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덕은 진화 심리학이 “행위의 동기는 이기주의 범주”로 해석한다고 이야기한다.

 

진화론적 본성론 또는 진화윤리학 분야에서는 이기주의 본성론을 전제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상호협력이 서로에게 이익을 주기 때문에 이타적 행위를 한다면 행위의 결과는 이타주의 범주이지만 행위의 동기는 이기주의 범주인 겁니다. 쉽게 말해서 내가 너에게 이타적 행위를 하는 동기는 향후 네가 나에게 보상할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이런 공리적인 본성론 해석이 현대 진화론과 만나서 진화론적 이기주의가 진화윤리학의 대세를 차지하고 있는 거죠. 이런 입장은 서구 전통의 개인주의 및 자유주의의 입장과 맞아 떨어집니다.

(최종덕,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 최종덕 지음, 휴머니스트, 2010, 94)

 

 

 

A가 곤경에 처한 친구 B를 돕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이 때 “행위의 결과”는 AB를 도왔다는 사실이다.

 

“행위의 동기”는 무엇인가? 과연 A는 곤경에 처한 친구를 도울 때 “향후에 내가 곤경에 처하면 B가 나를 도와 주겠지”라는 생각을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할까? 그리고 그런 생각 때문에 B를 도와 주는 것일까? 진화 심리학자들이 A의 행동을 그런 식으로 설명할까?

 

 

 

진화 생물학자들과 진화 심리학자들은 근접 원인(proximate cause)과 궁극 원인(ultimate cause)을 대비한다.

 

여기에서 근접 원인은 근접 기제(proximate mechanism)와 비슷한 말이며 “심리 기제” 또는 “심리 기제의 작동”을 뜻한다. 즉 뇌 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져서 그런 행동으로 이어졌는지를 따진다.

 

여기에서 궁극 원인은 우주의 궁극적인 원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진화론적 원인 또는 선택압(selection pressure)을 말한다. 어떤 형질이 자연 선택으로 진화할 때 어떤 요인이 작용했는지를 따진다.

 

 

 

우리는 왜 밥을 먹는 것일까?

 

근접 원인의 수준에서 분석하자면 “배가 고프기 때문에”라는 답을 내놓을 수 있다. 식욕을 조절하는 심리 기제가 작동하여 배고픔을 느끼고 배고픔을 느끼면 무언가를 먹고 싶어진다.

 

궁극 원인의 수준에서 분석할 때에는 “우리는 왜 배고픔을 느끼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즉 왜 식욕 조절 기제가 진화했는지에 대해 질문한다. 그리고 그에 대해서 “식욕을 잘 조절했던 우리 조상들이 그렇지 못했던 우리 조상들보다 그런 조절 덕분에 에너지를 더 잘 얻었으며 그렇게 해서 얻은 에너지 덕분에 더 잘 번식했기 때문에 식욕 조절 기제가 꽤나 정교하게 진화했다”라는 식의 답변을 내 놓는다. “에너지를 얻기 위해 밥을 먹는다”라는 설명은 궁극 원인 수준의 설명이다.

 

진화 심리학자가 때로는 밥을 먹으면서 “밥을 먹지 못하면 에너지를 얻지 못해서 제대로 번식하기 힘들겠군”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할 리가 없는 동물과 갓난아기도 배가 고프면 무언가를 먹으려고 한다. 근접 원인의 수준에서 볼 때에는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배가 고파서”가 옳은 답변이라고 볼 수 있다.

 

 

 

동기(motivation)와 기대(expectation)는 심리 기제의 수준 즉 근접 원인의 수준에서 쓰는 용어다. 친구를 도울 때 사람들은 그냥 돕고 싶어서 돕는 것이다. 설사 “지금 친구를 도와 줘야 친구가 나중에 나를 도와 주겠군”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친구를 돕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밥을 먹으면서 “밥을 먹지 못하면 에너지를 얻지 못해서 제대로 번식하기 힘들겠군”이라는 생각을 하는 진화 심리학자의 예와 비슷하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보통 상호적 이타성(reciprocal altruism, 호혜적 이타성) 이론으로 우정의 진화를 설명한다. 이 때 “친구가 어려울 때 도와 주어야 내가 어려울 때 친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논리가 작동한다. 이것은 궁극 원인 또는 선택압 수준의 분석이다.

 

 

 

이번에는 모성애에 대해 살펴보자. 친족 선택 이론을 적용한 분석에 따르면 자식과 엄마가 유전자를 많이 공유하기 때문에 엄마가 자식을 잘 돌보도록 진화했다. 이것은 궁극 원인 수준의 분석이다.

 

근접 원인 수준에서 분석하자면 엄마는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돌보는 것이다. “이 녀석의 유전체(genome) 속에는 내 유전자와 같은 유전자가 많이 들어있기 때문에 내가 이 녀석의 번식을 도와 주면 결국 내 유전자도 잘 복제되겠군”이라는 식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자식을 돌보는 것이 아니다. 진화 심리학자인 엄마가 자식을 돌보면서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이기적 유전자가 이타적 개체를 만든다”라는 말에서 “이기적 유전자”는 궁극 원인 수준의 분석에 해당하는 말이며 “이타적 개체”는 근접 원인 수준의 분석에 해당하는 말이다.

 

최종덕은 근접 원인의 수준과 궁극 원인의 수준을 짬뽕하고 있다. 진화 심리학의 기초 중에 기초도 모르면서 비판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물론 최종덕이 “동기”와 “기대” 개념을 아주 독특하게 썼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궁극 원인 수준의 분석을 그런 식으로 표현했다고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기대”는 “한 사람의 뇌 속에서 일어나는 심리 현상”이 아니라 “자연 선택의 기대”를 말한 것이며 이것은 고도로 희한한 의인화(자연 선택이 의인화되었다)라고 해석한다면 최종덕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아주 희한하게 표현하면 너무 헷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