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피노키오님과 욕망지인님 그리고 피노키오님과 내사랑판다님 간에 '대북송금특검'에 대한 논쟁이 있어서 첨언할까 하다가.... 아크로의 '상습적인 동어반복 행위로 인한 이슈 파이팅의 침체'를 방지한다는 차원에서, 앞으로 동어반복을 하는 분들이 있으면 간단하게 이 포스팅을 링크시켜 '읽어보고 꼬우면 덤비셔'라고 간단하게 넘어가세요. 

그리고 내친 김에  아크로 이슈파이팅의 활성화를 위하여 앞으로 '동어반복 방지용 포스팅'을 틈틈히 올릴까 합니다.


그리고 욕망지인님, 노무현 지지자들이 그렇게 자랑하는 '노무현표 개성공단'이 이 대북송금의 자금을 가지고 시작되었다는 것은 알고 계시나요? 이 것도 노무현 일당의 'DJ의 정치적 자산 네다바이의 일종'입니다. 네다바이한지도 모르고 '영구읎다'를 시전하면서... 관두죠. 상대하기조차 가치없어 보이니까.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기관지 <민주누리> 기획특집란에서 인용

1. 서론

지난 2006년 5월 25일 남북정상회담 성사의 주역 중 한 명이었던 박지원 전 장관은 3년여에 걸친 법정공방 끝에 현대비자금 150억원을 뇌물로 받았다는 혐의는 벗었지만, 남북교류협력법위반․알선수재죄 등으로 징역3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되었다. 박 전 장관이 2003년 6월 대북송금특검에서 긴급 체포된 지 3년만의 일이다. 법원은 일부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피고인은 당시 대북송금 사실은 숨기고 정상회담 사실만 발표했고 현대와 산업은행을 통해 북에 제공할 1억 달러를 불법 조달하는 등 대북송금에 대한 국민적 동의를 얻지 않고 진행해 국론분열을 초래했다. 또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데도 2회에 걸쳐 대기업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점은 사회적 비난가능성이 높다”며 징역 3년의 실형과 추징금 1억원을 선고했다. 이는 남북관계의 특수성과 대북사업의 현실적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아니한 매우 안타까운 판결이다. 대북송금 문제는 국가수반의 통치행위적 측면과 남북관계․외교관계의 측면이라는 2중․3중의 특수성으로 인해 공개가 부적절할 수 있고 처벌은 더더욱 부적절한 것일 수 있는 사건이었다. 그래서 ‘신중하고 역사적․민족적인 접근’과 고도의 ‘정치적 판단’을 필요로 하였다. 그러나 재판부는 법실증주의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박지원 전 장관에게 유죄․실형을 선고함으로써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크나큰 상처를 입히고 말았다.


지난 2006년 6월 16일 김근태 열린우리당 당의장은 6.15 6돌 민족통일대축전이 열리고 있던 광주를 방문해 노무현 정부의 대북송금특검 수용에 대해 “안이하게 생각했다”고 사과했다. 그는 “태도와 말이 신중하지 못한 것이 결과적으로 불안감을 조성하는데 빌미를 만들었다”며 “반성한다”고 밝혔다. 지금이라도 집권여당이 대북송금특검 문제를 반성적 차원에서 재검토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반성’이라는 말 한마디로 이를 뒤집기에는 그것이 초래한 상처와 후과가 너무 깊고 커져 버렸다. 대북송금특검은 남북관계 뿐만 아니라 한국정치에도 돌이킬 수 없는 큰 상처와 후과를 남겼다. 다시는 이와 같은 자해(自害)․자승자박(自繩自縛)의 어리석은 일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하며, 그 상처와 후과를 치유하기 위해 노력을 다해야 한다. 남북관계가 더욱 발전해 나가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비판적 견지에서 대북송금특검의 본질과 문제점을 다시 살펴보고자 한다.


2. 대북송금, 왜 비밀이었을까?


간과해서는 안 될 또 하나 중요한 지점은, ‘김대중 정부가 왜 비밀리에 대북송금하게 되었는지’에 관한 것이다. 김대중 정부는 왜 정상회담과 관련한 대북현금지원을 공개하지 못하고 비밀리에 추진하게 되었을까.


