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겨운 호남 퍼주기(?) 사례

 

 5.16 군사 쿠데타 이후 정관재계를 완전히 장악하고 대한민국의 예산을 경상도 지역에 쏟아 부은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일본에서 받아낸 푼돈 보상금과 베트남전으로 얻은 수익까지 탈탈 털어 경상도 정확히는 경상도 근대화에 털어 넣습니다.

 

특히 타지역을 배제한 체 상도 집중 산업화는 박정희 쿠데타로 인해 나타날 민심이반을 방지하고 고향에서 지지를 얻을 목적으로 행해졌다고 밖에 볼 수 없는데 박정희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호남을 깡그리 무시하고 모든 자원을 상도에 집중시킨 것만 봐도 알 수가 있습니다. 독재자 후세인이나 카다피가 고향에서 지지를 받았고 최후의 저항지로 남았다는 점에서 역시 권력자, 특히 독재자들에겐 지연을 무시할 수 없었을겁니다. 특히나 호남의 경우 단 하나의 공단, 조선, 철강, 중화학 공업단지 완전히 배제시켜 일제 30년 이후 보다도 더 못한 암흑기를 만들었습니다.

 

경상도를 연구하다 보면 일제가 이상하게 연결이 됩니다.

 

일제의 조선 침략의 이유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가장 근본적으로 한 국가가 근대 공업화되기 시작되면서 문제가 되는 식량부족과 같은 자원 문제 비롯됐습니다. 영국에서 최초로 기계화를 기반으로 한 대량생산 체제가 들어서고 이게 다시 원료확보와 상품시장의 확보, 쟁탈전으로 확대되어 1, 2차 세계대전으로 발전합니다. 영국이 산업화에 가장 앞서나가고 뒤를 이어 프랑스까지 가세하고 이에 위협을 느낀 독일과 제정 러시아까지 가세하는데 특히 독일의 경우 비스마르크에 의해 분열된 독일이 통일이 되고 무대포로 산업화를 밀어 부칩니다. 여기에 더 무대포로 밀어 부쳤던게 일본이었는데 일본의 경우 독일에서 아직 연구 중으로 시행되지도 않은 법을 가져다와 법으로 선포해버립니다. 현재의 한국 사법시스템과 현실문제 간의 괴리는 거슬러 올라가면 이러한 무대포 일본법을 그대로 따랐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롤모델이 독일이었는데 당시 후진국이었던 독일이 짧은 기간에 내에 일어선데 감명을 받은 일본의 선각자들이 롤모델로 독일을 택합니다. 이러한 모델이 일본에 와서 군국주의 경제모델로 바뀌는데 뼛속까지 친일이었던(to the core) 일본육사 출신 한국인 박정희는 쿠데타 이후 일본군 당시 맺었던 일본의 여러 지인의 소개로 일제의 모델을 밀어 부칩니다.

 

문제는 군국주의 모델이 가진 폐해가 강제적, 인위적으로 자원배분을 왜곡시킨 결과 그 향유주체와 수탈되는 주체가 극명하게 갈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일제의 경우 일본본토가 향유주체였고 한반도를 포함한 외부는 극심한 수탈에 시달렸는데 일제가 한반도에 발을 들여놓자 마자 시작한게 바로 토지조사령으로 토지에 관한 것이었는데 한반도 침탈의 첫 번째 목적이 바로 식량임을 나타낸 것이었습니다. 일제는 산미증산계획을 통해서 일제 공업화를 뒷받침하는 배후로 한반도를 이용하기 시작합니다. 즉 공업화, 근대화의 키는 바로 “식량”의 확보인 것이죠.

 

마찬가지로 한국의 근대화에 있어서 가장 필수적인 요소가 바로 안정적인 식량의 확보였는데 그 확보는 전적으로 호남의 곡창지대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문제는 근대화를 추진하면서 추곡수매라는 강제 수단을 통해 폭등할 수 밖에 없었던 쌀값을 인위적으로 폭락시키고 자원 배분의 왜곡을 초래했다는 점입니다.

 

근대화의 일환으로 공산품을 만들어 내는 공장이나 기업의 경우 각종 경제, 세제지원을 하고 농민의 경우 공장에 만들어 낸 농기자재와 비료 등 높은 가격을 지불하게 하는 바람에 원료, 원자재 가격이 폭등해 한 번 손해를 보고 농산품의 경우 추곡수매제 같이 비정상적으로 값을 낮춰 농촌의 이중의 피해, 피폐를 가져왔습니다.

