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곳에만 머물러 있게 해주시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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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pitalism, Democracy, and Elections (By Richard D. Wolff)

자본주의, 민주주의, 그리고 선거 (리처드 D. 월프)

 

* 출처: 먼쓸리 리뷰 / 2013613

http://mrzine.monthlyreview.org/2013/wolff210613.html

 

* 번역: 정성철 cittaa@gmail.com

 

Capitalism and real democracy never had much to do with one another. In contrast, formal voting in elections has 

worked nicely for capitalism. After all, elections have rarely posed, let alone decided, the question of capitalism: whether 

voters prefer it or an alternative economic system. Capitalists have successfully kept elections focused elsewhere, on 

non-systemic questions and choices. That success enabled them first to equate democracy with elections and then to 

celebrate elections in capitalist countries as proof of their democracy. Of course, even elections were and are allowed 

only outside capitalist enterprises. Democratic elections inside them where employees are the majority never happen.

 

자본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는 같이 해나갈 것이 많지 않다. 대조적으로, 선거들에서 형식적 투표는 자본주의를 위해 잘 작동했다. 결국, 선거들은 자본주의에 대한 질문 - 투표자들은 자본주를 선호하거나 대안적 경제체제를 선호한다 - 에 응답한 적은 고사하고 자본주의에 대한 질문 자체를 거의 제기하지 않았다. 자본가들은 선거들이 다른 것에, 체제와 무관한 질문들과 선택들에 초점을 맞추게 하는데 성공해 왔다. 그 성공은 먼저 그들이 민주주의를 선거들과 등치시키는 것을 가능하게 했고 그 다음에는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행해지는 선거들을 그 나라들의 민주주의의 증거물로 찬양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그 선거들도 자본주의 기업들 외부에서만 허용되었고 허용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피고용자가 다수인 자본주의 기업들 내부에서 민주주의적 선거들은 결코 행해지지 않는다.

 

Real democracy means that important decisions affecting people's lives are made genuinely and equally by the affected 

people. The capitalist organization of enterprises thus directly contradicts real democracy. Inside the corporations that 

dominate modern capitalism, a tiny minority major shareholders and the boards of directors they elect make key 

decisions affecting those below them in the corporate hierarchy, the employees. That tiny minority decides what products 

the corporation will produce, what technologies will be used, where production will occur, and how the corporation's net 

revenues will be distributed. The majority is affected, often profoundly, by all those decisions, but it does not participate in 

making them.

 

실질 민주주의는 사람들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결정들이 영향 받는 사람들에 의해 진정하게 그리고 평등하게 내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기업조직은 실질 민주주의와 모순된다. 현대 자본주의를 지배하는 기업들 내에서, 한 줌도 안 되는 소수 - 대주주들과 그들이 선출하는 이사회 - 가 기업 위계 상 그들 밑에 있는 이들, 즉 피고용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주요 결정들을 내린다. 그 소수는 그 기업이 어떤 제품들을 생산할지, 어떤 기술들을 사용할지, 어디에서 생산할지, 그리고 기업의 순수익을 어떻게 분배할지 결정한다. 다수는 그 모든 결정들에 의해 종종 아주 크게 영향 받지만 그 결정들을 내리는 데 참여하지 못한다.

 

Inside typical modern capitalist corporations, real (as well as electoral) democracy is excluded. Societies that celebrate 

commitment to democracy and justify government policies (including wars) as promoting democracy also exclude 

democracy from their workplaces. That stark contradiction raises serious problems. Consciously or unconsciously, 

workers there sense, feel, and express dissatisfactions reflecting that contradiction.

 

전형적인 현대 자본주의 기업들 내에서, (선거 및) 실질 민주주의는 배제된다. 민주주주의에 헌신하는 것을 찬양하고 (전쟁들을 포함하여) 정부 정책들을 민주주의를 촉진하는 것으로 정당화하는 사회들은 또한 그것들의 작업장들에서 민주주의를 배제한다. 그 현저한 모순은 심각한 문제들을 야기한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시적으로든, 노동자들은 그 모순을 반영하는 불만사항들을 감지하고 표현한다.

 

For example, workers sense disrespect descending from corporations' commanding heights. They often feel that their 

capacities and creativities are unrecognized, unused, and/or devalued. Expressions of such feelings include absenteeism, 

interpersonal tensions, and job-related dysfunctions (alcoholism, insubordination, pilfering, etc.). The exclusion of 

democracy from workplaces often provokes workers' resentments and resistances that reduce productivity and profits. 

Corporations have long responded by hiring multiple layers of costly workplace supervisors and providing big budgets 

for them. Those corporate expenditures are among the wasteful costs of capitalism: sums deflected from investment, 

economic growth, technical progress, and other preferable social uses.

