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지역등권론자 혹은 친호남 논객들은 호남의 정치적 차별을 논한다. 다른 지역에서 표를 요구할 때엔 지역의 경제개발을 이슈로 제기하면서 유독 호남에서만은 가치를 앞세워서 표를 요구한다. '이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냐?' 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반대편에선 '지역이익을 말하는 것은 수구이니 보편적 가치를 논해야 한다.'고 한다.

현대사에서 호남은 권위주의 정부의 자원배분에서 배제되었다. 권위주의 정부는 영남, 수도권에 자원을 집중 투여하였고 71년 대선에서 김대중이란 걸출한 정치인이 그들의 자리를 위협하자 정부와 언론은 반호남 지역주의를 부추겼다. 이는 박상훈의 말대로 '만들어진 현실'이었다.

지금에서야 반호남 지역주의라는 인종차별주의적 형태는 상당 부분 거세된 상태같아 보인다. 이는 친한나라당 성향의 협소한 인터넷 공간에서 이루어질 뿐이지 현실에서 대놓고 반호남 정서를 드러냈다간 대다수의 사람들은 야만인으로 볼 것이다. 하지만 자원의 배분 문제라는 이슈에선 호남의 지역개발 이슈를 들고 나올 때는 수구반동적이라 칭하길 서슴치 않는다. 

롤스의 '정의론'에서 다루는 정의의 주제는 '기본적 권리와 의무를 배분하고 사회 공동체가 얻은 이익의 분배'이다. 이런 주제에서 다루는 정의를 공정으로서의 정의라고 한다. 정의를 상식적으로 보편적 가치로 볼 수 있으므로 배분을 논하는 '공정으로서의 정의' 역시 보편적 가치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정의를 바탕으로 할 때 자원의 배분에서 배제된 타 지역에게 제 몫을 찾아주자는 주장은 정의에 부합된다. 그러나 여기서도 호남은 배제당한다. 반호남 지역주의의 시즌 1은 '호남인은 신의가 없다.' 식의 인종차별주의였다면 반호남 지역주의의 시즌 2는 자원의 배분에서 배제하는 것이다. 아직도 반호남 지역주의라는 유령은 사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