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0여구 유골 건 관련해서 길벗님은 '유골이 25여구씩 묶여 비닐에 포장되어 있다'라는 기사가 대부분이라고 주장하는데 이거 거짓말이죠.

그리고 시체가 (특정 조건, 그러나 별로 엄격하지 않은 조건에서)6개월이면 유골만 남는다는 것도 모르고 주장부터 하지를 않나... 

비닐이 썩지는 않지만 최근에 나온 것도 20년이 최대 수명이라는 것도 모르고 주절주절....(비닐 오래쓰면 탄성이 떨어져 잘 찢어지요. 많이들 경험하셨을겁니다. 비닐하우스를 대략 3년에 한번씩 개보수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죠)


정치/사회 분야에서의 팩트조립이라는 것은 의외로 굉장히 많은 상식을 요구합니다. 솔까말, 상식이 없으면 팩트조립이 아예 불가능하거나 상당히 부실해지죠. 말 그대로 신문스크랩이 된다는 것이죠.


<저 아래 길벗님과 minue622님 그리고 피노키오님의 논란의 핵심도 딱 하나입니다. 시사상식은 물론이고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회가 공통적으로 용인하는 상식에 대한 개념이 있느냐의 여부. 미안한데, 길벗님은 그게 없어요. 정말 놀랄 정도예요. 마치, 안드로메다서 온 사람 같아요. 상식을 바탕으로 주장들이 되야 하는데 이렇지 못하면..... 논의는 생산적이지 못하게 되죠.>



어쨌든, 길벗님의 헛소리야 언급하기조차 귀찮고 사안의 중대성으로 인해 그건 '뭐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기로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죠. 아, 나중에 적당한 기회가 있으면 길벗님의 '바른 팩트 조립 방법'에 대하여 좀 훈육해 드리지요.


아~ 나는 왜 이렇게 인류애가 철철 넘쳐야 할까? 아니, 우주애인가?

개념을 안드로메다에 놓고 지구로 출장 오신 우주인까지 챙기니 말이다.



각설하고,


제가 엑셀로 기사들 중 일부를 쭉 정리해보았는데(그 파일 집에 있는데 잠시 검색해 보아도 아실겁니다)

동일 신문에서도 '1구씩 따로'와 '25구씩 묶여서'라고 기사 내용이 바뀌었습니다. 

그렇게 바뀐 기사를 경향신문... 국제일보...동아일보... 조선일보(조선일보는 25구, 스포츠조선은 1구라고 따로따로 보도했습니다) 등에서 했습니다.


(기억에 의하면)경향신문이 5월 14일 최초로 보도했고 그리고 5월 15일과 5월 16일 보도가 되었는데 중구난방입니다. 언론사 별로 '1구'에서 '25구'로 바꾸어 보도하기도 하고 반대로 '25구'에서 '1구'로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권력이 개입했다'?

모르겠습니다. 동일 언론사들에서 보도가 일제히 바뀐 징후가 있다면 '권력이 개입했다'라고 판단하겠는데 중구난방이다...... 이러면 권력이 개입하지 않았다..라고 보여집니다.


그런데 그 일정한 패턴에서 고의로 '한두개를 바꾸었다면?'


조선일보는 25구로만 보도되었고(제가 검색을 못했을수도 있습니다) 스포츠조선에서는 1구로만 보도되었다는 것이 좀 의아했습니다. 조선일보와 스포츠조선이 법인이 분리가 되었다고 하면 정치/사회 기자는 각각 다르겠지만 글쎄요... 기자 이름까지 확인해보아야겠습니다만.... 대부분의 신문에서는 기자 이름이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짧지만' 유골의 상태를 설명하는 문장이 철자하나 바뀌지 않고 신문마다 거의 일정한 것으로 보아 아마 연합신문 등에서 송출한 것을 받아 적은듯 합니다.



일정한 패턴에서 권력이 개입해서 고의로 한두개만 바꾸었다........................ 가능성 있는 이야기죠. 그래서 여러 방법으로 기사들을 소팅 해보았는데 특이점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민중의 사진을 보고는 그렇지 않다...라고 판단했습니다. 왜냐하면, 유골 모습 사진만으로는 '민중의 소리'가 가장 확대해서 보도해서 유골의 상태를 짐작하기가 가장 나은데 만일 이 유골들이 518학살 당시 실종자라면?


1. 비록 사회적 신분이 낮거나 부랑자들이라고 해도 학살 후에 굳이 사람을 다시 죽일 필요는 없겠지요. 

2. 그렇다면 그 유골들에게는 다음 세가지 중 한가지 이상의 흔적이 남아야 합니다.

첫번째, 총상
두번째, 자상
세번째, 타박상


그래서 국과수나 해외 사이트를 검색해 보았는데요......

총상이나 자상 또는 타박상 등에 의하여 사망한 시체가 30년이 흐른 경우에 그 흔적이 식별되는지 여부를 거론한 사이트는 없습니다.


그러나 세가지 전부 특히 타박상의 경우에도 죽일 정도로 타격했다면 시체가 30년이 지나도 유골에 타박상 흔적이 남아 있을겁니다. 타박상은 뼈까지 멍들게 하니까요. 더우기 죽을 정도로 타박했으면 말입니다.


좀더 생각해보니 의외의 판단이 도출되더군요.


1. 발견된 유골에서 총상이나 자상 그리고 타박상 등이 육안으로 식별될 정도였고 상당수 시신에서 발견되었다.

2. 최초로 보도한 경향신문... 그리고 그 이후에 권력이 개입하여 일정한 패턴에서 한두개만 바꾸어 언론에서 보도하게 했다.

3. 유골이 발견되었을 때 현장 감독관이 했을 조치는? 바로 경찰서에 신고했을 것이고 국정원 등이 상황을 파악했을 가능성이 있죠.

4. 420여구 유골 중 언론에 보도된 유골사진은 그나마 흔적이 없는(?) 유골만 찍혔다(예로, 아래 사진에서 유골의 수가 얼마나 될 것 같나요?)


5. 518학살 당시의 피해자와 다른 무연고지 유골이 섞여 1993년 한꺼번에 이장되었다면? 그러면 당시의 유골들에게는 총상/자상/타박상 흔적이 더 또렷했을텐데 왜 당시는 이슈가 안되었을까?


저는 모르겠습니다. 의문점은 많은데 기사에 의하여 판단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니 말입니다.


분명한 것은 최소한 저 유골들의 가족을 찾아주는 노력을 우리 사회가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최소한 단 하나의 영혼을 달래기 위하여..... 그리고 추가적인 논란이 없게 하기 위해서도 말입니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