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방대한 자료를 검토해야 하는 작업이라 시간 소요가 많이 되는데.... 기분이 내키면.... 시리즈로 작성해볼까... 하는 생각입니다. 시간이 없어 아크로에서는 거의  '어그로급' 포스팅만 했던 처절한 반성이라고나 할까......? 뭐, 제가 변덕이 워낙 심해서 시리즈로 작성을 할지는 한그루도 몰라, 미뉴에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 >



기술하기 전에 저의 입장을 약술하자면 저는 '영남패권은 실재한다'라는 입장이며 그 기원은 '대한민국의 전근대성을 바탕'으로 '박정권의 태동부터 없었던 정권의 정통성의 딜레마'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해방이 되자, 대학교 입시 원서를 낸 사람이 5만명이었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이는, 일제시대의 교육이라는 것이 '식민지의 착취를 공고히하기 위한 수준으로만 실행되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인데 지역별로 통계는 없습니다. 단지, 추측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한그루의 판단)


일제총독부 농지 통계를 보면 농지 면적은 경상도가 전라도보다 더 많았다. (주 *1)


그런데 일제시대에 농산물 착취가 호남에서 주로 이루어진 것은 호남은 대지주 위주의 구조, 영남은 소작농 위주의 구조였을 것이고 그 것은 해방 후 농촌 중심의 경제구조에서 전체 소득은 호남이 영남보다 높았을지언정 소득의 분배는 영남이 더 균등했을 것이고 대학진학에 필요한 '경제력'은 영남이 호남지역보다 좀더 유리했을 것이다.


즉, 해방 후 5만명의 대학 입시 지원생 중 영남지역이 호남지역보다 많았을 것....이고 그 것이 후에 영남패권을 추구하는 인적기반으로 작동했을 것이라는 것이 나(한그루)의 추측이다.


1. 이 추측은 1945년도에 대학을 입학했다면 1961년 당시에는 30대 중반이 되었을 것이고 이들은 1970년대 이후 40대 중반이 되어 당시 대한민국의 중추인력으로 자리매김했을 것이다라는 '점정적 결론'에 도달한다.


2. 이 '잠정적 결론'은 여러가지 통계 자료들에 의하여 '부합되기도 하고' '배치되기도 하는데' 그에 관계없이 박정희 정권 당시의 인사정책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지역 편중 현상이 나타나고 특히 전두환 정권 시절에는 그 편중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3. 박정희 정권의 인사정책 편중 현상은 1971년 총선을 앞두고 공화당 소속 의원들이 '지역 편중 인사정책 때문에 총선에 패배할 것이다. 따라서 정권 차원에서 인사 편중 현상을 시정해야 하도록 대통령에게 건의하여야 한'라는 동아일보 기사에서 추측할 수 있다.(주 *2)


4. 박정희 정권의 인사정책 편중 현상은 박정희의 실책이다. 왜냐하면, 박정희 정권의 '불균형 경제 개발 방법' 즉, '선택과 집중'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지만 예를 들어, '국가 예산 편성의 기본 추구 방향'이 '부의 재분배'인 것처럼 인사정책은 '불균형 개발로 인한 지역 편중 현상'을 완화시키는 방법인데 인사정책에 있어서 지역 안배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 개발이 '불균형 경제 개발 정책'이었다는 것을 박정권도 인지했고(*3) 그로 인한 지역별 격차가 심해질것이라는 예상이 보편적이라는 점에서  더욱 더 세심하게 고려했어야 했다.

 


1. 우선 역대 정부 고위관료의 출신지역별 통계를 인용합니다.

 

역대 정부 고위간료의 출신지역별 통계-001.png

(한그루의 판단)

1-a) 우선 상기 통계를 더 정확하게 기술하려면 단순히 인원을 판단할 것이 아니라 직위별 가중치를 두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내무부 장관과 보사부 장관의 '정치적 파워는 확실히 다를겁니다'. 문제는 그런 가중치 부여가 객관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과 시대별로 가중치가 다르기 때문에 예전에 작업을 하다가... OTL.... 언젠가는 완성이 되겠지요.


1-b) 또 하나는 지역별 인구 비열 및 소득 수준(대학 진학과 관계가 있으므로) 등을 고려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고려 사항은 상기 기술한 '지역별 인사의 안배'의 당위성보다 가중치가 많이 떨어지겠지요.(아래에 인구비율을 고려한 통계를 인용합니다.)


