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석에 따르면 사회생물학의 이미지가 나빠지자 “후배 학자들”이 진화 심리학이라는 이름을 내걸었다.

 

예컨대 윌슨과 같이 하버드 대학의 생물학 교수였던 굴드와 르원틴은 사회생물학이 인간 사이의 차이를 문화와 사회 환경의 차이가 아니라 유전자의 차이에서 찾는 생물학적 결정론에 빠져 있으며, 이러한 결정론이 20세기 초의 사회다윈주의와 우생학 운동 그리고 현대의 지능지수(IQ) 검사 논쟁 뒤에 깔린 철학적 기반이었음을 지적했다. 더 나아가서 이들은 사회생물학이 성·인종·계급 사이의 불평등을 생물학적으로 정당화함으로써 서구의 신보수주의 운동에 봉사하는 정치적 성격을 지닌다고 주장했다. 사회생물학에 대한 비판이 끈질기게 지속되고 그 이미지가 좋지 않게 부각되자, 인간에 대한 사회생물학적 연구를 수행하던 후배 학자들은 1980년대 말에 새로운 프로그램을 출범시켰는데, 그것이 바로 진화심리학이다. 진화심리학은 성별을 제외하곤 인간 집단 사이에 기본적으로 유전적 차이가 없다는 입장을 취함으로써, 사회생물학이 빠졌던 논쟁을 피해 가고자 했다.

(「생물학적 환원주의와 사회학적 환원주의를 넘어서」, 김환석, 『사회생물학 대논쟁』, 김동광, 김세균, 최재천 엮음, 이음, 37~38)

 

 

 

진화 심리학을 출범을 주도했던 John Tooby Leda Cosmides 이야기를 들어 보자.

 

우리는 가끔 진화 심리학이 그냥 사회생물학일 뿐이며 사회생물학이 뒤집어썼던 정치적 오명(bad political press)을 피하려고 이름을 바꾼 것이라는 이야기를 읽었다. (기록을 볼 때) 논쟁을 회피한다는 비난을 받는 것이 웃기는(amusing) 일이긴 하지만 이런 주장은 역사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substantively) 틀렸다. 첫째, 진화 심리학자들은 사회생물학(또는 행동 생태학, 또는 진화 생태학)을 대체로 존중해왔으며 방어해왔다. 사회생물학은 현대 진화 생물학의 매우 유익하고 매우 세련된 분과였으며 여러 진화 심리학자들이 그 문헌[사회생물학을 표방한 학술지 등]에 기고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를 행동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둘러싼 길고 강렬한 논쟁들 때문에 이론적, 실증적 기획들이 명확히 이해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서로 눈에 띄게 대립하는 견해들에 서로 다른 이름표를 붙여야 한다는 점이 점점 더 분명해졌다. 1980년대에 Martin Daly, Margo Wilson, Don Symons, John Tooby, Leda Cosmides, 그리고 David Buss는 이 새로운 분야를 어떻게 부를 것인가를 두고, 때로는 Palm Desert에 있는 Daly Wilson의 캥거루쥐(kangaroo rat) 야외 연구지(field site)에서, 때로는 Santa Barbara에서 그리고 때로는 행동 과학 고등 연구소(Center for Advanced Study in the Behavioral Sciences)에서 많이 토의했다. 이 논의에서 정치나 오명(politics and the press)은 끼여 들지 않았다. 우리는 내용도 없는 똑같은 인신공격성 공격들이 우리의 경력을 따라다닐 것이라고 (올바르게) 예측했다. 우리가 논의 했던 것은 이 새로운 분야가 심리학(psychology, 심리적인 것)—심리적 구조를 구성하는 적응들의 특징을 기술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지만 사회생물학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사회생물학은 계산적 수준(computational level)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으며, 심리적 기제들을 지도화하는(mapping) 것에 거의 관심이 없으며, 거의 선택론적 이론들(selectionist theories, 자연 선택론적 이론들)에 초점을 맞춘다. 진화 심리학은 그 주제와 이론적 입장 모두에서—사회 생물학이 그것에 선행했던 행태학과 상당히 다르고, 인지 심리학이 행동주의 심리학과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사회생물학과 단적으로 다르다. 그래서 각각에 새로운 이름이 필요했던 것이다.