 

상도 경우 몇 시간 내에 갈 수 있는 대규모 국가공단이 들어서 농촌이 도농복합도시 성격으로 발전해 그리 어려움이 없었던 반면 호남의 경우 대규모 국가 공단이 들어섰던 수도권, 부산이나 마산 등 산업단지가 늘어선 경상도로 이주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현재의 상도에서 침소봉대하는 대부분의 “깨어있는 표” 또한 깨어있는 상도민의 표가 아닌 호남 실향민의 표입니다. 이 사기가 아고라에서 표 분석을 통하여 드러났죠.

 

특히 인사가 경상도 위주로 이뤄지면서 호남의 경우 대놓고 차별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는지 꼭 한, 두 명씩은 체신부장관이나 교통부 장관에 임명시키기도 했는데 그나마 1년도 못채우고 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수구초심”이었는지 호남 출신의 체신부 장관들이 듣도 보도 못한 “호남퍼주기” 시작하는데 줄 것이 “공중전화 퍼주기” 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것은 모두 상도가 앞서지만 유독 딱 하나 호남이 앞선 것이 있는데 길거리에서 보는 공중전화기죠.

 

줄게 없으니 공중전화기 설치라도 많이 한 힘없는 핫바지 호남 출신 장관의 비애를 엿보게 합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공중전화기에는 무인공중전화기와 자급제 공중전화기가 있던데 무인 공중전화기는 흔히 아는 길거리 입식 공중전화기고 자급제 공중전화기는 일반인이 KT에 신청에 식당이랄지 이런데 실내에 놓는 것으로 추정하는데 결국 100% 국가예산으로 설치되었던 무인공중전화기의 설치현황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80년대 자료를 찾고 싶었으나 과거 자료를 찾을 수 없어 과거 2002년 통계를 인용했는데 공중전화대수를 줄이기 이전이라 80,90년대와 크게 달라지는 않을거라 추정합니다. 특히 호남에 제주를 포함시켰는데 KT 통계가 호남과 제주를 같이 묶어 관리하고 통계를 내서 어쩔 수 없이 그랬는데 실제 제주를 제외한 호남에 설치된 공중전화기 설치대 수를 보면 그 공중 전화기 한 대당 인구수는 더 적어져 상도를 압도할 거라고 봅니다.

 

아래를 보면 호남 281 VS  상도362  

공중전화 한 대당 호남은 281명(제주빼면 더 내려갈 것을 추측) 상도는 362명으로 유일하게 상도를 앞서는 수치가 아닌 듯 싶습니다. 

 

 

 호남 인구수(제주포함) 5,489,368명 (6,036,238)

무인공중전화수(제주포함) 21,426대

공중전화 한 대당 인구수(제주포함) : 281명

 

상도 인구수 13,242,096 명

무인공중전화수 36,542대

공중전화 한 대당 인구수 :362 명

 - 2002기준 -



 

역대 체신부(정통부) 장관 출신 지역

1대 윤석구 1948~1949 전북

12대 조한백 1960~1961 전북 김제

18대 김병삼 1965~1966 전남 진도

19대 박경원 1966~1967 전남 영광

22대 김보현 1969~1970 전남 광양

24대 문형태 1973~1974 전남 화순

35대 이대순 1986~1987 전남 고흥

37대 최영철 1988~1989 전남 목포

39대 송언종 1990~1993 전남 고흥

 

정통부

3대 강봉균 1996~1998 전북 군산

 

(출처)http://www.donga.com/inmul/minister/gov1_list.php?lgubun=16&sgubun=1

 

보면 알겠지만 이승만 정권부터 시작해 체신부 장관의 경우 유독 호남 출신이 많은데 특히 군사쿠데타 이후엔 지역안배의 차원에서 한직인 체신부 장관으로 호남 출신 그중에서도 전남 출신을 임용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링크를 클릭하면 재밌는 게 재직 연도가 나오는데 거의 십중팔구는 임기가 1년 이하로 단명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나 땜방용으로 집어넣은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는데 자세한 것은 찾아보면 나오겠지만 귀찮아서 그냥 넘어갑니다. 숨막히던 쿠테다 상도 정권 아래서 1년도 못 채웠던 호남 출신 체신부 장관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저런 결과를 냇지 않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