특검의 수사결과 발표에 의하면, 정부가 정상회담의 개최를 합의하면서 북에 지원하기로 한 돈이 1억 달러이고, 현대의 지원분을 합하면 총 5억 달러이며, 정부가 현대상선을 도와 비밀리에 환전하고 비밀리에 송금한 돈이 2억 달러이다. 우리정부의 입장에서는, 특검에서 문제된 1억 달러 또는 5억 달러는 과거 노태우 정부가 1989년 2월 경 헝가리와 수교하면서 6억2천5백만 달러를 지원하였던 사실, 1991년 4월 경 제주도에서 한·소 정상회담을 하면서 러시아에 30억 달러를 지원하였던 사실, 중국과 수교하면서도 그에 상당한 경제적 지원을 한 사실, 김영삼 정부가 북의 경수로 건설자금으로 약 34억 달러를 부담하기로 약속한 사실, 1994년 남북정상회담을 하기로 합의하면서 쌀 50만 톤을 지원할 수 있다는 내부계획을 세웠다고 알려져 있고 실제 쌀 15만 톤을 지원한 사실, 최근 노무현 정부가 2003년 5월 경 경추위 회담에서 북에 쌀 40만 톤(이는 우리 돈으로 약 7,676억 원으로 약 8억 달러에 달함)을 지원하기로 한 사실 등에 비추어 그리 큰 돈이 아니다. 또한, 차관의 형태나 쌀 등 현물지원의 방법을 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북의 입장에서도, 현금을 받든 현물을 받든, 공개적으로 받든 비밀로 받든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한편, 비밀이란 그 만큼의 위험성을 안고 있는 것일 뿐만 아니라 지켜지기 어려운 법이다. 어떻게 영원한 비밀이 있을 수 있겠고, 언제까지 미국의 눈귀를 피할 수 있겠는가. 결국 3년이 채 못 가 드러났고 특검수사를 받는 상황에 이르고 만 것이 아니었던가.


특검 수사 중 소환 조사받은 외환은행 관계자의 입을 빌려 보도된 기사에 의하면, “국정원이 외환은행에 환전과 송금을 요청하면서 미국 모르게 송금할 방법을 강구할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국정원은 외환은행에 대해 미국 등 북한과 적대관계에 있는 국가에 자금흐름이 노출되지 않을 방법을 강구할 것을 요청했고, 이에 외환은행은 중국은행(서울지점)에서 중국은행(마카오지점)으로 보내는 방법을 취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당시 김대중 정부는 왜 ‘미국 모르게’ 송금해야 했을까.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미국은, 1999년경부터 김대중 정부의 대북화해협력정책으로 인해 북에 현금 등이 계속 들어가는 것에 대해 경계하고 우려를 표명해왔다고 하며, 사회문화교류를 하면서 50만 달러 내지 100만 달러씩 북에 지원되는 것에 대하여도 비판적이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미국은 우리 정부가 북에 현금 지원하는 것을 당연히 반대하였을 것이고, 미국이 수십만 달러에 대해서조차 비판적이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면 1억 달러 내지 5억 달러는 미국의 입장에서 인정하기 어려운 큰 금액이었을 것이기에, 관련한 정상회담 자체가 미국의 반대로 성사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도 추론된다. 그리고 다수야당인 한나라당 또한 정상회담마저 반기기 어려운 마당에 북에 대한 지원이 포함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 핑계로라도 정상회담을 반대하거나 그 의미를 퇴색시키려 방해했을 가능성도 있었다고 추측된다. 그렇다면, 김대중 정부가 공개적 방법으로 투명하게 대북지원과 정상회담을 추진하지 못하고 이를 비밀리에 추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대북지원에 대한 미국과 한나라당의 반대와 그로 인한 정상회담의 무산을 우려한 나머지 정상회담의 성사를 위해, 또 더 미룰 수 없는 남북화해협력을 위해 불가피하게 ‘비공개․비밀’이라는 방법을 취하게 된 것이 아닐까.


또한, 의혹의 최초 제기자가 미국이라는 사실 뿐만 아니라, 의혹(대북비밀송금)에서 문제되는 실정법위반 부분 또한 미국의 반대로 인해 ‘미국 몰래’라는 방법을 찾다보니 불가피하게 추진된 측면이 있다는 것이므로, 이 사건은 ‘한·미관계의 갈등’과 무관할 수 없고 ‘미국의 한국정부에 대한 대북정책통제 내지 대선개입’ 의도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다. 따라서 김대중 정부의 대북송금관련 비밀추진과 그로 인한 실정법위반은 대북정책을 둘러싼 한·미 갈등에 기인하고, 이는 대북정책에 대한 한·미 갈등에도 불구하고 더 미룰 수 없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민족적 결단에 의한 것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3. 대북송금의혹, 누가 왜 제기하였는가?


