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크로에서 진행된 영남패권 논의를 보면서 그림자 님등 "그래, 당신들 말대로 영남패권이란 게 실재하고 엄청난 위력을 갖고 있다고 치자. 그럼 그걸 어떻게 없앨 건데?" 이렇게 질문해주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지역차별극복시민행동이 그동안 내부 토론을 진행해온 내용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영남패권의 해결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지역차별/영남패권 현상의 본질부터 분명히 해두어야 할 필요가 있어서 이야기가 좀 길어질 것 같습니다.


몇번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현재 지역차별 및 영남패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최대 난점은 공론화가 되어있지 않은 점이라고 봅니다. 원래 정부가 어떤 산업 지원정책을 펼칠 때도 그 산업 분야를 규정하는 코드라는 것을 정하게 되어 있습니다.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가령 소프트웨어 산업은 몇 번 하는 식으로 규정돼 있고 그러한 코드를 기준으로 기재부의 예산 배분이나 국회의 심의 등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제가 얼마 전까지 일했던 IT컨설팅 분야가 이런 산업 코드를 부여받지 못해 정책적 지원이 어려웠던 문제를 갖고 있었습니다. 정부가 지원하려면 이 분야가 어디에 소속돼있는지 규정하고 접근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규정된 코드가 없다 보니 소프트웨어 분야 또는 경영 컨설팅 분야와 중복되는 등의 문제가 생기곤 했죠. 정부 부처 관계자들도 IT컨설팅 분야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예산을 배정하려 해도 이게 쉽지 않았어요.


아, 그럼 그깢 코드 하나 생성해서 부여하면 될 것 아니냐... 이러실지 모르지만 이게 의외로 간단하지 않습니다. 저도 이야기 들으면서 어떤 분류체계라는 게 얼마나 복잡한 정보와 시스템, 종합적인 분석의 결과물인지 대충 이해가 되더군요. 다른 분야와의 중복 여부부터 시작해서 정확한 영역 설정에 이르기까지 고민하고 검토해야 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분류체계의 기술적 어려움이라는 것으로 예를 들었습니다만, 지역차별 또는 영남패권 문제가 우리나라에서 공론화되기 어려운 현실이 바로 비슷한 경우입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IT컨설팅이 소프트웨어나 경영컨설팅 영역에 포섭되는 바람에 독자적인 고민과 문제의식을 정책에 반영하기 어려운 것처럼, 지역차별/영남패권 문제 역시 우리나라의 깨시민들이 주도해온 민주/진보/개혁 등의 담론이 갖고 있는 일종의 구심력을 아직까지 벗어나지 못한 상태입니다.


물론, 지역차별/영남패권이 기존의 저런 개혁 담론의 하위범주에 포함될 수도 있고 그것이 바람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민주/진보/개혁 진영의 주도권을 가로채간 깨시/노빠들이 지역차별/영남패권의 담론화에 대해서 매우 적대적이라는 점입니다.  바로 이 점이 깨시/노빠 진영의 기만성과 영남패권 친연성을 드러내주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지역차별/영남패권 담론이 활성화되면 될수록 깨시/노빠 진영은 그 세력이 위축됩니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결정적인 것 하나만 이야기하면, 깨시/노빠 진영이 영남패권 세력과 일종의 적대적 공존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는 실증적이고 구체적인 데이터를 갖고 장시간의 토론을 진행해야 할 사안입니다만, 그 가운데 우선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보고자 합니다.


노무현이 끈질기게 TK 즉 영남패권 본류에게 러브콜을 보낸 것도 그렇고, 노무현 정권의 핵심부를 차지했던 PK 운동권이 김영삼을 통해서 통해서 정계에 입문했거나 그 지원을 받은 사례가 많다는 점 등이 방증이 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노무현 측근들이나 노빠 세력들이 2007년 대선에서 보여준 태도가 그것을 입증합니다. 조기숙이 고백하기도 했지만 노빠 핵심들은 당시 정동영보다는 차라리 이명박을 지지했던 정황이 뚜렷합니다.