1-c) 상기 도표에서 강원도의 홀대는 '절대치'에서 가장 심한 편이기는 하지만 경기 지방의 홀대가 눈에 띕니다. 반면에 이북 지방은 '이북 5도를 합쳐' 통계를 냈는데 이북 5도 지역별로 어떻게 되었는지 분석이 필요하다는 판단입니다.


왜냐하면, 경기+호남+황해는 조선시대에 '기호학파'를 이루는 지역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기호학파'는 조선시대에 특정 지점(아마 선조 때인가로 기억합니다만)에서만 득세를 하였을 뿐 조선 시대 내내 '소수파'였습니다. 이는, 이 지역의 양반 가문 족보를 검증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제공합니다.


즉, 편중인사에서 '조선시대의 계급과 상관성이 있는가?' 역시 검증의 대상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이 통계는 낸 분이 없더라고요. 하다 못해, 제가 학자로서 무한 존경심을 표출하는 강준만 교수조차도... ^^




2. 다음에는 상기 1항의 통계에서 인구비율을 반영한 통계입니다.



역대 정부 고위간료의 출신지역별 통계(인구비율 반영)-001.png

(한그루의 판단)

2-a) 상기 비율에서 이북 출신들의 인구비율이 높은 것은 '월남 이북 도민들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다른 지역에 비하여 격차가 '+ 방향'인 것은 당연할겁니다. 문제는 예전에 제가 제기했던 영남패권을 공고히 하는 주축 중 하나인 개신교 메가처치의 인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강력한 반공국가'를 설립하는 주요 인적자원으로 활용이 되었다는 추정입니다. (주 *4)


2-b) 사두에서 설명한 것처럼 '인사정책은 '불균형 개발로 인한 지역 편중 현상'을 완화시키는 방법'인데 당시 개발이 경부선을 중심으로 개발이 되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당연히 '관리 포인트'가 많은 영남에 관료들이 많을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차관'은 특정 지역의 장관이 아니라 '전국구'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경상도의 장차관급 관료 인원은 특이하게 많다고 볼 수 있습니다.


2-c) 상기 설명한 당시 공화당 소속 의원들도 제기한 인사정책에 있어서 지역편중 현상 및 1967년 대선에서 야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윤보선씨가 '호남홀대론'을 주창하고 나온 것이 단순한 정치적 구호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3. 516 쿠테타의 주역 김종필의 반발


(인용글)

박정희의 경상도 우대, 전라도 푸대접은 자신의 주위에 영남출신을 전면 배치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5ㆍ16직후 전두환 등 정규육사출신 동향후배들을 끌어들인 박정희는 특히 민정이양을 위한 선거를 앞두고 일부 구정치인들을 공화당에 입당시켜 정치적 브레인으로 삼았다. 이효상․엄민영․백남억․김성곤․박준규 등은 모두 경북출신들이다. 당초 구정치인을 불러들일 때 김종필 계 사무당원들의 반발이 있었으나 원내안정 세력구축 명분을 내세워 TK사단을 이루었다. 다분히 지역적 색채가 농후했음은 물론이다.


이렇게 우대받은 경상도출신들은 박정희 통치기간 내내 정치․군사․경제․사회․관료 등 각 분야에서 지배적인 엘리트 계층을 형성할 수 있었다. 반대로 이들과 경쟁관계에 놓여있는 전라도출신들이 소외되는 것은 필연적인 현상이었다. 제3, 4공화국 관료들의 출신지별 현황을 보면 박정희 정권 밑에서는 경기도와 전라도 및 서울출신들이 비교적 소외되었고 경상도는 절대적인 우대를 받았으며 이북출신들도 중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여타지역출신들은 인구비율과 비슷한 평균치의 대우를 받았다. 전두환 정권 밑에서는 경상도출신들이 파격적으로 우대받고 이북출신들이 또한 상당히 우대받는데 반해 전라도출신들은 완전히 소외되었고 서울․경기․충청출신들도 별로 좋은 대우를 받지 못했다. 

(이상우「박 정권 18」, 340쪽/ 남영신, 「지역패권주의 연구」, 학민사, 1993, 155쪽)



(한그루의 판단)

3-a) 516 쿠테타에서 전두환이 언급되는 이유는 당시 육사생도였던 전두환이 '516 쿠테타 지지성명을 발표한 것'에서 연유합니다.


3-b) 전두환 정권 때는 영남 편중 인사가 두드려져 예를 들어 12대 은행장이 모두 영남출신이며(주 *5)  1988년 5월 말 기준 서울시청 서기관급 이상의 공무원 299명 중 경상도출신이 50%에 가까운 반면 전라도출신은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런 편중 인사는 DJ 정권 시절 역차별이라는 비난을 받게된 단초를 제공합니다.

