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유시민 지지자들을 접하다 보면, 참으로 황당한 소리들을 듣곤 합니다. 그 중 압권인 것을 몇개 꼽아보자면.. '유시민은 민주당(통합신당)에서 쫓겨났다' 와 '유시민은 권력욕이 없다' 정도가 있습니다. 오로지 '노무현을 위해서 (하기 싫은)정치를 하는 것이다.' 라는 반응들도 심심찮게 보이구요. 일단 참여정부 시절의 유시민은 스킵하고, 민주당에서 탈당하던 시기부터 그의 행보를 짚어봅니다....


1. 통합신당에서 개털된 친노계와 정동영계, 손학규의 권력쟁취
-> 손학규가 당대표로 선출되자마자  이해찬이 탈당합니다. 이해찬의 탈당 이유는 간단하고 명확했죠. '한나라당 출신인 손학규가 대표를 하는 것이 싫다'  였습니다. 손학규 체제는 결국 참여정부책임론이 전제되는 것이기에  친노인 이해찬입장에서는 불편했겠죠. 뭐 권력싸움에서도 패배한 셈이었구요. 당시는 한마디로 정동영계, 친노계 모두 손학규에게 털려버린 상황이었습니다.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view.html?cateid=1020&newsid=20080110114311674&p=ohmynews

뒤어이 유시민이 탈당합니다. (기사를 보면 알겠지만 어느 누구도 유시민을 쫓아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유시민의 탈당의 변은 꽤나 추상적이고 모호합니다. 특히 황당한 점은 '진보정치를 할 공간이 없다' 는 그의 발언입니다. 정말이지 지나가는 개가 웃을 수준의 변명이었죠. 참여정부 내내, 진보와는 가장 거리가 먼 행보를 보인 인물이 유시민이었으니까요. 이해찬의 변과 비교해보면 참으로 궁색한 변명이었습니다. 참여정부의 유시민을 복기해보면 그의 발언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자기모순인지는 쉬 판단이 됩니다. 황당한 억지로 탈당의 명분을 만들어 냈다고 봐야죠. 더구나 그는, 탈당 후 4년이 지나는 동안 진보적인 모습을 보인 적이 없습니다.
http://media.daum.net/politics/assembly/view.html?cateid=1018&newsid=20080116123104418&p=hani


2. 노무현 코스프레, 대구 출마 유시민
-> 유시민은 탈당과 동시에 무소속 대구출마를 선언합니다. 유시민의 대구 출마는 뚜렷한 명분이 없었습니다. 더구나 진보정치를 꿈꾼다는 이의 첫번째 행보치고는 조금 핀트가 어긋난 측면이 있었죠. 그래서 '노무현 코스프레' 를 하는 것이 아니냐? 라는 의심을 많이 받았습니다. 또한 대구지역 시민단체들이 일회성으로 끝날 것이냐.. 라는 우려를 표명했는데 유시민은 분명 '아니다' 라고 답변했었죠. 유시민의 대구에서의 행보는 노무현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지역주의에 도전하는 정치인의 모습치고는 꽤나 구차하고 초라한 모습을 보였죠. '대구의 아들' 이라는 상투적인 선거 문구가 이런 유시민의 모습을 잘 나타내었습니다. 호남의 지역주의를 무수히 언급하고 비판했던 유시민을 감안하면 대구에서그의 행보는 참으로 비루했습니다. 민주당 간판을 버리고 무소속으로 나와서 한다는 소리가 고작 '대구의 아들' 이었으니까요. 여튼 대구에서 낙선한 유시민은 1년여만에 주소지를 옮겨버립니다. 노무현 코스프레 아니냐는 시민단체의 우려가 그대로 적중된 셈이었죠. 한가지 특기할 점은, (영남대 교수의 진술이 팩트라면) 유시민의 주소지 이전은 2009년 3월이고 노무현 서거는 2009년 5월이라는 점이죠. 그러니 노무현의 복수를 위해서 대구에서 중앙으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라는 말들은 헛소리라고 봐야겠습니다. 즉, 노무현을 위해서 (하기싫은) 정치를 하는 것이다. 라는 유시민 지지자들의 말은 틀렸다는 것이죠. 그냥 한번 찔러보고 주소지를 옮긴 겁니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00112122147&Section=01&page=1
- 유 전 장관은 지난 3월에 주민등록 파서 다시 갔다. 대구 사람들은 지금 난감한 처지가 됐다. 모르겠다. 묻고 싶지도 않다. 지난 총선 출마 할 때 '당신 떨어지면 서울로 갈 것 아니냐' 이런 질문들이 많았다. 그러자 본인이 '몇 십 년 만에 새로 맺어진 대구와의 정치적 인연을 바꾸지 않겠다' 이런 취지로 연설을 했다. 그런데 3월에 떠났다. 사람들은 주소를 옮겨갔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다. -


