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 라는 책을 읽고 요약한 글입니다. 생의 완전한 소유권자가 연주하는 골트베르크, 감상하시길^^

 

 

 

 

<요약 -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 by 미셸 슈나이더>

 

때때로 우리는 예술작품을 보듯 종종 한 인물의 삶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이해는 이성적이거나 경험적인 것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계시를 받지 않는 한, ‘이해’를 포기하고 다만 ‘해석’할 수밖에 없음을 느낀다.

  

 

고립

 

고립을 원하는 사람은 외부의 시선을 생각하지 않는다. 외부의 시선은 ‘일관성’을 원하는 눈들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솔직한 사람은 자신의 본능이 모순투성이임을 안다. 그 모순을 사랑하고 그것에 이끌려 들어가게 되면 누구나 고립과 고독과 맞닥뜨린다.

 

1964년 11월 11일, 그가 강연을 한 토론토 왕립 음악원 학생들이 그에게 들은 충고는 단 한마디였다. “혼자 있으십시오. 은총이라고 할 만한 명상 속에 머무르십시오.”

 

글렌 굴드에게 고독은 그의 음악을 의미했다. 듣기 위해서는 우선 말하기를 멈추어야 했으니까.

 

한겨울, 뜻하지 않는 열기에 미혹되어 부화하는 곤충의 부산함 같은 동요를, 내면에서 침묵의 중심을 되찾아야 했다. 그것이 없으면서 음악을 연주한다는 것은 배신행위이며, 그것이 없으면서 음악을 듣는 것은 고문이었다.

 

고독은 내면의 침묵일까 아니면 외부와의 단절일까?

 

굴드의 고독은 찢김이 아니고 스스로 아무는 상처였다. 풍요로운 은신처, 모아들이는 장소. 그는 묵상을 했던 것이다.

 

고독은 ‘방해받지 않음’을 의미한다. 한 방울의 비가 떨어지는 소리, 비가 오기 전에 일어나는 흙냄새, 의미 없는 온갖 색들, 벗은 팔에 부딪치는 뜻밖의 바람의 감촉, 전화선을 타고 오는 목소리, 그 목소리의 주인, 그리고 사람들... 우리의 감각과 의식은 늘 자극받는다. 자극은 우리의 자아를 부재하게 하고, 그 빈자리를 반사적이고 기계적인 화학작용이 차지한다. 하지만 모든 자극으로부터 벗어나는 그 순간, 가장 깊은 내면의 호수는 잔잔해 지고 침묵 속에서 자아는 거기에 비친 자신을 본다. 그리고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너는 누군가’

 

고독 속에 머무른다는 것은 어렵다. 계속해서 존재하며, 존재감을 유지하기. 아무도 없을 때조차 존재하기를 멈추지 말기.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상대방이 없으면 자신의 존재도 해체되고 변질된다. 그들은 혼자가 아닐 때에만 존재한다.

 

고독은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값싼 수단이며, 자신의 존재를 느끼는 누구든지 내면의 호수를 가지고 있다. 비록 늘 흔들려 그 고요한 표면을 드러내지 않을지라도. 호수에 비춰진 자아는 어떤 모습일까. 감각으로도 이성으로도 알 수 없는, 비록 무엇인지 알지는 못하지만 거기에 있다는 것만은 확신할 수 있는, 바로 위대한 긍정의 모습이다.

 

존 키츠는 1817년 12월 21일, 동생 조지와 토마스에게 보내는 편지에 자신의 예술을 완성시키고자 하는 인간의 주요 자질은 ‘부정의 능력, 즉 사실들과 이성을 좇는데 달려들지 않고 불확실성과 신비. 의심 가운데 머무를 수 있는 능력’이라고 썼다. 굴드는 이 길을 알고 있었다. 그는 무(無)를 받아들였으며, 자신의 내부의 불명료한 것 속으로 내려가 이 부인할 길 없는 무엇에 한참 동안이나 속수무책으로 말없이 귀 기울이는 데 몰두했다. 여기서 그가 끌어낸 음악의 놀라운 대상들은 에칭의 윤곽과도 같은, 비길 데 없는 밀도를 지닌 것이었다. 화해되지 않은 것, 미의 탐색인 이 고통 없는 고통 속에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 부정의 능력.

