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의 추의 역사라는 책에 있는 내용입니다. 이탈로 칼비노의 자전적 소설 ‘참관인’ 중의 일부인데, 책의 주제를 한 에피소드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칼비노는 이탈리아 생이고, 2차대전중에 레지스탕스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최초의 소설 ‘거미집 속의 오솔길’을 썼습니다. 보르헤스, 마르케스와 함께 현대 문학의 3대 거장으로 꼽히죠. 선거도 끝났고 투표와 관련된 이야기라 옮겨와 봤습니다.  

 

 

[참관인] (1963)

 

코톨렌코에서 유권자로 등록된 사람들 중 일정 수는

침상이나 병동을 떠날 수도 없을 만큼 아픈 병자들이었다.

법에서는 그런 경우 그 지역 선거 사무관들 가운데 몇 사람을 선발해

<출장 투표소>를 구성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었다.

그런 다음에 이들 선발된 집단이 <치료소>에 있는 환자들을 찾아가 그들의 표를 모아 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참관인들이 그런 곳을 직접 찾아가야 한다는 얘기였다. [....]

계단통의 그들을 떠나는 사람의 눈빛은 고통스러운 것,

눈부셔서 바로 보지 못하겠다는 그런 것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 눈빛은 시트와 베개라는 백색의 무덤 한가운데에서 인간의 색을 하고 떠오른 형태를 알아보기를 거부하는 것과 다름없는, 자기 방어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눈빛은 높은 음조로 끊임없이 우리는 동물 울음소리에 대한 인상을

청각에서 시각으로 옮겨 놓은 최초의 번역물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이이..... 이이이..... 이이이.....

병동의 어느 부분에서 그 소리가 일어나면 , 하아! 하아! 하아!

다른 쪽에서 갑작스레 터지는 웃음이나 개의 짖음 같은 돌발적인 소리로 대답이 들려왔다.

아까의 높은 울음소리는 눈과 입이 벌어져 영원한 웃음을 짓고 있는

조그맣고 붉은 얼굴에서 나온 것이었다.

소년은 흰색 셔츠를 입고 침대에 똑바로 일어나 앉아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그의 상반신은 통에서 자라는 식물,

마치 줄기 끝 (팔의 흔적은 전혀 없었다) 에 물고기를 닮은 머리가 달린 식물처럼, 침대보에서 돋아나 있었다.

이 소년인지 식물인지 물고기인지(어느 선가지 인간을 인간이라 부를 수 있을까? 아메리고는 궁금했다) 는 <이이.... 이이....>하는 소리를 낼 때마다 상반신을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굽혔다 폈다 했다.

그리고 <하아! 하아!> 하는 대답은 다른 침상의 남자가 내는 소리였는데

그의 형체는 더더욱 불분명했지만, 그래도 앞으로 튀어나와 탐욕스레 압착된 머리가 있었으며,

그의 몸을 소시지처럼 (어느 선까지 한 존재가 한 종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까?) 둘둘 말고 있는 시트 밑에는 두 팔 -혹은 물갈퀴- 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를 따라서 울리는 나머지 목소리들은

병동에 나타난 사람들의 모습 때문인지 흥분한 소리였다.

막 울음을 터뜨리려다가 곧바로 울음을 억눌러 버린 듯한 헐떡임과 신음소리도 들려왔다.

이번에는 어른의 소리였다. [....]

한 사람은 신생아의 것처럼 지나치게 큰 머리를 베개로 괴고 있는 거인이었다.

그는 움직임이 없었고, 두 팔은 등 뒤로 감추어져 있었는데,

비만인 배 위쪽으로 불룩하게 솟은 가슴에 턱이 얹혀 있었고,

눈은 허공을 쳐다보고 있었으며,

거대한 이마 위로는 백발 (오랫동안 태내 발달을 계속하여 생존한 노인일까?) 이 나 있었으며,

무언가 대단히 놀라운 슬픔으로 말을 잊고 있었다. [....]

그 순간 아메리고는 자신이 그곳에 와 있는 무의미한 이유에 관해서는 더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에게는 지금 그가 관리하도록 할당된 이 변경이 다른 곳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쯤에는 이미 한동안 사문화되어버린 <국민의 의지> 의 변경이 아니라,

인간 영역의 변경이랄까. [....]

병동 끝에 있는 침상은 비어서 정돈되어 있었다.

