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은 인지 과학과 진화 심리학이 “사고 과정의 동일성을 주장한다고 이야기한다. 진화 심리학에서는 “인간의 사고 과정은 문화와 상관없이 동일하다”고 본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서양인은 사물의 개체성을 중요하게 여기며 범주화와 형식논리를 선호하지만, 동양인은 상호의존적 관계성에 근거해 사물을 파악한다. 또한 자기 자신에 대해 설명할 때 서양인은 직접적으로 자신의 성격과 행동을 묘사하지만, 동양인은 가정이나 직장에서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역할이나 관계를 중심으로 표현한다.

 

중국인들은 상황이 달랐으면 살인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을 거라고 가정하는 반면, 미국인들은 범인의 인격적 특성이 그대로라면 상황이 다르더라도 사건은 발생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비교는 단순히 문화적인 에피소드들이 아니라, 동서양의 사고(思考) 과정과 그 내용에 나타나는 근원적 차이를 포괄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 저자의 기본적 생각이다.

 

동서양의 비교라는 오래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접근방법과 설명방식은 대단히 신선하다. 특히 인간의 사고 과정은 문화와 상관없이 동일하다는 보편주의적 관점을 수정해 나가는 장면들은 대단히 시사적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생각하는 주체(Cogito)를 인간의 가장 보편적인 지표로 인정하며, 생물학적 기원의 동질성 속에서 인간을 사고한다. 자크 데리다의 지적처럼 인간이라는 기호를 마치 역사 문화 언어적 한계가 없는 것처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인간의 사고가 문화에 따라 근원적으로 다를 수 있으며, 문화적 차이는 생각의 과정과 내용을 규정하는 근원적 원리라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당연한 이야기를 힘들게 반복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사고가 갖는 문화적 상대성에 대한 주장은 사고 과정의 동일성을 주장하는 인지과학과 진화심리학의 암묵적인 전제에 심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인문사회]‘생각의 지도’…동양인 서양인 감성지도 다르다

동아일보, 김동식 문학평론가·서울대 강사, 기사입력 2004-04-16 19:17 | 최종수정 2004-04-16 19:17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0&aid=0000233848

 

 

 

진화 심리학에서 인류 보편성을 강조하는 것을 맞다. 하지만 “인류 보편적인 것이 있다와 “모든 인간은 동일하다”는 서로 엄연히 다른 말이다. 이것은 “통상적으로 인간의 손가락은 열 개다”라는 명제와 “모든 인간의 손가락 길이가 동일하다”라는 명제가 다른 것과 마찬가지다.

 

 

 

언어의 예를 들자면 “인간의 모든 자연어(natural language)에는 보편적인 패턴이 있다”와 “인간의 모든 자연어는 서로 동일하다”는 서로 다른 명제다. 한국어를 쓰는 한국 사람은 특별히 배우지 않는 이상 러시아어를 전혀 알아 듣지 못한다. 왜냐하면 한국어와 러시아어는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어만 다른 것이 아니다. 어순도 다르다. 따라서 모국어 인지와 관련된 “사고 과정”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진화 심리학자들은 한국 사람이 대체로 러시아어를 못 알아듣는다는 점을 알 정도는 똑똑하다.

 

 

 

진화 심리학을 깊이 배운 사람들은 마르크스주의 이론, 여성주의 이론, 기능론적 사회학 이론 등을 기존의 시각과는 새로운 시각에서 본다. 즉 사고 과정이 달라진다. 적어도 여러 진화 심리학자들이 그렇게 주장한다. 그리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많은 진화 심리학자들이 진화 심리학이 사회 과학의 혁명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진화 심리학적 이해가 사고 과정을 많이 바꾼다고 보기 때문이다. 거창하게 이야기한다면 진화 심리학이 세계관을 바꾼다고 볼 수도 있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인류의 사고 과정은 동일하기 때문에 진화 심리학을 아무리 배워도 마르크스주의 이론, 여성주의 이론, 기능론적 사회학 이론을 보는 시각이 전혀 바뀌지 않을 것이다”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이번에도 허수아비 비판이다. “인간의 사고 과정은 문화와 상관없이 동일하다”고 우기는 진화 심리학자들은 김동식의 “사고 과정” 속에서만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