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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사회적 자본 확충을 위한 정책과제] 라는 보고서가 발표되었다.


원래 기업연구소에서 나오는 보고서는 목차와 굵은 글씨만 훑어보고 결론부분만 대충 챙기고 마는데 이번 보고서는 한 페이지, 한 문단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알찬 내용이었다.


필자의 소감을 본격적으로 적기 전에 사회적 자본이란 개념만 살짝(?) 언급을 해보기로 하자.


사회적 자본이란 '개인간 협력을 촉진하는 신뢰, 규범, 네트워크 등 사회적 맥락에서 발생하는 일체의 무형자산'을 의미하는데 (보고서 요약부분에서 인용) 우리나라에선 저게 부족하는 것이다.


결국 지금은 서로 좋은게 좋은거니까 학연, 지연으로 엮인 관계를 중시하고 이번에 총리부터 장관이 이르기까지 인사청문회에서 드러난 사회지도층이 보여준 법질서 무시의 분위기같은 것들이 나라의 경쟁력을 갉아 먹는다는 얘기가 되겠다.



필자가 96년도에 미국에 와서 제일 적응하기가 힘들었던 것이 하나 있는데... 한국에서는 그냥 적당히 법까지는 아니어도 정해진 질서를 무시하거나 어기는 것이 서로서로 눈감아지거나 용납이 되는 분위기였는데... 필자가 미국에서 사귀기 시작한 미국친구들은 겉으로는 필자처럼 슬렁슬렁 사는 것 같아도 일단 결정적인(?) 순간에 신뢰와 규범에 대한 철저한 의식을 보여주고는 해서 필자을 당황하게 만들기 일쑤였다.


이번에 정운찬 총리지명자가 각종 인세수입을 포함한 소득의 꽤 큰 부분을 2008년에 소득신고하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되는 모양(기사링크)이다. 이 세금성실 납부에 관한 얘기를 좀 해보겠다.


필 자에게 성경공부를 시켜준 존 목사님이란 분이 계셨다. 말이 좋아 목사님이지 존 목사님은 평일에는 NASA에서 정직원으로 근무를 하고 일요일에만 한국교회에서 영어목회를 담당하셨다. 11주 동안 매주 목요일 저녁시간에 존 목사님 댁으로 직접 찾아가서 목사님 식구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며 식사후에 3시간 정도 성경공부를 했으니 나중에는 별의 별 개인적이고 사적인 대화를 다 나누는 친밀한 사이가 되었다.


존 목사님이야 아주 어려서 미국에 왔으니 사고방식이 거의 미국식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을 것이고 사모님은 한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미국으로 왔으니 조금은 한국식 사고방식이 남아 있으신 분이었다.


하루는 세금보고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미국은 매년 2~4월달이 개인의 소득세 납부철이다. 한국도 요즘은 비슷한 모양인데... 자신의 소득을 꼼꼼히 챙긴 다음에 정해진 양식에 따라 세금보고를 하게 되어있다. 그런데 막상 눈앞에서 소득내역과 공제내역을 계산하다보면 세금을 떼먹고 싶은 유혹이 장난이 아니다.


가령 이사비용의 경우 소득공제가 되는데... 누가 이사비용으로 100만원이 들었는데 200만원이 들었는지... 챙겨보는 것도 아닌바에야 세금보고서에 슬쩍 공제비용을 조금 올려도 국세청에서 발각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런데 실제로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은 제법 큰 돈이 절약(?)이 되는 것이고... 이 유혹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아무튼....


사모님이 하루는 저녁식사를 하다가 하소연을 한다... 존 목사님이 너무 고지식하다는 거다... NASA의 정규수입이야 그렇다고치고... 누굴 도와주고 생긴 부수입까지 세금보고할때 전부 적어 넣은다는 거다. 그런 수입이 있는지 누가 아냐고 따지면 손가락을 하늘쪽으로 가르킨단다.... 즉 하나님이 알고 계시지 않냐는 얘기다.


