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전적으로 소설입니다.

우리 원순씨의 집안이 그럴리는 절대 없지만 그냥 소설이니 그렇게 알아주시길...


원순씨 관련 요상한 일들.

1. 농촌의 가난한 농부 집안에서 7남매 중 6번째이자 차남인 원순씨에게 6살 때 1000평이 넘는 토지를 증여.

2. 농촌의 가난한 농부 집안에서 7남매 중 6번째이자 차남인 원순씨를 고등학교를 재수까지 시키고, 서울로 유학보냄. + 대학도 재수.

3. 농촌의 무지한 농부 집안에서 호적 쪼개기를 통해 두 명의 아들 모두 6방 혜택.

4. 지방의 뼈대있는 집안의 원순씨는 어머니 기일을 10년 이상 다르게 기억함.



우연히 생길 수도 있는 일들이지만 뭔가 갸웃거려지는 면이 있죠.


저 모든 것을 한 번에 이해시킬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 한 가지가 나옵니다.


"원순씨 아버지의 7년간의 보국대 활동."


1938년 창설됐고, 1941년부터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동원했다는 보국대.

원순씨의 증언에 따르면 원순씨 아버지는 그 보국대에서 7년간 끌려가 있었으며, 그 활동 과정에서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일본인들의 장점을 배우셨다 랍니다.

보국대가 7년 동안 존재했었으니 7년간의 활동이라면 거의 창립 멤버에 가까웠겠죠.

당시 보국대 활동이 위안부 모집 사기 같은 것이나 강제 노역에 동원하는 것 등이었다는데 남자였던 원순씨 아버지는 억지로 끌려간 것이었다면 강제 노역이었을텐데 보통 강제 징용당하셨던 분들은 일본사람에 치를 떠는 경우가 많은데 그 가운데서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일본인들의 장점 배우셨다는 것은 참으로 갸웃거려지는 일이죠.

그래서 약간만 틀어서 생각해봤습니다.
 
 
만약 일본인과 협력하는 보국대 창립 멤버였다면 이라는 가정을 해봤더니, 기간이나 그 때의 교훈을 얻은 것이 쉽게 이해가 되더군요.

이 점은 박원순 형제의 나이를 보면 더 확실해질 것같은데, 박원순의 손위 형제들 가운데 1938년과 1945년 생 사이의 출생자가 있다면 원순씨 아버지는 강제 징용이 아니라 협력자임이 거의 확실해지는 것이겠죠.

강제징용 당했던 사람이 휴가 나와서 자식을 만들리는 없을테니까요.

원순씨는 가족 관련한 사안은 전혀 오픈하지 않으니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그저 가정만 해본다면 대충 이렇습니다.


a. 당시 보국대에서 일본인과 협력하는 관리직 정도의 깨인 사람. (가정)

b. 경제적 여력이 충분하니 자식들 교육에 대한 투자와 재산 증여 가능. (요상한 점 1,2 해결.)

c. 지식이 충분하니 자식들 병역 문제도 쉽게 해결. (요상한 점 3 해결.)

d. 당시 상황 상 능력있는 남자는 여러 명의 아내를 거느린 경우도 있으니 원순씨 어머니가 2명 이상도 가능. (요상한 점 4 해결.)



이건 전적으로 소설이지만, 뭔가 퍼즐이 맞춰지는듯한 느낌도 드네요.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건 소설입니다. 소설.

우리 원순씨 아버지와 원순씨 집안이 절대 그럴 리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