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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자본' 저자 토마 피케티 교수, 한국 언론과의 첫 대담

'21세기 세계를 묻다'는 유럽 석학들과의 대담을 통해 전세계와 한반도의 문제를 깊이 성찰하고 대안을 찾으려는 기획이다. 대담은 정치학자 윤석준 박사가 진행한다. 윤 박사는 프랑스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이 대학 유럽학연구소에서 유럽연합의 대외관계, 유럽-북한 관계 등을 연구하고 있다.



첫 주인공은 <21세기의 자본>의 토마 피케티다. 그는 부의 축적과 소득 분배에 대한 방대한 역사 자료를 분석해 '자본의 수익률이 경제성장을 능가하는' 자본주의의 특징이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으며, 그 결과 나타난 세습자본주의가 민주주의의 위기를 일으키고 있음을 실증했다. 그가 불평등 완화의 처방으로 제시한 '전세계적으로 최고 부유층의 자본에 누진세를 물리자'는 주장은 거대한 논쟁과 열풍을 몰고 왔다.

대담/ 윤석준 정치학 박사

토마 피케티(43) 교수는 요즈음 프랑스에서 가장 바쁜 인사 중 하나다. <21세기의 자본> 영문 번역판 출간 이후 그는 거의 매주 미국, 영국, 프랑스를 오가고 있다. 이 책은 말 그대로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지난달 말에는 불어판, 영어판이 모두 동나서 대형서점들에도 재고가 없을 정도였다. 지난 12일 필자가 파리경제대학(PSE)에 있는 그의 연구실을 찾았을 때에도 2~3분마다 책상 위에서 전화벨이 울리고 있었다. 그는 대화 중에도 전화가 계속 오자 아예 전화선을 뽑아 두었다.

지난해 겨울 피케티 교수가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에 와서 <21세기의 자본> 불어판 출간 기념 토론을 할 때부터 필자는 이 책에 주목해왔다. 요즘 경제학에서 보기 힘든, 십수년 동안 켜켜이 쌓아온 나이테가 보이는 역사적 연구였기 때문이다. 혹자는 그를 불어권 학계에서는 주목받지 못한, 영미권 학계의 신데렐라라고도 말한다. 하지만 그건 사실과 다르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의 연구에 주목해온 프랑스 학자들이 많았다. 특이한 건 그들 중에는 경제학자들 외에도 역사학자들, 사회학자들이 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이 대화 말미에서 짐작할 수 있다.

한시간 반 동안 나눈 그와의 대화는 불어로 진행했다. 미국에서 교수생활도 했던 그이지만, 모국어인 불어로 하는 이야기가 더 정교하고 풍부했다.

윤석준(이하 윤)

<21세기의 자본>이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경제학 연구서라는 점을 고려하면, 게다가 970쪽(불어판은 970쪽, 영어판은 696쪽)이라는 책의 분량까지 생각하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현재까지 총 몇 권이 팔렸나?

토마 피케티(이하 피케티)

현재까지 대략 불어판 5만권, 영어판 25만권이 독자들과 만났다. 영어판은 지난 3주 동안에만 15만권이나 나갔다. 상당히 가파른 판매 속도라서 앞으로 얼마나 더 팔릴지 예측하기 쉽지 않다. 현재 20여개 언어로 번역 계약도 맺은 상태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하나?

피케티

사람들은 불평등의 문제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고 있던 주제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물론 미국에서 소득 불평등이 급격히 커져왔기 때문에, 특히 그곳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된 측면도 있다. 하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이 연구가 '새로운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엄밀히 말하면 나의 '주장'을 담은 책이 아니다. 20여개국 300여년 동안의 자본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20여명의 동료 학자들과 협업하면서 오랜 기간 소득과 자산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를 모아 분석했다. 기존의 학설이나 이데올로기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역사적 데이터 그 자체에 최대한 충실했다.

부채 늘어 나라 가난한데
사적 자산은 급격히 증가
'세습적 자본주의'로 회귀
정당·언론 통해 막강 영향력
다수의 정치적 불평등 불러


그래서 설령 이 책의 후반부 10%에 나오는 정책적 제언에는 동의하지 않는 독자이더라도,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나머지 90%에 나오는 3세기에 걸친 역사적 서술에서는 흥미로운 이야기나 배울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당신은 벌써 15년 넘게 자본주의 불평등 문제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왔다. 이 연구를 시작하게 된 동기나 배경이 있나?