We sometimes read that evolutionary psychology is simply sociobiology, with the name changed to avoid the bad political press that sociobiology had received. Although it is amusing (given the record) to be accused of ducking controversy, these claims are historically and substantively wrong. In the first place, evolutionary psychologists are generally admirers and defenders of sociobiology (or behavioral ecology, or evolutionary ecology). It has been the most useful and most sophisticated branch of modern evolutionary biology, and several have made contributions to this literature. Nonetheless, the lengthy and intense debates about how to apply evolution to behavior made it increasingly clear that markedly opposed views needed different labels if any theoretical and empirical project was to be clearly understood. In the 1980s, Martin Daly, Margo Wilson, Don Symons, John Tooby, Leda Cosmides, and David Buss had many discussions about what to call this new field, some at Daly and Wilson’s kangaroo rat field site in Palm Desert, some in Santa Barbara, and some at the Center for Advanced Study in the Behavioral Sciences. Politics and the press did not enter these discussions, and we anticipated (correctly) that the same content-free ad hominem attacks would pursue us throughout our careers. What we did discuss was that this new field focused on psychology—on characterizing the adaptations comprising the psychological architecture—whereas sociobiology had not. Sociobiology had focused mostly on selectionist theories, with no consideration of the computational level and little interest in mapping psychological mechanisms. Both the subject matter of evolutionary psychology and the theoretical commitments were simply different from that of sociobiology, in the same way that sociobiology was quite different from the ethology that preceded it and cognitive psychology was different from behaviorist psychology—necessitating a new name in each case.

(Conceptual Foundations of Evolutionary Psychology(2005), John Tooby and Leda Cosmides, The Handbook of Evolutionary Psychology, edited by David M. Buss, 15~16)

 

그들은 나빠진 사회생물학의 이미지 때문이 아니라 이론적, 방법론적 차이 때문에 “진화 심리학”이라는 이름을 내걸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환석은 “인간 집단 사이유전적 차이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생물학에서는 개인 간 또는 집단 간 유전적 차이에 대해 별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계급 간 IQ 차이나 인종 간 IQ 차이에 대해 이야기한 사람들은 사회생물학자들이 아니라 일부 행동 유전학자들이었다.

 

사회생물학이 여러 사람들의 증오의 대상이 된 이유는 성별 간 차이가 상당 부분 선천적이라고 주장했으며, 외부인 혐오, 외도, 친족애, 질투, 근친상간 등을 자연 선택을 끌어들여서 설명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화 심리학자들도 성별 간 차이가 상당 부분 선천적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외부인 혐오, 외도, 친족애, 질투, 근친상간 등을 여전히 자연 선택을 끌어들여서 설명하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사회생물학과 마찬가지로 여러 사람들의 증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

 

(좁은 의미의) 진화 심리학이 (좁은 의미의) 사회생물학과 다른 점이 있다면 심리 기제의 수준 또는 계산(휴대용 계산기 아니라 계산 이론theory of computation이나 튜링 기계Turing machine를 떠올려야 한다)의 수준 또는 정보 처리의 수준을 매우 중시한다는 점이다.

 

 

 

일부 진화 심리학자들이 “사회생물학”에 달라 붙은 나쁜 이미지를 피하고 싶어서 “진화 심리학”이라는 단어를 선호했는지 여부를 내가 알 수는 없다. 내가 모든 진화 심리학자들의 머리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어떻게 다 알 수 있단 말인가?

 

어쨌든 진화 심리학을 주도했던 사람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는 확실한 근거를 나는 본 적이 없다.

 

 

 

김환석은 진화 심리학자들이 “진화 심리학”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통해 이미지 세탁을 하려고 했으며, 이미지에 타격을 줄 만한 논쟁을 피하는 비겁자들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진화 심리학자들은 사회생물학자들만큼이나 그런 이미지 타격에는 신경을 안 쓰는 것 같다. 예컨대 진화 심리학자들은 『A Natural History of Rape: Biological Bases of Sexual Coercion(강간의 자연사: 강제 성교의 생물학적 기반)』과 같은 책을 써서 수 많은 사람들을 열 받게 했다.

 

진화 심리학이 이론적으로, 실증적으로, 방법론적으로 여전히 미숙하다는 이야기에는 나도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비겁하거나 소심하지 않다. 그들은 수십 년 전의 선배들(사회생물학자들)이 그랬듯이 남들이 뭐라고 하든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산다. 그리고 여전히 그런 말 때문에 수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판, 비난, 조롱을 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