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님 강물님 글을 읽고.....


멀리 갈 것도 없이 흐르는 강물님이 인용하신 성호 이익의 호남 폄훼 기술 부분 중 특정 부분은 심각한 '사실 관계 오류'가 있습니다. 피휴~ 이거 이야기하려면 고려부터 조선의 '붕당정치' 역사를 죄~ 말해야 하는데..... ㅋ... 제 자료 CD  700 장.... 중 어딘가에는 처박혀 있을텐데.... 자료 모을 떼 인덱스에 신경을 썼더라면 자료광이라는 별명에 맞게 확실히 한건 했을텐데.... ^^;;; 각설하고.


우선, 훈요십조.

지난 번에 기술하지 않은-당시에는 훈요십조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호남을 차별하는 내용이 아니라 오히려 경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었죠-내용 두가지만 밝힘.

첫번째는 요즘 유행하는 멘토..... 왕건의 멘토 그러니까 평생 사부였던 도선국사가 바로 호남출신이라는거. 그리고 왕건에서 훈요십조를 받았다는 누구더라 박씨인거 같은데.... 하여간 그 박씨(라고 치고. 지송)가 호남 당진 출신이라는거. 아무리 군신관계이지만 왕권이 허약해 정략결혼을 즐겨했던 왕건이 신하에서 '네 고향은 빡큐에요'라는 문장을 내렸을까? (뭐, 이명박 같은 저능아라면 그랬겠지만... ^^)


두번째, 신복룡 교수의 발언.

이 양반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인데(은퇴하셨겠지? 지금은?) 성당에서 그 것도 역사 이야기를 해서 기억에 남고... 또 천주교 신자라 비록 사이비지만 같은 천주교 신자인 내가 우연히 명동성당에서 뵈었는데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는데 나도 듣고 있었는데 그 분 왈. '고려 시대에 호남 출신이 관료에서 배제된 적이 없었다'. <-- 이건 사실임.


세번째, 이성계의 분노

이성계가 나라를 건국하여 첫번째 과거. 그런데 참석한 선비들이 적자 화가 난 이성계(이 때 과거에 참석하지 않은 사람들이 훗날 등장하는 조광조의 사림계열들임. 물론, 사림의 대두인 조광조의 고조 할아버지는 조선 개국공신이었지만두...)가 양반 이외에 그리고 당시 과거에 참석한 가문 이외의 가문은 과거를 통해 관직 등용을 하지 못하게 됨.

사림파만 딱 떼서 이야기하자면 고려 말,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와서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보니...' 어쩌구 저쩌구 시를 남긴 길재가 영남으로 낙향하여 후학들을 많이 키움. 이 사림파도 그 이후 족보가 복잡해지는데 기억나는 사람은 김굉필. 왜? 이 양반이 바로 내가 조선 오백년 역사 중 가장 존경하는 토정 이지함의 스승이기 때문임.(토정 이지함은 실제로 평택군수 시절 당시 기록만 있고 기록이 많이 없음. 김굉필 이 양반은 고 정비석님의 소설 토정 이지함..에서 나온 부분임. 실제 자료 찾느라고 열심히. 틈틈히 자료 찾고 있음. 뭐, 이제는 한달에 한번도 안가는 도선관에 가면 토정 이지함보다 더 신기한 자료들이 많아서 도서관 문을 나설 때야 '아차차. 토정 관련 자료'라고 말하지만... ㅡ_ㅡ;;;)


네번째. 정여립의 난

정여립 때문에 호남 정치 세력이 작살이 남. 뭐, 조선 초기 때부터 호남은 소수파여서(기호학파이지 아마? 이익인가? 이황인가? 하여간 두 사람 중 하나.) 경기도와 황해도 출신과 연대하였고 조선 내내 소수파였음.(DJP연합이 아마 여기서 배운건 아닐까? ^^)


다섯번째, 그래서 성호 이익의 기술은 거짓말

놀기를 좋아하고 게을러서 관직에 오르는 호남인들의 숫자가 적음? 이런. 영남에는 소위 양반가문이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지만 호남(전남?? 전북 포함인지는 정확히 기억 안남. 어쨌든)에는 양반 가문이 성씨 기준으로 달랑 네 개. 그러니 관직에 등용하기 위하여 과거 시험 응모하는 숫자가 절대적으로 적고 중앙무대에서도 관직에 오른 호남인이 적으니 상대적으로 관직에 오르는 수가 적을 수 밖에. 따라서 성호 이익의 거짓말. (여기에 밑줄 쫙!!!)


여섯번째, 왜 성호 이익은 호남에 반감을 가지게 되었을까?

성호 이익은 조상에게 물려받은 재산으로 관직에 오르지 않아도 넉넉하게 살 수 있었다. 그의 할아버지가 좌찬성인가? 우찬서인가? 뭐 그런 벼슬이었고 조상 대대로 관직에 있었기 때문이지. 그런데 남인이었던 그의 아버지가 인조반정으로 인하여 몰락하게 되었다. 인조반정. 광해군 때 북당파가 분당을 시작하면서 동인 서인... 그리고 인조반정 때까지 어지럽게 분파를 했는데 이들은 영남 출신임. 그런데 호남에 반감을 가진 이유. 바로 장희빈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지.


