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y P. Koss는 자연 선택이 “고정된 회로”를 만들어낸다는 견해는 운명론 또는 체념으로 이어진다고 이야기한다. 반면 자연 선택이 유연성을 만들어낸다는 견해는 사회악을 예방하는 정책을 제시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진화 역사를 바꿀 수는 없기 때문에 생물학적 설명만으로는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하지만 생물학적 영향이 고정된 회로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의해 구체화되는 잠재적 경로들을 만들어낸다고 본다면 실천적 함의가 있는 연구로 이어질 수 있다. 남자가 본질적으로 탐욕스럽다고 보는 견해는 희망이 없다. 이에 반해 어떻게 모진 환경, 안정된 애착의 결여 또는 사회적 학습이 남자의 난잡한 성행태의 발달을 촉진하는지를 알면 예방책을 제시할 수 있다.

 

Alone, biological explanations will not solve social problems because people cannot change their evolutionary history. However, a conceptualization of biological influences not as hardwiring but as potential pathways that are shaped by the environment can lead to research with practical implications. Viewing men as inherently rapacious is hopeless. On the other hand, knowing how harsh environments, lack of secure attachments, or social learning favor the development of promiscuous male sexuality sets a prevention agenda.

(Evolutionary Models of Why Men Rape: Acknowledging the Complexities, Mary P. Koss, Evolution, Gender, and Rape, Cheryl Brown Travis 편집, 202)

 

 

 

이 말은 강간에 대한 진화 심리학 이론들을 비판하는 맥락에서 한 것이다. 강간에 대한 적응 가설에 따르면 자연 선택에 의해 남자의 강간 조절 기제가 “설계”되었다(강간에 대한 적응 가설의 종류가 여러 가지이기 때문에 상황은 매우 복잡하다). 이것이 “고정된 회로”에 해당한다.

 

반면 진화 심리학에 적대적인 사람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런 선천적 기제는 없다. 강간은 이런 저런 환경적 영향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자연 선택은 “잠재적 경로들”을 만들어낼 뿐이다. 어떤 경로가 실현될지는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

 

Koss는 강간 문제와 관련하여 적응 가설이 운명론 또는 체념으로 이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만약 남자의 강간 조절 기제가 진화했다면 강간은 인간의 숙명이다. 우리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갈 수 없다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논의의 편의상 시각과 피아노 연주를 비교해 보겠다. 뇌 속에 있는 시각 처리 기제의 상당 부분이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된 고정된 회로라는 점을 대다수 심리학자들이 인정한다. 옛날에 더 잘 보았던 조상이 그 덕분에 더 잘 번식했기 때문에 우리의 시각 기제가 그렇게 진화한 것이다.

 

반면 피아니스트의 뇌 속에 있는 피아노 연주 기제는 후천적이다. 옛날에 피아노를 더 잘 쳤던 조상이 그 덕분에 더 잘 번식했기 때문에 피아노 연주 기제가 진화한 것이 아니다. 모종의 학습 기제가 작동하여 피아노 연주 회로가 생성된 것이다. 피아노를 전혀 배우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런 회로가 없다. 피아노가 없는 문화권에는 그런 회로가 있는 사람이 아예 없다. 이것은 시각 회로가 인류 보편적인 것과 대조적이다.

 

 

 

시각 회로가 선천적이라고 해서 시각 회로의 결과가 모두 똑같은가? 아니다. 왜냐하면 시각 회로는 입력 값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입력 값에 따라 결과가 다르다. 옛날에는 비행기가 없었기 때문에 비행기를 볼 수도 없었다. 따라서 시각 회로의 처리 결과 뇌 속에서 “비행기의 상”이 만들어질 수가 없었다.

 

진화 심리학자들이 강간 조절 기제에 대한 가설을 세울 때 입력 값이 전혀 없는 기제라고 가정할까? 아니다. 강간 조절 기제가 이런 저런 입력 값들을 받아들여서 강간을 할지 여부를 결정한다고 본다. 따라서 설사 전투적인(?) 적응 가설대로 강간 조절 회로라는 고정된 회로가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되어 붙박이장처럼 모든 남자의 뇌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하더라도 강간 예방 정책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강간 조절 기제에 다른 입력 값들이 들어가도록 하면 된다.

 

논의의 편의상 강간 조절 기제에서 “강간을 하다 들키면 얼마나 큰 처벌을 받는가?”를 입력 값으로 받아들인다고 하자. 그리고 더 큰 처벌을 받을수록 강간을 하지 않는 쪽으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크도록 강간 조절 기제가 “설계”되었다고 하자. 그렇다면 강간 조절 기제에 대한 이론을 바탕으로 “강간을 줄이려면 처벌을 강화하면 된다”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리고 Koss의 말대로 우리는 과거에 일어난 진화 역사를 바꿀 수 없다. 따라서 어떤 가설이 실천적으로 쓸모가 있든 없는 그것은 그 가설이 참인지 여부와는 상관이 없다. 자신의 소망(“실천적으로 쓸모가 있는 이론이면 좋겠다”)대로 과거에 인간의 진화가 일어났다고 본다면 그것은 대단한 과대망상이다.

 

가설의 참/거짓을 가리기 위해서 따져야 할 것은 논리와 실증이지 Koss의 소망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