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민주화 운동'이라는 우리 사회가 합의한 용어 대신 '518학살'이라는 명칭을 내가 '별도로 쓰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다.>

영남패권이라는 용어는, 비영남인인 우리가 통상 그렇듯, 약간은 정의롭고 그보다는 좀더 타락했고 그리고 무한경쟁을 강요하는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버거운 생존경쟁에서 버티려고 열심히 일한 죄 밖에는 없는, 한 영남인에게 '영남패권'이라는 어마어마한 죄의 굴레를 씌우는, 존재는 사악하지만 언급하기에는 막상 참 슬픈 용어이다.


그 영남인은 열심히 살아온 죄 밖에 없다고 강변할지도 모른다. 

그렇다. 맞다. 그러나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 그러니까 악이라는 것이 성서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뿔달린 괴물이 아니고 우리 일상생활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이라는 것을 인식한다면, 영남패권이라는 악이 '사악함' 때문이 아니라 '지극히 일상적인 것'에서 연유한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열심히 일한 죄 밖에 없다'는 그 강변은 차라리 서글프기까지 하다. 그가 커피자판기 앞에서 '열심히 일한 중에 휴식을 취하려고 커피를 마시며 동료와 담소하는 그 순간에도' '차별 때문에 고통을 느끼는 사람이 있으니' '열심히 일한 죄 밖에 없다'라는 말은 너무 서글픈발언이다'. 그리고 이 서글픔은 영남출신은 물론 비영남인 특히 영남패권의 직적접인 피해자인 호남인들도 자유롭지 않다.


이 영남패권이라는 악의 평범성은 마치 재미로 일베를 들락거리며 게시물을 클릭하는 행위와 같다.


포털이건 일베건 그리고 아크로도 예외가 아니듯, 그 사이트의 힘의 원천은 사이트 방문자 수이며 또한 그 사이트들 게시물들의 힘의 우열은 게시물들의 조회수이다. 즉, 일베를 들락거리고 단지 재미로 게시물을 클릭하는 행위가 일베의 반사회적 그리고 반인륜적 행위에 힘을 보태는 공범 행위라는 것이다. 머리 나쁜 분들을 위하여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악플보다도 무플이 더 무섭다'라는 우스개 소리는 단순히 우스개 소리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 열심히 살아온 죄 밖에 없는 영남인에게 영남패권이라는 죄의 사슬을 함부로 씌울 수도 없다. 그 이유는 내용적으로는 다르지만 형식적으로는 같은, 섬노예 사건에서 호남인 전체가 호출되는 웃기지도 않는 작태와 영남패권에서 영남인 전체가 호출되는 참 서글픈 행위가 유사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서글픈 행위 때문에 우리 사회는 '영남패권'의 실재성을 인정하는 합의를 끌어내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 합의를 이끌어내는 순간 우리 사회는 '영남패권'이라는 사회적 범죄 그리고 역사적 범죄의 가담자임을 스스로 인정하게 되는 것이니 말이다. 영남패권, 그러니까 다른 표현인 호남차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차별 가담자 또는 동조자'라니.


영남패권이 실재를 인정하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이유는 '518민주화운동'이라는 용어의 지정 이유와 심리적으로 아주 같다. 즉, 우리 모두 518학살의 공범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서 '518민주화운동'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너무 빠르게 도출했다는 것이다. 영남패권 부인이 '범죄행위 공범자를 부인하는 것'이라면 '518민주화 운동'이라는 용어는 '학살행위 공범 내지는 방조자임을 은폐하고자 하는 심리의 결과'라고 주장하면 지나친 것일까?


이 세상에 '셀프 죄인 인증'을 하는 멍청한 인간은 없다. 어쩌면 이는 인간의 본능 중 하나인 생존본능의 발휘이며 '최선의 선의'로 해석하면 아직은 우리 사회가 도덕적으로는 구제불능까지는 가지 않았다는 희망의 일면이기도 하다. 예외가 있다면, 영남패권을 인정하면서 세월호와 영남패권의 연관성을 인정하지 않는 주장은 사악하기까지 하다. 아니면 너무 무식하던지...


아래는 이 경렬 저 "시대정신인 反영남패권주의'에서 발췌한 것이다.
 
영남패권 개념

역사적 과정을 통하여 형성된, 영남을 지역적 기반으로 한 대소집단이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등 권력을 독점하여, 과도하고 부당한 이익을 누리는 환경조건을 구조화 시킴과 동시에, 소외지역민을 발생시키고 다시 그들을 사회문화적으로 차별하는 대한민국의 비틀린 정치경제문화적 패권 구조와 그 체제를 말한다.
 
