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의 총체적 난맥상을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정부(박근혜)의 무능과 부실한 대응, 해수부와 해경의 관료화와 비리, 청해진해운(유병언)의 배금주의, 선장(&승무원)의 용서할 수 없는 무책임이 주로 거론되고 있습니다만, 과연 이들에게만 그 책임이 있고, 이들과 이 조직들에게만 메스를 가하면 제2의 세월호 참사는 일어나지 않을까요?

거리에는 “미안하다. 어른들의 책임이다”라는 현수막이 수없이 내걸리고 인터넷이나 방송에서도 마찬가지로 책임을 통감한다는 글이나 멘트들이 난무하지만, 솔직히 우리 사회 구성원 중에 이번 세월호 참사에 진정으로 그 책임을 통감하고 자신에게는 문제가 없었는지 반성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합니다.

저런 글이나 멘트는 정치적 이용을 위한 전제적 수사로 사용되거나 개인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음을 자위하는 간편한 방법으로 사용했다고 보는 것은 제가 너무 냉소적이기 때문일까요?

시스템의 개선, 안전예산의 증대, 인력의 보강, 법과 매뉴얼의 재정비만으로 제2의 세월호 참사를 예방할 수 있을까요? 솔직히 저는 이번 세월호 참사가 시스템이나 인력, 제도적 장치가 미비하여 발생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결국은 사람이 문제였습니다. 시스템을 운용하는 것도 사람, 매뉴얼대로 움직여야 하는 것도 사람, 재난 후의 구조나 수습하는 것도 결국은 사람입니다. 즉, 사람의 인식과 의지의 문제이지요.

일부 언론과 정치세력들은 세월호가 (안전)매뉴얼대로 운용되지 못해 대형참사를 겪었다는 것을 망각한 채, 극한 환경에서 구조활동을 하는 잠수사(구조본)들에게 생명의 위험을 감수하도록 내모는 모순을 보여주었습니다.  MBC 해직기자 출신이며 고발뉴스 진행자인 이상호는 잠수부가 다치면 어떠냐는 말을 생중계되는 방송에서 해대고, 채널A 박종진 앵커는 단원고 학생의 생명과 잠수부의 생명을 비교하는 질문을 생방송에서 했습니다. jtbc는 막 구조되어 나온 단원고 학생에게 친구가 죽은 것을 아느냐는 어처구니없는 질문을 하기도 했습니다. MBN은 잠수사 자격증도 없는 20대의 여성을 인터뷰 대상으로 섭외하여 생방송으로 구조본이 구조활동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거짓말을 내보내 구조활동에 차질을 빚게 하고 실종자 가족들의 정부에 대한 분노를 증폭시켰지요. 검증되지도 않은 다이빙벨 투입을 선동하는 jtbc 손석희도 반성해야할 언론인이구요. 종편 4개 채널은 재난사고 방송 규칙은 아랑곳 하지 않고 세월호 사고를 선정적으로 중계방송했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안전과 생명을 위해 규칙과 매뉴얼의 준수가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 준 것인데, 이를 방송 보도하는 언론이 정작 자신들이 지켜야 할 매뉴얼(규칙)은 지키지도 않았으며, 생명에 대한 존중을 보여주기는 커녕 자기 존재감이나 자사의 시청률 제고의 기회로 세월호 참사를 다루었을 뿐입니다. 세월호 참사를 정치적 반전의 기회로만 생각하는 못된 청치언론들에 대해서는 이젠 언급하기도 싫습니다. 이들 언론들이 천박한 자본주의 의식으로 가득 찬 청해진 해운(유병언)이나 나만 살면 된다는 이준석 선장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이런 언론과 언론인이 있는 한, 언론계의 세월호 사고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에서의 선정적 보도를 한 언론만을 탓하기 어렵습니다. 이번에 교수나 전문가들이 침묵한 것은 분명 비겁한 짓입니다. 효율적인 구조활동이 될 수 있도록 이성적이고 냉정하게 조언을 해야 하는 전문가 집단은 논란에 휩싸이기 싫었는지 전면에 나서기를 꺼려했고, 어중이떠중이 비전문가, 관심병과 허언증 환자들만 판을 쳤습니다.

희망고문인 에어포켓, 실효성도 없는 다이빙벨, 당장 소용도 없는 대형 예인선 등, 이번 사고와 관련하여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의견들을 적극적으로 개진하여 효율적인 구조활동에 도움을 주었어야 하고, 괴담과 음모론으로 사회적 불안과 트라우마가 확대되는 것을 막았어야 합니다.

박근혜에게 그렇게도 요구하고 비판했던 “소통”은 박근혜에게만 요구하거나 박근혜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언론이나 전문가 집단들은 이런 대형재난사고에서 대중들의 과학적 이해를 돕고 사회적 트라우마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대중과의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합니다. 저는 이것이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국가적 재난에는 물리적, 경제적 피해보다는 괴담과 음모론, 사회적 공포와 트라우마가 훨씬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이런 무형적 문제들이 사고 원인을 파악하는데 장애가 되고 효율적인 대책을 마련하는데 걸림돌이 되어 결국 불필요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일어나자 체르노빌이 다시 거론되고 원전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었지요. 당시 방사능 오염 불안으로 일본산 수산물은 물론 동해나 남해에서 잡힌 국산 수산물도 사 먹지 않아 어민들이나 수산업계가 곤혹을 치렀습니다. 우리나라의 환경단체들과 정치적 동기를 가진 세력들의 비과학적인 원전 괴담이 대중들을 현혹시킨 결과입니다.

