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데이트가 많이 늦어졌습니다. 죄송합니다. 지금 올리는 것보다 더 많이 쓴 상태인데 분량이 너무 많아 나눠서 올립니다. 이삼일 안으로 2회분쯤 더 올리고 다음주까지는 이번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1편에서 이어짐>


영남패권이 어떻게 성립하게 되었느냐를 놓고 가장 일반적으로 제기되는 설명은 1. 한일국교 정상화 이후 경부축을 중심으로 한 경제발전 계획에 의해 불가피하게 영남 편중, 호남 소외 현상이 발생했다 2. 농업지역이던 호남에 비해 영남지역의 입지가 공업화에 더 유리했다 3.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의 진주가 저지되었던 영남 지방의 산업기반시설 및 자본이 더 잘 보존되었다 4. 해방 이후 지주에 대한 수탈적인 토지개혁으로 호남의 대지주 계급이 몰락하고 이들의 자본가 계급 전환이 미흡했다 5. 박정희의 쿠데타와 개발독재가 결정적인 트리거 역할을 했다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상의 요인들을 통합적으로 정리해보면 영남패권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즉, [부작용과 문제도 많았지만 한국의 근대화와 산업발전을 위해서 자원집약적이고 강압적인 방식이 필요했고 그런 점에서 영남패권은 일정하게 역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호남이 그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본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대충 이런 정도 결론이 나오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일단 논의 진행의 편의를 위해 여기까지는 어느 정도 합의가 이뤄졌다고 정리해봅시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의문이 생깁니다. 영남패권이란 게 한국의 특정 발전 단계에서 필요한(불가피하다는 표현과는 다르죠) 방식이었다고 한다면, 앞으로도 그런 방식을 계속 유지해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영남에서만 대통령이 계속 나와야 하고 영남 출신들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을 주도해야 하고 영남 지방에 예산을 포함한 국가적 자원이 집중되어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그렇다'고 대답하는 분이 있다면 그 분은 그냥 영남천년왕국을 주장하시는 분이고 진지한 토론의 대상이라기보다 정신적 치료와 사회적 격리의 대상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입니다.


'이제는 어떤 행태로건 이 나라의 운영방식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시는 분들이라면 그러한 변화에 1. 영남에 편중된 인사와 예산 등 주요한 사회적 자원의 재분배 2. 호남에 대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차별과 소외의 해소 등을 충분히 인정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대전제에 상호 합의한다면 구체적인 방법론과 속도 조절은 기술적인 문제로 남겨둘 수 있을 것입니다.


비유해보자면 어떤 집안에 형제들이 여럿 있었는데 집안 형편이 어렵다 보니 형제 모두를 대학에 보내지는 못하고 그 중 하나만 대학에 보내고 나머지 형제들은 취직하거나 또는 농사를 지어서 대학에 간 형제의 학비를 대기로 했던 겁니다. 학비뿐만이 아니라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상당한 사업자금도 대서 그 형제의 성공을 도왔습니다. 대학에 간 형제는 성공해서 돈을 벌게 되면 자신을 위해서 희생한 형제들에게 희생에 상응하는 보답을 해주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고, 다른 형제들을 지원할만한 여유를 갖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 형제는 원래의 약속을 깡그리 무시하고 자신의 잇속만 챙겼습니다. 형제들을 모르는 척하는 것은 물론이고 집안 대대로 내려오던 문중 재산마저도 자신의 소유로 빼돌렸습니다. 많이 배우고 사회적 지위도 있어서 그런 게 가능했겠죠. 그는 형제 중에서 자신과 함께 대학에 갈만한 실력이 있었던 형제에게는 특히 가혹하게 대했습니다. 그 형제야말로 자신 때문에 가장 큰 희생을 치른 존재였지만 자격지심 때문인지 그 형제가 잘되는 꼴만은 볼 수 없다고 기어코 방해하고 주저앉히곤 했습니다. 이 형제의 몫을 인정하면 자신이 그동안 형제들의 희생으로 쌓아올렸던 재산의 상당 부분을 나눠주어야 하고, 오랫동안 전해 내려왔던 집안의 다른 재산들도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사실이 싫었던 것입니다.


영남패권은 지속가능성의 문제입니다. 현재와 같은 영남패권은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호남에 대한 인종주의적인 공격과 모함을 통해서 기타 지역의 공포와 이기심을 자극하여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방식이 지속 가능하지 않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인 것이 1. 체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갈등 비용이 갈수록 커진다 2. 한국의 자본주의가 진일보하는 데 필요한 광범위한 사회적 자원의 동원이 불가능하다 등입니다.


영남패권이 유지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정말 비극적일 것입니다. 한국 사회가 자신의 가장 심각한 암종을 치료하지 못하고 결국 공동체 자체의 붕괴를 맞고 말았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혁명이 일어나는 나라는 생산력이 급격하게 발전하는 나라라는 명제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이 될지도 모릅니다. 영남패권을 극복하지 못하면 영남패권 세력은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결국 민족공동체 전체의 공멸이라는 결과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침몰하는 배에서 누구나 비참한 운명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배는 침몰해도 구명보트를 타고 탈출하는 사람들도 있겠지요. 아마 영남패권주의자들은 배가 침몰해도 자신들은 제일 먼저 구명정을 차지해서 탈출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