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야님과 흐르는 강물님께 참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이유야 어떠하든 그렇게도 호감을 가진 정치인을 제가 특정해서 괴롭힌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타인을 감정적으로 괴롭히는 것은 그 진위, 선악을 떠나서 전혀 제 타입은 아닌데 말입니다. 적어도 일반인들끼리는 이렇게 살 필요가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건 그렇고 살아오면서 느낀 몇 가지를 말해볼 까 합니다. 이름하여 변명론, Theory of Excuse

 

한국은 이성보다 감정이 주류인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세상에 이런 황당한 속담이 있는 나라가 어디에 있을까요 대통령의 눈물 사진으로 4-5%의 지지율을 올리는 나라. 특이하다고 해야 할까 미개하다고 해야 할까, 운동장 관객이 하나같이 빨간색의 ”붉은 악마“ 옷을 입고 응원하는 나라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을 겁니다. 그래도 IT강국에, 세계 무역수준으로 볼 때 미개하다고 하기도 그렇고.

 

변명, 해명, 설명, 모두 비슷한 말이면서 차이가 존재합니다.

적절한 타이밍의 변명은 일상에서 가장 생존법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핵심은 변명, 해명, 설명, 설교의 사용법의 차이, 시간적 공간적 차이를 잘 이해하는 것입니다. 

변명할 때 변명하고 해명할 때 해명을 하고, 설명이 가능한 상황에서 설명을 해야 합니다.

이거 수순 헷갈리면 패망의 지름길로 들어갑니다.

 

 

 

원칙 No.1    변명은 최대한 짧고 간단하게.

 

변명은 짧은 것이 제일 좋습니다. 간단하게. 변명과 해명, 설명을 구분하지 못하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돌아갑니다. 변명과 해명의 특징은 상대방이 이해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느냐 아닌가의 차이죠.  상대방이 꼬투리를 잡지 못해서 안달인 상황에서 해명은 불가능합니다. 설명의 가능성은 물리적으로 주어지지도 않고요. 무슨 해명을 해도 그것은 또 다른 비난거리를 만들어 줍니다. 특히 상하관계가 분명한 경우에는 더 그렇죠.  후보자와 유권자의 관계도 저는 상하관계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일방적인 관계죠. 표를 부탁하는 입장에서는. 

 

  미팅시간 10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는 김대리를 기다리는 부장의 마음에는 불길이 타 오릅니다. 드디어 헉헉대며 나타난 김대리.  부장의 마음에는 그간 김대리의 크고 작은 잘못이 엑셀 화일같이 쭉 나열됩니다. 이런 경우에는 길고 자세한 해명은 분노의 불길에 기름, 까스통을 던지는 일입니다. 질책의 사슬(chain)이 줄줄이 이어집니다. 해명이 실패하는 것을 물론이거니와  그 동안 저축된 모든 불만과 잘못에 대한 비난이 batch로 쏱아집니다. 

 

 

원칙 No.2   변명의 목적은 상대방의 분을 풀어주는 것.

 

부장의 질책과 인신공격성 비난이 계속 쏟아집니다. 김대리는 사실 그 전 주에 부장이 시킨 일로 밤을 꼬박 샜습니다. 그걸 마치고 근처 모텔에서 자다 캄캄하게 친 커튼 덕에 세월모르고 자다 늦게 나타난 것입니다. 상급자는 자기가 시킨 일은 알지만 누구에게 뭘 시켰는지를 잘 모릅니다. 가장 좋은 대답은 "죄송합니다. 아침에 시계를 보고 다시 잠시 누웠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그래도 부장의 욕이 계속 바가지로 쏟아집니다. 그런데 이런 분노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회의를 해야 하니까요.   변명은 다소 어처구니가 없어도 됩니다. 누가 들어도 유치한 변명으로 들려야 합니다.   ”지난 번 회사로 가는 지하철을 타는 바람에..“    ”5월 달력에는 오늘이 일요일이라...“ 이런 개그적 요소가 있으면 효과가 있습니다만 이건 아주 재주가 좋아야 합니다. 어설픈 개그는 재떨이로 얻어맞게 만드는 수가 있습니다. 썩 권하곤 싶지 않네요. 죄송합니다. 주의하고 있었는데도 제가 부족해서인지,.. 더 노력하겠습니다.. 간단한 변명거리는 많습니다.

