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시골길에서 흔히 마주칠법한 허리 구부정한 할머니의 모습, 구 소련 변방
타지키스탄의 타타르족 출신이라 생김새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수더분하고
인정 많은 시골 할머니 인상 그대로다. 그러나 소피아 구바이둘리나(Soffia Gubaidulina
~1931)는 지금 지구촌 현대음악의 중심에 서있고 아마 미래에도 남녀 구분 없이 가장
영향력 있고 메시지 강한 작곡가로 남을 것 같다.
 

 두달 가까이 나는 거의 소음?에 가까운 그의 음악에 시달렸다. 몇해 전 그의 음반
리뷰를 썼다는 인연으로 시작했다. 그의 출세작이자, 대표적으로 잘 알려진 바이올
린 협주곡 <Offertorium>이었는데 당시 시간도 촉박해서 그 음악을 잘 이해했다고
볼 수 없었다. 그런 빚도 있어서 구바이둘리나의 음악 이것저것을 다시 듣기 시작했
는데 음악감상이라기 보다 이건 차라리 고행이었다. 보통 참을성으로는 끝까지 버티
기가 힘들다. 난폭한 파열음과 불협화음의 연속, 그 음악을 듣고 있으면 이런 자문
이 떠오른다.
'너는 오직 즐거움만 찾아서 음악을 듣느냐?'
이런 구절도 떠오른다. "아무리 극한상황에서도 음악은 귀에 거슬려서는 안 된다.
음악은 듣는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쓴 모차르
트가 만약 구바이둘리나의 음악을 들으면 어떻게 생각할까?

 그런데 나는 그의 음악듣기를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그 음악에는 사람을 끌어당기
는 어떤 흡인력이 있다. 자꾸 듣다 보면 묘한 카타르시스도 느낀다. 그에게 끌리는
이유가 뭘까? 꾕과리, 소북, 목탁 같은 동아시아계의 다양한 민속악기를 잘 활용하
는 특이성 때문인가. 강렬한 타격과 괴이한 동물의 신음소리 같은 음향이 빈발하는
특이성 때문인가. 혹은 그가 밝히는 자전적 유년기인가. 이 세 가지 모두 해당되지만
마지막 유년기 이야기가 특히 마음에 다가왔다. 하늘 밖에 바라볼 전망이 없었다는
척박한 유년기를 호소하는 개인사가 특히 마음을 끌었다. 종교탄압의 공산사회, 무
슬림의 아들임에도 완고한 무신론자이던 전기기술자 아버지, 꿈이 배제된 황폐한
환경에서 아이의 마음속에서는 보다 풍요롭고 따뜻한 세계에 대한 열망이 꿈틀거
린다. 5세때 그는 교회당 벽화의 성상에서 그리스도 감화를 받았다고 고백하고 있
다. 그의 음악에는 그때의 열망이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다. 그는 어릴 때 어른들에
게 자기의 열망을 감추는데 익숙했듯이 지금 그 음악에도 그 열망들을 뒤에 감추고
있다.
 

 구바이둘리나의 작품은 워낙 방대하고 악기군도 다양해서 단기간에 그 음악을 섭
렵하기는 쉽지가 않다. 창작열정에서도 그는 동시대를 압도한다.
비올라 연주의 전범으로 군림하는 유리 바쉬메트의 연주로 <비올라협주곡>을
들어본다. 바쉬메트의 음반을 구입해놓고 몇 해씩이나 방치했다가 최근에야 거기
에 손이 갔다. 예상대로 시작부터 파열음과 불협화음의 연속이다. 살갗을 베어낼 것
같은 날카로운 현의 질주가 청각에 충격을 준다. 취객의 걸음처럼 심한 비틀림을 반
복하는 솔로도 처음 경험하는 것이다. 그나마 오케스트라의 점잖고 엄숙한 배음이
솔로의 난폭한 질주를 감싸주지 않는다면 더욱 듣기가 민망했을 것 같다. 선율은 아
예 없고 격정과 전율의 단절음이 반복된다. 이 곡의 초연자답게 바쉬메트는 진땀을
흘리며 격정의 연주를 보여준다. 쾌감과 조화와는 거리가 먼 이 음악이 전하는 메시
지는 뭘까? 저마다 다른 느낌을 받겠지만 슬픔과 분노를 느낄 수도 있고 현대의 카
프카적 불안과 부조리를 감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소피아 구바이둘리나의 이름을 널리 알린 대표작으로 통하는 바이올린 협주곡
<Offertoriium>은 앞의 작품에 비하면 한결 부드럽고 질서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헌정받은 같은 타타르 출신 기돈 크레메르의 열성적 초연으로 높은 평가
를 받은 바 있다. 바흐의 잘 알려진 관현악곡 <음악에의 헌정-Musical Offering>이
모태가 되었는데 시작부터 바흐 곡 서주 주제를 역순으로 재조립하고 음율도 완전히
변형시켜 놓았다. 구바이둘리나는 바흐가 자기 음악의 출발점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
의 다른 곡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거칠기는 하나 현악기군에서는 여전히 날짐승들의
아우성이 난무한다. 다만 구조가 아주 치밀하게 잘 짜여져 있으며 후반에 가서 평온
과 위안을 전하는 범상치 않은 솔로 선율이 등장해서 작곡가의 넉넉한 품을 엿볼 수
있다.

 고행이라고 썼으나 구바이둘리나의 모든 작품이 해당되는 건 아니다. 그에게도 장난
스럽고 위트 넘치는 소품들로 연결된 <Musical Toys>, 활달하고 감칠맛 나는 템포
의 매력을 선사하는 피아노곡 <Chaconne>, T.S.Eliot 에 감명받아 그에게 바쳐진 노
래가 포함된 <8중주곡>같은 이색 작품이 있다. 기타로 연주된 그의 짧은 <세레나데>
는 충격의 파열음에 시달린 청자에게 가벼운 위안을 주기도 한다.
 소피아 구바이둘리나의 첫 방한 소식이 전해진다. 5월에 서울국제음악제
무대에 주빈으로 선다고 한다. 소통과 평화를 강조하는 그의 음악이 이곳에서 어떤
반응을 얻게 될지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편의 상 네 파트로 구분했으나 이 비올라 협주곡은 사실상 단일 악장으로 이어진다.

 *5월26일 밤, 예술의 전당에서 구바이둘리나의

<첼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두개의 길>  세계 초연이 예정되어 있다. 분단,

정신의 황폐로 허덕이는 이곳에 그의 음악이 아주 작은 위안이라도 되어줬으면..하는

한가닥 기대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