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덕은 사회생물학이 문화를 무시한다고 비판한다. 인류 보편성에만 집착하고 다양성은 “의미 없거나 사소한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사회생물학은 자기들에게 의미 있다고 생각되는 것들만 중요하다고 간주하고, 나머지는 의미 없거나 사소한 것으로 다루거나 아예 배제한다. 사회생물학이 인간을 동물의 하나로 다루는 반면에, 문화연구는 다른 동물과 구분되는 인간적인 특징(특히 문화)을 가장 중요시 한다. 이 과정에서의 쟁점은 문화이다. 사회생물학은 문화를 어떻게든 유전자 트랙에 집어넣으려 하지만 문화연구는 그 부분에 관심이 없다. 이 과정에서 사회생물학은 문화를 설명한다면서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본능과 가까운 일부 행동(, 음식, 번식, 공격성 등)에만 집중한다. , 문화의 핵심인 다양한 집단에게 다르게 나타나는 다양한 의미체계(언어의 차이, 종교의 차이, 의미의 차이 등)는 설명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예를 들어, 문화연구에서는 이 집단에서는 어떤 종교를 믿는지, 저 집단에서 믿는 종교의 내용은 어떻게 다른지에 관심을 갖는다. 또는 영어에서 러브(love)’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고, 한국에서 사랑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지에도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사회생물학은 언어나 종교가 어떻게 유전자적 기초로부터 기원했는가만 설명하고, 왜 차이가 나타나는지는 전혀 설명하지 않는다. 문화라고 보기 어려운 극히 단순하고 보편적인 성향에 관심을 기울이지, 각각의 실제적인 언어나 종교에는 접근하지 않는 것이다.

그 이유는 사회생물학으로 언어와 종교의 내용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실제적인 언어와 종교에 대한 분석을 유전자적 성향과 연결하여 통합할 수 있는 것처럼 주장하면서, 인류학자나 사회학자에게 왜 그렇게 하지 않느냐고 비판한다. 그러나 유전자나 후성규칙이 각 나라의 국민들에게 중국어, 한국어, 영어를 쓰도록 하거나, 기독교나 불교나 힌두교를 믿도록 방향 지을 수는 없다. 아직까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창발성의 발현과 작동이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별 의미가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하위 수준의 작동 과정(사회생물학)으로 상위 수준(문화)의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는 억측을 강요하고 있다. 그러한 과정에서 문화를 자신들이 설명할 수 있는 일부 본능에 가까운 행동으로 왜곡하고, 문화의 나머지 부분들은 의미 없거나 사소한 것으로 간주하여 배제한다. 하지만 문화연구는 바로 이것들을 인간 집단의 이해를 위해서 본질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지식대통합이라는 허망한 주장에 대하여—문화를 중심으로」, 이정덕, 『사회생물학 대논쟁』, 김동광, 김세균, 최재천 엮음, 이음, 2011, 133~134)

 

 

 

사회생물학과 진화 심리학이 인류 보편적인 현상에 집착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 이유는 선천적 인간 본성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규명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농경 이후의 역사, 언어의 차이, 종교의 차이 등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을 적게 기울인다.

 

“문화적 차이를 별로 연구하지 않는다”와 “문화적 차이를 의미 없거나 사소한 것으로 본다”가 같은 것인가? 수학자도, 물리학자도, 천문학자도, 진화 생물학자도, 지질학자도 인류의 문화적 차이를 연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수학자와 물리학자와 천문학자와 진화 생물학자와 지질학자가 문화적 차이는 연구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각 학문에는 연구 주제가 있다. 수학에는 수학 고유의 주제가 있으며 그 주제를 벗어나면 연구를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수학자가 진화, 도덕 철학, 언어, 안드로메다에 대한 연구는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신의 주제가 아니기 때문에 연구하지 않을 뿐이다.

 

역사학자는 타조의 진화나 케플러의 법칙이나 피타고라스의 정리에 관심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것들이 가치가 없다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다만 자신의 전공이 아니니까 연구를 하지 않을 뿐이다.

 

 

 

흔히 사회 과학으로 분류하는 역사학, 사회학, 언어학, 종교학, 경제학, 인류학에는 고유한 관심사가 있다. 그들은 자신의 주제에서 많이 벗어나면 연구를 하지 않는다. 사회생물학이나 진화 심리학에도 고유한 관심사가 있다. 그런 관심사에서 많이 벗어나는 주제를 연구하지 않는 것이 무슨 죄란 말인가? 여기에 시비를 거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기성 사회 과학자들은 인간 본성에 대한 상식적, 직관적 이해 즉 상식 심리학(folk psychology, 민간 심리학)에 바탕을 두고 연구를 해 왔다. 사회생물학과 진화 심리학은 이것을 과학적 심리학으로 대체하려고 한다.

 

과학자들이 아주 어설플 때에는 상식이나 직관만도 못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인간 본성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상식과 직관을 뛰어넘을 것이다. 적어도 진화 심리학자들은 그런 희망을 품고 있다. 그리고 그런 연구에 바탕을 두고 사회 과학을 하면 지금보다 더 나아질 것이다. 이것이 사회생물학과 진화 심리학이 꿈꾸는 사회 과학의 혁명이다.

 

 

 

사회생물학과 진화 심리학의 이런 포부에 시비를 걸고 싶다면 “당신들은 인류 보편성, 인간 본성, 인간의 진화에 주로 관심이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야 한다.

 

1. 인간 본성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결코 상식과 직관을 뛰어넘지 못할 것이다. 인간 본성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죽이 되는 밥이 되는 미래에도 쭉 그냥 상식과 직관에만 의존할 것이다.

 

2. 인간 본성은 백지에 가깝다. 따라서 인간 본성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사회 과학에 거의 도움이 안 된다. 백지를 연구해서 뭐 하나?

 

3. 제대로 된 사회 과학을 위해서는 인간 본성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사회생물학자들과 진화 심리학자들은 이 작업을 너무 한심하게 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