3. 정세의 급변, 노무현 서거
-> 노무현 서거 이전엔 대략 박근혜가 40%후반대의 지지율을 보였고 정동영은 12-13%의 지지율이 나왔습니다. 유시민은 언급이 없거나 1% 미만이었죠. 헌데 노무현 전대통령 서거 후.. 상황은 급변합니다. 친노 정치인들에게 관심이 쏠리면서 각종 여론조사에 등장하기 시작한거죠. 안희정, 이광재, 강금실등도 언급이 되었지만 중심인물은 유시민과 한명숙이었습니다. 문재인(부산시장 후보)도 이 즈음 언급이 되기 시작했구요. 당시 민주당은 유시민과 이해찬의 복당에 대해 긍정적이었고 '친노신당' 의 창당에는 부정적인 입장이었습니다. 박지원의 인터뷰를 보면 잘 나와있지만 그는 진작부터 '대통합' 을 강조해왔습니다. 그렇기에 최근 통합반대론자로 낙인찍힌 사례는 황당하다고 봐야죠.. 절차상, 방법상의 문제점을 지적했을 뿐, 통합 자체는 결코 반대하지 않았는데 라벨링 당한 꼴이었습니다.
http://zine.media.daum.net/sisain/view.html?cateid=3000&newsid=20090611095128456&p=sisain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14416
- 박 의원은 "바람직한 것은 10월 재보궐 선거 때에도 가능할 것이고 안 그러면 내년 초에 지방선거 준비를 위한 어떤 이벤트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때까지는 대통합이 이뤄졌으면 한다"며, "또 그렇게 되도록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4. 유시민의 국민참여당 입당
-> 대구에서 낙선 후, 유시민은 1년여동안 주로 강연을 하며 활동했습니다. 노무현 서거 전, 유시민은 주소지를 옮겨 대구를 떠났고 같은 해 11월, 참여당에 입당합니다. 참여당은 2008년 말부터 창당 준비를 해왔고 노무현 서거 후 본격적으로 추진된 정당입니다. 정식 창당은 2010년 1월이었구요. 유시민 외에 유력정치인은 없었던 터라, 정치낭인들(민주당에 가면 쩌리 취급당하는 이들)의 집합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죠. 기실 국참당의 창당 주역들은 노무현의 대통령 시절부터 인연을 맺은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유시민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연이 길지 않다는 것이죠. 문국현 캠프를 들락거린 인물들도 있었구요. 오래토록 노무현의 곁을 지켰던 이들은 대부분 민주당에 남아있었습니다. 강금원의 인터뷰에서도 잘 드러나는 내용입니다. 여튼 입당을 하면서 유시민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깨어있는 시민들이 스스로 참여하는 정당의 당원이고 싶습니다. 다른 길이 없기에 이 길을 함께 걷기로 했습니다. 더 많은 행동하는 양심들의 참여를 호소합니다." 민주당 탈당의 변인 '진보정치' 에 관한 언급은 없었습니다. 또한 입당의 변으로 볼만한 뚜렷한 명분도 없었습니다. 정치인들의 흔한 레토릭, 추상적이고 모호한 내용이었습니다. 설득력이 약했다는 것이죠. 유시민은 또한 민주당에 미래가 안보여서 참여당을 택했다는 발언도 덧붙였습니다.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view.html?cateid=1020&newsid=20091120134235712&p=ilyo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110224133331923&p=sisain
- 유시민은 친노 아니다. 어떻게 해서 유시민이 친노 핵심으로 분류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안)희정이도, (이)광재도 유시민을 친노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노 대통령도 같은 생각이었다. 유시민이 어떻게 친노가 된 거냐고 물으니까, 노 대통령이 "유시민은 우리 편 아니다"라고 딱 잘라 말하더라. 우리 편은 아니고 우리와 비슷한 사람이어서 인정한다고 했다. 재임 중에도, 돌아가시기 얼마 전까지도 그랬다. 유시민은 우리와 그 무엇도 상의한 적이 없고 자기 마음대로 갔다. 대통령도 그런 면을 싫어했다. 남을 위해 정치를 해야지 나를 위한 정치는 곤란하다. -

