방향을 재조정하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이러한 섭리론은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은 일은 일어나지 않기에  모든 것을 의탁하고 맡기면 불안이 사라지고 평안가운데 살아가며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내가 어떻게 막을수 없기에 수용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유익을 줍니다.

기독교에서 하나님이나 우리의 삶은 단시간 또는 하나의 사건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전체 영원까지를 포함하는 개념이기에 일희 일비하거나 하나의 사건등으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기독교 신앙에서 하나님은 주권자이고 우리는 그분에게 모든 것을 의탁한 사람의 관계입니다.
어떤 분은 노예 신앙이라고 하는데 역설적이게도 그 노예적 관계 속에서 진정한 자유가 있다는 것을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하신 말씀을 경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