펙트주의의 뜻은 대략 <사실만을 말하고, 사실로만 의견을 구성한다> 인 것 같다. 쉽게 말하면 일부러 거짓말을 지어내서 말하지 않는거다. 내가 보기에 아크로에 글을 쓰는 대부분의 회원들이 그런 펙트주의의 원칙을 준수한다. 거짓을 지어내서 말하고, 거짓을 섞어서 의견을 구성하는 사람 여기 별로 없다. 심지어 그것은 심할 경우 징계사유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펙트주의는 별 것도 아니고 모두가 당연히 준수해야하는 기본 원칙이다. 따라서 <나는 펙트주의를 따른다> 는 것 자체는 딱히 내세워서 자랑하거나 특별히 강조해서 어필할만한 것이 아니다. 그냥 숨쉬는 것처럼 당연한 글쓰기의 기본이라는 것. 그런데 유난히 그것을 강조하며 어필하는 분들이 종종 있다. 미안하지만 그건 마치 한글로 글을 적어놨다고 자랑하는 것과 마찬가지.  

그런 되도 않는 자랑질을 하면서 비웃음을 당하는거야 그분들의 자유이니 뭐라 말하기는 그렇다. 문제는 그 분들이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이상한 논법을 구사한다는 것. 즉 <사실로만 의견을 구성했으니 내 의견은 옳다. 내 주장중에 사실이 아닌 것을 찾아내서 반박해보셈. 없지?> 라는 어처구니없는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이것은 논리학의 기본도 모르는 멍청한 짓. 펙트주의란 거짓말을 경계하기 위함이지, 펙트주의를 따른다 해서 그것이 곧바로 올바른 의견이 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사례를 들어보자. 

펙트 1 - 1998년 2월 김대중이 대통령에 취임했다. 
펙트 2 - 김대중의 출생지는 전라남도 신안의 어느 섬이다. 
펙트 3 - 2001년, 전라남도 신안의 몇몇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대형 연륙교가 준공되었다. 

위 펙트들의 조합이 전달하고 있는 정보는 무엇일까? 바로 <김대중의 고향에 거액의 국민세금으로 다리가 건설되었다> 이다. 당연히 난리가 났다. '대통령 자리가 좋긴 한가 봐. 저러니 전라도 것들이 김대중을 미친듯이 지지한거지. 대통령이 되었다고 지맘대로 고향에 다리를 놓는 놈이나, 그거 좋다고 지지하는 놈들이나" 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당연한 반응이고 이건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예상했겠지만 조선일보의 기사였다. 

그러나 한가지. 누락된 펙트가 있었다. 해당 신안 연륙교의 기획과 설계 예산확보계획까지 모두 김영삼정부 시절 진행되고 결정된거라는 것. 즉 그 연륙교와 김대중은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것. 그러면 과연 '사실로만 구성된' 그 기사는 정말로 독자에게 올바른 정보를 전달한 기사일까? 당연히 그 기사는 100퍼센트 사실만을 보도했다. 준공날짜, 다리의 규모, 준공식 참석자, 예상되는 경제효과까지 미주알 고주알. 그러나 과연 그 기자는 '나는 사실만을 보도했으므로 아무 문제 없다'라고 당당하게 말해도 되는 것일까?

몇몇 펙트주의 신봉자들이 착각하고 있는게, 이렇게 펙트주의를 따르면서도 얼마든지 손쉽게 사실을 왜곡하고 선동하는게 가능하다는 것. 그러니 <내 글은 펙트로만 구성되었기 때문에, 사실의 왜곡이나 선동 따위는 들어있지 않다> 라고 무슨 진리인 것처럼 주장하는 어떤 분들은 머리통을 한대 쳐맞아야한다. 멍청한건지 악질적인건지 둘 중 하나.
  
또한 펙트주의의 함정은 그런 '고의적이고 악의적인' 펙트의 누락이나 취사선택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모든 사실을 인지할 수 없으므로, 당연히 펙트의 취사선택은 필연적으로 발생하고, 그것은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한계라는 것이다. 즉 의도하지 않더라도 누구라도 어쩔 수 없이 모든 글에는 펙트의 취사선택이 발생할 수 밖에 없고, '사실의 왜곡과 선동'이 포함될 수 밖에 없다는 것. 그러니 언제나 겸손해야한다. 자신의 주장이 얼마든지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고, 단정해서 주장하는 것은 가급적 피해야한다. 그래서 아크로같은 공론장이 필요한 것이고. 

(물론 올바른 판단에 꼭 필요한 사실들을 대부분 인지하고 자신있게 단정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전두환은 학살자다같은 주장. 그러나 그런 경우는 흔치 않다.)

그러니 걸핏하면 조금의 겸손함도 없이 <나는 사실만을 말했으므로, 내 글에는 조금의 사실 왜곡이나 선동도 없다. 안그러는 니들은 하이에나 개객끼>라는 어처구니 없는 태도를 보여주는 소위 펙트주의의 신봉자들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일까? 그분들은 소위 펙트주의라는 미명하에 자신들 또한 얼마든지 '사실왜곡과 선동질'을 할 수 있다는걸 정말로 모른다는 것인지 그것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