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는 '새누리당의 뻔뻔함'과 '친노의 민주당의 무능력'이 조합하여 만들어진 정치인이다. 만일, 전술한 두가지 항목 중 한가지만이라도 없었다면 우리는 안철수를 '정치인'이 아니라 한국의 한 유망벤쳐의 CEO 정도로만 알고 있을 것이다.


이 말은 안철수는 '자체발광 타입'의 정치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호불호를 떠나 한국 역사 상 두 명의 '자체발광 타입'의 정치인이 두 명 있었다. 바로 1971년의 DJ와 2002년의 노무현.

1997년의 DJ가 '자체발광 타입의 정치인'이었는지는 (최소한 내 개념으로는) 확신이 서지 않지만 1971년 대선에서의 DJ는 너무 빛나서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정희조차 초라하게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 1971년 대선 기록들을 읽으면서 든 느낌이었다.


솔직히 1971년의 DJ의 주장들은 지금 시점에서 보면 '무릎이 탁 쳐지는 정책들'이었지만 만일, 내가 당시의 한 유권자로서 투표를 했다면? 모르긴 몰라도 나는 '박정희에게 투표를 했을 것' 같다. 당시의 시점에서 DJ의 정책들은 좋게 이야기하면 '획기적이었지만' 나쁘게 이야기하면 '너무 위험했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정희를 상대로 접전(사실 상 승리)을 한 이유는 DJ의 정책 때문이 아니라 DJ가 자체발광 타입의 정치인이었고 아마도... 유신독재 시대가 오게된 것은 DJ의 정책이 '너무 위험해서'가 아니라 자체발광 타입 정치인 때문에 느껴지는 권력의 위험성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인동초로 대변되는 DJ는 그 이후로 자체발광 타입에서 빛을 받아서 반사발광되는 타입으로 전락해간 것 같다. 그리고 나의 이런 생각과 비슷한 평들이, 그 평들이 온전히 맞지는 않아도.... 'DJ나 YS는 독재정치가 키워낸 정치인'이라는 평가가 있다.


반면에 2002년의 노무현은 '자체발광' 타입이었다. 호남의 정치적 비극의 이유이고 또한 아직도 노빠들이라는 강력한 정치적 팬덤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에 비하여 결코 자체발광 타입이 아닌 안철수는 새정치연합에서 고전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에 대한 이중잣대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수준의 마타가 횡행하고 있다. 이 상황을 비유하자면 연필을 손에 들고서는 '내가 이 연필을 계속 쥐고 있을까? 아니면 이 연필을 놓을까?'라는 퀴즈, 그러니까 정답은 술래마음인 퀴즈 앞에 안철수는 직면하고 있다.


이 두가지의 안철수의 현실을 놓고 보아도 안철수가 꾸준히 잘하는 것 하나가 있다. 그 것은 역대 대통령들의 통치 상의 문제점이었던 '보은 대상'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그런 점에서 동교동계가 DJ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정치일선에서 물러난 것은 참 잘한 것이다. 물론, 그 것이 호남의 정치적 몰락의 단초를 제공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YS가 그렇게 망했고 노무현이 그렇게 망했고.... 이명박에 이르러서는 아예 보은대상'과 '보은행위자'가 한 몸이 되는 꼴불견을 보였다. 반면에 아직까지는, 물론 언론이 세세한 점까지 보도하지는 않겠지만, 안철수는 그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보은을 해야할 대상'을 만들지 않은 것으로 보이고 그게 안철수가 잘하는 것 하나이다. 그리고 안철수가 이런 행보를 지속하기 바란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