세슘에 오염된 생선을 먹으면 치명적이라는 밑도 끝도 없는 괴담들이 지식층에마저 먹혀들어 일본산 수산물은 물론 식품, 심지어 일본 공산품까지 매출이 주는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방사능 괴담을 유포한 얼치기 환경론자들은 서울과 도쿄의 방사능 수치 중에 어느 쪽이 높은지는 알고 있을까요? 이들은 일본의 토양보다 우리나라의 토양이 라듐 함유가 많아 자연적 방사선 노출이 우리가 일본보다 2배 정도 많다는 사실은 알려주지 않습니다. 건강검진을 위한 CT촬영 한번에 10~25밀리시버트(mSv)가 피폭되는 것에 비해, 제한구역을 벗어난 후쿠시마 지역이 9밀리시버트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모르겠지요. 담배에 들어있는 폴로륨, 건과류에 들어있는 라듐이 일본산 생선에 들어있는 세슘보다 훨씬 방사선 피폭량이 많다는 것도 알려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지하철이나 가정에서의 대기 중의 라돈이 일본산 수산물의 세슘보다 더 위험하다는 것은 우리나라 환경단체는 말하지 않습니다. 원전이나 방사능에 대해 무시무시하게 그 위험을 경고하지만 정작 외국처럼 주택(아파트)의 라돈 수치를 측정하여 그 안전도를 점검하자고는 하지 않습니다.

체르노빌이 관광코스로 들어가 일반인도 출입하고 있는 것은 알고 있을까요?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사망한 사람이 3년이 지난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없다는 사실은 무얼 말할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체르노빌 원전사고로 수십만이 죽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수백만이 희생되었다고 알고 있는 사람이 있더군요. 체르노빌 원전사고로 방사능에 피폭되어 죽은 사람은 40명 이하이며, 체르노빌 방재작업에 동원된(당시 소련 정부는 방사능 방호장비나 작업복이 아닌 일반 작업복으로 방재작업을 하게 함) 53만명 중에 2만5천명이 사망한 것이 공식적인 통계입니다. 2만5천명도 자연사, 교통사고, 자살, 질병 등의 사유로 사망한 사람을 포함한 것이며 이들 모두가 방사능에 의해 사망했다는 직접적인 근거는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원전사고나 방사능 피해와는 판이하게 다를 것이라 쉽게 믿어지지 않을지 모르지만 이게 사실입니다. 그만큼 원전과 방사능에 대한 괴담이 우리 사회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체르노빌 사고로 소련이 붕괴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소련 붕괴의 제1의 원인은 아닐지라도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소련 붕괴에 큰 원인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체르노빌 복구비용으로 소련의 GDP의 15%를 쏟아부었으니 경제적 타격이 오죽했겠습니까? 문제는 이 경제적 타격만이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이것보다는 이 사고로 인한 사회적 충격이 가져온 사회전체적인 트라우마, 무형적 인프라스트럭쳐의 붕괴가 소련의 해체를 가져왔다고 생각합니다. 안전 불감증, 사고 사실 숨기기, 막무가내식 사고 수습, 그로 인한 괴담들이 소련사회의 신뢰를 깨뜨리고 불안을 증폭시킴으로써 사회 해체는 어쩌면 필연적이었는지 모릅니다.

소련의 과학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소련 체제의 한계로 이것이 용납되기 힘들었겠죠. 그런 측면에서 소련 붕괴는 내부 모순에 의한 필연적 결과인 것 같습니다) 방사능에 대한 과학적 자료들을 제공하여 방사능과 무관하지만 방사능 환경이란 존재 그 자체로 인한 심리적 불안,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대중들을 안심시켰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소련 정부는 사고 사실을 숨기기에 급급해 외부(서방세계)로부터 지원도 받지 못함으로써 제대로 된 방재를 할 수 없었습니다. 과학자들은 아이들이 오염된 우유를 먹는 것을 막지 못했고, 괴담은 괴담을 낳아 소련 사회는 체르노빌 공포에 휩싸이게 된 것이죠. 정부나 과학자(전문가 집단)이 대중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소극적이거나 두려워 한 결과 더 큰 국가적 재난으로 확대되고 결국은 한 국가의 운명도 좌우하게 된 것이죠.

이렇듯 전문가 집단이 목소리를 내어야 할 때는 과감하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진정한 소통이며, 용기입니다. 대중들의 감정선을 건드려 비난을 받을까봐, 정치적 이해관계에 있는 집단들로부터 돌팔매를 맞을까봐 논란의 대상으로 피곤해질까봐 뒤로 숨어 방관하는 것은 비겁한 짓입니다.

전문가집단만을 비난하기 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전문가집단이 부담없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정치적 편향에 따라 오도하거나 선동하는 세력, 검증되지 않은 인물을 내세우는 언론을 응징해 전문가집단들이 활발하게 자신들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어야 합니다. 책임지지 않는 언론, 정치적 소재로만 바라보는 세력들에게 제대로 된 제재나 책임 추궁없이 그냥 지나간다면 세월호 참사는 되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