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박정희 키즈다. 5.16 군사혁명이 일어나던 해에 출생하여 박정희가 사망한 1979년 까지 초중고를 다녔으니 청소년기를 박정희와 더불어 보낸 완벽한 박정희 키즈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박정희에 대한 추억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난 박정희를 잘 몰랐다. 박정희가 집권 기간 동안 무엇을 했고 무엇 때문에 부하의 총에 맞아 죽을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몰랐다. 이후 대학을 다니고 사회 생활을 하면서 언론과 주변의 얘기를 통해 박정희가 장기집권과 유신독재를 통해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많은 인권탄압을 자행했고 그 결과로 비극적인 죽음을 당했다는 것을 알았다. 이후 오랫동안 내 뇌리에 박정희는 독재자로서의 이미지가 각인되었고 부정적인 이미지로 채색되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박정희에 대한 인식도 나와 비슷한 수준일 것이다. 그리고 한 인간, 특히 역사적인 한 인물에 대한 나의 인식이 얼마나 단선적인지 깨닫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박정희가 남긴 어록을 보면서 그가 왜 강압적이고 권위주의적 독재정치를 자행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은 '조국'과  '근대화'라는 두 단어에 농축되어 있다.


박정희의 머릿 속에는 오로지 '조국'과 '근대화'라는 두 단어 밖에 없었다. 즉, 근대화를 통해 조국을 부강하게 만드는 것 외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조국의 근대화에 방해되는 모든 것들은 박정희의 적이었다. 박정희가 이승만의 독재와 민주주의 파괴, 장기집권을 비판했으면서도 그 전철을 되밟은 것도, '조국의 근대화'는 자신 밖에 이룰 사람이 없다는 지나친 자기확신 때문이었다고 보여진다. 그러기에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은 곧 조국의 근대화를 비판하는 사람으로 치환되고 대한민국의 적으로 간주되어 탄압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나름의 신념을 가지고 있던 박정희가 민주주의에 대한 탄압을 자행하게 된 이유도, 민주주의의 고귀한 가치도 조국의 근대화보다는 중요하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처럼 박정희에게 있어서 '조국'과 '근대화'는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달성해야 하는 천명이었다. 

박정희가 얼마나 근대화에 집착했는지는 그가 1967년도에 밝힌 연두교서의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연두교서는 이전 3년 간의 경제정책에 대한 평가와 아울러 경제계획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밝힌 내용이다. 나는 그 연두교서를 읽으면서 깜짝 놀랐다.  <승리하는 자는 중단하지 않는다>는 제목으로 발표된 그 연두교서에서 박정희는 '근대화'라는 단어를 무려 19번이나 언급했던 것이다. 30분도  채 되지 않을 연설 내용에 '근대화 '라는 말을 거의 20번이나 언급한 것은, 박정희가 근대화에 얼마나 집착하고 있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박정희는 그 연설문 말미에서 "우리의 후손들이 오늘에 사는 우리 세대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했고, 조국을 위해 어떠한 일을 했냐고 물을 때, 우리는 서슴치 않고 '조국 근대화의 신앙'을 가지고 일하고 또 일했다고 떳떳하게 대답할 수 있게 합시다"라고 결론 지었다. 이처럼 근대화를 통해 빈곤과 가난에 찌들린 대한민국을 일으켜 세우겠다는 박정희의 의지는 그 무엇으로도 꺽을 수 없는 신앙이었던 것이다. 박정희는  '조국 근대화'라는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 어떤 것도 희생할 수 있었기에 민주주의의 가치도 박정희에게 크게 중요치 않았던 것이다.