참여당에 입당 후 유시민은 민주당을 향해 날선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유시민의 민주당 비판 논점은 주로 '호남 지역주의+기득권' 이었습니다. 민주당의 (탈당의 변이었던)진보나 정책이 아닌,  '호남 지역주의+기득권' 에 매달렸다는 것. 이는 한나라당이 아닌 민주당의 파이를 노린 행동이라고 봐야겠죠. 또한 유시민의 비판은 한나라당보다 민주당에 집중될 때가 많았습니다. 여기서부터 유시민과 민주당의 간극이 커져나가기 시작한 겁니다. 당시 민주당은.. 동교동계는 진작에 떨어져나갔고 잔민당 출신들은 권력의 핵심에서 멀어진 상황이었습니다. 그냥 간판을 바꿔단 열린우리당이었다는 거죠.  달라진 점이라면, 잔민당 인사들 몇몇 들어왔고 유력 정치인인 유시민과 이해찬(관계는 유지)이 탈당했으며 손학규가 들어왔다는 것인데 중요한 것은 절대 다수의 구성원들이 열린우리당 시절과 똑같았다는 겁니다. 더구나 당시 민주당은 정세균을 필두로 한 친노계가 당권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즉, 유시민의 민주당 공격은 정황상 황당한 비판이었다는 거죠. 우스운 건, 유시민의 이런 선동에 적잖은 사람들이 낚여서 '민주당 = 노무현 배신, 호남 지역주의' 라며 덩달아 비판을 했다는 겁니다. 유시민의 이런 비판들(호남 기득권, 민주당 타파)은 이미 오래전에 제기되었던 겁니다. 분당 시점 전후에 잔민당을 대상으로 이런 비판이 많았죠. 이런 비판들의 성공적인 결과물이 바로 '노무현 당선 + 열린우리당' 이었습니다. 헌데 조순형, 한화갑, 김경재등등 유력 정치인들 대부분 떨어져나가고 나가리 된, 잔민당 인사들 몇몇 들어왔다는 이유로 민주당=잔민당으로 몰아가면서, 시효가 한참 지난 비판을 다시 꺼내든 거죠. 절대 다수는 열린우리당 출신이며, 그 핵심세력또한 친노임에도 불구하고 추악한 라벨링으로 선동을 했던 겁니다. 쉽게 예를 들자면 열린우리당의 모습을 90% 유지하는 민주당에게 '호남 지역주의 + 기득권' 이라며 비판을 한 겁니다. 즉, 10%를 민주당의 정체성으로 규정하고 낙인을 찍은 셈이었다는 거죠. 결국 유시민의 이런 비판은 자기 모순이었고 뒤통수와 다를 바 없던 행위였습니다.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view.html?cateid=1020&newsid=20090929225702879&p=yonhap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view.html?cateid=1020&newsid=20100118161913630&p=yonhap
http://www.polinews.co.kr/viewnews.html?PageKey=0102&num=88463&p=1


5. 김진표와 단일화 경기도 지사 출마, 유시민.. 낙선
-> 유시민이 본격적으로 정치 활동을 재개한 시점은 노무현 서거 이후입니다. 다른 말로 치환하면, 노무현 서거 후 지지율이 급상승 된 후라고 봐도 되겠죠. 여튼 그는 처음엔 서울시장에 눈독을 들입니다. 허나 한명숙과의 대립구도가 부담스러웠는지 경기도지사로 유턴을 하게 되죠. 대표적인 친노관료였던 김진표와의 단일화를 하면서 적잖은 진통이 있었습니다만 결국 유시민으로 단일화(0.96% 차)가 되었죠. 본래 이들이 각각 김문수와 1:1 구도를 펼쳤을 때에도 1%정도로 유시민이 우위에 있었기에 인지도 차이나 경선방식의 유불리를 논할 필요없이 민의가 그대로 반영된 결과물로 봐도 무방합니다. 단일화 직후, 유시민은 민노당을 찾아가 회담을 벌였고 심상정마저 포섭하기에 이릅니다. 서울시 선거에 비하면 완전한 단일화를 이뤄낸 거죠. 헌데, 정작 유시민은 수도권에서 가장 큰 차이로 패배를 하고 맙니다. 부진할 거라 예상했던 한명숙이 꽤나 선전(0.6%차이)한 반면에, 친노중 가장 지지율이 높다는 유시민은 가장 큰 차이(4.4%차이)로 패배 했던 것이죠.
http://media.daum.net/politics/assembly/view.html?cateid=1018&newsid=20100603113114997&p=akn