 

예를 들어, 노동자들은 기업의 경영자들에게서 자신들에 대한 경시를 감지한다. 그들은 종종 그들의 능력과 창조력이 인정되지 않고 사용되지 않고/않거나 평가절하 됨을 감지한다. 그러한 감지들의 표현은 고의적 결근, 인간관계 상의 긴장들, 그리고 불성실한 직무 수행 (알콜중독, 불복종, 도용, 기타 등등)을 포함한다. 작업장들로부터의 민주주의의 배제는 종종 생산성과 이윤을 떨어뜨리는 노동자들의 분개와 저항을 야기한다. 기업들은 오랜 동안 여러 층위의 고임금 작업장 감독자들을 고용하고 그들에게 고액의 업무수행비를 제공하는 것으로 반응해 왔다. 그 기업 지출은 투자, 경제 성장, 기술 진보, 그리고 다른 선호될만한 사회적 용도들에 소용된 것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자본주의의 낭비 비용에 속한다.

 

Elections outside the workplace stand in an ambivalent relation to capitalism's exclusion of real democracy inside. On 

the one hand, elections distract people from their conscious and unconscious upsets with working conditions. Elections 

focus instead on political candidates, parties, and alternative policies around issues other than capitalism versus alternative 

economic systems and other than their respective working conditions. That is why supporters of capitalism appreciate 

elections. Well-controlled elections do not question, let alone threaten, capitalism. On the other hand, they always carry 

risk, the potential to make big problems for capitalism.

 

자본주의 사회들에서 작업장 외부의 선거는 작업장 내부 민주주의의 배제와 양면적 관계를 맺고 있다. 한편으로, 선거는 사람들의 주의를 노동조건에 대한 그들의 의식적 및 무의식적 불만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선거는 대신 후보들, 정당들, 그리고 자본주의 대 대안적 경제체제 및 그것들 각자의 노동조건이라는 쟁점과는 무관한 쟁점들에 대한 대안적 정책들에 초점을 맞춘다. 그것이 자본주의 지지자들이 선거를 고맙게 여기는 이유이다. 잘 통제된 선거는 자본주의를 위협하는 것은 고사하고 자본주의에 질문을 던지지도 않는다. 다른 한편, 선거는 언제나 위험을, 자본주의에 큰 문제들을 안겨줄 잠재력을 수반한다.

 

Workers denied democracy on the job may conclude that such crucial problems as inadequate wages, job security, and 

benefits flow from and are sustained by that denial. Given capitalism's celebratory equation of democracy with elections, 

workers may then turn toward elections as a way to respond to democracy's absence from the workplace. Knowing they 

comprise the voting majority, workers may see elections as the way to change their economic conditions. Electoral politics 

may become their route to undo the consequences of a capitalist economic system. The majority could make the issue of 

choosing between capitalist and democratic workplace organizations a ballot decision. Workers could use elections outside 

enterprises to finally bring elections and real democracy inside them. Conventional electoral politics leaves that possibility 

open, a perpetual risk to worry capitalists.

 

직장에서 민주주의를 누리지 못하는 노동자들은 불충분한 임금, 불충분한 직무 안전, 그리고 불충분한 급부금 같은 결정적 문제들이 그 누리지 못함에 기인하고 그 누리지 못함에 의해 지탱된다고 결론내릴 지도 모른다.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찬양하면서 민주주의와 선거를 등치시키고 있는 현실에서, 노동자들은 작업장 민주주의의 부재에 대한 하나의 반응 방식으로 선거를 지향하게 될지도 모른다. 자신들이 투표자들의 다수라는 것을 알기에, 노동자들은 선거를 자신들의 경제적 조건을 변화시킬 방도로 볼 지도 모른다. 선거정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귀결들을 무효화하기 위한 그들의 방도가 될 지도 모른다. 다수는 자본주의적 작업장 조직과 민주주의적 작업장 조직 사이에서의 선택이라는 쟁점을 투표해서 결정해야 할 쟁점으로 만들지도 모른다. 노동자들은 최종적으로 기업 내부에 선거와 실질 민주주의를 가져오기 위해 기업 외부의 선거를 이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관습적 선거정치는 그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으며 그 열려 있는 가능성은 자본가들을 근심하게 하는 영속적 위험이다.

 

Among solutions found for this problem, capitalists fund candidates and parties in and between election 

campaigns. In return, elected officials support their funders' desires, especially concerning what is and what is 

not presented for voters to  decide. Capitalist enterprises also fund think tanks, academic programs, mass media, 

and public relations campaigns that shape public opinion to favor capitalism. In the last half-century, another 

solution has emerged: keeping the state on the defensive not only ideologically but also financially by means of 

budget deficits and debts.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자본가들은 선거 유세들 중과 선거 유세들 사이에 후보들과 정당들에게 정치자금을 지원한다. 답례로, 선출된 공직자들은 그들의 지원자들의 욕망들을, 특히 무엇이 투표자들에게 결정해야할 것으로 제시되어야 하고 제시되어서는 안 되는가에 관한 욕망들을 실현시켜 준다. 자본주의 기업들은 또한 자본주의에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하는 씽크 탱크들, 학술 프로그램들, 대중매체, 그리고 공익 관련 캠페인들을 지원한다. 지난 반세기 동안, 또 하나의 해결책이 출현했다: 적자 예산과 채무를 수단으로 해 이데올로기적으로만이 아니라 재정적으로도 국가를 수세 상태로 유지하기.