대북송금특검은 미국 래리닉시의 미의회조사보고서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2년 3월 25일자 위 보고서에서 처음 공개적으로 대북비밀송금 의혹이 발설되었기 때문이다. 이어 월간조선 2002년 5월호가 이 내용을 보도하고, 2002년 9월 한나라당의 엄호성, 이성헌, 김문수 의원 등이 이 의혹을 국회에서 폭로,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확대 증폭 되어 결국 특검법의 공포로 이어졌던 것이다. 


미의회조사보고서는 공개되는 문서로서 세계 어느 곳에서도 인터넷을 통해 그 전문을 쉽게 구해볼 수 있는 자료일 뿐만 아니라, 대북비밀송금 의혹제기는 한·미간 외교문제마저 일으킬 소지가 있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위 폭로는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곧이어 월간조선이 이를 보도하고, 한나라당이 2002년 정기국회가 개원하자마자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를 연속 터뜨린 점 또한 석연치 않다. 과연 그 정보는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미국은 대북비밀송금 의혹을 어떠한 의도에서 공개․폭로한 것일까. 그것도 정보를 파악한 후 상당기간 지난 다음에 뒤늦게 이를 공개한 이유와 의도는 무엇일까. 확증은 없지만, 미국이 한국의 대선에 개입하려는 의도 또는 한국정부의 대북화해협력정책을 통제하고 6.15 공동선언의 역사적 의의를 훼손하며 남북관계의 개선을 발목 잡아 두려는 의도에 의한 것이 아닐까. 김대중 정부와 부시 미국정부 사이에 남북관계에 관해 상당한 이견과 갈등이 있었다는 사실은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되었다. 


예컨대, 2003년 6월 4일 아침 윤영관 외교통상부 장관은 서울이코노미스트 클럽이 주최한 조찬 간담회에서 <정상회담 이후의 한·미관계 및 북핵문제 전망> 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면서, “지난 정부(김대중 정부)는 명목상으로는 동맹인데 동맹관계가 긴밀하게 서로 의사소통이 되거나 정책조율이 되지 못했고 삐그덕거리고 따로 노는 경우도 있었다”며 김대중 정부 때의 한·미관계를 강하게 비판함으로써, 한·미간에 상당한 이견과 갈등이 있었음을 밝힌바 있다. 또한, 2003년 5월말 노 대통령의 한 측근은 <오마이뉴스>와의 대화에서, “김대중 정부와 미국과의 관계는 최악이었다. 미국의 김대중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해 있었다. 그러나 이번 방미로 그것이 정상화됐다. 미국은 대북송금 사실을 파악하고 김대중 정부에 ‘그런 일이 있느냐’고 물었으나 김대중 정부는 '그런 일 없다'고 대답해 불신은 최고조에 이르렀다”고 밝히기도 하였다.


그러면 미국은 대북송금에 관한 정보를 언제쯤 취득한 것일까. 최소한 2000년 말경 또는 2001년 초경에는 취득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를 ‘김대중 정부에 대해 대북정책의 내용과 속도를 조절하는 압박카드’로 사용했다고 추측된다. 임동원 국가정보원장이 2001년 2월경 미국 워싱턴을 방문해 미국정부로부터 북한의 무기수입에 관한 CIA 정보를 설명 받을 즈음 대북송금에 대하여도 우리 정부에 확인하려 추궁했을 가능성도 있다. 참고로, 2001년 7월 23일 국가정보원의 대북전략국 소속 안모(당시 40세, 3급 부이사급) 과장이 1999년부터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한국주재 요원 윤모씨와 사전허가 없이 3-4개월에 한번씩 만나는 등 대북관련 기밀을 누설한 혐의로 파면된 일이 있었다. 당시의 언론보도에 의하면, 국정원은 2001년 4월경 일본 요미우리신문이 3월14일 자로 미국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1년 5월에 답방하고 이때 남북한이 평화선언을 발표하기로 합의했으며 이미 그 초안을 수차례 교환했다”고 보도한 것이 계기가 되어 극비사안이 미국에 노출된 것을 알게 되었고, 직원들에 대한 감시를 강화한 결과 위 안모씨를 적발해 파면했다는 것이다. 이 사실에 비추어보건대, 대북비밀송금 또한 위 직원을 통하거나 다른 경로를 통해 미국에 들어갔을 가능성이 있고, 또 미국이 공개되는 미의회조사보고서에 담을 정도라면 상당 기간 이전에 이미 그 정보를 취득 확인하였을 것이라고 능히 추론되기 때문이다. 


