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TV드라마는 총보다 칼보다, 어쩌면 핵폭탄 보다 더 위력이 있다. 나는 최근에야 그걸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다.

사극인 <대장금>이 동남아, 중국 등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든가 멜로물인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폭발적 인기를 얻었다는 얘긴 일찍부터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특정 드라마 외에도 여러 현대

물들이 중국을 통해 북한에 입수되어 암암리에 유통되고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사실은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최근 U tube 를 통해 민방의 묵은 프로들을 보게 되었다. 북한 실상을 알린다는 프로들에 끌린 것이

다. 그 가운데는 과장되거나 별로 신용이 가지 않는 내용도 있으나 사선을 넘어온 젊은 북한 출신

세대들이 직접 나와서 증언하는 내용들은 충분히 신뢰할 수 있다고 판단되었다. 그 증언들 가운데

필자의 주목을 크게 끈 것이 탈북동기의 가장 직접적 원인으로 한국드라마를 보게 된 걸 꼽았다는

것이다. 아마 십명 가운데 7~8명은 우연찮게 한국 드라마를 본 것이 탈북 결심의 큰 동기라고 말한

것 같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한국 드라마를 처음 보던 순간의 충격을 고백하고 있다. 그러고 보

면 2만5천의 숫자에서 적어도 2만 정도는 직간접으로 한국 드라마가 그들의 행로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결론이 나온다.

 덧붙여 중국에는 현재 2~3십만의 탈북 주민들이 있다고 추정하는데 그 숫자가 얼마나 정확한지

알 수는 없으나  그들 가운데도 상당수가 한국드라마의 영향으로 한국행을 희망하고 있을 거라는

추정을 해볼 수 있다. 나는 탈북자가 수만명, 수십만명이라도 남으로 와야 한다거나 그들에 대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유사이래 가장 심한 폐쇄사회인 북에

서 너무나 뜻밖에도 한국 드라마가 이런 반향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이 놀랍고 그리고 이 사실

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며 또 앞으로 이 현상이 어떻게 진행되어갈 것인지 거기에 관심이 있으

며 그걸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사실 나는 한국 드라마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영화에도 거의 관심이 없다. 어느 정도냐 하면 최근 이십년간 영화

관에 가본 적이 없다. tv 드라마로 말하면 처가 쪽에 드라마 작가가 있고 그래서 집에서도 매일 드라마를 켜놓고

있으나 나는 사극이건 애정물이건 본 적이 거의 없고 별반 관심도 없다. <대장금>이나 <겨울 연가>도 제목만

들어 알지, 내용이나 줄거리는 전혀 모른다. 그런데 북한에서 온 남녀 청춘들은 드라마 줄거리는 말 할 것도 없

고 거기 등장하는 인기 배우들 이름을 줄줄 외워댔다.

여기서 흥미있는 건 한국드라마엔 재벌 회장님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회장님 저택이 자주 등장하는데 북에서

이 드라마를 보면서 한국은 모든 사람들이 재벌처럼 큰 저택에서 사는줄만 알았다고, 그래서 여기 와서 적지 않게

실망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재벌스토리만 반복하는 드라마를 일부 식자층은 지탄

하지만 역설적으로 재벌 드라마도 사람들의, 특히 북 주민들의 꿈을 키워준다는 효용성?은 있었다는 점이다

 

여담이지만 오래 전에 나는sbs 에 소설 한편을 팔았는데 그걸 연속물 드라마로 만들겠다고 한 연출자는 그곳에

서 당시 가장 주목받던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 책 출판사와 나는 그 연속물이 매일 전파를 타면 책 판매에 적지

않게 도움이 되겠구나 하고 큰 기대를 걸었다. 그바람에 아마 작품료도 헐값으로 넘겼던 걸로 기억한다. 지방

신문에 연재했던 장편으로 두권짜리 책이니 적어도 몇달은 방영이 될 것이었다. 그런데 그 뒤로 소식두절이었

다. 나중에 연출자 얘길 들어보니

"너무 가난한 산동네 얘기만 나오는 바람에 윗 분들이 제작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내용은 50년대

서울 변두리 산동네 이야기였다.

 지금 탈북 동포들로부터 재벌회장님 스토리를 보고 꿈을 키웠다는 얘길 듣고 보니 그때 원망스럽던 '윗 분"

들의 우려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자칫하면 가난한 남쪽나라의 선전물로 이용될 수도 있을 것이다.

 

북에서 통제를 강화한다고 해도 중국을 통해 한국드라마 유통은 앞으로 더욱 번창하게 될거

라고 추정된다. 이 드라마가 북의 세뇌와 사상학습의 적폐를 시정하는데는 총보다 ,어떤 구

호나 주장보다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는 증거를 보았다. 사실 정치적 통합은 요원하다. 잘 해

야 경제교류 활성화나 일부 왕래허용 정도를 수년 이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남북

관계 일기가 쾌청할 때 얘기다. 매우 추상적이고 애매한 예견이긴 하지만 저 거대한 중국대륙

을 단숨에 휘어잡는 한국 드라마의 위력이 앞으로 남북 관계에서 어떤 영향으로 다가올지

그것을 주의깊게 살펴보고 싶다. 그간 관심을 주지 못하던 한국 tv 드라마, 파이팅! 재벌 스토

리도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