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lary Rose & Steven Rose는 진화 심리학이 등장한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 대해 이야기한다. “20세기의 마지막 몇 십 년에 “확실해 보였던 것들”과 “희망”이 무너졌기 때문에 “확실해 보이는 것을, 무언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을” 찾으려는 노력 속에서 진화 심리학이 등장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진화 심리학의 등장과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새로운 분과를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20세기의 마지막 몇 십 년은 거의 유가 없는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격동의 시기였다. 오랜 기간 확실해 보였던 것들 중 많은 것이 그리고 사회적으로 더 정의로운 미래에 대한 희망이 무너졌다. 공산주의의 붕괴, 냉전의 종말과 그 때문에 고삐가 풀려 버린 여러 지역의 유혈 낭자한 민족 분쟁 및 종족 분쟁, 복지 국가의 약화, 그리고 생태적 재앙에 대한 점점 더 커지는 공포가 진보의 불가피성에 대한 믿음의 동요와 대응했다. 과학적, 기술적 합리성이 의문의 여지 없이 자비로운 결과로 이어지리라고 더 이상 가정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풍토 속에서 확실해 보이는 것을, 무언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을 새로 찾아내려는 노력이 긴박하면서도 이례적으로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이슬람교, 유대교, 기독교의 근본주의가 부흥했는데 호전적 열정과 창조론에 대한 믿음을 동반했다. 그와 함께 뉴 에이지 운동이 나타났는데 과학적 현대주의(scientific modernism, 과학적 모더니즘)를 명시적으로 거부하고 인간과 자연 사이의 새로운 영적인 관계를 추구했다.

 

But to understand the appearance and significance of EP, it is necessary to set this new discipline in a historical and social context. The last decades of the twentieth century have been a period of almost unprecedented social, economic and cultural turbulence. Many of the old seeming certainties and indeed hopes for a more socially just future have crumbled. The collapse of communism, the end of the Cold War and the bloody regional nationalist and ethnic struggles that it has unleashed, the weakening of the welfare state and growing fears of ecological catastrophe have been matched by a shaken belief in the inevitability of progress. The unquestioned benevolence of scientific and technological rationality can no longer be assumed.

 

In this climate the search for new apparent certainties, something to cling on to, has become urgent but extraordinarily diverse. There has been a resurgence of fundamentalist religions, Islamic, Jewish and Christian, with their enthusiasm for militancy and their beliefs in creationism. Alongside these have appeared the New Age movements, which explicitly reject scientific modernism and seek a new spiritual relationship between people and nature.

(Introduction, Hilary Rose & Steven Rose, Alas, Poor Darwin: Arguments Against Evolutionary Psychology, Hilary Rose & Steven Rose 편집, 3)

 

 

 

Hilary Rose & Steven Rose에 따르면 “20세기의 마지막 몇 십 년은 거의 유가 없는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격동의 시기였다.” 하지만 20세기만 하더라도 1차 세계대전, 1930년대의 대공황, 2차 세계대전, 1969년을 전후한 격동이 있었다.

 

 

 

Hilary Rose & Steven Rose는 “20세기의 마지막 몇 십 년사회적으로 더 정의로운 미래에 대한 희망이 무너졌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소위 “공산주의 국가”가 붕괴한 것을 보는 사람들의 감상은 서로 달랐다. 소련식 공산주의에 희망을 품었던 사람들에게는 “공산주의 국가”의 붕괴가 절망스러운 사건이었겠지만 소련을 지독한 독재 국가로 본 사람들은 “독재 국가”의 붕괴로 보았으며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그리고 진화 심리학을 이끄는 사람들 대다수는 소련식 공산주의에 희망을 걸었던 것 같지 않다.

 

또한 대한민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민주화 운동이 성공을 거둠으로써 “정의로운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게 만들기도 했다. 전세계적으로 볼 때 “20세기의 마지막 몇 십 년도 민주주의가 확장되는 시기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로 수십 년 동안 지속된 세계적인 장기 호황이 끝났으며 그로 인해 서유럽과 북유럽의 복지 제도가 약간 후퇴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처럼 경제적으로 쫄딱 망한 나라도 있지만 전세계적으로 볼 때 전반적으로 더 풍요로워졌다.

 

여성의 지위는 전세계적으로 꾸준히 개선되었으며, 동성애자의 지위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국지전은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세계 대전에 대한 공포는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여전히 전쟁과 평화가 공존하고 있고, 극단적인 굶주림과 호화로움이 공존하고 있다.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평화만 있었던, 풍요로움만 있었던 시기는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과학적, 기술적 합리성이 의문의 여지 없이 자비로운 결과로 이어지리라고 더 이상 가정할 수 없게된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2차 세계대전(그 와중에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과 히로시마 핵무기 투하가 있었다)이었던 것 같다. 2차 세계대전을 본 사람들이 여전히 “과학적, 기술적 합리성이 의문의 여지 없이 자비로운 결과로 이어지리라고가정하다가 “20세기의 마지막 몇 십 년에 갑자기 그런 가정을 버렸다고 보는 것은 정말 희한한 발상이다.

 

 

 

“확실해 보이는 것을, 무언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을찾으려는 시도로 진화 심리학의 등장과 인기를 설명하려고 하는데 진화 심리학자들이 확신에 차서 이야기하는 일은 별로 없다. 여전히 진화 심리학자들이 쓴 글에는 “maybe, probably, might, possible, plausible, can, could, perhaps”와 같은 단어들이 짜증나게 많이 나온다. 한국어로 말하자면 “아마, 그럴 수 있다, 그럴 것이다, 가능하다, 그럴 듯하다, 그럴 지도 모른다” 정도가 될 것이다. 이런 면에서 진화 심리학은 종교와도 다르고 물리학과도 다르다. 한편으로, 진화 심리학자들은 종교인과는 달리 증거도 없이 무턱대고 믿지는 않는다. 다른 한편으로 진화 심리학은 아직 유아기이기 때문에 강력한 증거를 별로 모으지 못했다.

 

 

 

Hilary Rose & Steven Rose가 예로 든 뉴 에이지 운동은 잘 정립된 과학처럼 확실해 보이는 것을 거부하는 운동이다. 게다가 뉴 에이지 운동은 확실성보다는 두루뭉실하고 애매한 것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확실해 보이는 것을, 무언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을추구하려는 시도와 별로 상관이 없어 보인다.

 

 

 

Hilary Rose & Steven Rose 같이 진화 심리학에 적대적인 사람들은 진화 심리학이 그럴 듯한 이야기를 할 뿐 제대로 입증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그런데 위에서 인용한 Hilary Rose & Steven Rose의 분석은 그럴 듯해 보이지도 않는다. 그냥 마구 이야기를 만들어 놓고 그것을 역사적, 사회적 분석이랍시고 믿으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