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덕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이번 지방선거에서 표를 놓고 고민할 처지도 아니었습니다만 캔디고의 폭로와 이후 여론의 동향을 보면서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내가 지금부터 말하는 것은 인터넷 등에서 거론된 팩트를 기반으로 한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우선 고승덕이 비난을 받는 이유라는 것을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알기로 고승덕의 이혼 사유라는 것 자체가 아이들을 한국에서 키우느냐 미국에서 키우느냐의 문제 그리고 고승덕의 정치 활동 등이었다고 합니다.


고승덕은 아이들을 한국에서 키우자고 그랬고, 그 아내는 미국에서 키우자고 했다고 하더군요. 우리나라의 일반 정서로 봤을 때 공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자신의 아이를 미국에서 억지로 키우겠다고 하면 욕을 먹겠지만 그 반대의 경우로 욕을 먹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정치계 진출만 해도 그렇습니다. 가족들이 반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내와 아이들의 삶이 있는 것처럼 남편이자 아버지인 고승덕도 자신의 삶이 있는 것 아닌가요? 아내가 남편의 야망을 이해하고 내조를 해주면 가장 좋은 모양이 되었겠지만 도저히 용납할 수 없어서 이혼하게 되었다면 그걸로 그냥 끝난 겁니다. 그걸 2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뒤에 비난할 소재가 되는 건가요?


가장 중요한 이슈라고 할 수 있는 '아이들을 경제적으로 돌보지 않았다'는 부분인데요, 제가 듣기로 고승덕이 자신의 가장 큰 재산이었던 빌라를 이혼 위자료로 넘겨줬고 이 빌라는 요즘 시세로 30억원을 호가한다고 들었습니다. 금액의 크기보다 고승덕이 자신의 가장 큰 재산을 넘겨주었다는 점으로 봤을 때 매정한 아빠, 비정한 아빠, 자식들의 양육비를 나몰라라 하는 아빠라고 비난하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아이들과 평소에 잘 연락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이 부분도 서로 말이 조금 다르더군요. 고승덕은 딸의 핸드폰 번호 2개를 다 알고 있었고 자주는 아니어도 연락을 취했고, 얼마 전 딸이 한국에 왔을 때도 딸의 부탁으로 은행 일을 처리해주기도 했다고 하더군요.


이 정도라면 대부분의 아빠, 특히 이혼하고 따로 산 지 10년이 훨씬 넘은 아빠로서 얼마나 무심하고 냉혹한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혼이 아니라 그냥 기러기 아빠로 살아가는 분들도 이국의 자식들과 저 정도의 접촉도 못하는 분들 많습니다. 미국이 무슨 옆동네도 아니고 고승덕도 나름 사회생활에 바쁜 사람이었을 텐데 이혼한 아내와 함께 사는 자식들만 1년 365일 바라보면서 시시때때로 챙겨야 한다는 건가요?


가장 큰 문제라고 느껴지는 것은 캔디고의 이번 폭로 방식입니다. 정말 고승덕이 서울시 교육감으로서 자격에 문제가 있다고 느꼈고 그걸 폭로하는 것이 공익에 부합한다고 느꼈다면 애초에 고승덕이 출마 의사를 밝히기 전에 자신의 뜻을 아버지에게 전달하는 것이 맞았다고 봅니다.


캔디고가 고승덕의 출마 사실을 정확하게 언제 알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이 발달한 요즘, 평균보다 훨씬 높은 생활 수준을 누리고 있는데다 한국에 대한 관심도 무척 큰 캔디고가 고승덕의 출마 사실을 폭로 직전에 알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일부러 아버지에 대한 타격을 극대화할 수 있는 시점을 기다렸다가 등에다 칼을 꽂은 것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이런 행동이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 대한 공익적 관심에서 나온 것일까요? 아무리 봐도 그렇게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정말 캔디고가 아버지의 출마 사실을 그렇게 늦게 알았다면 아무리 폭로의 필요성을 느꼈더라도 폭로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 하면 이렇게 공직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폭로의 경우 폭로의 사안 자체를 놓고 충분한 토론이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입니다.


