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노래>는 쇼팽 작품 가운데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의 하나. 전에도

다른 연주로 소개한바 있음.

 

 *Idil Biret가 7세때 프랑스로 유학갈 때인데 당시 외환사용금지인지, 어린이

해외유학 금지인지 그런 법이 있는걸 터어키 의회가 이딜 비레 유학을 위해

법안을 개정했다고 함.

 

 

 

   이스탄불에 다시 갈 기회가 있다면 그녀를 만나고 싶다.
90년대 초 동료 몇 사람과 유럽 가는 길에 그곳에 잠시 들른 적이 있다. 별다른
용건 없이 그냥 스쳐 지나간 방문이었다. 그때 거리 싸구려 매점에서 가죽 허리
띠를 하나 구입했는데 지금도 그걸 사용하고 있다. 며칠 거리를 어슬렁거리다가
그곳을 떠났는데 그땐 그녀 이름도 존재도 몰랐다.

 만약 다시 그곳에 가게 되면 그녀를 만나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라는 보스포러스
해협의 다리를 함께 산책하며, 그녀의 피아노 연주와 음악에 관해 얘기를 나누고
싶다. 구 시가지에 있는 그랜드 바자르 어느 모퉁이에 있는 캐밥 식당에서 맥주
한잔을 앞에 놓고 담소를 나누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이딜 비레(
Idil Biret. 1941~), 터키 뿐 아니라 유럽 전체에도 이름이 널리 알려진 현역 피아
니스트이다. 그녀는 최근 십여년 사이 내가 가장 자주 찾아 듣고 친근감을 느끼
는 피아니스트이기도 하다.
 

 어느 화면에서 그녀가 이스탄불 안내자로 등장해서 시내의 주요 유적과 시민생
활에 관해 홍보하는 장면을 봤는데 본래 앙카라 태생이지만 지금 거주하는 이스
탄불이 그에겐 참 어울리는 도시이고 그 도시 홍보에 열중하는 걸 볼 때 그녀 자
신도 이 도시에 큰 애착을 갖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딜 비레 연주를 들으면서 우선 두 가지 사실에 놀란다. 그녀는 3세에 레슨을 받
기 시작했고 6세부터 무대에 나섰으며 고희를 넘긴 지금도 유럽과 북남미, 호주까
지 넘나들며 젊은이 못지 않은 왕성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그녀가 누구보다 사
랑받는 연주가라는 증거일 것이다. 그녀의 레퍼토리는 베토벤에서 현대의 피에르
불레즈(Pierre Boulez. 1925~)까지 넓고도 다양하다. 이런 사례가 아주 드문 것은
아니지만 이딜 비레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그녀는 건반에 올리는 작곡가마다 각
별한 평가를 받아내는 것이다. 쇼팽 스페셜리스트라는 호칭은 너무 많은 연주자에
게 붙여져 특별할 것도 없다. 그러나 쇼팽 탄생 200주년 기념으로 2010년에 폴랜
드 일간지가 시리즈15권을 발매할 때 이딜 비레의 녹음을 부록으로 채택한 걸 보
면 그에게 이 호칭은 한층 자연스럽다. 현대 작곡가인 피에르 불레즈의 대표작 중
하나인 <피아노 소나타 2번>의 경우 이딜 비레 연주를 듣고 비로소 그 작품에서
혼을 느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내게서 이딜 비레 이름을 들어 알게 된 국내
어느 엠프 제작사 사장님은 즉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집> LP 음반을 구입
해 들었다. 다음에 만났을 때 대단한 음악애호가이기도 한 그 사장님은  덕분에 굉
장한 연주가를 알게 되었노라고 고마워했다. "당당하고 품격 높은 베토벤 연주"라고
그는 격찬했다.
 

 오래 전 서울에 와서 쇼팽 연주로 펄펄 나르던 블라디미르 부닌, 그때 연주가 너무
좋아 그의 다른 연주들을 찾아 듣다가 그의 베토벤 소나타 연주를 듣고 무척 실망
했던 기억이 있다. 궁합이 서로 맞지 않았다. 연주가 자신도 고심하는 흔적이 연주
에서 느껴졌다. 쇼팽과 베토벤의 '너무도 다른 세계"를 반드시 한 연주가가 공유해야
할 이유는 없다는 걸 그때 느꼈다. 그래서 '너그럽고 따뜻한 미소와 함께 언제나 겸
허한 자세로 음악에 헌신하는' 이딜 비레가 더욱 돋보이는 것이다.

  이딜 비레를 처음 만난 곳은 조금 얄궂은 장소였다. 음반 전문점도 아니고 이것 저
것 생활용품들을 판매하는 모스크바 변두리의 허름한 잡화점, 그곳 진열대 한 구석
에 먼지를 뒤집어 쓴 낙소스 염가판 CD 몇장이 딩굴고 있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아 폐품처리 직전으로 보이는 그 음반 가운데 굵은 선의 팝 아트 기법으로 여성
얼굴을 그려놓은 음반이 눈길을 끌었다. 그 표지 그림에 끌려 내용도 살피지 않고
터무니없는 헐값으로 그걸 구입했다. 슈만, 차이콥스키, 드뷔시 3인의 유년기 소품
모음집이었다. 공교롭게도 첫 곡이 슈만의 "이국의 마을과 사람들"이다. 많은 시간
을 혼자 지내던 시기여서 작은 소일거리를 찾고 싶었는데 그 음반은 나의 그 욕구
를 넘치게 채워줬다. 날만 밝으면 그 음반을 들으며 '먼 유년기의 회상'으로 돌아갔
다. 세 사람 작곡가의 각기 다른 드라마와 색채감을 음미하며. 게다가 들을수록 노
련하고 순도 높은 연주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이딜 비레의 화려한 연주경력, 폭넓
은 음악세계를 알게 된 건 또 한참 뒤의 일이다.

 그 연주는 얼핏 들으면 평범한 듯 하지만 언제나 분명한 차별성을 드러낸다. 가령 아
쉬케나지와 쇼팽의 <뱃노래> 한 곡을 같은 세트로 연주한 걸 들어보면 그가 스케일
이 큰 선 굵은 연주를 하면서도 작곡가 특유의 상념을 세밀화로 그려내는데도 능한
것을 알 수 있다. 쇼팽 특유의 어법에 누구보다 충실한 그의 쇼팽 <마주르카>전집
음반은 보석 같은 가치를 지닌다. 그는 스승 알프레드 코르토에게서 쇼팽을, 빌헬름
켐프에게서 베토벤을 잘 이어받은 셈이다. 그는 짐머만처럼 철저한 감각파도 아니
고 같은 터어키 출신 신세대 기수 파질 세이처럼 평범을 거부하는 강렬한 제스처도
그에게는 없다. 단숨에 관객을 휘어잡는 광채, 카리스마가 그에게는 없다. 이런 점은
아르헤리치와 대조가 된다. 그런데 음악은 듣고 싶지만 당장 선택할 음반이 떠오르지
않을 때 내 손은 버릇처럼 이딜 비레 음반을 찾는다. 어떤 경우에도 그 연주가 믿음을
배반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