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방욱은 동물 연구의 결과를 인간에게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그대로”라는 단어까지 썼다는 점에 주목하자.

 

어떤 사실을 연장해서 볼 때 그것을 외삽(外揷)이라고 말합니다. 외삽을 할 때는 무리가 없어야 하는데, 현재까지 사회성 곤충이라든가 영장류에서 이루어지는 연구결과의 일부를 인간이나 인간사회에 그대로 적용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점에서 반론의 여지가 있죠. 무리한 측면도 있고요.

(전방욱,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 최종덕 지음, 휴머니스트, 2010, 167)

 

이 말을 하기 직전에 최종덕이 “진화심리학의 설득력은 매우 높아 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적응주의와 성선택에 의거한 진화심리학을 모든 인간 심리에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거죠(167)”라는 말을 했다는 점을 볼 때 전방욱은 진화 심리학을 염두에 두고 그런 말을 한 것이다.

 

 

 

상동(homology, 상동성)이나 상사(analogy, 상사성)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종에 대한 연구가 인간 연구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상동성(Homology)은 어떠한 형질이 진화의 과정 동안 보존된 것을 말하며, 이는 형태적 형질이나 분자적 형질, 유전자 서열도 해당될 수 있다. 진화가 일종의 개조 과정이라면, 그 과정을 거치면서 보존되는 특징들이 존재할 것이라 예측할 수 있으며, 이것이 상동성이다. 여기서 형질이 보존되었다는 것은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공통적 조상 형질로부터 유래된 것이 소실되지 않고 남아 있어 진화적 관계를 유추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말한다.

http://ko.wikipedia.org/wiki/%EC%83%81%EB%8F%99%EC%84%B1

 

수렴 진화(收斂 進化)는 계통적으로 관련이 없는 둘 이상의 생물이 적응의 결과 유사한 형태를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수렴 진화의 예로는 박쥐와 새의 날개를 들 수 있다. 계통적으로 관련이 없는 박쥐와 새는 모두 날개가 없는 조상으로부터 진화하였다. 진화의 결과 박쥐와 새는 뼈의 구조와 날개의 모양에서 많은 유사점을 갖는 형태가 되었다.

같은 기원을 갖는 기관이 여러 가지 구조와 기능으로 분화되어 진화되는 상동성과 달리 수렴 진화의 결과 서로 다른 기원을 갖는 구조나 기능이 유사한 형태를 보이는 것을 상사성이라 한다. 박쥐와 익룡의 날개 역시 이러한 상사성을 보인다.

http://ko.wikipedia.org/wiki/%EC%88%98%EB%A0%B4_%EC%A7%84%ED%99%94

 

http://en.wikipedia.org/wiki/Homology_(biology)

 

http://en.wikipedia.org/wiki/Convergent_evolution

 

 

 

상동이나 상사가 아니라 하더라도 종 간 비교는 온갖 방면으로 인간 연구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상동이나 상사는 비슷한 점에 주목하지만 종 간 차이점에 주목할 수도 있다.

 

진화 심리학자들이 인간 심리를 다룰 때 다른 종에 대한 연구를 인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비슷해 보인다고 해서 상동이나 상사라고 무턱대고 결론 내려서는 안 된다는 점은 누구나 알고 있다. 상동이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또는 상사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그 근거를 대야 한다.

 

 

 

전방욱은 진화 심리학자들이 동물 연구를 인간에게 “그대로 적용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도대체 어떤 진화 심리학자가 그랬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진화 심리학자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 것은 본 적이 있는가?

 

1. 수사자가 암사자 무리를 차지하던 기존 수사자를 몰아내면 그 무리의 사자 새끼들을 몽땅 죽여버린다. 이런 유아살해는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한 수사자의 번식 전략으로 보인다. 따라서 인간 남자도 유아살해 기제를 진화시켰다.

 

2. 밑들이(scorpionfly) 수컷에게는 강간에 전문화된 기관이 진화한 듯하다. 따라서 인간 남자도 강간에 전문화된 어떤 형질을 진화시켰다.

 

3. 오랑우탄의 경우 강간율이 매우 높다(강간 미수까지 포함했을 때). 따라서 과거 사냥채집 사회에서도 강간율이 오랑우탄만큼이나 높았다.

 

4. 사마귀 암컷은 자신과 교미하려는 수컷을 잡아 먹는다. 따라서 인간 여자도 자신과 성교하려는 남자를 잡아먹도록 진화했다.

 

5. 흰개미 중에는 군락(colony)을 보호하기 위해 자폭 공격을 하는 개체도 있다. 따라서 인간도 자신의 부족을 보호하기 위해 자폭 공격을 하도록 진화했다.

 

6. 박쥐는 하늘을 날도록 진화했다. 따라서 인간도 하늘을 날도록 진화했다. 비행기 사고가 나면 그냥 뛰어내려서 하늘을 날면 된다.

 

 

 

인간의 강간을 연구하는 진화 심리학자가 밑들이나 오랑우탄의 강간(또는 강제 교미)에 대해 언급할 때가 있다. 하지만 “밑들이에게 강간에 전문화된 기관이 진화했다”는 점만 대면 “남자에게 강간 조절 기제가 진화했다”는 가설이 입증되는 것이라고 우기는 진화 심리학자는 없다. 진화 심리학자가 인간과 밑들이가 서로 다르다는 점도 모를 정도로 바보인 것 같은가?

 

어떤 진화 심리학자도 동물 연구 결과를 들이대면서 “따라서 인간도 그렇게 진화했음에 틀림 없다”고 우기지 않는다. 진화 심리학자들이 동물 연구에서 가설 설정을 위한 힌트를 얻기도 하고, 상사나 상동을 찾아보려고도 하고, 어떤 환경 차이가 인간과 동물이 서로 다르게 진화되도록 만들었는지 따져보려고도 한다. 하지만 동물 연구에서 힌트를 얻어서 만든 가설이라 할지라도 결국 입증을 해야 진화 심리학계에서 이론으로 인정 받는다. 또한 “이것은 상사다” 또는 “이것은 상동이다”라는 가설도 입증을 해야 이론으로 인정 받는다. “이런 환경 차이가 침팬지와 인간이 이렇게 다르게 진화하도록 만들었다”는 가설도 입증을 해야 이론으로 인정 받는다.

 

동물 연구를 인간 연구에 “그대로 적용하”는 존재하지도 않는 진화 심리학자를 비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허수아비가 아니라 진짜 진화 심리학자를 비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