 

 

 

글렌 굴드에게 자신의 몸은 접근할 수 없는 어떤 대상이었다. 경배와 슬픔의 원천이었던 피아노와 똑 같은 ‘물질’이었다. 오직 서로의 마찰에 의해서만 ‘소리’를 창조하는 요소로서의 물질.

 

그의 태도나 비정상적인 몸짓을 보면서, 정신의학에서 자주 취급되는 상동증을 의심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오로지 두 손만이 생기에 넘쳐 보일 때가 있다. 몸에서 분리되어 나온 물체와 한 가지로 뒤편에 남아있는 사람과는 아무 상관없이, 지칠 줄 모르는 생명을 부여받는 부분처럼 보일 때가 있는 것이다. 여러 다른 피아니스트들처럼 그 역시 이 손들을 마치 몸에서 분리된 이해할 수 없는 무엇처럼 바라보았다. 손은 피아니스트가 아니라 피아노에 속해 있었다.

 

몸이 정신을 창조하는가, 아니면 정신이 몸을 수단으로 삼는가. 여기에는 묘한 비대칭성이 존재한다. 정신은 모든 존재양상의 반대개념을 상상할 수 있다. 단순한 서술어인 ‘없다’라는 이름으로. 하지만 정신은 몸의 부재상태를 주장할 수는 없다. 음악은 그것에 대한 복수이다. 몸이 끝나면 무화(無化)되어버리는 정신이듯, 연주가 끝나면 무화되어버리는 음악. 음악은 정신의 대속이다.

 

콜롬비아사에서 첫 녹음을 하기 위해 도착한 이 젊은이는 모두를 놀라게 했다. 6월의 따뜻한 날이었는데도, 굴드는 외투에다 모자. 목도리. 장갑 차림으로 도착한 것이었다. ‘장비’로는 그가 늘 들고 다니는 악보가방은 물론 타월 한 무더기와 큰 생수병 2개, 알약 병 5개(색깔과 처방이 모두 다른), 그리고 아주 개성적으로 특수 제작된 그의 의자가 있었다.

 

사실 여러 장의 타월이 필요했는데, 이는 글렌이 피아노에 앉기 전 20분 동안 더운 물 속에 팔꿈치까지 손과 팔을 담그고 있었기 때문이다. [....] 생수도 필요했는데, 글렌이 뉴욕의 수돗물을 마시려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밖에 알약은 두통, 긴장완화, 혈액순환 등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필요했다. 실내 온도 조절을 맡은 기술자는 녹음 제어 장치를 운전하는 기사만큼이나 애를 먹어야 했다. 글렌이 아주 미미한 기온 변화에도 매우 민감했기 때문에 넓은 스튜디오 안의 온도 조절에 끊임없이 신경을 써야 했던 것이다.

 

한 천재의 기이한 행적을 심리적으로 추적하는 것에는 무리가 따른다. 하지만 글렌 굴드가 자신의 몸과 관련해 했던 여러 행동들에는 분명하게 드러나는 일관성이 있다. 얼핏 보면 모순처럼 보이기도 하는 행동들을 연결하는 고리는 한가지다. 바로 피아노를 연주하기 위한 ‘장비’로서의 몸이며, 몸 자체의 욕구나 욕망은 거의 투명하게 없어져가는 피아니시모, 피아니시모....

 

어린 시절 그는 늘 아픈 표정을 짓고 있었으며, 어머니는 그에게 여러 식이요법을 따르도록 했다. 평생 그는 아주 조금밖에 먹지 않았으며, 거의 먹지 않았다고 해도 좋았다. 고기는 손도 대지 않았다. ‘야채는 끝장이다’라고 말했으며, 야채도 먹지 않았다. 순회공연이나 녹화기간 동안에는 더더욱 먹지 않았다. 열흘 동안 단단한 음식은 하나도 안 먹었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 [....] 실제로 그가 먹은 것은 과일주스와 크래커. 비스킷 정도였다.

 

연주할 수 있을 정도의 에너지만 남겨놓고 어떤 에너지도 몸에 비축하지 않는 다는 것은 다분히 그 잉여의 에너지가 일으킬지도 모르는 방해를 걱정해서일 것이다. 정말 그에겐 피아노의 일부로서의 몸만이 필요했다. 그의 음악이 그러하듯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는 몸 상태외의 모든 장식적인 것은 필요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에게 적이 되었다.