유시민의 패배후 유력 친노싸이트등에선 호남유권자를 비판하는 분위기가 형성됩니다.  경기도 선거동안 잠잠했던 호남때리기가 다시 떠오른 것이죠. 한마디로, 호남유권자들의 유시민에 대한 반감탓에 유시민이 떨어졌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기실, 경기도지사 선거를 거치면서 유시민과 호남출신 유권자들의 대립이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됩니다. 그 출발점은 바로 유시민이 처음 금배지를 달았던 시절(고양에서 호남향우회와 민주당의 도움으로 당선)이었구요. (따로 글을 써서 링크를 걸 예정) 여튼 유시민은 경기도지사 후보로 나선 후 처음으로, 김대중비판에 대해 사과를 했습니다. 권노갑에게 SOS를 치기도 했죠. 권노갑은 처음엔 거절했으나 박지원과 잔민당 인사들의 노력으로 화해(?)를 하기에 이르렀죠. 선거를 앞둔 사과였기에 그의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한 이들이 많았습니다만 비교적 잡음없이 마무리되었고 민주당의 많은 정치인들(특히 박지원, 손학규, 김진표등)은 유시민을 위해 열성적으로 뛰어주었죠.  민주당과 호남을 향해 무수한 비판의 날을 세웠던 유시민역시 경기도지사 선거에서만큼은 민주당을 한없이 칭찬했고 김진표에게는 '평생 은혜를 갚겠다' 라는 발언까지 했었습니다. 선거 후 박지원은 유시민의 민주당 복귀를 공개적으로 제안하기도 했었죠.
http://media.daum.net/politics/assembly/view.html?cateid=1018&newsid=20100524154837750&p=nocut


6. 노무현의 김해, 유시민과 이봉수
-> 경기도 지사에서 패배 후, 얼마 되지 않아 은평을 재보선이 있었습니다. 여권의 후보는 이재오였고 민주당(대표 : 정세균)에서 내세운 후보는 장상이었습니다. 참여당에선 천호선을 내세웠구요. 누구를 내세우건 큰 차이가 존재했기에 관심이 많지 않았던 선거였죠. 유시민도 큰 공을 들이지는 않았습니다. 여튼 단일화에선 장상이 승리했었죠. vs 이재오 상대로 지지율 차이는 장상이 천호선보다 1%정도 우위였구요.
http://media.daum.net/society/media/view.html?cateid=1016&newsid=20100726154920418&p=mediatoday

2011년 4월 27일, 김해 보궐 선거가 있었습니다. 노무현의 고향이었던 만큼 관심은 집중되었고 야권의 당선가능성도 높아보이는 지역이었죠. 민주당 내에서도 친노의 움직임이 적극적이었던 선거였습니다. 유시민역시 김해 선거에 사활을 걸었구요. 민주당은 김경수를 후보로 내세웠고 참여당은 이봉수를 후보로 내세웁니다. 유시민이 관여한 선거중 잡음이 가장 많던 단일화였습니다. 유시민은, 시민단체가 제시한 '국민참여50%, 여론조사50% 의 중재안조차 완강히 반대하고 여론조사 100%를 고집했었죠. 또한 순천에서의 민주당 무공천을 폄하하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습니다. "야권연대를 하는 건 한나라당을 상대하기 위해서인데, 거기(순천)는 한나라당도 없는데 무엇 때문에 야권연대를 하나" 라는 발언 탓에 이인영과도 각을 세웠죠. 결국 유시민과 참여당의 압박, 대립 탓에 시민단체들도 비판을 하기 시작했고, 이런 분위기를 견디지 못한 김경수는 불출마 선언을 해버립니다. 이로 인해 유시민은 이해찬, 한명숙등의 친노들과도 대립각을 세우게 되었죠. 단일화의 잡음 속에, 친노 정치인들은 외면을 했고 결국 유시민은 패배했습니다. 박지원이 날려버린 김태호가 유시민에 덕에 부활을 한 셈이었죠. 한가지 웃긴 점은, 친유시민 성향의 싸이트에서 '김해의 패배는 민주당과 호남탓' 이라는 글들이 횡행했다는 겁니다. 여튼 김해 선거로 인해 유시민은 정치인생 최대의 위기에 직면하게 됩니다.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view.html?cateid=1020&newsid=20110428143550542&p=mediatoday
- 김경수 전 비서관이 야권 후보로 나서면 김태호 전 지사는 출마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 일부 참여당 지지자들은 유시민 대표 뜻과 배치되는 언행을 하는 이들에게 날 선 공격을 서슴지 않았다. 그 대상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가까운 이들까지 예외가 아니었다. -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110418132532702&p=sisain
- 출마를 검토하던 김경수 국장을 향한 참여당 지지자들의 공세가 집중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 공식 홈페이지인 '사람 사는 세상'에는 김 국장의 출마가 '참여당 죽이기'와 '유시민 죽이기'라는 글이 잇따랐고, 견디다 못한 김 국장은 불출마를 선언했다. -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민주당이 양보해서 타협이 될 듯하면 참여당이 내부 회의를 거쳐 또 다른 조건을 들고 나오고, 민주당이 한 번 더 양보하면 참여당이 또 다른 조건을 내걸고…. 그러기를 정말 여러 번 했다. 그 와중에 대표라는 사람(유시민)은 언론에 대고 '손학규 대표가 분당에 나가면 적극 돕겠다'고 했다가, '김해을을 참여당에 주지 않으면 협조하기 어렵다'라는 식으로 좌충우돌하더라.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의도였겠지만 이 때문에 이인영 최고위원이 무척 힘들어했다"라고 말했다. -