어쨌든 김대중 정부는 ‘정상회담과 공동선언’에 이르기까지는 남북관계의 대전환과 급진전을 이루어 놓았지만, 그 후로는 특히 2001년 3월초의 미국방문과 한·미 정상회담 이후에는 남북관계에서 별다른 진전을 이루어낼 수 없었다.


4. 대북송금의 대가였다는 ‘7대 경제협력사업’과 관련하여


현행법상 대북송금 과정에서 불법적 요소가 있었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사업의 성격과 경제적 가치, 민족사적 중요성을 고려한다면, 그러한 불법적 요소를 이유로 대북송금문제를 특검수사하고 사법처리하는 것은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는’ 무모하고 지나친 일이었다고 생각된다. 실제로 특검 이후, 남북경협을 최선두에서 개척해온 한 기업가가 목숨을 잃었고,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의 주역들 상당수를 사법처리하여 전과자로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대북송금특검 때문에 남북관계에 적지 않은 장애가 조성되었고, 자칫 잘못하면 금강산․개성공단 등 민족적 사업들이 좌초될 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현대가 획득한 ‘7대 경제협력사업’의 경제적 가치를 따져보면, 대북송금이 소위 ‘퍼주기’라는 일부 사람들의 비난이 얼마나 부당하고 황당한가하는 점을 쉽게 확인하게 된다. ‘현대’와 북한의 ‘아태평화위’가 2000년 8월 22일 체결한 ‘경제협력에 관한 기본합의서’와 ‘부속합의서’ 등에 따라 현대가 30년간 독점적 사업권을 획득한 ‘7대 경제협력사업’은 ▶개성공업지구 건설과 장전․통천․원산을 포괄하는 공업지구 건설사업 ▶경의선․경원선․금강산선․동해북부선의 철도사업 ▶시내․시외․국제전화망, 인터넷, 이동통신, 통신장비생산 등을 포괄하는 통신사업 ▶발전시설건설, 송전선에 의한 전력공급을 제공하는 전력사업 ▶통천비행장 건설사업 ▶금강산수자원 이용사업․임진강댐사업 ▶주요 명승지종합관광사업 ▶고선박해체 원산공장건설사업 등 방대한 분야에 걸쳐 있다. 2000년 정상회담 직후 현대가 독점적으로 획득한 ‘7대 경제협력사업’은 말 그대로 천문학적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것이었다. 현대의 ‘7대 경제협력사업’은 70, 80년대 고도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던 ‘중동특수’를 훨씬 능가하는 대규모의 기간사업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이다. 


‘7대 경제협력사업’의 경제적 가치를 세부적으로 정확히 추산하기는 어렵지만, 몇 가지 주요사업의 경제적 가치를 추산해보면 현대의 대북사업 규모를 대략이나마 짐작해 볼 수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2002년 10월 8일 발표한 <개성공업단지 개발의 경제적 효과>라는 보고서에서 개성공단이 조성되면 3단계 공사가 끝난 뒤 1년이 지난 시점까지 남북한을 모두 합쳐 722억 8천만 달러(약 80조원)의 경제적 효과를 거둘 것으로 추산했다. 이중 한국기업이 얻게 되는 이익은 개성공단 착공 9년 차까지 인건비 절감, 공단조성 및 공장운영에 따른 원․부자재 판매만으로 302억 2천만 달러, 공단조성이 완료되는 착공 8년 차까지 국내 산업부문의 생산유발 효과는 188억 6천만 달러, 부가가치유발 효과 77억 9천만 달러 등 총 569억 달러(약 6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여기에, 장전․통천․원산을 포괄하는 공업단지의 경제 가치를 포함하면 공단조성을 통해 얻게 되는 남측의 직․간접적 경제이익은 수백조원에 달할 것이다. 한국산업은행 동북아연구실의 최임봉씨는 <남북철도연결에 따른 경제적 파급효과 분석>이라는 논문에서 경의선 연결사업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사업추진 10년간 물류부문 효과 54~71억 달러, 철도부문의 투자로 인한 직접투자 효과 43.5억 달러 및 산업별 산출증대 파급효과 112억 달러’ 등 총 226억 달러(약 25조원)로 추산했다. 이중 순수 운임수입은 북한에서만 약 16~28억 달러에 달해 현대가 철도사업을 통해 직접적으로 얻게 될 경제적 이익만 해도 수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이것은 경의선의 수익성만을 고려한 것이다. <통신사업>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대규모 사업이다. 현대가 획득한 통신사업분야와 비슷한 분야에서 사업을 벌이고 있는 한국통신(물론, 현대와 같이 독점적 지위는 아니다)의 연간 매출액 약 10조원, 순이익 1조 3,245억원, 주식 시가총액 약 30조원에 달한다. 물론 남북의 경제 규모 차이를 고려할 때 남과 북의 정보통신산업의 규모를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북의 정보통신사업의 잠재적 가능성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북의 정보통신산업이 수 년 내에 상당 규모로 발전하게 될 것을 고려하면, 현대가 획득한 통신사업권의 경제적 가치는 한국통신의 수익성을 앞설 수도 있을 것이다. 