역대 대선 및 총선에서 진성 노빠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PK  지역이 보여온 투표 행태를 보면 이것이 더 분명해집니다. 정동영보다 이명박의 지지율이 높았던 이유에 대해서 노빠들은 '후보의 자질이 너무 떨어져서'라고 말하지만 과거 김대중이 얻은 득표율 역시 노무현이나 심지어 문재인보다 더 낮았던 것에 대해서는 침묵합니다. 설마 김대중의 자질이 노무현이나 문재인보다 못해서 선택하지 않았다는 얘기를 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만, 이 분들의 상상초월하는 정신승리를 보면 쉽게 장담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현재 진보/개혁/민주 진영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깨시/노빠들은 호남과 TK 가운데 선택하라고 하면 명백하게 TK를 선택하는 무리들입니다. 이들이 TK와 갈등하는 것은 크게 봐서 영남패권의 주도권을 누가 쥘 것인가의 문제에 가깝습니다. 즉, 영남패권을 유지/강화하되 그 방식을 TK가 좋아하는 마초/가부장적 일베 방식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노빠/깨시들이 좋아하는 여성주의적 취향으로 접근할 것인지의 문제라고 봐야 합니다.

 

그런데, 지역차별/영남패권 담론은 이들의 이런 적대적 공존관계를 근본부터 뒤흔드는 도전입니다. 지역차별/영남패권 담론이 힘을 얻게 되면 깨시/노빠들은 영남패권과 적당히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공존할 수 없습니다. 영남발전특위 같은 얘기도 꺼낼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국회의원, 광역/기초 지자체 선거에서 야권의 대표성을 갖고 나갈 수도 없습니다. 이들에게는 그래서 지역차별/영남패권 담론이 사실 영남패권 본류보다도 훨씬 위협적인 것입니다.


최소한 전국민의 4분의 1이 직접 공격의 대상이 되고, 나아가 전국민이 피해 범위에 들어가는 지역차별/영남패권 문제에 대해서 이들이 침묵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성 소수자, 불법체류자, 범죄자 심지어 반려동물의 권리에까지 눈물겨운 감수성을 보이는 이들이 유독 호남에 대한 인종주의적이고 패륜적인 공격에 대해서는 모르는 척 외면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이런 사안들이 그들의 '권력'을 건드리느냐 그렇지 않으냐의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역차별/영남패권 담론은 바로 그들의 권력이 어디에서 생겨났고, 무엇을 목표로 하며,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지를 정면에서 건드리기 때문에 이들이 기피하고 적대시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지역차별/영남패권 문제를 거론하면 꼭 튀어나오는 단골 메뉴가 있죠. 영남만 호남을 싫어한다고 오해하는데 실은 전국민이 너희들 싫어하거든? 홍어 드립만 있나, 과메기/통구이 드립도 많이 봤는데?


전라도 하와이, 충청도 핫바지, 경상도 문둥이 등 특정 지역을 약간 비하/경멸/조소의 대상으로 삼는 표현은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호남에 대한 혐오가 다른 지역에 대한 그것보다 더 강할 수도 있습니다. 현실로서 인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저 사람들이 한 가지 빠트리고 고의건 아닌건 언급하지 않는 게 있습니다.


다른 지역에 대한 폄하 표현은 그냥 우스갯소리 또는 악의 없는 농담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의 함의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호남에 대한 그것만은 인종주의적이고 극렬한 적대감을 바탕에 깔고 있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길까요? 본질적으로 호남에 대한 폄하는 바로 정권에 대한 도전자를 응징하고 경계한다는 성격을 갖기 때문입니다. 즉, 자신들이 누리는 거대한 특권과 패권을 현실적으로 위협하는 존재가 호남이기 때문에 그 대응도 그렇게 격렬하고 악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호남에 대해 똑같은 표현을 쓸지라도, 심지어 그 표현이 '홍어' 같은 패륜적인 것이라 해도 영남패권 세력과 기타 지역 사람들이 사용하는 함의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다른 지역 사람들은 설혹 호남을 홍어라고 부르며 낄낄댈지라도 거기에는 자신을 위협하는 적을 상대하는 격렬한 증오감은 없습니다. 하지만, 영남 출신들은 다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특권과 패권을 위협하는 적으로 호남을 바라보기 때문에 상상을 초월하는 증오심을 담고 그 단어를 내뱉으며 그 발언이 또한 지속적이고 조직적입니다. 그들의 패권과 특권이 구조적이고 또한 집단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바로 이런 차이를 억지로 덮어버리려고 합니다. 그래야 자신들의 호남에 대한 증오, 그 지역 이기적인 동기를 감추고 그것을 전국민의 선택으로 위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호남에 대한 증오 현상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바로 영남패권의 정당성이 사라져가고 그것을 유지해주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당위가 사라지는 것이 바로 일베 등의 난동이 심각해지는 이유라고 봐야 합니다. 그들은 지금 두려워하고 불안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