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방욱에 따르면 유전자 결정론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유전자결정론도 너무 쉽게 대중적인 이미지를 차용하고 있는 게 아닌가, 나아가 대중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 이처럼 유전자를 통해서 진화라든가 인간의 본성, 사회현상을 설명하려는 기계론적 사고방식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방욱,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 최종덕 지음, 휴머니스트, 2010, 136)

 

폴 에얼릭(Paul Ehrlich)이라는 학자가 《인간의 본성들(Human Natures)》이라는 책에서 인간의 모든 행동을 유전자로 설명하지 못하는 두 가지 이유를 들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유전자의 수가 턱없이 적다는 겁니다. 사람의 유전자는 2 5,000개 정도라고 하죠. 하지만 우리 뇌에는 1조 개 정도의 시냅스가 있고, 그것을 연결해주는 방식은 100조 개에서 1,000조 개 정도 된다고 보고 있는데, 2 5,000개의 유전자로 그것들을 모두 조절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거죠.

(전방욱,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 최종덕 지음, 휴머니스트, 2010, 137)

 

그러니 어떤 생물체에서 한 가지 현상이 나타날 때 하나의 유전자만으로 그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생각은 굉장히 소박한 거죠. 이미 1953년에 제임스 웟슨(James Watson) 등이 처음으로 유전자의 정체가 DNA라는 것을 밝혔는데, 지금도 그 수준에서 별로 나아가지 못한 셈이죠.

(전방욱,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 최종덕 지음, 휴머니스트, 2010, 138)

 

 

 

전방욱의 말대로 “인간의 모든 행동을 유전자로 설명할 수 있다는 생각은 정말로 바보 같다. 또한 “어떤 생물체에서 한 가지 현상이 나타날 때 하나의 유전자만으로 그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생각도 정말로 바보 같다.

 

“인간의 모든 행동을 유전자로 설명할 수 있다는 의미의 유전자 결정론에서는 환경의 영향은 전혀 없다고 가정한다. 한국에서 태어난 갓난아기가 한국에서 자라면 한국어는 잘 하지만 보통 영어는 잘 못한다. 한국에서 태어난 갓난아기가 미국에 입양되어서 자라면 영어는 잘 하지만 (아주 특수한 예외를 제외하면) 한국어는 아예 못한다. “인간의 모든 행동을 유전자로 설명할 수 있다는 의미의 유전자 결정론으로는 이런 현상을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 유전자 결정론의 신이 입양되는 순간에 한국어 유전자를 영어 유전자로 뿅 하고 변신시켰다는 식의 신화적 설명(?)이 가능할 뿐이다.

 

“어떤 생물체에서 한 가지 현상이 나타날 때 하나의 유전자만으로 그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의미의 유전자 결정론에 따르면 인간의 눈과 같이 고도로 복잡한 구조도 하나의 유전자에 의해서만 만들어졌다. 그런 유전자가 있다면 슈퍼맨도 울고 갈 초능력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전방욱은 그런 유전자 결정론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유전자를 통해서 진화라든가 인간의 본성, 사회현상을 설명하려는 기계론적 사고방식과 연결시키고 있다. 즉 사회생물학이나 진화 심리학이 그런 유전자 결정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암시하고 있다.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1. 환경을 완전히 무시하는 유전자 결정론은 정말 바보 같다.

 

2. 진화 심리학은 그런 유전자 결정론을 받아들인다.

 

3. 그러므로 진화 심리학자들은 다 바보다.

 

전방욱만 이런 식으로 사회생물학이나 진화 심리학을 비판한 것이 아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진화 심리학자 중에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환경의 영향은 전혀 없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누구도 한국 사람에게는 한국어 유전자가 있어서 한국어를 할 수 있고, 미국 사람에게는 영어 유전자가 있어서 영어를 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누구도 조선 시대 사람들에게는 “여자는 교육을 받을 필요도 없고, 고위 공직자가 되어서도 안 된다”는 식의 여성 차별 유전자가 있었고, 21세기 한국 사람들에게는 “여자도 대학교에 다닐 수 있고, 대통령도 될 수 있다”는 식의 성 평등 유전자가 있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진화 심리학을 둘러싼 선천성 논쟁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양측 모두 시각 기제, 청각 기제, 식욕, 성욕 등이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선천적임을 인정한다. 또한 양측 모두 한국어권에서 자라면 한국어를 하고, 영어권에서 자라면 영어를 하게 된다는 점을 인정한다. 즉 언어의 상당 부분이 후천적임을 인정한다.

 

“선천적 질투 조절 기제가 있는가?, “선천적 강간 조절 기제가 있는가?, “선천적 친족애 조절 기제가 있는가?”와 같은 구체적인 쟁점에 대해서 논란이 있다. 하지만 “모든 심리 현상이 선천적이다” 또는 “모든 심리 현상이 후천적이다”와 같은 극단적인 명제는 양측 모두 거부하고 있다.

 

그리고 진화 심리학자가 선천적 기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도 “순전히 유전자에 의해서만 만들어진 기제”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예컨대 태어날 때부터 있는 두 눈이나 사춘기에 나는 겨드랑이 털이 선천적이라고 주장하기는 하지만 인간의 수정란을 인간의 자궁이 아니라 냉동실이나 용광로에 넣어 놓아도 10개월 정도가 되면 두 눈이 생기고 그로부터 10여 년이 더 지나면 겨드랑이 털이 난다고 이야기하는 진화 심리학자는 없다.

 

 

 

진화 심리학을 제대로 비판하고 싶다면 “모든 것을 유전자가 결정한다”는 의미의 순수한 유전자 결정론 또는 극단적 유전자 결정론과 같은 허수아비는 그만 때리고 진짜 논점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