그 때는 그냥 존 목사님이 특이한 사람인 줄 알았다. 예수를 열심히 믿으면 저렇게 정직해지나보다 했다. 그런데 나중에 미국 중부의 멤피스로 이사를 가니... 거기야 사람들이 더 순박하고 한국처럼 한집 건너 한집씩 교회가 있는 동네이긴 한데... 거기서는 정말 필자가 만난 수도 없이 많은 미구친구들이 존 목사님같았다.


매주 금요일 새벽 5시에 미국교회에 딸린 부속건물에서 미국친구들과 성경공부겸 기도모임을 가졌었다. 인종도 다르고 배경도 다르지만 이렇게 매주 새벽마다 모여서 주변에 꺼내놓기 쑥스러운 기도부탁을 몇번 나누다보면 속마음을 아주 많이 까보이게 된다. 그때가 2001년도에 IT 버블이 붕괴되던 시기라 사업을 하는 미국친구들이 많이 힘들어하던 때이다. 그때 미국친구들이 보여준 고민들, 가령 세금문제나 자신이 거느리고 있는 직원들과 그 가족들에 대한 걱정들.... 회사는 어려워지는데.. 어떻게해서든 이 고비를 넘겨서 직원들 해고시키지 않고 회사를 꾸려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들을 옆에서 고스란히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평소 교통법규를 지키는 건 물론이고, 쇼핑센터에서 쇼핑을 마치고 카트를 제자리에 가져다 놓은 일부터 크고 작은 사회적 규범들과 법규들을 철저히 지키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많은 걸 배웠다. 뭐... 기도빨이나 종교적 원리주의적인 면은 한국신자들이 더 하지만, 솔직히 옆에서 같이 생활하면서 필자의 삶에 더 큰 영향을 미친건 미국친구들의 그런 기초적인 준법정신과 도덕관념들, 그리고 타인에 대한 배려들이었다.


뭐... 멤피스에서의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일반화하기는 좀 그렇다. 현재 필자가 살고 있는 샌안토니오는 멤피스의 경우와는 조금 차이가 있다. 교통 법규를 지키는 모습도 좀 느슨하고 도덕관념도 그렇게까지 철저하지는 않다.... 하기사 세금 적게 내려고 회계사나 변호사가 그렇게 번성하는 걸 보면... 미국도 동네마다 사람마다 다 다르기는 하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현재 국회 인사청문회장 앞에 선 장 관후보 나리들을 우리사회의 지도층이라고 불러야될지 어떨지는 좀 망설여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 집단에서 소위 좀 튀는 인물들이 장관으로 발탁되어 나오는 거라고 생각한다면... 한국의 현재 모습과 그런 모습을 비판하기 보다는 옆에서 옹호하는 대다수 언론의 모습은 무척 우려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현실이 처참해도 그 처참함을 인정하기보다는 더 긍정적인 방향을 국민들에게 보여줘야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 아닐지... 그냥 내편과 네편을 나눠 무조건 내편을 응원하겠다는 속 좁은 네트워크 정신을 보는 것 같아 많이 답답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삼성경제연구소의 [사회적 자본 확충을 위한 정책과제] 보고서는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자못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는 경제성장률 몇%나 신규 일자리 창출같은 유형의 성장도 중요하지만 사회의 토대를 다져주는 무형의 재산, 즉 사회적 자본 확충에 다들 관심을 가져야할 때가 아닌가 한다. 시의적절하고 독자들의 당파성을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설득력있는 보고서였다.


사족: 글을 다 읽고 왠지 채승병님의 체취(?)가 난다고 생각했다. 얼른 표지를 살펴보니 아니나 다를까 채승병님이 공저자로 들어있다. 필자가 국내 온라인 논객중에서 가장 신뢰하는 분인데... 이렇게 내용이 좋은 보고서를 만들어 주셨다니 또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