7. 진보정당과의 합당.
-> 김해에서 패배 후, 유시민의 지지율은 바닥으로 내려갔고 그의 대체인물로 문재인이 부상하기에 이릅니다. 기실 유시민의 대선 후보 지지율은 정점을 찍었을 때에도 15%를 넘지는 못했습니다. 최근의 문재인, 안철수 지지율과 비교해보면 상당한 격차죠. 여튼 유시민의 힘은 바로 이런 10%초반대의 지지율에서 나왔습니다만 김해 패배이후, 말 그대로 쪽박찬 거렁뱅이 신세가 되어버립니다. 이런 사면초가의 상태에서 유시민은 진보정당과의 통합을 추구하기에 이릅니다. 참여정부 시절, 가장 심하게 진보정당을 비판하고 외면했던 유시민의 이런 행위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습니다. 가장 가까운 시기인, 김해선거에서도 민노당을 디스했었죠. 유시민은 기본적으로 말빚이 많은 정치인입니다. 공격성이 지나치고 신중하지 못한 탓에 스스로를 옭아매는 발언들을 많이 했죠. 사표론, 민노당 비판, FTA, 파병, 대연정, 민주당비판, 진성당원제등등... 입장을 바꾼 발언들이 가장 많은 정치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최근의 발언으로는 위에서 언급한 "야권연대를 하는 건 한나라당을 상대하기 위해서인데, 거기(순천)는 한나라당도 없는데 무엇 때문에 야권연대를 하나" 가 있습니다. 추후 호남지역 선거에서, 유시민이 야권연대(무공천)를 주장하게 되면 또 한번 자기 모순을 하는 셈이 됩니다. 유시민의 말대로면 호남에선 무조건 '경쟁' 을 해야 되니까요.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view.html?cateid=1020&newsid=20111205131906501&p=moneytoday

혁통과 민주당이 통합 논의를 할 때에 참여당도 언급이 됐지만 별반 논의없이 결렬되었습니다. 패잔병인 유시민의 입장에서는 계구우후(鷄口牛後)의 심정으로 진보정당을 택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민주당내의 많은 친노들과 롤이 겹칠 수밖에 없는데다 패잔병 입장에서 전면에 나서기도 힘들기 때문이죠. 진보정당입장에서는 유시민의 대중성과 추후 단일화 논의에서의 역할을 기대했다고 보여지구요. 한편으로는 유시민은 통합을 원했으나 참여당 내부의 반발이 만만치 않아 결렬되었단 시각도 있습니다. 기실 민주당과 혁통 모두 참여당과의 통합에 그리 적극적이진 않았습니다. 민노당과 진보신당등에 했던 제안과 비슷한 수준이었죠. 어찌되었건 '진보정치'를 표방하며 민주당을 탈당했던 유시민은, 4년여간의 방황 끝에 자신이 주창했던 진보정치를 펼칠 공간에 입성했습니다. 물론 방황했던 4년여간 유시민은 딱히 진보적인 모습을 보인 적은 없습니다만....
http://media.daum.net/politics/assembly/view.html?cateid=1018&newsid=20111107145107732&p=moneyto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