영남을 지역적 기반으로 하여 사회갈등을 조장, 견지하려는 이들 세력들을 '영남패권' 혹은 ‘영남패권주의자’라 규정하며, 그 양상에 따라 영남정치패권, 영남경제패권, 영남언론패권, 영남문화패권등의 하위개념으로 분류하며, 그 관계에 따라 영남패권을 능동적으로 관철하여 부당한 수혜를 누리는 영남패권추동세력, 패권정서하에서 수동적으로 수혜를 누리는 영남패권동조세력, 이를 묵인하며 방관하는 영남패권주변세력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들 패권세력에 의한 수탈적 지역주의의 대척점에 저항적 지역주의가 있다.
 
그리고 영남패권을 지탱하는 유무형의 체계를 통틀어 영남패권주의 혹은 영남패권 이데올로기로 규정한다.
 
 
영남패권주의 해소는 시대정신이며 당위


영남패권주의는 일제가 한반도를 병탄했을 때 패배주의적 심리에 지배되어 현실을 수용하고 기회주의적으로 강한 자에게 빌붙어 동포를 팔아 일신의 영달만을 추구한 극단적 이기주의자들인 친일부역배들의 이데올로기와 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친일부역배의 이데올로기와 궤를 같이 하는 영남패권주의는 비인도적이며 반민족이며 반민주적이며 반역사적이며 불합리이며 비효율적이며 반헌법적인 심각한 병폐이다.

 
우리 일상을 옥죄는 이러한 전근대적이며 비인도적인 병폐들을 발본색원함이 없이는 지역화합, 민족화합, 민족자주는 커녕 천부인권을 가진 인간으로서 바른 가치관을 가진 사회의 구성원으로의 성장조차 바랄 수 없다.

 
그러므로 미래지향적으로 지역간 계층간의 부당한 차별없는 천부적인 인간의 존엄성의 회복과, 의존적인 공동체구성원으로서 평등이 적극적으로 시급히 확보되어 공정한 경쟁의 틀이 정착되어야 함은 우리 시대의 당위이며 시대정신이다.
 

주1. 호남지역에 존재하는 영남패권동조세력, 비호남지역에 존재하는 반영남패권주의자, 비호영남의 영남패권주변세력등이 존재한다. (옮긴이 주 : 노빠들 중 다수가 호남인인데 그들이 문재인을 열렬히 지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주2. 영남패권주의라는 용어를 피하고 지역차별이라는 어휘를 사용하는 이유

1) 영남이라는 가해 주체를 뺌으로써, 차별하는 지역과 차별 받는 지역이 어디인지 애매하게 하려는 의도.

2) 차별이란 용어는 힘의 우열의 소재가 드러나 있지 않으며 쌍방간에 상대를 차별하는 상태까지 포함하는 용어로서 어느 한 쪽의 과오가 아니라 쌍방 과실로 다루려는 의도. 이리하여 피해를 당한 자가 자신의 억울함을 해명하거나 그 진상을 밝히는 데 장애를 된다. 힘의 차이가 없는 대등한 쌍방간이므로 피해를 입어도 피해가 아니고, 피해가 있다면 순전히 피해자가 주관적으로 받아들이는 크기로서의 피해가 되고 만다. 그리하여 객관성을 인정받지 못해 그 피해는 그저 피해자의 피해'의식'이 되고 오히려 그것은 약자의 치졸한 하소연쯤으로 희석시키려는 의도.

3) '차별이란 그저 인간사에 있기 마련인 불가피한 필요악 수준이 아니겠느냐' 하는 뉘앙스를 담아, 문제의 심각성을 희석시키려는 의도.

4) 패권이라는 월등하고 독점적인 힘의 집합체라는 뜻을 뺌으로써, 한 지역(영남)이 다른 모든 지역에 대해 누리는 지배자의 위치, 억압의 위치를 슬며시 은폐시키려는 의도.
 

주3. 지역주의, 지역감정(정서), 지역구도등의 개념과의 구별

지역주의 : 이기적 인간들이 천혜의 자연적 풍토위에 군거하여 발현하는 제 양상. 이해관계가 얽혀 획일적이지 않다.

지역감정(정서) : 풍토및 지연과 얽혀 발현하는 연고자들의 감정이나 정서로 다양한 풍토를 반영한다.

지역구도 : 지역단위들의 어떤 양상을 서술하기 위한 가치맹목적 개념.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