금강산에서 칠보산․백두산에 이르는 <주요 명승지종합관광사업>도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남과 북에 안겨 줄 것이다. 북의 내륙 산간지대와 해안지역은 뛰어난 자연 경승지와 명소가 많아 그 전체가 하나의 ‘개방되지 아니한 국립공원’으로 평가된다. 백두산의 경우 유네스코가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할 정도로 다양한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어 있는 천혜의 관광지이다. 전문가들의 견해에 따르면 2020년까지 백두산 관광객은 연간 15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 해 동안 한국을 찾는 입국자 수가 5백만 명, 연간 관광수입 60억 달러인 점에 비추어 볼 때 관광자원으로서 백두산의 가치는 분명하다. 현대가 추진하고 있는 ‘주요 명승지종합사업’이 실현되면 설악산으로부터 금강산․ 묘향산․칠보산․백두산까지 백두대간을 종단하는 대관광지대가 완성된다. ‘알프스’가 스위스 국민들을 먹여 살린다는 말이 있는데, 아마도 현대의 종합관광사업이 실현되면 ‘백두대간’이 한국 사람들을 먹여 살린다는 말이 나오고도 남을 것이다. 이렇듯 몇 개 주요사업의 경제적 가치만 따져보아도 현대가 획득한 경제협력사업은 수백, 수천억 달러 이상의 경제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이외에도 북한은 현대의 경협사업을 보장하기 위해 수많은 특혜조치를 단행했다. 북한은 2002년 11월 <금강산관광지구와 개성공업지구선포에 관한 정령>과 법을 채택 발효시킴으로써 ‘7대 경제협력사업’을 법적으로 보장하였다. 북한의 법령에 따라 금강산개발사업에는 세금이 전혀 부과되지 않으며, 개성공단의 경우 일반 기업 소득세율 14%, 투자 장려 부문은 10%의 소득세율이 적용돼, 15%의 일반세율이 적용되는 중국의 경제특구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의 기업 환경을 보장하고 있다. 이와 같은 특별 법령에 따라 현대가 북한으로부터 50년간 사용권을 획득한 토지만 해도 현대 개성공단사업 2천만평과 고성군 온정리 2천여만평 등 해금강 남단으로부터 원산에 이르는 약 100㎞의 해안지대 전체를 포괄하는 것이다. 한편, 2002년 9월 30일 매일경제신문은 신의주 특구 개발과 관련해 중국 단둥 현지소식통들을 인용해 “신의주 행정특구를 분할해 1㎡당 31~51달러(평당 약 102~168달러)의 가격으로 각 나라별로 분양할 계획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보도한바 있다. 이를 기준으로 하면, 현대가 50년간 획득한 토지사용권의 가치를 화폐로 환산하면 40억8천만~67억2천만 달러(약 4조원~7조원)에 달한다. 북한당국이 현대 측에 공여한 4천여만평의 부지를 남에서 가장 싼 공업용지의 땅값(경북 울진 평당 5,400원)을 기준으로 환산하더라도, 2천억 원이 넘으며 이를 기준으로 50년간 임대료를 환산해도 5천억 원대에 달한다. 이러한 추산에 비추어 볼 때, 북측이 현대에 부여한 ‘7대 경제협력사업’의 가치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것이다. 


