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 일어났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믿고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던 천진난만한 학생들, 무고한 시민들이 배와 함께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것을 가족들과 함께 온 국민이 지켜보아야 했다. ‘나라초상’을 당하여 참으로 ‘숨쉬기도 미안한 사월, 오월’이었다. 무책임한 어른들 때문에 졸지에 자신의 꿈을 난파당한 어린 영혼들이 저 세상에서나마 평화와 안식을 얻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그 어떤 위로의 말도 유가족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 없겠지만, 300명이 넘는 희생자를 낳은 이 대재난을 근원적으로 성찰하는 길만이 희생자들에 대한 최선의 애도이고, 또 이 땅에 살아가는 지식인으로서 져야 할 최소한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가 지닌 문제들을 총체적으로 드러냈다. 세월호 침몰에는 생명과 안전을 도외 시하고 오직 돈만을 추구한 ‘청해진 해운’의 천박한 기업행태와 함께, 감독기관의 부패와 행정 공백, 그리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 만들기’를 위한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 더 근본적으로 온갖 종류의 ‘관피아’로 지칭되는 일련의 ‘연줄관계망’의 구조적 폭력과 이윤, 결과, 속도, 효율성만을 강조해온 신자유주의적 자본축적의 논리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작동했다.

하지만 국민을 진정으로 분노하게 만든 것은 세월호 구조과정에서 드러난 정부의 무능과 ‘국가’의 부재였다. 승객들과 선박을 돌보지 않고 제일 먼저 탈출한 선장을 비롯한 승무원들은 스스로 ‘재난의 컨트롤 타워(관제탑)’임을 부정한 청와대의 대응과 판박이거니와, 사고 발생 직후 해양경찰의 초기 대응 실패는 이번 참사가 무엇보다도 인재(人災)임을 보여준다. 정부의 재난관리시스템은 전혀 작동하지 않은 채 해양경찰이 해군 및 민간잠수사의 활동을 방해하고, ‘언딘’이라는 일개 민간업체가 구난과 구조 업무를 사실상 이끌었으니 해양경찰과 해양수산부는 직무유기를 넘어 그 존재가치를 스스로 부정하였다. 이는 그간 정부 자체가 공공성을 허물면서 ‘기업 프렌들리’를 외쳐온 ‘기업국가’의 필연적인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이것도 나라인가?’ 하는 자조가 국민의 분노를 부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고 이후 정부 및 정권의 대응은 분노를 넘어서 정부와 국가에 대한 신뢰기반을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있다. 정부는 자신의 무능은 아랑곳 하지 않고 언론과 국민 여론을 통제하고 사건을 축소·은폐하려고 했고, 사복경찰을 동원하여 피해자 가족의 동정을 살피고 심지어 대화를 몰래 녹음하는 등 피해 가족 및 시민들을 부당하게 감시했으며, 비판자들에게 압력과 협박을 가하여 국민의 알 권리를 제약하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 정부 관리와 여당 의원, 언론사 간부는 유족들과 실종자 가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 대통령은 정부의 부실하고, 무능하며, 무성의한 사태 해결 노력에 대해 정부의 최고 책임자로서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주기보다는 유족 대신 조문객을 위로하는 보여주기식 정치와 행정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정부의 구조 행위에 대하여 ‘살인행위’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지만, 대통령과 정부는 자신들이 져야 할 책임의 몫을 과거 정부로 떠넘기며 적폐(積弊)를 운운하고 있다. 현 정권 들어서 국정원의 선거 개입, 간첩 조작 등 민주주의 근간을 위협하는 사건이 연이었고, 그에 대해 우리 사회는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시종일관 요구했지만 그러한 국민적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위기의 징후는 곳곳에 있었으나 그 경고음을 현 정부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현 정부에 의한 민주주의의 훼손과 비판·감시 기능의 상실이야말로 적폐를 키울 수 있었던 배경이었다. 적폐의 온상은 현 정부의 비민주성과 무능, 무책임성이고, 그 정부를 이끌고 운영하는 사람들이 ‘적폐’ 그 자체이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세월호 참사를 취재하던 기자들이 희생자 가족들은 물론 온 국민으로부터 ‘기레기’ 취급을 받았고, 유가족들은 국내 언론을 불신하고 외국 언론을 상대하였다. 해외 교포들은 세월호 참사에서 나타난 한국 정부와 언론의 행태를 비판하는 전면광고를 세계적으로 유수한 신문들에 게재하기에 이르렀다. 사태를 이 지경까지 만든 데 대해 언론인들의 자성과 자기개혁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시급한 것은 정부의 언론 통제 철폐와 권언유착의 고리를 끊는 것이다. KBS 사태에서 드러나듯이 정부의 방송 장악 기도, 언론 통제와 권언 유착의 실상이 낱낱이 폭로되고 있지만 청와대를 비롯하여 관련 기관 어느 곳도 사실을 인정조차 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대통령 인수위원회 관여 인물을 방통심의위원장에 내정하는 등 정부의 언론 장악 획책은 지칠 줄을 모른다. 이제 국민들은 언론을 정부의 홍보 대행기구, 선전도구 정도로 여기게 되었다. 실상이 그렇다면 국민의 언론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것 역시 당연한 일이다. 세월호 참사 수습의 중심에 언론 통제 철폐와 언론 개혁이 있다.