피케티

나는 이념적으로 자유로운 세대에 속해 있다. 당연히 성장 과정에서 겪었던 몇가지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의 영향을 받았을 수는 있다. 열여덟살 때인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공산주의의 종말은 내게 큰 사건이었다. 1991년 걸프전도 석유자본과 연관된 불평등 문제의 구조와 결과를 생각하게 해주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나는 탈냉전, 탈공산주의, 탈마르크스주의의 첫 세대에 속해 있다. 그래서 자본주의 불평등 문제를 새로운 관점에서 학술적으로 전개해볼 수 있었다. 내 이전 세대는 모든 사회문제들을 생각할 때 자본주의 대 공산주의라는 냉전적 인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하지만 솔직히 나에게 공산주의나 마르크스주의는 한번도 큰 관심사였던 적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가 사적 소유와 시장경제 그 자체만으로 완벽하거나 충분하지 않은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민주주의 이념과 제도가 자본주의를 공공이익에 복무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자본주의가 스스로 혹은 저절로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오산이다.

이념적으로 자유로운 세대적 배경이 불평등 문제를 새롭게 재해석하고 부각시킬 수 있게 해주었다면, 기술적으로 방대한 데이터 수집이 수월해진 것은 이 연구가 실현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옛날 같으면 역사학자들이 이 문제를 연구하기 위해 엄청난 사료들을 하나하나 뒤져야 했겠지만, 지금은 여러 데이터베이스들을 포함해 연구를 위한 기술적 환경이 좋다.


<21세기의 자본>을 통해 당신이 바라보는 21세기 자본주의 경제에서 소득과 자산의 배분에 대한 동학은 어떤 모습인가?

피케티

우선 이 책이 다루는 이야기는 소득과 자산에 대한 역사이기도 하지만, 선택한 정치적 제도가 무엇이었느냐에 따라 가변적인 정치의 역사이기도 하다. 거기엔 단 하나의 결정론적 진화라기보다는 복수의 미래가 가능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소수 세습자본이 정치 호령..투명성 없인 민주주의 위기"

[한겨레][21세기 세계를 묻다] 1부_ 유럽에서 본 세계

'21세기의 자본' 저자 토마 피케티 교수

한국 언론과의 첫 대담

'21세기 세계를 묻다'는 유럽 석학들과의 대담을 통해 전세계와 한반도의 문제를 깊이 성찰하고 대안을 찾으려는 기획이다. 대담은 정치학자 윤석준 박사가 진행한다. 윤 박사는 프랑스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이 대학 유럽학연구소에서 유럽연합의 대외관계, 유럽-북한 관계 등을 연구하고 있다.







첫 주인공은 <21세기의 자본>의 토마 피케티다. 그는 부의 축적과 소득 분배에 대한 방대한 역사 자료를 분석해 '자본의 수익률이 경제성장을 능가하는' 자본주의의 특징이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으며, 그 결과 나타난 세습자본주의가 민주주의의 위기를 일으키고 있음을 실증했다. 그가 불평등 완화의 처방으로 제시한 '전세계적으로 최고 부유층의 자본에 누진세를 물리자'는 주장은 거대한 논쟁과 열풍을 몰고 왔다.

대담/ 윤석준 정치학 박사

토마 피케티(43) 교수는 요즈음 프랑스에서 가장 바쁜 인사 중 하나다. <21세기의 자본> 영문 번역판 출간 이후 그는 거의 매주 미국, 영국, 프랑스를 오가고 있다. 이 책은 말 그대로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지난달 말에는 불어판, 영어판이 모두 동나서 대형서점들에도 재고가 없을 정도였다. 지난 12일 필자가 파리경제대학(PSE)에 있는 그의 연구실을 찾았을 때에도 2~3분마다 책상 위에서 전화벨이 울리고 있었다. 그는 대화 중에도 전화가 계속 오자 아예 전화선을 뽑아 두었다.

