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오패스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나는 모른다. 그게 유전인지 아닌지, 유전이 아니라면 어떤 사회문화적 배경에서 개인의 저런 내적 심성들이 현재화되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개인적인 차원이 아닌 특정 사회 집단의 행동이 뚜렷한 소시오패스의 특징을 드러낸다면 그것은 비교적 분명하게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 샘플을 이번 세월호 사건을 대하는 몇몇 집단들의 행동에서 발견한다.
 
세월호 사고가 일어난 당일이던가 한국야구위원회는 프로야구 시합이 열리는 전 구장에서 조직적인 응원을 하지 말도록 각 구단에 요청했다. 심지어 시합 개시 전에 전광판에서조차 이런 내용을 관중들에게 알리고 오늘 시합에서는 조직적인 응원을 하지 않는다고 알렸다고 한다.

이날 프로야구 시합이 전국 어느 구...장에서 진행됐는지는 모른다. 조사해보지 않았다. 다만 부산과 대구에서는 분명히 시합이 열렸고, 다른 지역의 구장과 달리 평소와 별로 다름이 없이 조직적인 응원이 진행된 것으로 들었다.

누구나 알다시피, 프로야구 구단의 조직적인 응원은 조용하고 숙연한 분위기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치어리더가 짧은 치마로 나서서 춤을 추지 않아도 조직적인 응원은 흥겨운 잔치분위기가 기본이다. 다른 스포츠 종목도 마찬가지겠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중적인 프로스포츠가 야구라는 점에서 그러한 특징은 더욱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KBO의 요청이나 구장 전광판의 안내가 아니더라도 사실 몇백명의 새파란 목숨이 차가운 바다밑에 잠겨서 생사조차 알 수 없는데, 정말 자기가 응원하는 팀의 선전을 바라며 파도타기 응원을 할 수 있었을까? 그런 마음이 그렇게 쉽게 생길까?
 
게다가 그 응원가가 우연인지 의도적인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무려 <뱃놀이>였다고 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과연 저들과 나 가운데 누가 비정상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뱃놀이? 사건 나자마자 홍어 타령하며 추악한 댓글 달아대던 무리들의 언어 코드와 왜 그리 짝짝 맞아떨어지는지. 과연 특별한 악의 없이 무심코 저 노래를 응원가 삼아 불렀을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응원이 문제가 되자 응원단장이 사과랍시고 올린 글도 사람들의 분노를 가라앉히기는커녕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결과가 됐던 것 같다. 나 역시 그 사과문 보고 '정말 안하무인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한마디로 두려운 게 없다는...
 
이런 현상들이 우연이나 단발성이 아니라 매우 구조적이고 뿌리깊은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느껴지는 것은 세월호 사건을 바라보는 일부의 시각과 반응이 이런 현상과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차가운 바다에 가라앉은 배에서 돌아오지 못한 아들을 위해 음식 몇 숫갈을 바다에 던지는 엄마의 사진. 그 처절한 마음에 던지는 댓글들...

 -아들도 바다오염, 엄마도 바다오염
 
 -보상금 3억이면 본전 이상입니다

 -아들을 잡아먹은 물고기를 드세요, 그게 먹이사슬

 -바다에 폐기물 배출한 자에 대해서 신고 및 고발 운운

이들이 세월호 희생자들과 유족에 대해서 '자식 잃은 게 벼슬이냐', '유족충' 운운하며 비난과 경멸을 퍼붓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 사건이 자기네들 부족의 이익을 옹호해줄 대표자에게 불리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자기네 부족의 이익을 위해서는 이런 비극적 사건의 피해자들도 얼마든지 조롱하고 경멸할 수 있는 그 마음이 사회적인 소시오패스라고 본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소시오패스가 늘어나는 이유는 이들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공감 결여라기보다 공감해줄 이유가 없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영남패권은 이제 거대한 사회적 정신병리 현상으로까지 이어진 것 같다. 다른 지역 사람들의 시선 따위야 신경쓸 필요도 없고 마음대로 내키는대로 행동해도 된다. 왜냐? 영남이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모든 것을 주무르고 있으니까. 호남만 왕따시키고 짓밟으면 다른 지역은 알아서 따라오니까.
 
이건 세월호 사건이나 유족, 박근혜 정권의 차원도 벗어난 문제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