일곱번째, 이잠, 성호 이익의 형

연속극 장희빈을 본 분들은 잠깐, 이잠이라는 인물이 상소문 때문에 투옥, 고문 받다가 옥사한 장면을 기억하실 것임. (드라마 기준으로 분량 2~3회 정도? 단역임.) 이 이잠이 바로 이익의 형임. 그런데 장희빈의 오빠가 바로 보부상이지. 보부상.


나는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충돌을 사랑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정치 다툼의 명분용이라고 생각치도 않고 바로 경제권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뭐, 정치와 경제가 하나로 묶여 돌아가는데 특히 조선과 같이 금권정치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경제권은 바로 정치 권력과 형제지간.


그런데 보부상. 전국을 돌아다니는 보부상들에게 가장 큰 시장은 바로 수도 한양. 그런데 말이지..................


여덟번째, 호남이 한양 상권을 장악한 역사적 사실. 호남 차별을 이야기하면서 아무도 거론하지 않는.


개성 상인이 조선 시대에도 상권을 장악하자 쿠테타로 고려를 전복한 조선의 조정은 달갑지 않았지. 그래서 성종 때인가? 수도 한양의 상권을 놓고 요즘 말로 이야기하면 비딩, 그러니까 입찰을 했고 거기서 호남이 이긴거야. 이런.


그런데 정치적 세력을 업은 상인은 거부가 되지만 정치적 세력이 없는 상인은 마치 그러니까 나이트클럽에서 조폭들이 나와바리를 다른 좊ㄱ이나 양이차들이나 건달들이 건들지 못하게 보호해주는 공생관계인 것처럼, 그리고 삼성이 우리 사회 전방위적으로 떡검 등 자기편 만들기 혈안인 이유는 어차피 상업이라는 것이 좀 준법정신에 철두철미하면 종ㅈ ㅏ 돈까지 말리게 되니 그거 막고 돈벌기 위해서지.

그런데 위에서 이야기 했지? 호남은 조선 대대로 경기도와 황해도와 연대했을 정도로 정치적 세력이 미약했다고? 정치적 세력은 미약한데 조선의 가장 큰 상권을 잡은 호남 상인들. 이건 어느 조폭의 나와바리에도 속하지 않은 나이트 클럽 꼴 난거지. 동네 양아치는 물론 건너편 건달들까지 삥 뜯어가는거야. 바로 호남이 그랬지. 정치적 세력이 없으니 뻘창나고 질투의 대상이 된거고... 그러니 평안도에서 태어나 원적이 경기도이고 호남에서는 물에 발도 안적신 이익이 저런 소리를 한거지. 뭐, 아마도.... 많은 사람이 공통적으로 험담하는 대상은 팩트가 되어가는 것처럼.

그리고 보부상... 영남의 보부상들은 수도 한양에서 (아마도) 상업 활동을 하지 못했고 장희빈을 편들다 옥사한 형에 대한 연민과 장희빈의 정치적 바탕이었던 보부상.....들이 수도 한양에서 기도 못피는거 보고 반감이 쌓여서 그랬을거야.

술마시고 사치하고 기생 좋아하고........... 그거 딱, 장사꾼 스타일이잖아? 벼슬아치들은 임금 무서워서 낺고 그 짓 못하는데 한양 상권을 잡은 호남.... 그리고 술마시고 사치하고 기생 좋아하는 상인.... 한양에 가까운 경기도... 그러니 맨날 그런 주색잡기하는 인간들은 상인이고 그 상인들 대부분은 호남 사람이다!!!!


호남 사람들 뺙큐~!!!!!! 장희빈을 위하여!!!!!!! 라고 성호 이익은 분해하면서 기록하지 않았을까?



마지막으로..... 1971년 대선 이후에 치루어진 총선 전에 동아일보 기사.


DJ를 가까스로 누르고 3선에 성공한 박정희. 그런데 말이지.... 그리고 몇 개월 후 총선이 치루어지는데 집권을 계속하게 된 공화당이 대통령 박정희에게 건의한 내용이 동아일보에 기사로 실렸지.(나중에 찾아보셔~ 1971년 1월부터 총선이 치루어진 5월 사이 동아일보 기사)


"호남이 관직에서 너무 배제되었는데 지역별로 균형있는 인사정책을 제도적으로 하자"


이거? 선거용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주장되었는데 이런 건의를 할 정도로 박정희 정권 시절에 이미 지역편중인사가 시작되었지. 그리고 그 정점은 1980년대 중반 전두환 시절에는 대한민국 13대 시중은행 은행장이 전부 영남 출신. 뭐, 호남은 그렇다 치고 서울, 강원도 경상도, 제주도는 한 명도 없이 모두 영남 출신. 소위 보리 문딩이.



호남 차별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그리고 왜 생겼는지 감이 좀 잡히시는감?


<덧글 : 위의 글은 기억에 의하여 기술하였으므로 실제 역사적 사실과 조금 다를 수도 있습니다. ^^ >




안뇽~~~~~~ 또 올께. 정말??? ^^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