지난해 겨울 피케티 교수가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에 와서 <21세기의 자본> 불어판 출간 기념 토론을 할 때부터 필자는 이 책에 주목해왔다. 요즘 경제학에서 보기 힘든, 십수년 동안 켜켜이 쌓아온 나이테가 보이는 역사적 연구였기 때문이다. 혹자는 그를 불어권 학계에서는 주목받지 못한, 영미권 학계의 신데렐라라고도 말한다. 하지만 그건 사실과 다르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의 연구에 주목해온 프랑스 학자들이 많았다. 특이한 건 그들 중에는 경제학자들 외에도 역사학자들, 사회학자들이 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이 대화 말미에서 짐작할 수 있다.

한시간 반 동안 나눈 그와의 대화는 불어로 진행했다. 미국에서 교수생활도 했던 그이지만, 모국어인 불어로 하는 이야기가 더 정교하고 풍부했다.

윤석준(이하 윤)

<21세기의 자본>이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경제학 연구서라는 점을 고려하면, 게다가 970쪽(불어판은 970쪽, 영어판은 696쪽)이라는 책의 분량까지 생각하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현재까지 총 몇 권이 팔렸나?

토마 피케티(이하 피케티)

현재까지 대략 불어판 5만권, 영어판 25만권이 독자들과 만났다. 영어판은 지난 3주 동안에만 15만권이나 나갔다. 상당히 가파른 판매 속도라서 앞으로 얼마나 더 팔릴지 예측하기 쉽지 않다. 현재 20여개 언어로 번역 계약도 맺은 상태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하나?

피케티

사람들은 불평등의 문제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고 있던 주제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물론 미국에서 소득 불평등이 급격히 커져왔기 때문에, 특히 그곳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된 측면도 있다. 하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이 연구가 '새로운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엄밀히 말하면 나의 '주장'을 담은 책이 아니다. 20여개국 300여년 동안의 자본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20여명의 동료 학자들과 협업하면서 오랜 기간 소득과 자산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를 모아 분석했다. 기존의 학설이나 이데올로기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역사적 데이터 그 자체에 최대한 충실했다.

부채 늘어 나라 가난한데
사적 자산은 급격히 증가
'세습적 자본주의'로 회귀
정당·언론 통해 막강 영향력
다수의 정치적 불평등 불러


그래서 설령 이 책의 후반부 10%에 나오는 정책적 제언에는 동의하지 않는 독자이더라도,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나머지 90%에 나오는 3세기에 걸친 역사적 서술에서는 흥미로운 이야기나 배울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당신은 벌써 15년 넘게 자본주의 불평등 문제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왔다. 이 연구를 시작하게 된 동기나 배경이 있나?

피케티

나는 이념적으로 자유로운 세대에 속해 있다. 당연히 성장 과정에서 겪었던 몇가지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의 영향을 받았을 수는 있다. 열여덟살 때인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공산주의의 종말은 내게 큰 사건이었다. 1991년 걸프전도 석유자본과 연관된 불평등 문제의 구조와 결과를 생각하게 해주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나는 탈냉전, 탈공산주의, 탈마르크스주의의 첫 세대에 속해 있다. 그래서 자본주의 불평등 문제를 새로운 관점에서 학술적으로 전개해볼 수 있었다. 내 이전 세대는 모든 사회문제들을 생각할 때 자본주의 대 공산주의라는 냉전적 인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하지만 솔직히 나에게 공산주의나 마르크스주의는 한번도 큰 관심사였던 적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가 사적 소유와 시장경제 그 자체만으로 완벽하거나 충분하지 않은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민주주의 이념과 제도가 자본주의를 공공이익에 복무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자본주의가 스스로 혹은 저절로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오산이다.

이념적으로 자유로운 세대적 배경이 불평등 문제를 새롭게 재해석하고 부각시킬 수 있게 해주었다면, 기술적으로 방대한 데이터 수집이 수월해진 것은 이 연구가 실현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옛날 같으면 역사학자들이 이 문제를 연구하기 위해 엄청난 사료들을 하나하나 뒤져야 했겠지만, 지금은 여러 데이터베이스들을 포함해 연구를 위한 기술적 환경이 좋다.


<21세기의 자본>을 통해 당신이 바라보는 21세기 자본주의 경제에서 소득과 자산의 배분에 대한 동학은 어떤 모습인가?

