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도선수 왕기춘이 체벌을 옹호하는 글을 SNS에 올려서 난리가 났다. 왕씨 왈 "잘 하면 칭찬받고 못하면 벌받는 것은 당연하니... 맞을 짓을 했으면 맞아야죠"

벌을 왜 체벌로 하느냐에 대해서 왕기춘이 아무런 생각이 없다. 맞을 짓이라는 것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도 아무 생각이 없고. 

물론 왕기춘 처럼 "후배에게 벌을 체벌로 해도 된다, 맞을 짓을 했으면 맞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현실이다. 

왕기춘은 체벌을 벌이라고 하면 왜 안되며 맞을 짓이라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의사를 왜 무시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이 없다.

왕기춘이 후배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생각을 실현시킬 수 있는 근거는 단지 자기가 선배라는 것. 과거부터 해왔다는 것. 그게 바로 수꼴이고 파쇼.

체벌 받기 싫다고 하는 후배들에 대해 합의도 없이 체벌한다는 것은 왕씨가 수구꼴통이고 파시스트라는 것을 밝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2. 1988년에 대학교 2학년이었는데 서클에서 밀양 표충사 사자평으로 신입생 환영 등반대회를 갔다. 운동권 서클은 아니고 그냥 운동부 서클이었다.

서클은 2학년이 임원단을 맡아서 이끌어갔다. 신입생환영 등반대회는 늘 사자평으로 갔다. 3,4학년 선배 뿐만 아니라 졸업한 선배까지 같이 참석한다. 

2학년 동기 임원단들은 신입생을 환영하기 위해 등반대회를 재미있게 기획했다. 힘들게 정상에 올라가서 텐트도 치고 저녁먹고 장기자랑도 하고...했는데,

행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부터 분위기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밤 12시에 2학년 임원단까지 남자회원들만을 대상으로 내리까시를 하는 게 서클의 전통이었다. 

내리까시. 최고 기수 선배가 바로 1년 아래 기수를 체벌하고, 그 기수는 또 그의 1년 아래 기수를 체벌하고..그렇게 쭈욱 내려까는 것을 내리까시라고 한다. 

특별히, 줄빳다라는 것도 있는데 한 자리에서 내리까시를 모든 구성원들이 지켜보게 하고 '엎드려 뻗쳐'해서 몽둥이로 엉덩이를 때리는 것을 줄빳다라고 한다.

내리까시가 다 내려와서 2학년 동기들까지 내려왔다. 동기들은 동요했다. 그런 전통이 있다는 것도 몰랐었고 왜 맞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걸로 단합이 돼?

동기들은 회의를 한 끝에 전통을 거부하기로 했다. 군대에서도 체벌이 없어졌다고 하는데 왜 지성인들이 모인 대학교에서 체벌을 하느냐고...

표충사 사자평, 그 넓은 억새밭 고원에서 밤 12시에 선배들이 모여서 2학년들에게 체벌을 받아야 한다며 2학년들을 설득하고, 2학년들은 맞을 수 없다고 저항했다. 

아름다운 사자평, 달빛 아래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나를 비롯해 회원들이 "이런 폭력 서클, 마 탈퇴한다"며 소리치고 짐을 싸러 텐트로 갔다. 줄줄이. 

신입생환영대회에서 서클을 이끌어가는 핵심인 임원단 2학년 회원들이 모두 서클을 탈퇴한다고 하니까 졸지에 15년 된 서클이 공중분해될 상황이었다. 

그러자 선배들은 회장에게 애걸복걸 사정하면서 "제발 좀 맞아 도(다오)"부탁을 했고 회장은 고민하다가 책임감에 선배들의 부탁을 들어주어 체벌을 받기로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우리들은 동기가 저렇게 맞고 있는 것을 그냥 볼 수는 없다며 같이 체벌을 받아버리고 말았다. 서클 창설된 이래 초유의 사건이었다. 

동기들은 표충사 사자평의 그 사건을 이야기 하면서 우리 동기들의 행동을 '사자평 의거' '표충대항쟁'이라고 이름 붙였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이야기를 한다.

재미있는 어감의 '표충대항쟁'은 87년 직선제 개헌을 위한 민주화 투쟁이 6월에 절정에 이르자 이를 '6월 항쟁'이라고 했는데 그 '6월 항쟁'을 패러디 한 것이다. 