북한은 이와 같은 대규모 개발사업의 독점권을 30년간 현대에 보장하였다. 특검은 대북송금의 성격을 ‘7대 경협사업권에 대한 대가’라고 규정했지만, 엄밀히 본다면 대가로 보기에는 그 액수가 턱없이 적다. 과연 수천억 달러에 달하는 대규모 프로젝트의 독점적 사업권을 4억 달러(또는 5억 달러)로 얻어낼 수 있을까?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물을 팔아먹었다는 이야기를 들어 봤지만, 4억 달러로 수천억 달러를 벌어 들였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조금 속되게 표현하자면 ‘7대 경제협력사업’은 엄청난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다름이 없다. 현대가 북한측으로부터 획득한 ‘7대 경제협력사업’의 규모와 경제적 가치를 고려해보면, 현대가 송금했다는 4억 달러는 ‘사업권 획득에 대한 대가’라고 보기에는 너무 적다. 설령 현대가 4억 달러를 대가로 사업권을 획득했다고 할지라도, 그 민족적 의의와 경제적 가치에 비추어보건대 이는 사법처리 될 일이 아니라 상을 주고도 남을 일이었던 것이다.


현대가 이와 같은 대규모 사업권을 획득한 배경에는 경제 외적인 요인이 작용한 바가 크다. 고 정주영 현대회장은 지난 89년부터 남북경협사업을 실현하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노력했다. ‘소Ep 방북’에서 ‘금강산 관광’에 이르기까지 남북 화해 과정에서 정주영 회장과 현대는 큰 역할을 했다. 고 김일성 주석은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대단결 10대 강령>에서 “민족대단결과 조국통일위업에 공헌한 사람들을 높이 평가하고, 공을 세운 사람들, 애국열사들과 그 후대들에게 특혜를 베풀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현대가 7대 사업권을 획득하게 된 것은, 정상회담과 관련한 송금의 대가였다기보다 오히려 ‘남북화해협력 및 통일에 공을 세운’ 정주영 회장과 그 후대들에 대한 북한 측의 ‘특혜’라고도 보여진다.


이와 같은 대규모 개발사업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2003년 2월 17일자 연합뉴스는 현대가 추진해 온 ‘7대 경제협력사업’은 ‘남북경협사업의 거의 전부를 망라하고 있을 정도로 광범위한 성격을 띤 기간시설조성사업’이라고 보도했다. 연합뉴스의 지적처럼 ‘7대 경제협력사업’은 ‘남북경협사업의 거의 전부를 망라하고 있는 기간시설조성사업’이다. 북한과 계약을 체결한 당사자는 현대지만 개별기업이 이러한 대규모 개발계획을 독자적으로 추진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특히, 국가보안법․남북교류협력에관한법률 등 남북 민간급 교류를 제한하고 있는 남한의 실정법 하에서 정부의 협조 없이는 민간기업이 이와 같은 대규모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할 수 없다. 현대 관계자도 “대북송금은 현행법 테두리를 벗어나는 것으로 어떻게 독자적으로 할 수 있었겠느냐”고 정부 개입의 불가피성을 주장한 바 있기도 하다. 합법적이건, 불법적이건 ‘7대 경제협력사업’은 남과 북 모두에게 천문학적인 경제적 이익을 안겨주게 될 것이며, 통일로 가는 큰길을 열 중대한 사업임에 틀림없다. 이와 같은 민족사적․역사적 사업이 일부 반북세력과 실정법 및 특검으로 인해 제동이 걸리고 지연된 것은 크나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특검이 반역사적․반민족적이었다고 지탄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기도 하다. 


북·일 정상회담 직후 2002년 9월 18일 인터넷언론 <프레시안>은 ‘북·일 정상회담 이면에 담긴 아시아 대 밀약’이라는 기사에서, “일본이 장기 불황의 타개책으로 ‘러시아에서 중국, 일본에 이르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의 건설, 함께 건설될 정보통신네트워크, 도로․교통 인프라 프로젝트’ 등을 골자로 하는 ‘동아시아 마샬플랜’을 계획하고 있으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수백억 달러의 투자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는 이러한 북·일 정상회담 성사의 결정적 요인을 ‘일본의 경제적 이해와 요구’라고 분석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도올 김용옥 씨 또한 2003년 문화일보 기고에서 “북·일 수교에 수반되는 배상자금은 북한의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일본기업이 대거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현대의 경협사업권 선취는 바로 북한사회를 외국자본의 횡포로부터 막는 민족주체의 기틀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동북아지역은 21세기 세계경제의 견인차로 떠오르고 있다. 머지않아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태평양지역은 세계경제의 중심이 될 것이다. 그 한가운데에 놓인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은 부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남북통합경제프로젝트’는 ‘동북아중심지론’의 핵심요소이다. 동북아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여전히 미지의 땅으로 남아 있는 북한에 전 세계의 투자가․자본가들이 군침을 흘리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한반도 긴장이 완화되면 세계의 투자자본이 한반도와 평양으로 몰려들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시베리아 철도사업,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사업, 원유개발사업, 관광사업, 채광사업 등 ‘세기의 로또’ 보물창고는 무궁무진하며 우리가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다. 대한광업진흥공사 박춘택 사장은 2003년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각종 광물의 보고로 알려진 북한이 어떤 계약을 어떤 외국기업과 체결하고 있는지 우리에게는 아직 자료조차 없다”며, “지금 서구 기업들이 북한의 자원개발을 위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광진공 사장으로서 그 소리를 들으니 머리를 쇠망치로 맞은 느낌이었다.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서둘러야 한다”고 남북광업협력의 필요성을 절박하게 토로한바 있다. 전 세계가 동북아협력과 북한을 주목하고 있는 이 때 우리가 낡은 냉전의식에 사로잡혀 멀리 크게 보지 못하는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5. 대북송금특검이 남긴 상처와 후과