 

그는 거의 잠을 자지 않았다. 목욕을 할 때도 반드시 장갑을 끼었다. 또 손으로는 아무것도 잡으려 하지 않았다. [....] 그는 자주 모피-아스트라한산 모피-모자를 쓰고 있었다. 심지어 여름철에도. 어느 날 레너드 번스타인의 집에 식사 초대를 받았을 때(당시만 해도 아직 정상적인 생활을 했다), 번스타인의 아내 펠리시아는 그를 목욕실로 데리고 가서 기름이 끼고 엉겨 붙은 머리를 감기고 잘라주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고 한다. 더럽고 해어진 옷차림에다 구멍 뚫린 양말도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 그는 면도도 가끔씩만 했으며, 이따금 거지취급을 받기도 했다.

 

자신의 몸을 마치 음악을 실현하는 도구의 일부로 본 사람이 다른 사람의 ‘몸’과의 관계는 어떻게 맺었을까. 글렌 굴드는 자신의 몸에 대한 태도만큼이나, 다른 사람과의 육체적인 혹은 정신적인 관계에서도 특유한 거리감을 유지한다. 정신적이고 상징적인 고립뿐만 아니라 육체적이고 공간적인 고립. 굴드는 물질적인 접촉의 위험만큼 고립을 위한 시간들이 자신을 지탱해준다고 생각했었음이 틀림없다. 오늘날 어느 곳에서나 흘러넘쳐서 낭비되는 음악만큼이나, 접촉과 소통대상으로 흘러넘치는 사람들. 여기에 나를 찾기 위한 고독이나 고립이 들어설 자리는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신의 현현만큼이나 놀라운 자신과의 대면을 실현하는 시간, 현대인들에게는 과연 허락되지 않는 것인가. 고독의 상실은 풍요의 현대에 내려진 가장 큰 저주일지도 모른다.

 

굴드는 대단한 심기증 환자였으며, 가벼운 스침을 부딪침과 혼동하고, 건드리기만 해도 고통스러워할 만큼 예민했고, 1미터나 떨어져 지나가는 기술자가 곁으로 다가올까 봐 두려워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고 해서 - 마치 타인의 몸이 그에겐 오로지 상처나 감염의 원인에 불과한 것처럼 - 이것이 뭐 그리 대단할까?

 

자신과 다른 사람들 사이에, 자신과 사물들 사이에,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사이에조차 두었던 차폐물을 열거하자면 수도 없이 많다. 촉각적으로 감지되는 차폐물: 겹겹이 껴입은 옷, 장갑, 손가락이 나오는 장갑, 목도리, 마스크, 소매 없는 외투, 코트, 모피옷, 청각적 혹은 시각적 차폐물: 그는 전화로만 인터뷰를 허락했으며, 심지어는 자신의 비서와도 전화나 글로만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살과 피로 이루어진 인간들을 아직 만나고 있었을 당시에도 그는 그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고 벽이나 천장 쪽으로 몸을 돌리곤 했다.

 

글렌 굴드는 자신의 생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어느 인터뷰에서는 자신 혼자만이 존재하고, 자신의 가치체계로 세상을 구성할 수 있는 어느 행성이야기를 한다. 심지어 죽음 이후에 조차 그는 자신의 몸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싶어 하지 않을 정도였다. 한 사람의 진실은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그의 ‘삶의 방식’이 말해 주는게 아닐까. 한 사람의 생은 곧 그의 ‘삶’이니까.

 

이 세상의 부와 존재들, 삶의 외적인 멋들을 탐하지 않았다고, 또 그가 이런 것들을 손에 넣는 일을 경멸하는, 위로할 길 없는 어이없는 인간이었다고 해서, 그를 무기력하고 우둔한 존재로 볼 수는 없다. 그를 우둔하다고 본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철이 드는 나이가 되면서 우리는 더 이상 아무것도 이해하지 않으려 하니까.