원래 박정희는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 민족이 나아갈 길> 이라는 저서에서 "우리는 누구나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내가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처럼, 남도 그러한 자유와 권리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자유로운 생각과 발표, 그리고 터놓고 비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오늘날 자유민주주의의 가장 중심이 되는 요소다."라고 적었다. 이처럼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있던 박정희가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10월 유신을 발표하고 강압적인 정치를 한 이유도, 아무리 민주주가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그 민주주의가 방종으로 흐르고 민족 전체의 이익을 침해하는 방향으로 표시가 되면 제한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또 박정희는 민주주의는 경제적 기반이 없이는 실현될 수 없는 것으로 파악했다. 그래서 경제발전에 총력을 기울였고 경제발전에 방해가 되는 것은 용납하지 못했던 것이다. 박정희는 1962년에 국민에게 보내는 연두서에서 " 우리가 염원하는 자유 민주주의 사회는 결코 안이하게 실현되지는 못하며 자립경제의 기반이 없이는 형식상의 민주주의가 혼란과 파멸의 길만을 걷게 한다"고 경고했다. 우리 속담에 '의식이 족해야 예절을 안다'는 말이 있는 데 박정희의 뇌리에도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민주주의도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었고 일시적으로 민주주의를 희생해서라도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문제는 먹고 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이 된 1970년대 중반 이후에도 박정희의 강압적 통치가 왜 달라지지 않고 오히려 강화되었나 하는 점이다. 근본적인 이유로는 근대화가 자신이 만족할만큼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판단 때문일 수도 있지만, 내 생각으로는 자주국방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욕망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박정희는 경제적 근대화에 못지 않게 자주국방에의 욕망이 강했는 데 특히 경제발전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1970 년대 중반부터 부쩍 자주국방을 자주 언급하기 시작했다. 1977년 제 32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박정희는 남북 대결이라는 준엄한 여건 속에서 근대화가 성공적으로 추진된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며 오늘의 성과에 만족하지 말고 더욱 더 단결해 국력을 배양시키자고 강조했다.

또 박정희는 북한보다 월등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 4~5년이면 군사면에서도 북한을 능히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1978년 제 9대 대통령 취임사에서도 자립경제와 자주국방을 강조한 것으로 보더라도 1970년대 중반 이후에 박정희의 관심은 자주국방의 달성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자주국방'이라는 것은,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의 자주국방이므로 1970년 중반 이후 국가보안법 적용 사건이 유달리 많았던 이유도 설명이 되는 것이다. 또 1970 이후에도 박정희가 권력을 놓지 않은 것도 자신의 손으로 자주국방을 달성하고 싶었던 욕심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박정희의 일생은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라는 말로 요약 된다. 즉 자신이 비록 사후 욕을 먹더라도 조국의 근대화와 자주국방의 달성을 위해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소망대로 일부 국민들로부터 욕을 먹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박정희는 우리에게 단지 미움의 대상만은 아닌 애증이 교차하는 역사적 인물이다. 박정희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표준이다. 그러기에 박정희 이후의 대통령들은 지독하게 '박정희 콤플렉스' 에 시달렸다. 대통령의 부인들이 육영수 여사에 비교됐듯이. 박정희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신화적 영웅이라기 보다는 시대적 산물이다. 빈곤과 가난에 찌들려 수천년을 약소국가로 살아 온 대한민국이 새로운 시대로 집입하기 위해 필요한 인물이었다. 역사를 살펴보면 인물이 시대를 만드는 측면보다는 시대가 인물을 만들어내는 측면이 훨씬 강하다. 따라서 특별한 상황이 없는 한 박정희 같은 인물이 다시 등장할 가능성은 이제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한다. 박정희는 격동의 시대에 역사적 소명을 받은 인물이었다.


그리고 내가 박정희에 관한 책을 보면서 한 가지 놀란 것은, 박정희가 대단히 민중중심의 역사관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박정희는 조선왕조에 상당히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농민의 자각의식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우리 민족이 나아갈 길>이라는 저서에서 박정희는  " 동학농민운동은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백성이 일으킨 민주혁명으로서...우리나라 혁명 사상과 새로운 민주주의를 한국에서 실현하는 데 정신적인 원천이 되었다."고 동학농민운동을 높이 평가했다. 이러한 점은 아마 박정희 자신의 가계와 무관치 않은 역사인식 같고 박정희가 농촌의 근대화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박정희는 새마을운동의 궁극적인 목표가 농어민의 소득 증대라고 말했으며 조국의 근대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농촌이 잘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늘날 많은 좌파 진보들이 박정희가 대기업 위주로 경제발전을 추진한 것을 두고 강자의 편에 섰다고 비판하지만 박정희는 기본적으로 농민과 서민의 편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박정희야 말로 진정으로 행동하는 좌파요 진보다.


* 안녕하세요. 가입 일주일만에 처음으로 글을 올립니다. 원래는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해 글을 하나 쓸려고 했으나 선거법 위반 소지도 있고 해서 시의성은 떨어지지만 가장 논란이 많은 박정희 전 대통령에 관한 글을 하나 올립니다. 덧붙혀 이 글은 제가 예전에 블로그에 써두었던 글임을 밝힙니다. 처음으로 올리는 글이니 양해를 바라며 향후에는 일주일에 한번 정도로 시의성이 적절한 주제를 선택해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