가. 대북송금특검의 반역사성․반민족성 
대북사업은 결코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사법처리 대상은 더더욱 아니다. 대북특검 소동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민족 앞에 씻을 수 없는 대죄를 짓고 말았다. 대북송금특검의 본질은 명확하다. 어떤 화려한 논리를 가져다 붙여도 부시 정권의 ‘6.15 죽이기, 남북관계 제동걸기’에 편승한 한나라당의 반민족․반역사적 정치공세였다. 그것은 대북송금특검의 숨길 수 없는 본질이다.


미국은 금강산관광이 시작된 이래 ‘현대의 경협사업’을 음으로 양으로 방해해 왔다. 금강산 관광이 처음 시작된 1998년 12월 초 대북정책조정관이었던 윌리암 페리가 방한하여 금강산관광 수익이 “북한의 군사비로 전용될 수 있다”며 현대의 경협사업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바 있다. 특검을 전후한 시점에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도 “어마어마한 규모로 이루어 질 대북투자는 정당한 투자근거가 없다”며 금강산사업을 깎아 내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 뒤에도 부시 행정부의 고위관리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금강산 관광사업의 이익이 군비로 전용될 것”이라며 대북사업․금강산관광사업을 막거나 방해하기 위해 온갖 위협적 발언을 쏟아내 왔다. 때문에 항간에는, 1999년경까지 잘 나가던 현대가 금강산사업 이후 자금난에 허덕였던 이유 또한 ‘미국의 압력․영향’과 무관하지 않다는 의혹이 적지 않은 것이다. 현대의 `7대 경제협력사업`은 민족 전체에 큰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줄 민족사적 사업이다. 동북아시대를 우리 민족이 주도해 나가기 위해서는 남과 북이 서로의 역량을 총동원하여 민족경제를 하루 빨리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민족경제발전의 서막을 여는 현대의 7대 경협사업의 성패는 21세기 우리 민족의 명운이 달린 전략적 문제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비이성적인 반북․반통일적 세력과 분위기로 인해, 민족의 대역사는 법의 심판대 위에 올라 버렸고 이를 성사시킨 공로자들은 짓궂은 비운의 수난을 당하고 만 것이다.


나. 남북정상회담과 6.15공동선언에 대한 커다란 상처
대북송금특검으로 인해,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마치 비정상적 정치행위인 것처럼 크게 부각됨으로써 남북정상회담의 역사적 의의가 비리의혹으로 가려져 버렸다. 이는 향후 있을 제2차 정상회담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한국정부의 입장에서 남측이 자진하여 특검 소동을 일으켜 놓은 마당에 2차 정상회담이 2000년 6월의 정상회담에서 이미 약속된 것이라며 그 구속력과 이행으로서의 2차 정상회담 개최를 무슨 염치로 북측에 대해 요구할 수 있을 것인가. 국민들의 입장에서도 설사 2차 정상회담이 이루어진다고 할지라도 제1차 정상회담에서 보여준 환호와 감격․열광이 과연 또 있겠는가. 적지 않은 국민들이 그 순수함을 의심하고 그 무슨 정략과 비리가 숨어있지 않는지를 의심할 가능성이 높아져 버렸다.