먹는 것은 천한 일이며 부패하는 살과의 조약이라는 것을. 섹스는 손과 건반의 평화로운 짝짓기가 아니고 상대방이 피부 밑에 지닌 내면의 책을 갈가리 찢어 놓는 나쁜 욕구임을. 죽음은 행복한 이들이 위로를 되찾게 되는 것이 아니고, 단지 자신의 시신을 다른 이들의 손에 맡기는 특별히 추한 방법이라는 것을.

 

 

   

초월

 

살면서 자신도 모르게 입혀진 껍질을 벗겨 내가는 삶이 있다. 벗겨내는 것, 없애는 것의 처음은 ‘부정’으로부터 시작된다. 삶으로부터의 초월, 그 아프지만 황홀한 이상도 철저한 자기부정으로부터 시작된다.

 

1964년 토론토 대학의 11월 11일 졸업식 날 그는 다소 생경한 발언을 했다. “현재 여러분이 가지고 있거나 가지게 될 지식의 모든 양상들은, 존재하지 않거나 혹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 부정(否定)과의 관계를 맺음으로써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하십시오. 인간에 대해 말할 때 가장 놀라운 점, 그의 광증과 야만성을 용서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사실은 그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개념을 발명했다는 점입니다.” 굴드는 음악을 부정어로 묘사했다. 자신을 내주지 않기. 누구도 소유하지 않기. 보여주지 않기. 기울어지지 않기. 강요하지 않기.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굴드는 수도자가 추구하는 종교적 자세, 즉 가난. 순결. 복종으로 이루어진 포기의 삶과 완성의 길이라는 이상과 닿게 된다. 그가 음악을 접근한 방식은 신비주의자들이 하나님을 접근한 방식과 동일한 차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천 오백년 전쯤 세계적으로 이른바 ‘도시’들이 성립하게 되고, 필연적인 결과로 주거의 밀집이 발생했다. 인류가 밀집의 단계로 들어선 후 생존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 부각했던 것은 아마 ‘소통’이 아니었을까. 그 가장 큰 수단이었던 언어, 그리고 본질적으로 소통으로서의 예술이 등장한다. 하지만 언어와 예술은 그 자체로 생존에 필요한 ‘물질’적인 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노동만이 인류에게 주어진 생존의 수단이었다. 언어와 예술은 효율적인 노동을 위한 보완재가 될 뿐이었다. 그런데 보완재로서의 언어, 예술과 거의 흡사한 기능을 하는 것이 존재한다. 그 존재의 조건도 언어와 거의 똑 같다. ‘돈’이다. 언어는 함께 사용하는 상대의 동의가 없으면 사용되지 못한다. 돈도 마찬가지이다. 글렌 굴드가 돈을 벌고 싶어 했다는 사실. 심층 심리적으로 본다면 ‘소통’에 대한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 아닐까. 이 고독한 천재가 한편으로는 그토록 소통을 바랬다는 것은 일종의 모순이다. 하지만 예술은 고독만으로는 완성되지 않고, 소통에 대한 열망이 고독을 넘어서야 한다. 굴드는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를 얻었지만, 자유가 없는 사랑 또한 얻었다.

 

그를 금욕자로 혹은 수도복을 입은 은둔자로 그릴 수도 있겠지만, 그는 또한 상장된 주식가운데 상승가의 주식을 찾아낼 줄도 알았고 자신이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금광의 투자 상태를 탐지하기 위해 북극을 방문하기도 했다. 무대 위에서 9년이라는 타락한 세월을 보낸 유일한 이유는 그것이 돈을 버는 가장 편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라고, 이 갈망엔 면역이 되지 못했노라고 언젠가 털어 놓은 적이 있었다. [....] 그가 주식시장에 그토록 관심을 두었던 것은 돈을 소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돈이라는 이 범접 불가능한 혐오스런 대상이 또한 추상적인 대상들 중에서도 추상적인 것, 포착되지 않는 것, 비물질적인 것을 나타내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돈 자체에 대해서말고 다른 이유로, 돈이 제공하는 행복 등의 이유로 돈에 관심을 가졌다면 그는 돈을 소비할 줄 알아야 했을 것이다. 외출을 한다든지 즐긴다든지 하면서. 뿐만 아니라 그는 돈을 쌓아두기도 원치 않았다. 자신의 모든 재산을 구세군과 동물보호단체에 기능했으니까.