많은 분들이 현 대통령의 복지 공약을 보고 그녀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 정권의 복지공약은 어디로 갔는가? 현 정부는 복지는커녕 국민의 생명과 안전도 책임지지 못하는 무능한 정부임을 세월호 참사가 증명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만큼 중요한 안보가 어디 있을 것이며, 그 조차 지키지 못한다면 정부로서 자격도 없는 것이 아닌가. 또 현 정부는 대선부정 문제를 비롯하여 자신들의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은 종북으로 몰거나, 전 검찰총장의 실례에서 보듯 개인적 문제를 트집 잡아 인격살인을 통해 비판자를 몰아내는 일 따위를 자행함으로써 사회구성원들이 사회적 현안에 대해 정당한 문제제기를 하고 자기교정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거해 왔다. 정부가 돌아봐야 할 것은 과거의 적폐나 일개 기업의 비리, 한낱 선장의 무책임한 행동이 아니라, 자신들의 무능력과 공약 위반, 그러한 사태를 낳은 자신들의 허물과 국정철학, 그리고 집권 이래 현 정부가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훼손해가며 쌓고 있는 적폐들이다. 이번 참사는 근본적인 인적 쇄신 없이 부서 이름 바꾸기 차원의 재난 대응과 말만 번지르르 한 안전대책들로 수습될 문제가 아니다. 담당 부서와 안전대책들이 없어서 눈앞에서 어린 영혼들을 수장시킨 것이 아니지 않는가?

대통령이 뒤늦게 책임을 인정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해경해체만으로 모든 책임을 면하려는 태도는 스스로의 책임을 전가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철저한 진상 조사와 잘못된 시스템에 대한 진단을 통해서 책임소재를 밝히고, 그에 상응한 개혁을 즉각 실시할 것을 요구한다. 그 전에 이 정부의 국정을 파탄으로 몰아가고 있는 청와대와 권력기관들의 인적쇄신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구시대적인 적폐의 근원이 되고 있는 청와대 비서실장, 국정원장, 안보실장, 홍보수석, 그리고 검찰총장의 자리를 쇄신하는 것이 그 시작이 될 것이다.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숨 쉬기도 미안한 4월, 또 미래세대의 교육을 담당한 사람으로서 제자들 얼굴 보기가 부끄러운 5월을 보내고 있다. 침몰 현장에서 인명 구조를 위해 대기했던 민간 잠수사들, 진도에서 유가족들과 함께 밤을 지새운 자원봉사자들, 분향소마다 길게 줄을 이어 늘어선 조문객들, 어린 영혼들과 유가족들을 위해 전국 각지에서 켜진 촛불들, 그리고 이 모든 사태를 묵묵히 지켜본 우리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앞장서서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켜줄 줄 아는 정부, 의사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고 언론통제가 없는 나라, 그리고 이 땅의 모든 부모형제들이 더 이상 슬픔과 분노로 자신의 눈자위가 붉어지지 않는 사회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온 국민의 비탄과 공분을 받들어 우리는 다음 사항을 요구한다.

1. 해경해체 등 조직개편 이전에 철저한 진상규명이 우선이다. 정부는 진상 조사의 주체 이전에 조사 대상이니 유가족 대표와 시민 대표가 주도하는 진상조사단을 구성하고, 좌초와 침몰의 원인, 각 단계별 인명구조가 지연되고 실패한 원인, 무책임한 정부 대응을 한 점 의혹 없이 규명해야 한다.

1. 청와대부터 정부 각 부처에 이르기까지 전면적이고 철저한 인적 쇄신이 이루어져야 한다.

1. 정부는 그동안 자행한 언론 통제에 대해서 사과하고, 언론 통제 철폐를 약속해야 한다. 또한 전국 각지와 해외에서 일어나고 있는 국민들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억압해서는 안 된다.

1. 세월호 사건의 뿌리는 지난 정권부터 계속된 무분별한 친기업 규제 완화이다. 정부는 제2의 참사를 예고하는 과잉친기업 정책을 즉각 폐기하고 생명과 안전을 중심에 두는 국정을 운영하여야 한다.

1. 대통령은 이번 사고 대처에서 나타난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에 대한 최고책임자일 뿐만 아니라 이번 참사의 근원적인 수습에 대해서도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위의 요구들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대통령은 다시 국민적 사퇴 요구에 부딪힐 것이다.

2014년 5월 20일

서울대 민주화 교수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