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일은 유전자 결정론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최근 어떤 외국 방송 기사를 보니까 이게 다 유전자 탓이라는 겁니다. 영국 사람들은 아침형을 종달새형, 저녁형을 부엉이형이라 부르는데, 종달새냐 부엉이냐는 생활습관의 문제가 아니라 유전자 결정이라는 거죠. 저녁 7시만 되면 잠이 쏟아져 견디지 못하는 어떤 미국인 가족이 있어서 유전자 검사를 해본즉 그 가족의 유전가가 그렇다는 겁니다.

 

다 아는 이야기지만, 유전자 결정론에 걸려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선택과 행동의 책임을 인간 그 자신에게서 면제시켜 유전자 탓으로 돌리는 데 있습니다. 유전자가 모든 책임을 지면 한 가지 좋은 점이 있긴 합니다. 아무도 감방에 갈 필요가 없게 되죠. 유전자란 놈들만 잡아다 처넣으면 되니까요.

(도정일, 『대담: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 도정일최재천 지음, 휴머니스트, 2005, 146)

 

 

 

유전자 결정론은 보통 두 가지 맥락에서 쓰인다. 행동 유전학적 맥락에서는 개인차가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뜻이다. 진화 심리학적 맥락에서는 인간 본성이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뜻이다.

 

도정일은 여기에서 행동 유전학적 맥락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 전체 내용을 볼 때 도정일이 진화 심리학적 맥락에서도 똑 같은 이야기를 할 것이 뻔하다. 또한 수 많은 사람들이 행동 유전학과 진화 심리학을 비판할 때 비슷한 이야기를 해왔다.

 

 

 

“강한 의미의 유전자 결정론” 또는 “절대적 유전자 결정론”에 따르면 인간의 형질은 유전자에 의해 모두 결정된다. “약한 의미의 유전자 결정론” 또는 “확률적 유전자 결정론”에 따르면 인간의 형질은 유전자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행동 유전학자는 성별이나 ABO식 혈액형처럼 유전자에 의해 (거의) 100% 결정되는 경우를 제외하면 환경의 영향도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진화 심리학자도 환경의 중요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동 유전학과 진화 심리학이 절대적 유전자 결정론을 지지하는 것처럼 오해를 받을 때가 많다.

 

 

 

어쨌든 여기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행동 유전학과 진화 심리학의 차이나 절대적 결정론과 확률적 결정론의 차이가 아니다. 여기에서는 책임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도정일은 과학의 교권(사실, 설명)과 도덕의 교권(당위, 정당화, 책임)을 혼동하고 있다. 어떤 형질, 생각, 행동, 결과 등을 유전자를 끌어들여 설명한다고 해서 개인의 책임이 면제된다는 생각 자체에 문제가 있다. 설명은 설명일 뿐이다.

 

 

 

생리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이 알코올이 뇌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설명한다고 하자. 그러면서 왜 음주 운전이 교통 사고로 이어지기 쉬운지 이야기한다고 하자. 도정일이라면 이런 설명을 듣고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다 아는 이야기지만, 알코올 결정론에 걸려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음주 운전으로 인한 사고의 책임을 인간 그 자신에게서 면제시켜 알코올 탓으로 돌리는 데 있습니다. 알코올이 모든 책임을 지면 한 가지 좋은 점이 있긴 합니다. 아무도 감방에 갈 필요가 없게 되죠. 알코올이란 놈들만 잡아다 처넣으면 되니까요.

 

 

 

어떤 여성주의자(feminist)가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자가 어떻게 사회화되는지 설명한다고 하자. 그러면서 가부장제 사회에서 사회화된 남자가 여자를 우습게 알기 때문에 가정 폭력을 휘두르기 쉽다고 이야기한다고 하자. 도정일이라면 이런 설명을 듣고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다 아는 이야기지만, 가부장제 결정론에 걸려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가정 폭력의 책임을 인간 그 자신에게서 면제시켜 가부장제 탓으로 돌리는 데 있습니다. 가부장제가 모든 책임을 지면 한 가지 좋은 점이 있긴 합니다. 아무도 감방에 갈 필요가 없게 되죠. 가부장제란 놈들만 잡아다 처넣으면 되니까요.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은 후에 도정일이 다음과 같이 말할지도 모르겠다.

 

다 아는 이야기지만, 자본 결정론에 걸려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착취의 책임을 자본가 그 자신에게서 면제시켜 자본주의 탓으로 돌리는 데 있습니다. 자본주의가 모든 책임을 지면 한 가지 좋은 점이 있긴 합니다. 아무도 감방에 갈 필요가 없게 되죠. 자본주의란 놈들만 잡아다 처넣으면 되니까요.

 

 

 

물리학을 공부한 후에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할지도 모른다.

 

다 아는 이야기지만, 물리학 결정론에 걸려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선택과 행동의 책임을 인간 그 자신에게서 면제시켜 물리 법칙 탓으로 돌리는 데 있습니다. 물리 법칙이 모든 책임을 지면 한 가지 좋은 점이 있긴 합니다. 아무도 감방에 갈 필요가 없게 되죠. 상대성 이론과 양자 역학이란 놈들만 잡아다 처넣으면 되니까요.

 

 

 

어떤 행동이 순전히 유전자 때문이라고 설명하든, 순전히 환경 때문이라고 설명하든, 유전자와 환경의 조합 때문이라고 설명하든 설명은 설명일 뿐이다. 원인이 밝혀진다고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과학적 설명을 위해서는 법칙 또는 규칙 또는 패턴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인과론적 설명이 성립할 수 있다. 그것이 아인슈타인이 꿈꾸었던 절대적 결정론이든, 양자 역학에서 말하는 확률적 결정론이든, 사회 과학의 “느슨한 결정론”이든 규칙성이 있어야 한다. 만약 규칙성이 곧 정당화 또는 책임 면제를 뜻한다면 모든 과학적 설명이 정당화 또는 책임 면제일 것이다.

 

 

 

신기한 것은 마르크스주의 이론이나 여성주의 이론을 끌어들여 설명할 때에는 “설명이 곧 정당화다”라고 생각하지 않던 사람들도 행동 유전학이나 진화 심리학의 설명을 볼 때에는 “설명이 곧 정당화다”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는 점이다. 그렇게 세상을 자기 편한 대로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