피케티

우선 이 책이 다루는 이야기는 소득과 자산에 대한 역사이기도 하지만, 선택한 정치적 제도가 무엇이었느냐에 따라 가변적인 정치의 역사이기도 하다. 거기엔 단 하나의 결정론적 진화라기보다는 복수의 미래가 가능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 책에서 내가 하고 있는 주장은 결국 카를 마르크스와 사이먼 쿠즈네츠가 둘 다 틀렸다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불평등의 심화와 자본주의의 종말을 전망한 것도, 쿠즈네츠가 불평등의 점진적 완화를 전망한 것도 모두 틀렸다. 사실은 그 어떠한 경제적 결정론도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두개의 다른 방향으로 미는 역학이 존재한다. 한쪽 방향으로는 지식, 교육, 기술의 확산을 통해 불평등을 감소시키는 힘이 있는 반면, 다른 쪽 방향으로는 자본 이익률이 경제성장률을 상회하면서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

20세기 주요 선진국에서 소득에 대한 자본의 비율(자본/소득 비율·자본이 국민소득의 몇배인지를 보여줌)은 세계대전 이후에만 예외적으로 급격히 감소했다.(500~600%에서 200~300%로 감소) 그러나 이후 더디지만 꾸준히 수십년 동안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최근에는 이 비율이 세계대전 이전 수준으로 회귀하고 있다.

아주 역설적인 것은 유럽,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의 공공부채는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 반면 사적 자본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적 자본이 증가했다는 건 물론 좋은 일일 수 있다. 문제는 사적 자본에서의 불평등 문제, 그리고 공적 자본의 가난이다.

결국 오늘날 21세기 자본주의는 소득에 대한 자본의 비율이 과도하게 증가하면서 (과거에 축적된 세습된 부가 지배하는) '세습적 자본주의'로 회귀하고 있다.


당신은 자본주의 불평등의 증가가 민주주의의 위기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오늘날 세계 여러 국가들에서 민주주의가 자본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했다고 보는가?

피케티

물론 불평등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일정 수준의 불평등은 경제성장을 위해서나, 개인적인 선택에 따른 다른 삶을 위해서 용인될 수 있다. 고속성장을 하는 시대 혹은 나라에서 소득의 불평등 증가는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일정 수준을 넘어선 과도한 불평등은 경제성장을 위해서도 좋지 않고, 무엇보다도 민주주의를 위협할 우려가 있다. 소수에 의한 과도한 부의 집중이 정치적 접근성 및 영향력 등에 대한 불평등한 분배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소득 불평등보다 자산 불평등의 문제가 정치적으로는 더 큰 함의를 갖는다.

오늘날 여러 나라들에서 세습을 통해 과도하게 집중된 자본이 정당, 언론, 싱크탱크 등을 통해 막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정치, 특히 선거에서 사적 자본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한 논의가 활발하다. 유럽은 이런 면에서는 상대적으로 훨씬 건강한 측면이 있다.

경제적 결정론은 존재하지 않아…정치가 바꿀 수 있다

세습 자산에는 민주적 투명성이 함께 있어야 한다. 지금 20년, 30년 뒤 자산 불평등의 추이를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지만, 이 민주적 투명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어느 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예상치 못한 불행한 일들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전망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당신이 책 후반부에서 제안한 전세계적 차원의 자본에 대한 누진적 과세는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대부분 실현 가능성에 대해 진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이지만, 간혹 당신을 공산주의자 혹은 마르크스주의자라는 말로 일갈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피케티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데올로기적 편견을 내려놓고 차분히 토론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역사적으로 누진세는 볼셰비키에 의해 창안된 것이 아니라, 영국과 미국처럼 자본주의 국가들이 고안하고 적용해온 것이다. 누진세는 본질적으로 자유주의적이고, 시장우호적인 제도다. 독일과 일본이 2차 세계대전 직후 고소득자에게 고율의 세금을 부과하도록 세제를 고쳤던 것은 사실 미국이 한 일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패전국들에 가해진 벌칙은 아니었다. 미국도 국내에서 똑같이 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미국의 관점은 누진세가 민주주의 제도들과 함께 가야 하는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소수에 의한 극단적인 부의 집중이 민주주의를 해칠 수 있다. 그래서 누진세를 냉전적인 이데올로기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은 맞지 않다.

