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4월 24일자에 실린 기고문입니다. 유료 페이지여서 링크는 별로 의미가 없을 것 같고 그냥 전문을 올립니다. 신문에 게재된 내용과는 약간 차이가 있지만 그 정도는 별로 중요한 것 같지 않아서 원래 기고문을 그대로 올립니다.


<‘까보전’을 아십니까>


‘까보전’이라는 말이 있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쓰이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술집이나 카페 또는 출 대중교통 안에서 사람들의 대화에도 쓰이는 단어가 되었다. 저 단어는 ‘까놓고 보니 전라도더라’라는 문장을 줄여서 표현한 것이다.


누군가 그럴싸한 말을 해도 발언의 주체가 호남 출신이라면 배후가 의심스럽고, 발언의 가치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이 표현은 호남 혐오 현상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인종주의적 폭력과 편견, 악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홍어니 난닝구니 하는 호남 증오 현상은 이제 특정 사이트에 몰려있는 루저들의 자조적인 행위를 넘어 배울 만큼 배우고 사회적인 지위를 갖고 있다는 인물들에 의해 이 나라 담론 시장의 시민권을 획득해가고 있다.


실명으로 의견을 표명하는 소셜네트워크나 언론사 기사에 달리는 의견도 예외가 아니다. 엘리트로 인정받는 전공의 수련생이 호남 지역 전공의들의 대정부 투쟁 참여가 저조하다는 점을 들어 ‘까보전은 진리’라는 말을 내뱉는다. 심지어 보수 월간지에서 활동하는 어느 논객은 ‘호남을 식민지화해야 한다’는 발언까지 서슴치 않는다. 이 논객의 ‘나라가 정상화되기 위해서는 몇 백만 명 죽어도 된다’는 발언과 연결해보면 호남 인종청소 가상 시나리오라는 것의 사실성을 결코 장난으로 웃어넘기기 어렵다.


최근의 인종주의는 인간집단 사이의 유전적 우열을 따지는 개념을 벗어나고 있다.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지 않는 조건을 기준으로 사람들의 행위를 평가하고 나아가 그 인간집단 구성원의 모든 행위를 그러한 가치판단의 범주 안에 우격다짐으로 가두는 행위가 인종주의의 대표적인 행동방식으로 나타난다.


대한민국의 다른 지역에서 일어나는 범죄는 그냥 특정 개인의 행위인 반면 호남에서 일어나는 범죄는 ‘또 호남놈’의 짓이 되는 이 나라 주류 언론의 이미지 조작이 대표적이다. 섬노예 사건은 ‘신안’의 그것으로 도배하는 반면 그보다 몇백 배 잔악한 행태에다 피해 규모도 심각한 형제복지원 사건에서는 ‘부산’이 빠지고 금세 언론의 관심사에서 멀어지는 것을 보면 그 대조가 분명해진다.


출신 지역을 기준으로 사람의 발언이나 행위를 평가한다면 개화기 이후 우리 민족이 피땀 흘려 쌓아온 시민사회의 가치는 설 자리가 없어진다. 시민사회가 작동하는 기본 질서인 사상과 표현, 양심의 자유라는 것도 구두선에 불과해진다. 자유민주주의의 외피를 쓰고 있어도 실제로 이 나라를 움직이는 핵심 질서는 전근대적인 신분제나 반인류적인 범죄인 인종주의 수준으로 고착돼있는 셈이다.


동전에 양면이 있는 것처럼 모든 현상에는 이면이 있다. ‘까보전’이라는 표현의 이면에는 무엇이 있을까? 호남 출신은 무슨 발언을 해도 인정받지 못한다는 얘기는 역으로 뒤집어 또 다른 특정 지역 출신들은 아무리 개차반 같은 짓을 저질러도, 아무리 허접한 의견을 내놓아도 점수를 따고 정당성을 인정받고 들어간다는 얘기일 것이다. 이런 질서가 지배하는 나라, 이런 묵계가 통하는 사회가 과연 험난한 국제사회의 생존경쟁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호남 증오 현상에서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이 문제를 대하는 지식인들의 태도이다. 호남 증오는 이 나라의 상징자산을 둘러싼 대립과 갈등이라는 성격이 강하다. 호남이 보여온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선택이 100% 옳다고 말하는 것도 억지지만 반대로 그 선택을 100% 부정하는 것도 지식인으로서 용납할 수 없는 폭력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지식인들은 호남에 퍼부어지는 이런 폭력에 대해 대부분 침묵한다. 심지어 그 폭력에 동참하는 경우조차 없지 않다.


필자 역시 전라도 출신이다. 까보전의 법칙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얘기이다. 누구나 아는 이런 얘기를 꺼내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했다. 그래도 한 분 한 분 발언을 함께해 주시는 분들이 계셨기에 입을 열 수 있었다. 정당한 용기를 보여주고 또 전파시키는 것도 지식인의 빼놓을 수 없는 소명 아닐까? 두려움도 그렇지만 용기도 마찬가지로 전염성을 갖는다는 소박한 진실을 필자는 믿고 있다.

주동식 / 지역차별극복시민행동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