 

 

 

원칙 No.3   적절한 변명은 분노의 지혈제

 

상대방의 분노 압력이 좀 떨어지게 실컷 욕을 듣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그런 분노는 논리도 없고 감정의 표출이므로 방금 압력이 정상으로 돌아옵니다. 피가 나면 지혈을 시키듯이 적절히 멍청한 변명으로 분노에 대하여 지혈을 시켜야 합니다. 가장 잘못된 대처는 해명, 설명을 섞는 것인데요. 해명으로 되는 경우는 부장이 샘플 개수를 잘못 세어 그 자리에서 10초 만에 진위를 구별할 수 있는 경우입니다. “부장님, 제가 드린 것은 5개 맞는데요. 죄송하지만 한번만 더 세어봐 주실래요?”

  조심해야 할 것은 “부장님, 송대리에게 한번 물어 보십시요. 그건 제가 아니라 송대리에게 시킨 것이라고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런 식의 대처인데요, 이러면 분노의 불길은 더 활활 타 오릅니다. 나름 해명한다고 화살을 다른 사람으로 분산시켜 돌리는 일은 최악의 대처법입니다. “아니 부장님, 일단 말씀 그만하시고 제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제 이야기를 들어 보라니깐요, 참 내...”   이런 식으로 변명이 해명으로 변해가고,  해명이 설명으로 진화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보일지는 모르지만 이것은 폭망크리를 타는 지름길입니다.   때리면 맞아라 ! 실컷,   상대방의 몽둥이가 동이 날 때까지. 지칠때 까지. 

이게 3번째 원칙입니다.

 

원칙 No.4   적절한 누명은 두고두고 빼먹을 수 있는 밑반찬

 

시간이 좀 지나고, 부장님 열도 식고, 며칠 지나 전체 회식과 같이 분위기 좀 느슨해지는 국면을 만나면 이전의 변명을 해명으로 전환합니다. 이때는 주위 동료가 좀 거들어 주면 더 좋습니다. “부장님, 헤헤.. 저번 그 때 재떨이 날리신 것 있잖습니까? . 아 정말 섭섭하더라고, 그 전날 부장님에 자재 검사 밤샘작업을 시킨 뒤에 집에서 쉬고 오후에 나와도 된다고 하셨다고요”. 이때 동료나 차장이 거들어야 한다. “예, 부장님, 헤헤,,,그 전날 그런 말씀 하셨어요. 요즘 많이 피곤하신지, 기억이 깜빡깜빡하시네. 우리 부장님 보약 한 재 해드려야겠습니다. 헤헤...” 이러면 상급자들 진짜 미안해집니다. 거의 죽을 맛이죠. 대부분의 경우 젊은 사람, 나이든 사람 싸울 경우 나이든 사람 잘못이 훨씬 많습니다. 그래서 요 부장님의 자책감을 악용해서 몇 달간 은근히 압박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제 정신인 부장이라면요. 어떤 경우에는 부하직원을 엄청 깬 부장에 그 도중에 자신의 과오를 깨달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제 발로 회식자리에서 유감을 표합니다. 묵묵히 참고 재떨이를 맞아준 부하직원에게 엄청 고마워하고 인간적으로 업무적으로 크게 신뢰하게 됩니다.

   

 

남정네들이 바람피우다 들킨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간단한 변명, 누가 봐도 거짓말이 뻔한 변명 후 과오를 시인하고 실컷 얻어맞는 것이 가장 싸게 처리하는 방법입니다. (저는 아닙니다. 믿어 주세요.) 한 아는 분은 어찌나 어처구니없는 변명을 했는지, 때리던 부인이 때리다가 웃더라네요. 예를 들면 이런 식의 변명이죠. “당신하고 생긴 것이 너무 닮아 나도 모르게 문자를 보내봤다”. 변명을 하려면 이정도로 간결하고, 짧게, 누가 듣더라고 말이 안되는 식으로 해야 합니다. “업무적으로 아는 사람이지 전혀 그런 것 아니다. 당신은 나를 어떻게 보고 그러느냐! (버럭)” 이런 식은 금물입니다. CIA, 국정원, 귀신은 속일 수 있어도 여인들의 제 1감은 속일 수 없습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숨겨둔 증거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부인이 [남편비리.xls] 화일을 여는 순간 시합이 아니라 시즌 자체가 끝이 나버리는 겁니다. 운동장은 폭파되고....

 

결론: 변명에는 시공간(Time-Space)적 최적점이 존재한다. 그것, 장소와 시간, 이것 가장 중요하다.

 

채동욱, 안대희, 고승덕의 최근 변명을 쭉 보면서 그간의 생각을 한번 작성해보았습니다. 이전 고승덕 관련 글로 혹 마음 상하신 분이 있으시다면 이 글로 널리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모두 주말 즐겁게 보내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