누진세는 볼셰비키 아니라
영미서 만든 시장우호적 제도
'세습자본' 통제수단으로 유효
부채 감안 순자산만 과세땐
중산층·서민 절세 효과도


20세기에 적용하던 세금제도나 사회모델을 고치는 정도로는 21세기에 세계적으로 부상하고 있는 세습 자본주의를 통제하기 힘들다. 그래서 개별 국가에서의 소득에 대한 누진세를 전세계적 차원에서 자본에 대한 누진세로 확대하는 고민이 나온 것이다. 유럽의 경우 예를 들면, 100만유로(약 14억원) 이하의 사적 자산에 대해서는 0%의 세금을 부과하고, 500만유로(약 70억원)까지는 1%, 500만유로 이상의 경우에 2%를 부과하는 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사실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산층, 서민들은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게다가 부채를 고려한 순자산에만 과세함으로써 세습된 자본과 차별화를 시키면, 중산층과 서민들에게는 오히려 결과적으로 세금이 줄어드는 효과도 있다. 쉽지 않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오늘날 빗장 풀린 스위스 금융 비밀주의도 예전엔 비현실적인 이야기로 취급받던 것이다.


사적 자본에 대한 세금 부과가 유럽 등 일부 선진국들의 공공부채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피케티

사적 자본에 대한 누진적 세금 부과는 공공부채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가장 바람직하고 효율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인플레이션은 오히려 역진적 세금으로 사실상 중산층의 자산에만 손해를 입힌다. 반면 고액 자산가들은 증시, 부동산 등 다른 활로를 통해 높은 수익을 올려왔다. 역사적으로도 과거 독일, 프랑스에서 공공부채 감소를 위해 인플레이션이 이용되었지만 중산층의 자산만 침식당했다. 재정긴축 또한 스태그네이션만 불러올 뿐이다.


경제학을 포함한 사회과학 일반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를 마무리해보고자 한다. 오늘날 사회과학계 전반에서 역사적 연구는 다소 변방으로 밀려나 있다. 특히 수학적 모델 중심의 경제학계에서 당신의 역사적 연구는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

피케티

물론 수학적 모델이나 통계적 방법은 유용하다. 나의 연구에서 일부 사용된 수학적 모델은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지만, 많은 양의 데이터들에서 장기적인 역사적 추세를 보여준다. 그런데, 오늘날 경제학은 종종 반대의 모습을 보인다. 수학적 모델은 복잡하기 그지없고, 과학적 우월성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지만, 실제로는 그다지 의미있는 결과를 보여주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나와 동료 연구자들이 놀란 건, 데이터들이 이미 여기저기 있음에도 그동안 우리를 제외한 그 누구도 이 연구를 수행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연구는 사실 경제학자들에게는 너무 역사학적이고, 역사학자들에게는 너무 경제학적이었던 것이다. 학자들이 자기만의 분과영역으로 담을 쌓고 그 안에서만 안주하는 경향이 있다. 각각의 분과학문들은 보다 겸손하고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21세기의 자본>에서 사회과학의 소명 혹은 역할에 대해서 언급한 부분들에 많이 공감했다. 당신에게 사회과학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피케티 사회과학은 우리 사회의 정치적 주체들과 일반 시민들이 보다 양질의 정보를 가지고, 보다 좋은 질문들에 초점을 맞추어, 민주적 토론을 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그건 사회과학이 할 수 있는 일인 동시에,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것이 바로 내가 이 책을 쓴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바쁜 일정 중에 이렇게 대화에 응해주어서 고맙다.

피케티

즐거운 대화였다. 고맙다.

토마 피케티 교수는…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 파리경제대학(PSE) 교수는 1971년 파리 외곽의 클리시에서 태어났다. 프랑스 국립고등사범학교에서 공부하고 22살에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강의한 뒤, 프랑스로 돌아와 사회과학고등연구원 등을 거쳐 2006년 말 파리경제대학을 설립하는 총책임자 역할을 맡았다. 그는 1997년부터 자본주의의 불평등 문제를 연구해왔다. 2013년 유럽경제학회가 수여하는 학술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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