 

자신을 초월하는 것은 자기 부정과 더불어 ‘떨어져 있음’을 필요로 한다. 고독과 소외가 부정의 짝인 것이다. 감지될 수 있는 것으로부터 거리를 두고서야 정신활동이 실물 대신 자신의 대상을 관념속에서 재구축한다. 어떤 사고도 그냥 지각된 것, 주어진 것, 감지된 것에 만족하지는 않는 법이다.

 

  

 

피아니시모

 

글렌 굴드는 생의 완전한 소유권을 주장한 사람이다. 그에겐 피아노조차 자신의 생의 완전성을 위해서 복무해야 하는 도구였다. 생의 완전성, 어떤 외적 요소에도 침해받거나 영향 받지 않는 절대적인 자율성. ‘고독’이 없다면 이것은 불가능했으리라. 자신이 가장 사랑한 대상조차 삶이란 틀 속의 한갓된 요소로 만들어버리는 완전한 생에 대한 열망.

 

어느 날 그는 우연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듣게 되었다. 15세때의 일이었다. 그때 그는 눈물을 흘렸다. 훨씬 나중에 41세가 되었을 때 굴드는 그 특유의 자조적 태도로 말한다. “두말할 필요 없이 지금은 내 눈물선도 말라버렸다.[....] 그렇긴 해도 고된 하루를 보내고 난 늦은 밤 시간, ‘이졸데의 죽음’의 한 두 소절을 듣고 나면 등줄기를 따라 전율이 퍼져 오르며 목이 메어온다.”

 

콜롬비아에서 한 첫 번째 녹음은 1955년 뉴욕 CBS 방송 스튜디오에서 이루어진 바흐의 <골트베르크 변주곡>이었다. 콜롬비아사의 소식지는 이 예술가를 피아니스트의 삶의 모든 단계를 거친 ‘상냥한 미치광이’로 우선 묘사했다. 사실적 요소들로 이루어진 이 끈질긴 풍문을 그는 저편에 숨겨진 것, 그가 보존하고자 했던 실체를 은폐하기 위해 유지해 나갔다. 그것은 다름 아닌 비참과 기적사이를 오가는 예술의 황홀경, 고독이었다.

 

굴드가 죽고 나서 그의 아버지가 털어 놓은 바에 따르면, 할머니 무릎에 앉아 처음으로 피아노를 접하게 되었을 때 어린 굴드는 건반을 하나씩 차례로 누르며(대부분의 아이들은 주먹으로 여러 건반을 두드려댄다) 소리가 완전히 사라져서야 손가락을 떼었다고 한다. 점점 작아지는 소리에 매료당한 듯한 표정을 짓고서. 1955년 뉴욕에서의 첫 연주회 마지막 곡은 피아니시모에서 디미누엔도로 끝나는 베르크의 <소나타>였다. [....] 청중한 그 같은 소멸과 들리지 않는 음에 대한 몹시도 경건한 집중을 보고 놀랐다.

 

고독과 은둔, 낮은 곳 그리고 사라짐. 그의 음악의 특징을 나타내는 단어는 굴드자신이 음반을 위한 녹음연주에 그토록 열성적이었다는 사실과 극적으로 대립된다. 이런 모순, 비일관성은 혼란스럽다. 하지만 그가 피하고 싫어했던 것은 텅 빈 소통, 의미 없는 대화였을 뿐,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온전한 자기를 청중들에게 드러내는 것, 오직 그것이었을 것이다.

 

연주하는 음악이 물질적인 모습을 갖추어감에 따라 그 자신은 반대로 비물질적인 모습을 띠게 되는 것 같다. 몸은 이상하게도 둔중한 느낌을 전해 준다. 회색의 어두운 옷은 형태도 없고, 형언할 수도 없다. 그는 자신의 시간과 내면의 공간속으로 물러난, 역사를 갖지 않는 일종의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 건반위로 쓰러질 듯 몸을 숙이면서, 마치 자신과 음악 사이에 더 이상 피아노가 존재하지 않기를 바라며, 피아노속에 자신을 지우고 융해시켜 버리려는 것 같다. ‘피아노 앞에 앉은 글렌 굴드’가 아니고,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