벌써 건강을 회복했는지 그 침대의주인은 모직 파자마와 재킷을 입고서,

침대 한쪽에 놓인 의자에 앉아 있었고

침대의 다른 쪽에는 일요일 면회를 온 아버지로 보이는 모자 쓴 노인이 앉아 있었다.

그 젊은 아들은 정신 발달이 뒤졌는지, 몸은 정상이었지만 왠지 동작이 둔했다 - 그렇게 보였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아몬드 껍질을 벗겨 침대 맞은편으로 건네고 있었고,

아들은 그것을 받아 천천히 입으로 가져가곤 했다.

그러면 아버지는 아들이 씹어 먹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

그 병동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나머지 사람들과는 고립되어 있었다.

마치 그곳의 모든 침대가 나머지와는 소통하지 않는 하나의 세계를 에워싸고 있는 것 같았다.

다만 그들이 서로를 고무하기 위해 사용하는 외침소리, 크레센도와 전반적인 흥분을 소통하기 위한 소리는 예외였다.

그 소리는 어찌 들으면 시끄럽게 짹짹거리는 참새 소리 같았고,

어찌 들으면 슬픔이 가득한 신음 소리 같았다.

오직 머리가 큰 거인 남자만이, 그에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 계속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메리고는 계속해서 그 아버지와 아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들은 팔다리가 길었고 얼굴엔 털이 많았다.

그는 깜짝 놀란 표정을 하고 있었고 중풍으로 몸을 반쯤 못 쓰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나들이옷을 차려 입은 시골 남자였는데, 어쩐 일인지 얼굴과 손이 특히 길었다.

그는 아들과 닮은 꼴이었다. 그러나 눈은 아니었다.

아들의 눈은 무방비의, 동물의 눈인 반면 아버지의 눈은 늙은 농부의 눈답게, 뭔가를 감춘 의심 많은 눈이었다.

그들이 앉은 의자는 침대 양쪽에 사선 각도로 놓여 있어서 서로가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었고,

두 사람은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아메리고는 계속해서 그들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아마도 남은 환자들에 대한 방문을 앞두고 휴식을 취할 (또는 방문을 회피할) 모양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는 어떤 식이로든 그들에게 매혹되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한편 나머지 참관인들은 침대에 앉은 한 남자에게 투표를 하도록 하고 있었다.

방법은 이랬다. 그들은 작은 탁자를 안쪽에 넣고 장막을 가린다.

그리고 투표인이 마비되었기 때문에, 수녀 한 사람이 남자 대신 투표를 해준다.

그런 다음 장막을 치운다.

아메리고는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죽은 사람의 얼굴처럼 생기 없는 자줏빛 얼굴에,

입은 쩍 벌어져 잇몸이 드러나고

눈은 크게 뜨여 있었다.

누구라도 베개에 파묻힌 그 얼굴 외에 다른 부위는 전혀 볼 수 없었다.

그는 목구멍 뒤쪽에서 씨근거리며 골골거리고 있었지만 나무처럼 딱딱했다.

그들은 무슨 생각으로 지금 이 일을, 이 사람들에게 투표를 하도록 하는 일을 하고 있을까?

아메리고는 궁금했다.

그제야 그는 이런 일을 저지하는 것이 자신에게 맡겨진 의무라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

그는 자신의 생각에서, 방금 엿본 이 머나먼 변경 -무엇과 무엇 사이의 변경이란 말인가?- 구역에서 애써 스스로를 끌어냈다.

이쪽에 있는 모든 것과 저쪽에 있는 모든 것이 안개처럼 느껴졌다.

‘잠깐만요’ 그는 억양 없는 목소리로 말하면서, 자신이 공식을 외고 있음을, 무의미한 말을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유권자가 자신이 표를 던지는 후보자를 알아보기나 할까?

그가 자신의 의지를 표현할 수 있을까? [....]

수녀가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에게 보내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미소였다.

인정을 받는가 아닌가 하는 문제는 그녀에게는 존재하지 않는구나, 라고 아메리고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 늙은 수녀의 눈길고, 백치 아들의 눈을 응시하며 코톨렌고에서 일요일을 보내는 그 시골 남자의 눈길과 비교해보았다.

그 수녀에게 환자들의 인정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녀가 그들에게서 끌어내는 선(善) -그녀가 그들에게 베푼 선에 대한 대가- 은 공통의 선, 아무것도 낭비될 것 없는 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