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인지 타살인지 의문을 남긴 채 몇십명의 변사체가 발견된 오대양사건. 당시에도 유병언과 구원파가 이 사건과 관련된 부분에 의혹이 제기됐고 수사 대상에 올랐다. 결과적으로 유병언이 오대양사건으로 법적인 처벌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의문은 남았다.

 

당시 언론이 구원파 신도 등을 대상으로 인터뷰하여 작성한 기사 가운데 기억나는 내용 하나. 유병언이 구원파 신도들에게 갖는 영향력이 어떤 것인지, 신도들이 바라보는 유병언이 어떤 사람인지 물었을 때 신도 가운데 한 사람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목사님은 생활이 앞선 분."

 
기사에 더 이상 자세한 내용이 소개되지도 않았고 내가 당시 기독교에 대해 이해가 깊지 못했던 탓인지도 모르지만 저 답변은 나에게 쉽게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았다. 생활이 앞선다? 그 생활이란 게 무엇일까?

 
내 얕은 이해로는 크리스찬들이 존경하고 따를만한 거룩한 삶이란 힘들고 고통받는 이웃들을 위해 봉사하는 삶이랄지 그게 아니라면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헌신하는 삶 등이었다. 그런 게 소위 '생활이 앞선' 크리스찬의 모습이라고 나는 이해했다. 그런데 과연 유병언이 어떤 삶의 모습을 보였기에 '생활이 앞선 분'이라는 평가를 받았을까?


개인적인 궁금증을 풀기 위해 따로 노력할 여유가 없었기에 이 문제는 내게 그냥 잊혀졌다. 하지만 완전히 잊혀진 것은 아니고 가끔씩 정말 가끔씩 아닌 밤중에 봉창 뚫는듯한 그런 계기가 생길 때마다 내 기억 저 아래편에서 떠올라 내 의식을 두들기곤 했다. 특히 신앙생활을 하고 나름 목회자나 성도들의 삶의 전범이랄까 그런 것에 대한 이해가 생기면서 이 궁금증은 오히려 더 간절해진 것 같기도 하다.

 
이번에 세월호 사건이 나고 유병언이 아해라는 이름으로 사진 작가 활동을 하고 다양한 발명특허를 내기도 했으며 스스로를 박애주의자라고 부른다는 소개를 보면서 비로소 이 의문점을 푸는 실마리를 찾은 느낌이었다.

 
한마디로 그 옛날 구원파 신도들이 본 유병언의 모습은 가장 근대적이고 선진적인 지식인이자 선구자의 그것이었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좀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가장 서구화된 엘리트의 모델의 모습을 유병언의 삶에서 발견했던 것 아닐까? 자신들이 가장 선망했던 모습이었을 것이고.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수입되고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영향력을 확대해간 핵심 요인이 이것이라고 본다. 즉, 근대 이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한국의 낙후성을 극복하고 개선해갈 수 있는 역할모델, 지향점을 가장 구체적인 형태로, 실제 사례로 보여준 것이 기독교였고 이것이 기독교가 우리나라에서 극적인 성공을 보여준 이유였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측면에서 근대화의 이슈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주었던 지적 충격은 충분히 긍정적이었고 앞으로도 그런 역할에 대한 기대는 무척 크다고 본다.

 
가령 개화기 당시 황해도의 어느 군에서 전군민의 1% 남짓이었던 크리스찬들이 아전들의 횡포와 비리에 굴복하지 않고 당당하게 항의하면서 그 지역 전체에 도덕적 리더십을 가질 수 있었던 사례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순수한 이념이라도 현실에 적용되는 과정에서 왜곡과 부패, 타락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요즘 기독교가 '개독교'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사례들은 우리나라 기독교의 가장 평균적인 목회자들이나 성도들이 사회에서 보여준 모습들이 반영된 결과라고 봐야 한다. 그런 호칭이 과연 바람직한 것이냐의 가치 판단과 별개로 이것은 현실로서 인정해야 한다.

 
유병언은 그런 우리나라 기독교의 왜곡된 모습이 극대화한 사례라고 봐야 한다. 기독교와 그 지도자들이 보여주는 모습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크리스찬들이 목회나 신앙 지도자에게 기대하는 모습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크리스찬도 아니고 근대화도 아니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크리스찬들이 갖고 있는 가치관의 가장 추악하게 병들고 변질된 모습이 유병언과 구원파를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잘먹고 잘쓰고 그러면서도 세련되게 폼이 나야 하고 서양인들과 친구처럼 교제하고... 이런 게 우리나라 크리스찬 아니 전국민의 희구하는 가치의 처음이자 끝이다.

 
길게 보면 1세기 이상, 최소한 해방 이후 한국사회가 눈 가리고 무작정 밀어붙이며 달려온 모습이 이것이다. 여기서 극적인 변화의 계기와 동력, 방향성을 잡아내지 못하면 이 사회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나는 특정 시스템의 수명은 이미 그 시스템 자체에 내재돼있다고 믿는 편이다. 두들겨 고쳐서 쓰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얘기이다.

 
유병언과 구원파, 세월호를 보면서 우리나라 시스템의 수명이 얼마나 남았는지, 과연 수리 가능한지... 그런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