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에서 이어짐>


결국 이 나라 민족공동체 전부가 살아나려면 영남패권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어느 정도 포기하고, 호남에 대한 인종주의적 공격을 중단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사실 어마어마한 변화가 될 것입니다. 사실 이것이 영남패권주의자들도 궁극적으로 사는 방법입니다. 공멸을 피하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유일한 방법이 현실적으로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영남패권은 결코 자신의 기득권을 한 치도 포기할 수 없고 그 기득권을 유지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인 호남에 대한 인종주의적 공격도 중지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너무나 당연하고 뻔한 해답이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 명백한 해답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영남패권주의자들이 그 패권을 통해서 실제적인 이득을 보고 있으며 그러한 이득의 수혜 계층이 너무 광범위하기 때문'입니다.


지역 문제나 영남패권 문제를 얘기하면 반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계급적인 관점의 제대로 된 이해관계를 제시하고 설득하면 영/호남 민중들이 자신들의 계급적 이해에 눈뜨게 되고 결국 지역주의적 정치 행태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 대표적입니다. 주로 진보/좌파 진영, 계급적인 이해관계야말로 진정으로 과학적인 세계관이라고 믿는 분들이 주로 저렇게 주장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에는 한 가지 중요한 전제가 필요합니다. 영/호남 민중들이 정말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전제가 그것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과학적인 세계관으로 무장한 급진적인 진보정당들이 얘기하는 공약과 대안이 정말 자신들에게 이익인데도 그들이 그것을 이해하지 못해서 새누리당이나 새정련을 지지하는 것일까요?


선거 때가 되면 온갖 선심성 공약이 난무하지만 그러한 공약이 영-호남 대립구도 나아가 영남패권의 지배구도를 흔드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 영향은 줍니다. 하지만 지역주의 구도 자체에는 털끝만큼의 영향도 주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그냥 선거 공약은 공약(空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점도 없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보다 본질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선거에서 제시하는 공약이 아무리 거창하고 그럴싸해 보여도 그리고 실제로 공약을 지킨다고 해도 거기서 생기는 이익이라는 것이 지역구도 특히 영남패권을 유지함으로써 생기는 이익을 뛰어넘지는 못하다는 점이 그것입니다.


영남패권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반박하는 논리 가운데 대구/경북 지역의 GDP가 전국 최하위권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대구 출신들이 계속 대통령이 됐지만 실제로 대구/경북 사람들이 혜택 입은 것은 없다는 거죠. 그런데요, 대구 지역의 아파트 값 상승률과 아파트 분양률, 아파트 경매 낙찰률은 전국 최고 수준입니다. 이게 도대체 뭘 말할까요? 대구 지역에 돈이 많다는 얘기입니다. GDP 등의 통계로 잡히지 않는 돈이 많다는 얘기에요.


대구지역의 전통 산업인 섬유산업이 사양화됐느니 어쩌니 하지만 저는 대구의 가장 알짜배기 산업은 섬유 등이 아니고, 그 산업은 지금까지 한번도 사양화된 적이 없다고 봅니다. 그 산업은 바로 정권창출 산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승용 의원이 채널A 쾌도난마에 나와서 얘기하는 걸 들어보니, 부산과 목포를 잇는 남해안 고속철도 사업과 포항-삼척간 고속철도 사업의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감사원에 의해서 나란히 사업을 중단하라는 권고가 나왔고 실제로 전남의 사업은 중단됐다고 합니다. 전남의 사업은 1조3천억원대, 경북의 사업은 2조3천억원대였는데 전남은 사업이 중단됐고 경북의 사업은 중단돼지도 않았습니다. 게다가 올해 이 사업의 예산은 국토부가 800억 요구한 것에 재경부가 1100억을 추가해서 1900억을 만들었고 국회 예결위 계수조정소위에서 다시 100억을 추가해서 결국 2천억을 만들어줬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전남의 사업은 단 2억 반영됐다고 하더군요.