즉, 영남 출신 대통령이 줄줄이 배출되는 현실에서(박정희부터 김영삼까지 주*6) 상대적 불이익을 받았던 호남출신들이 진급이 되지 못해 정체되어 있다가 그 폐단을 일시에 해소시켜 임명한데서 빚어진 현상이라는 것이라는 주장이죠. 주*7)


3-c) 박정희와 함께 쿠테타 주역이었던 김종필의 반발까지 살 정도로 5.16 쿠테타 후 지역편중 인사는 문제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거론하겠지만 흔히 주장되는 것처럼 516 쿠테타는 419 혼란에서 야기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박정희는 이미 419 혁명 전에 쿠테타를 모의한 전력이 있으니까요.





4. 500인 이상 대공장 지역별분포 추이(광업 및 제조업)



500인 이상 대공장 지역별 분포(광업․제조업)-001.png  



(한그루의 판단)

4-a) 정치 행위가 결국 경제적 물적 자본의 주도권을 쥔다는 의미에서 박정희 영남패권 추구 주장에서 호남의 경제적 차별이 집중적으로 제기되는데요... 사실, 이 분석을 해내는 것은 만만한 작업이 아닙니다.


4-b) 제가 모든 주장을 다 접하지는 못했습니다만 '옹호하는 입장'이건 '비판하는 입장'이건 정치적 포지션에 너무 충실한, 그러니까 편향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4-c) 이 부분은 나중에 고찰하기로 하고... 상기 그래프에서  특이한 부분은 1971년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된 이후에 500인 이상 공장의 개수가 전국적으로 증가했지만 특히, 전두환 정권 때의 통계로는 경남과 경북의 합계(주 *8)가 서울, 부산 및 경기에 비해 앞서가게 됩니다. 과연, '선택과 집중'에 부합하는 경제지표일까요?





오늘은 요기까지......... ^^



주*1) 일제 시대의 도별 농지 합계는 어렵게 구한 자료인데 ^^ 지금 컴터를 검색해보니 보이지 않네요. (당시 이 문제를 스카이넷에서 제기했다가 몇 분에게 해석 방법에 대하여 중요한 힌트를 얻기도 했고 본문의 해석은 그를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 자료 제시 요구가 있으면 '타칭 검생왕'답게 인터넷을 샅샅히 뒤져서라도 제시하겠습니다. ^^ 



주*2) 이 글을 쓰기 위해 동아일보 1971년 1월 1일자부터 총선 후(5월)까지의 신문을 뒤벼보았는데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역시, 자료 요구 제시가 있으면 1970년 1년치 동아일보 신문을 뒤져서 제시하겠습니다.


주*3) 선택과 집중은 당시 최초의 차관이 들어왔을 때 박정희가 당시 한국일보 사장과 대화한 기록에서 박정희도 인식을 했다고 봅니다. 그 대화내용을 기억에 의하여 구술하자면,


박정희 : 임자, 이 돈을 어떻게 썼으면 좋을까?

한국일보 사장 : 돈이 턱없이 부족하니 당연히 한군데 집중해서 개발해야지요.


주*4) 한국 개신교 메가처치의 영남패권 옹호는 그 사례를 몇 번 포스팅했고 실제 인물들의 출신지별 추적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완성되면 역시 올릴 예정입니다.



주*5) 이 부분은 근거확보를 위해 각 은행 사이트를 방문하는 등 인물 추적 중입니다.



주*6) 그러고보니 YS정권 때 지역별 인사 통계는 접한 기억이 없네요. 이 부분도 역시 검증 대상입니다만 주장 원글의 신뢰성을 따져볼 때 '믿을만하다'라는 판단에 인용합니다.(물론, 다소 '정치적 주장'이 있다는 판단도 하께 하고 있습니다.)



주*7) DJ정권 당시 인사정책 역차별 논란이 불러일으켰던 것은 DJ정권 시절, 서울시 25개 구청 부구청장 중 23명이 호남출신으로 임명된 것이라는 주장에 근거하는 것인데 그 주장에 대한 반론격인 본문 글은 제가 검증하지 않았고 여기서는 인용만 한 것입니다.



주*8) 대구는 대구직할시로 승격된 것이 1981년 7월 1일 전두환 정권 때 일이고 그 때부터 서울특별시 등과 같이 독립된 항목으로 통계를 산출하죠. 즉, 저 통계에는 대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