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capcold.net/blog/4514에서 셀프펌 해왔습니다. 상품의 기술개발과 실제 수요에 대한 매우 유용하고 재미있는 기사를 읽다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던 바들로 몇가지 발상을 확장... 하려다가 적당히 불특정 다수에게 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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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너프’는 시대의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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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RED지 최근호에서 다룬 기사 중, ‘굳이너프 테크놀로지‘(Good-enough technology)라는 토픽이 있다. 무조건 최고의 기술이 잘나가는 것이 아니라, 이만하면 쓸만하다 싶고 대신 더 싸고 쉽고 보편적으로 먹힐 수 있는 것이 아래로부터 판을 장악하는 현상에 대한 이야기다. 대형히트상품들인 Flip의 저가 저해상도 캠코더, CD보다 열등한 음질의 mp3, 인간 파일럿보다 상황판단능력이 부족한 무인정찰기 Predator, 대면 면담보다 세부성이 뒤쳐지는 전자 법무상담 방식 등을 사례로 들며,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어떤 이들에게는 이런 것은 모든 것의 쓰레기화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향상이 일어난 것이다. 사업체들도 이런 것에 익숙해져야만 할텐데, ‘굳이너프’ 혁명은 이제 막 시작이기 때문이다.

mp3 포맷과 기타 굳이너프 기술이 보여준 것은 우리들이 중요시하는 가치 속성들이 변화했다는 것이다. 그 변화는 대단히 근본적이어서, 기존의 가치 기준들이 거의 의미를 잃어버릴 정도다. MP3 효과라고 불러주시길.

만약 80퍼센트라는 숫자가 왠지 친숙하다면, 흔히 80/20 규칙으로 알려진 파레토 원칙 덕분이다. 그리고 굳이너프 상품에 있어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테마이기도 하다. 이런 식으로 생각해보자: 전체 노력, 기능, 투자의 20%가 종종 소비자들이 원하는 가치의 80%를 충족시켜준다."
(중요한 이야기가 많으니 당연히 전문을 제대로 읽을 것 권장)


 

!@#… 어떤 기술발전의 와중에 일정 역치만 넘으면 실제 그 분야에 대한 수요를 대체로 충족시켜버려서 그 이상의 부분에 대해서는 가치기준과 수요가 다른 방향으로 분화되어버릴 수 있다는 패턴. 그 새로운 분화를 제대로 직면하고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하면 작게는 개별 주체가, 크게는 분야 전체까지도 도태될 수 있다. 사실 원래 경영학에 저가 와해성 혁신(lower-end disruptive innovation)이라고 부르는 개념이 이미 있기는 하지만, 그것으로는 사람들이 그 기술을 받아들이게 되는 역치라든지 받아들임으로써 실제 얻는 효과에 대한 직관적 이해를 얻기 힘들다 – 즉 좋은 키워드가 아니다. 하지만 ‘굳이너프’ 개념으로 이해한다면, 기술 뿐만 아니라 사회 여러 영역에 대한 대단히 중요한 함의들이 마구 뻗어나간다. 허접한 막장드라마가 시청률이 잘 나오는 이유라든지, 시대착오 정권을 탄생시키는 지경에 이른 한국의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상황까지 말이다. 혹은 작은 차원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 블로그라는 양식 자체부터가 풀버전 언론사닷컴에 대한 일종의 ‘굳이너프’ 출판툴로 시작되었던 감이 있다. 그런데 기본적 수요를 그럭저럭 채워준 다음에, 다른 효용들이 부각되기 시작했고.


!@#… 특히 개인적으로는 아무래도 관심을 둘 수 밖에 없는 언론 – 아니 뉴스서비스업, 그리고 사회과학계만 해도 그렇다. 아니 사실 굳이너프는 이 두 분야에서 현재의 상황을 읽어내기 위한 핵심 단서가 아닌가 한다. 우선 뉴스서비스업에서 굳이너프 패턴은 이런 것이다. 소식 자체는 전파력 측면에서 블로그, 속보성 측면에서 연합뉴스 단신이나 심지어 트위터 같은 소문 네트웍의 단말마로도 ‘이정도면 그럭저럭’ 쓸만 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물론 심층성이 종종 부족하지만, 심층성이 굳이 필요한 경우 말고는 한 80%만큼은 대략 충족될 정도라면 어떨까. 물론, 좀 우수한 출처 생산자 네트워크(그러니까 구독 목록) 을 가꾸고 있다는 전제 하에서 말이다. 이래서야 개별 언론사들에게 그 80%에 대해서는 도저히 경쟁 우위가 없다. 게다가 날로 먹는 인용 요약 기사들, 즉 서로 다른 언론사의 기사에서 대충 요점만 뽑아서 ‘인용’하는 기사들까지 범람하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그런데도 그쪽으로만 죽어라 뛰어들어서 망가지고 있는 셈.


사회과학계는 그 반대 패턴이다. 학술논문이라는 포맷들이, 지나친 고급화 전략(실제 품질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지향점과 출판절차만큼은 확실히 그렇다)으로 세상과의 접점을 잃어버린 것이다. 따라서 학술논문을 통해서 아카데미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도 폭락했다. SERI 보고서들, 연구소들의 정부용 보고서 등은 대부분의 경우 주요 논문들 만큼 과학적 엄밀함이 강력한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럭저럭 쓸만한 수준을 제공하여 영향력을 극대화한다. 필요한 타이밍에 필요한 주체들이 쉽게 곧바로 자료로서 활용할 수 있다는 접근성과 가용성측면에서 월등한 것이다. 당장 미디어법 정국을 회상해보자. 미디어법 강행론자들이 금과옥조로 내세운 것은 KISDI의 보고서(그러고보니 조작 문제는 그냥 최시중 꾸중 한번 듣고 끝?)와 서울대 윤석민 교수의 매체 여론독과점 관련 연구 발표였다. 전자는 업계현황 보고서, 후자는 피어 리뷰 거치기 전 단계의 발표자료. 그런데 그 정도로도 정부여당과 기득권 신문사들이 판을 뒤흔들며 강행군을 하기에는 ‘굳이너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두가지를 놓고 보면 재미있는 것이, 결국 둘이 서로 중간지점에서 손을 잡으면 윈-윈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제대로 된 데이터와 과학적 분석구조를 지녀서 독창적 콘텐츠 가치를 확보하는 심층 저널리즘, 저널리즘적 가용성을 보충하여 사회와 함께 호흡할 줄 아는 학술 저작물 말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것은 애초부터 옛날에는 원래 하나였다가 분리되어 나온 측면도 있다. 학술지로서의 ‘저널’과 언론의 ‘저널리즘’이 같은 어원이듯 말이다. 하지만 지식과 정보를 세우고 유통하는 매체적 조건 속에서 사회적 영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지금껏 각자 분업하여 특화된 방식으로 진화했을 따름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 조건이 변해서, 다시금 둘이 서로를 향해 마주보고 갈 필요성이 생긴 셈이다(하지만 미디어기술의 역사를 논하는 건 다른 기회에).


!@#… 여튼 그러니까 ‘굳이너프’라는 컨셉은 매우 재미있고 아마도 대단히 유용한 사고도구니까, 함께 좀 더 관심을 기울여보자는 이야기. 각계의 나름 내공있는 분들이 자기 분야에서 한번 적용해서 사고실험을 해보시면 좋겠다 싶다. 그것을 모아서 책으로 묶어 출판계를 휩쓸면 굳, 그냥 각자 블로그 같은 곳에라도 공개하고 서로 트랙백 쏴서 내용을 같이 나눠도 뭐 굳이너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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