그냥 유권자의 표심을 감각적 선동적으로 뒤흔들 이슈를 툭 던져놓고 그 폭로가 과연 진실인지 아닌지 검증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이것이야말로 공직 선거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악의적인 행동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캔디고는 게다가 이번 폭로 사안을 툭 던져놓고는 '여기에 대해서는 더 이상 발언하지 않겠다'고 했더군요. 이거 겉으로는 깔끔해 보일지 몰라도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엄청 무책임하고 야비한 행동입니다. 누군가에게 엄청난 피해를 줄 행동을 해놓고 '이제 난 모르니 나한테 따지지 말라'고 숨어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게 그 잘난 미국에서 최고급 교육을 받은 사람의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모든 분쟁의 사안은 당사자 쌍방간에 동일한 반론권이 주어져야 합니다. 이번 캔디고의 폭로는 애초에 그런 반론권 자체를 싸그리 배제한 상태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폭로의 타이밍, 반론 거부 등이 모두 거기에 포함됩니다.


더욱 심각한 불균형은 아버지와 딸이라는 관계를 교묘히 악용했다는 점입니다. 한국의 일반적인 정서로 봤을 때 딸의 공격에 아버지가 논리적으로 근거를 들어 반박하는 것 자체가 모진 아버지, 덜 떨어진 아버지라는 인상을 심어주게 됩니다. 딸이 이런 폭로를 했다는 것, 거기에 대해서 아버지가 반박했다는 것 자체가 아버지의 자격 없음을 증명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더군요. 과연 이게 합리적인 판단입니까?


잘 알려진 것처럼 캔디고의 어머니는 철강왕 박태준의 딸입니다. 경제적인 측면이나 사회적인 지위 등 어느 관점에서 봐도 캔디고의 친가보다는 외가의 위상이 더 막강하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겁니다. 그런데 자식의 양육 문제를 놓고 그 막강한 집안이 자신들보다 훨씬 못한 집안 출신인 고승덕을 그렇게까지 원망할 이유가 있었을까요?


모르기는 해도 고승덕이 고시 3관왕이 아니었다면 호남 출신의 별볼 일 없는 청년을 사위로 맞아들이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아마 고승덕이 집안에 들어와 뭔가 자신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줄 거란 기대도 컸겠죠.


그런데 그 사위란 놈이 은공(?)도 모르고 시키는대로 안하고 자꾸 지 고집을 내세운다는 말이에요. 그러다 결국 이혼까지 했으니, 그 대단한 집안에선 얼마나 이가 갈렸겠어요? 같잖은 놈 때문에 자신들의 딸/동생의 인생에 흠집이 생겼다고 생각하면 정말 갈아마시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고승덕이 아니더라도 얼마나 빵빵한 사윗감들이 많았겠습니까?


딸의 폭로 후 고승덕이 처음 보였던 반응이 "너무 대단한 집안의 사위로 들어갔던 댓가를 치르는 것"이라는 것이었던데 저는 고승덕의 이 발언이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핵심의 한 문장이라고 봅니다.


캔디고의 폭로 이후 박태준의 아들은 “이것이 집안 차원에서 의논한 것”이라고 밝혔더군요. 캔디고의 이모도 캔디고의 폭로에 대해 격려하는 코멘트를 남겼구요.


한 마디로 말해서 그 집안 전체가 고승덕에 대해서 품고 있는 분노, 적대감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짐작할 수 있는 발언들 아닌가요? 그런데, 적어도 지금까지 캔디고 등이 폭로한 내용만 놓고 보더라도 과연 그렇게 한 사람의 정치 지망생 그것도 부녀간의 인연을 짓밟으면서까지 죽여야할 만큼 그렇게 대단한 잘못이었는지 의문이 생긴다는 얘기입니다.


캔디고는 사실 한국에서 공부하기 싫다고 미국으로 건너간 사람이에요(본인의 의지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그런 의지의 결과물로 교육을 받았다는 얘기입니다). 한국에 있는 재산과 사회적인 네트워크를 이용해 미국에서도 좋은 생활에 좋은 교육 받은 사람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한국에서 받은 것을 가지고 미국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런 사람이 한국 그것도 서울의 교육감 선출에 대해서 이런 영향을 행사한다는 것이 과연 온당하다고들 보십니까?


진보를 지지하시는 분들이 고승덕에 대해서 반감을 갖는 것은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안별로 좀 분별력을 발휘했으면 합니다. 이번 캔디고의 폭로에 일말의 정당성이라도 있는지 저는 정말 잘 모르겠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 제가 잘못 알고 있는 사실, 잘못된 논리를 전개한 것이 있다면 지적해 주십시오. 얼마든지 받아들여 제 의견을 수정할 생각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