다. 남북관계와 남북경협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
특검 소동으로 남북대화와 경협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유포되었음은 부인키 어렵다. 남북대화와 경협을 뒷거래에 의한 것으로 범죄시하는 부정적 이미지가 확산됨으로써 이런 분위기에서는 어느 누구도 자신 있게 남북대화를 추진하고 경협에 앞장서기 어렵게 되고 만 것이다. 그럼에도, 현대가 남북교류협력의 길에서 커다란 역할을 한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현대의 금강산관광사업은 남북교류협력의 물꼬를 튼 것일 뿐만 아니라 '분단 50년의 장벽을 허문 역사적 대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남북 간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에 기여하였고, 경제적으로는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에 기여하였으며, 사회문화적으로는 민족의 동질성 회복을 위한 접촉과 교류협력의 창구로서도 기여하였다. 그만큼 현대의 대북사업이 민족사적 의의와 남북관계 진전에 기여한 공이 크다는 것이다. 이에 현대의 대북사업은 경제사업을 넘어 평화를 퍼오는 ‘평화사업’으로 ‘공공재’의 성격이 강하다고까지 평가되고 있다. 그러함에도 정부와 사회가 나서서 현대의 대북사업을 적극 도와주기는커녕, 현대의 대북사업에 대한 정부지원의 명분과 여론을 약화시키고 사업을 위축시키며 부정적 이미지를 확산해 놓은 것이다.


라. 통일운동에 미칠 적지 않은 부담
무엇보다도 통일문제에 대한 국민적 흥미를 감퇴시켰다. 반역사적이고 반민족적인 특검이 탄생하고 장기화됨으로 인하여 국민들 사이에 남북대화와 남북경협을 밀실야합으로 보는 시각이 은연중 확산되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안타까운 현실이다. 국민들의 마음속에 은연중 의심과 의혹의 씨앗을 뿌려놓은 셈이며 이로써 상당수 국민들에게 통일에 등을 돌리고 통일문제에 대해 흥미를 잃게 한 측면이 있다. 또한, 북한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유포함으로써 국민들의 대북의식을 악화시켰다. 특검은 남북대화와 경협을 뒷거래에 의한 것이고, 북에 대해 남북대화와 경협이 부정한 돈을 목적으로 하는 것처럼 영상을 흐려놓은 측면이 있다. 미국의 대북압살정책에 대해서도 그 명분과 여론을 강화해 줌으로써 남북관계 뿐만 아니라 한반도 정세 전반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였다.


마. ‘6.15 세력의 단결’을 저해한 후과 
노무현정부의 출범과정은 골 깊은 지역감정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노무현정부가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행사를 희망하는 호남지역의 일반적 정서를 무시하고 특검법 공포를 강행했을 뿐만 아니라 특검의 수사가 진척됨에 따라 영․호남 간 새로운 지역감정을 낳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대북송금특검은 지역분열․지역감정 등 남남갈등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결국 남북정상회담과 6.15공동선언을 낳게 한 중심세력을 스스로 분열시키는 엄중한 후과를 낳고 말았다. 경위야 어찌되었든, 특검을 계기로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은 분화․분열하고 말았으며, 이로 인해 내년 대통령선거에서 민주개혁진보세력의 집권가능성을 어둡게 해놓고 있는 것이다.


6. 마치며

6.15공동선언 6돌이 지나고 있다. 누가 뭐래도 6.15공동선언은 냉전과 대결로 점철된 분단 반세기를 마감하고 화해와 협력 및 평화공존과 공동번영의 길로 전변시킨 역사적 쾌거이다. 6.15공동선언은 여전히 진보개혁과 민족 및 통일의 이정표이며, 준거이자 푯대이다. 남북관계는 때로는 곡절을 겪을지라도 장기적으로는 공존과 협력, 상생번영의 길로 발전해 갈 것이다. 6.15공동선언의 실현은 역사의 도도한 흐름일 뿐만 아니라 남과 북이 함께 번영하는 길이며 평화통일을 앞당기는 최선의 길이다. 정부당국 뿐만 아니라 민주개혁세력 및 통일운동진영 내에서조차 6.15공동선언의 정신과 이행의지가 감퇴하고 있는 듯 하여 안타까움을 금할 길 없다. 6.15공동선언 6돌을 맞으며, 그 가치에 대한 인식 제고 및 철저한 이행과 아울러, 그 기치아래 모든 평화애호· 민주개혁 및 진보세력의 대단합이 실현되기를 희망해 본다.


김승교 (변호사, 한국민권연구소소장, 대북송금특검 특별수사관)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