87학번 이른바 민주화학번은 입학하자 마자 수업도 없이 데모를 했었다. 1년 내내. 그 87년의 경험이 있어서 88년의 표충대항쟁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1987년의 '6월 항쟁'은 성공했지만 1988년의 '표충 대항쟁'은 실패했다. 거시적이고 국가적인 폭력보다 미시적이고 일상적인 폭력을 없애기가 더 어렵다. 

그래서 아직까지 왕씨의 발언이 나오고 있는 것이겠지만... 서클 후배들은 요즘도 밤 12시에 사자평 내리까시 전통을 지키고 있는지 모르겠다. 
 

3. 사자평 내리까시 전통은 남자회원들만 받기 때문에 여자 회원들은 그날의 기억이 희미할 법도 하지만 여자 회원들도 아주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날 우여곡절 끝에 전통적인 연례행사를 마치고 선배들은 2학년 임원단동기들과 술을 같이 하면서 화해조 혹은 설득조의 설교를 늘어놓았고 나는 술을 마셨다.

선배들이 따라주는 화해의 소주를 코펠 밥그릇에 받다보니 밥그릇의 절반까지 찼다. 소주 두 병 정도의 양이었는데 나는 겁도 없이 그것을 한 번에 다 마셔버렸다.

술이 약한 편은 아니지만 그 전에 나폴레옹과 캡틴큐 싸구려 양주를 한 병씩 까서 마신데다 소주 두병을 한 입에 부어 마셔버리니깐...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게 됐다.

깊은 새벽에 표충사 사자평까지 구급앰블란스도 올 수가 없었고... 나는 정신은 말짱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술을 많이 마셔봤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1학년 때 사발식에서도 나는 동기들 중에서 술을 가장 많이 마셨고 가장 멀쩡했다. 술을 마시면 마실수록 정신이 말짱해진다는 전설적인 선배의 유일한 대작자이기도...

목근육이 마비가 되고 손가락이 마비돼 오그라드는 느낌이 전해졌고 숨이 점점 가빠져 왔다. 텐트 속에서 애가 이상해진 것을 알게된 서클에서 난리가 났다.

호흡은 점점 더 가빠지고, 맥박은 불규칙적으로 되었다. 간호학과 여자 회원들이 내 심장과 온 몸을 맛사지하고 열혈 남자 동기는 마우스 투 마우스 인공호흡을 했다.

나는 곧 정신을 잃었다. 그날 새벽 내내 동틀 때까지 전신맛사지와 인공호흡이 이어졌다. "**이 너 죽으면 죽이뿐데이" 여자들은 모두 다 크게 울었다고 한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내가 서클 전체에 소동을 일으켰던 것이 얼마나 쪽팔리던지.... 요즘도 서클 동기와 선배들은 술자리에서 농으로 "니 한테는 술을 못준다"고 그런다.

진짜 죽을 뻔 했던 것 같다. 그런 느낌이었고... 술먹다가 죽는 게 이런 식이구나 하는...
 

4. 88년 '사자평 의거'에서 "요즘은 군대에서도 체벌이 없어졌다고 하는데 왜 지성인들이 모인 대학교에서 체벌을 하느냐"고 선배들에게 대들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나는 90년대 중반에 특수부대에서 특공병으로 군생활을 했다. 부대 입구 정문을 들어서면 세.계.최.강. 이라는 커다란 표지석이 떡 하니 세워져 있는 그 특수부대.

그 특수부대에서는 구타가 일상이었다. 하루라도 구타가 없으면 불안해서 잠을 잘 수 없는 부대였다. 구타로 인한 부상 심지어는 사망 사건도 왕왕 발생했었고...

내가 자대배치 받기 직전에 옆 대대에서는 구타 사망 사건에 대한 경각심을 보이고자 전 대대원이 보는 자리에서 구타로 죽은 병사의 부검을 실시했다고 하는데...

아무튼 나는 부대 전체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특공병이어서 나이 대우 때문에 직접적인 구타를 받지는 않았고 다만 구타 당하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다. 

남이 구타를 당하는 것을 보는 게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내가 구타를 받는 것과 똑 같은 느낌이다. 이런 감정 이입이 없는 사람들이 구타를 이어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