2천억 대 2억... 1천 대 1의 비율입니다. 이게 현재 영남과 호남에 투입되는 국가 자원의 규모의 차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실제의 차이는 이보다 훨씬 큽니다. 몇십년 동안 이런 격차가 지속돼왔다는 것을 생각해보세요. 누적 효과라는 게 어마어마하다는 겁니다. 그런 차이를 비교하면 1만 대 1 정도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제가 이 나라의 호남차별은 사실상 사회적 학살이라고 말하는 게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사실상 호남과 호남 사람들이 이 나라에서 목숨 부지하고 살아가는 게 거의 기적에 가까운 게 아닌가 싶은 생각조차 듭니다.


단순히 국가 예산의 차별뿐만 아니라 민간 분야의 소외 거기에 더 나아가 최근에는 아예 "저 호남놈들 다 잡아죽여라, 씨를 말려라"는 저주와 증오의 함성이 온라인을 시작으로 이 나라의 사회 각 분야에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제 말이 과장 같습니까? 아닙니다. 사례를 들라면 차고도 넘칩니다. 참, 이러고도 호남 사람들 살아남아서 자식 새끼들 키우면서 사는 것 보면 목숨이란 게 참 질기고 슬픈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지경입니다.


제가 말하는 정권창출 산업이란 게 바로 이걸 말하는 겁니다. 이런 예산으로 하는 사업들, 아마 서울에 있는 기업들이 하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하지만 그 기업들의 오너나 핵심 경영진은 대구/경북 출신인 경우가 많죠. 사원들 중에서도 핵심 포스트는 영남 출신들이 자리잡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이 다 대구/경북 경제에 눈에 보이지 않는 낙수효과를 가져다 줍니다. 사업 하면서 그 지방에 뿌리고 가는 돈도 GDP 통계에 잡히지 않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이런 게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 경제효과입니다.


사실 대구/경북이 정말 못 살고, GDP 수준이 낮다고 해도 실제로 대구/경북 사람들의 생활 수준과는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서울이나 경기 등 수도권 그리고 영남의 여러 공업지역에 가 있는 대구/경북 출신들이 실제로 대구/경북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생활 수준을 충분히 커버할만큼 많이 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돈이 결국 대구/경북으로 흘러들어가 아파트 등 부동산 값을 올리는 것입니다. 흔히들 낙수효과라는 말을 씁니다만, 정말 대구/경북의 정권창출 산업이야말로 낙수효과를 설명하는 최고의 샘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 진보좌파 진영이 착각하는 게 바로 이 지점입니다. 그럴싸한 복지공약 내세우면 영남의 유권자들이 마음을 돌리고 지역주의적 투표를 탈피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역주의는 허구이고, 계급적 관점이야말로 과학이기 때문에 그렇답니다. 그런데 이들은 결코 알지 못합니다. 이들이 제시하는 계급적 관점으로 전국민이 평등하게 잘사는 사회는 사실상 현실적이지도 않거니와 백보 양보해서 그런 사회가 올 수 있다고 해도 그렇게 해서 영남 지방 사람들이 얻는 이득이란 것은 현재 그들이 영남패권을 통해서 얻는 이익보다 훨씬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실현 가능성도 불확실한데다 정작 실현된다 해도 자기가 현재 받는 몫보다 적게 받으라는 그런 약속에 당신들 같으면 귀를 기울이겠습니까? 서양 속담에 풀숲의 새 열 마리보다 내 손 안의 새 한 마리가 낫다고 합니다만, 지금 진보좌파가 영남 유권자들에게 제시하는 당근이란 것이 "당신들 손에 든 열 마리 내놓으면 (잘 될지는 모르지만) 일단 조금 있다가 2마리 쯤 돌려주고 아주아주 오랜 세월이 흐르면 11마리쯤 돌려줄 수 있을지도 몰라"라는 것입니다. 당신들이 영남 유권자라면 현재 영남패권을 통해서 얻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불확실하고 거친 미래의 황무지와 바꾸겠냐구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