 

For example (thanks to Doug Korty for this point), the total deficits of the federal government from 1950 to 2009 were 

$6.6 trillion. During those years, three Republican presidents (Bush 1, Reagan, and Bush 2) accounted for over 92 percent 

of those deficits. All the other presidents (Truman, Eisenhower, Kennedy, Johnson, Nixon/Ford, Carter, and Clinton) 

combined accounted for 12 percent. The three deficit-happy Republican presidents were the most conservative and 

subservient to major capitalist interests. They all increased spending (chiefly for military and counter-crisis purposes) 

while cutting taxes (especially for corporations and the richest individuals). Such policies forced huge federal deficits and 

rapid national debt hikes. By his administration's huge stimulus outlays and costly wars without offsetting tax increases, 

Obama also ran very large deficits and boosted the national debt.

 

예를 들어 (이 점을 알려 준 데 대해 더그 코티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1950년에서 2009년까지 연방정부의 총적자는 6.6 조 달러였다. 그 시기 동안, 세 명의 공화당 대통령들 (부시 1, 레이건, 그리고 부시 2)이 그 적자의 92% 이상을 야기했다. 모든 다른 대통령들 (트루만, 아이젠하워, 케네디, 존슨, 닉슨/포트, 카터, 그리고 클린턴)은 다 합쳐서 12%를 야기했다. 세명의 적자 애호 공화당 대통령들은 가장 보수적이었고 주요 자본주의적 이해관심들에 봉사했다. 그들 모두 (주로 군사 및 위기대응 목적으로) 지출은 늘린 반면 (특히 기업들과 가장 부유한 개인들을 위해) 세수는 줄였다. 그러한 정책들은 막대한 연방정부 적자와 급속한 국가채무 증대를 강제했다. 그의 행정부가 경기부양과 전쟁들에 막대한 비용 지출한 한편 세수를 증대시켜 그 지출을 상쇄시키지 않음으로써, 오바마 또한 대규모 적자예산을 운용했으며 국가채무의 증대를 가속시켰다.

 

The predictable ideological storms followed: (1) federal deficits and debts were defined as the urgent problems, and (2) 

austerity programs to cut government spending were the appropriate solution. Republicans and Democrats played their 

predictable roles arguing over the pace, size, and targets of austerity. All their arguments kept the issue of capitalism 

off the agenda for popular and political debate despite that system's crisis.

 

예측 가능한 이데올로기적 소동이 뒤따랐다: (1) 연방 적자와 채무는 긴급한 문제들로 규정되었고, (2) 정부 지출을 삭감하기 위한 긴축안이 적합한 해결책으로 제시되었다. 공화당 의원들과 민주당 의원들은 긴축의 속도, 규모, 그리고 목표를 놓고 논전을 벌이면서 그들의 예측 가능한 역할들을 수행했다. 그들의 모든 논전은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라는 쟁점을 국민적 및 정치적 논의를 위한 의제 외부에 남겨 두었다.

 

When conventional solutions fail and ever more people begin to question, challenge, and oppose capitalism, capitalists 

generally support police and military repression. In extreme situations, they end electoral democracy by means of military 

coup, dictatorship or otherwise. However, ending electoral democracy usually provokes anxiety even among the capitalists 

who support it. They worry that ending electoral democracy provokes social criticism and systemic opposition that can 

expand to include an undemocratic production system. They do not wish to lose a key benefit of properly controlled 

elections: distracting workers away from the issue of capitalism per se. Such elections are the cheapest and least 

dangerous way to secure the distance that capitalism keeps between itself and real democracy.

 

관습적 해결책들이 실패하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를 의문시하고 자본주의에 도전하고 자본주의에 대립하게 되면, 자본가들은 일반적으로 경찰과 군대를 동원한 억압에 의지한다.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그들은 군사 쿠데타, 독재 또는 다른 수단에 의해 선거 민주주의를 중단시킨다. 그러나 선거 민주주의를 중단시키는 것은 대개 그 중단을 지지하는 자본가들 사이에조차 불안을 야기한다. 그들은 선거 민주주의를 중단시키는 것이 민주적이지 않은 생산 체제를 포함할 정도로 확장될 수 있는 사회비판과 체계적 대립을 야기할까 걱정한다. 그들은 적절하게 통제되는 선거로부터 얻는 결정적 이익 - 노동자들의 주의를 자본주의 자체라는 쟁점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기 - 의 상실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한 선거는 자본주의가 그 자신과 실질적 민주주의 사이에 유지하는 거리를 확보하는 가장 저렴하고 가장 덜 위험한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