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일자 기사입니다. '세월호 참사'에서 보여준 박근혜의 언행..... 역시 해당사항이라는 판단에 날짜가 지났음에도 퍼옵니다.


 우리는 소통이 매우 강조되는 시대의 흐름을 경험하고 있다. 여러 가지 요인 가운데 두 가지 사회적 맥락을 먼저 꼽을 수 있다. 첫째는 사회 전반의 민주화에 따라 사람마다 주체적인 발언권을 가지며 모든 범주의 지도자들은 구성원과 잘 통해야 하는 정치사회적 요청이다. 둘째는 디지털 정보화 산업의 발달에 따라 매체환경이 중층적으로 입체화되면서 누구도 소통의 적극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문화사회적 요청이다.


그래서 오늘날 모든 사람은 삶의 각 영역에서 소통을 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것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 요건이 된다. 소통을 제대로 잘하지 않으면 실존적 기능을 다하지 못하게 된다. 지도자에게는 더 많은 노력과 능력이 요구된다. 소통하지 않거나 제대로 못하는 지도자는 그 자질과 자격을 상실한다. 지도자 중에서도 단연 으뜸으로 국가 차원의 지도적 사명을 지니는 대통령은 막중하게 소통의 요청과 기대와 비판의 중심에 선다. 요즘 박근혜 대통령의 소통 문제에 관하여 말들이 많은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민주화와 정보화의 사회적 동기가 민감한 가운데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려고 애쓰는 나라 한국에서 국가지도자의 소통에 국민적 관심이 높은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어떤 대통령이든 다소의 비판은 받게 마련이지만 박대통령의 경우에는 그 정도가 우려스러울 만큼 심하다. 많은 사람들이 비판을 넘어 비난의 목소리를 쏟아내는 것 같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본인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애쓰며 소통하고 있는데 세상 사람들이 ‘불통’이라고까지 말하며 탓하는 데에 억울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소통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어떤 것이며 어떻게 하는 것이 제대로 소통하는 것이고 박대통령은 어떤 점에서 문제가 있는 것인가? 정치적 지지나 반대 또는 개인적 호불호의 감정을 넘어 객관적으로 사실과 문제의 본질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소통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관여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기본적으로 바탕을 이루는 요건은 말하는 이와 듣는 이가 상호관계의 파트너로서 메시지를 나눈다는 것이다.


 말하는 이 ⇄ 메시지 ⇄ 듣는 이


 메시지를 나누는 것은 ‘주고받는’ 일이기 때문에 말을 하는 것만 아니라 듣는 것도 중요하다. 말하고 듣는 관계는 수시로 교환된다. 그런 가운데 메시지의 양과 질이 늘 중요하다. 이런 기본 원리와 구도에서 볼 때 소통의 본질을 담보하는 원칙들 중에서도 가장 기초가 되는 전제는 관계의 상호성과 메시지의 충실성이다.


소통에는 언제나 상대가 있기 때문에 관계의식이 필요하다. 이권의 측면에서 계약적 갑을 관계, 권위의 측면에서 수직적 상하 관계, 인간적 측면에서 수평적 친소 관계 등이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는데 소통하는 이의 주어진 역할에 따라 자리가 매김되고 상호관계의 성격도 규정된다. 이에 관해 당사자들이 합리적으로 잘 인식하고 각 입장에 맞게 제대로 역할이 수행되어야 한다. 대통령은 누구를 파트너로 관계하고 그에 합당한 소통의 방식은 어떠해야 하는지 잘 규정되고 인식되어 제대로 실천되어야 하는 것이다. 대통령은 주권자인 국민이 선출하여 임기 동안 권한을 위임한 대표 지도자이므로 그런 사명의 관계에 합치되는 소통 방식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박대통령은 합당한 소통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소통은 메시지가 있어야 성립하고 그것이 충실해야 소통이 잘된다. 메시지가 충실하다는 것은 목적에 맞게 최적의 내용과 표현을 담는 것이다. 정론의 진선미가 요구된다. 메시지를 구사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수사학적 기법들이 활용되는데 맥락에 따라 적절하게 수행되어야 한다. 대통령은 국민과 어떤 목적으로 소통을 해야 하는지 성격을 잘 설정하고 그에 걸맞은 수사학을 구사해야 한다. 대통령은 일상적으로 정책과 행정에 관해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수렴하고 반영하고 보고하고 설명하고 설득하는 목적의 소통을 해야 한다. 그에 따라 경청과 전달과 설득의 메시지 수사학이 필요하다. 박대통령은 그에 충실한지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다.


  가시화되는 ‘상징폭력’의 위험


  그동안 박대통령이 보여준 소통의 모습에서 몇 가지 특징이 나타나는데 먼저 여섯 가지 정도를 주목하여 꼽아볼 수 있다. 첫째는 ‘인색’할 만큼 소통에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취임 전후 ‘민생’에 관한 메시지가 필요할 때 시장 같은 곳을 방문하여 매체가 그 장면을 보도하도록 노출하는 것이다. 셋째는 원칙이나 소신을 피력하고자 할 때 국무회의를 비롯한 공직 회동에서 관련 발언에 방점을 찍고 우호적인 매체들이 그것을 적극 보도하게 하는 것이다. 넷째는 국정소통을 구조-기능적으로 매개하기 위해 제도적으로 준비되는 언론채널의 활용에는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다섯째는 앞의 모든 경우에 비상호적-일방적 분위기가 압도하는데 주로 사전에 기획된 메시지를 화석화된 ‘읽기 전용’처럼 제한적이고 소극적인 수용자 조건 속에 전시적으로 표명한다는 것이다. 여섯째는 메시지의 수사학에서 ‘대박’, ‘암 덩어리’, ‘원수’ 등 매우 자극적인 비유법과 과장법들이 의도된 파격으로서 자주 표현된다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인상주의, 권위주의, 인위주의, 신비주의 같은 요소들이 혼합되어 독특한 ‘스타일’을 연출한다. 그것이 일시적으로는 국민 여론에 특이 심리의 효과도 낳지만 근본적으로 소통의 본질이 간과-상실됨으로써 사회의식 저변에 ‘부조리 감정’을 확산-증폭시키고 있다.


이로부터 우리는 박대통령의 소통이 근본적으로 지니는 문제점들을 세 가지로 압축하여 적시할 수 있다. 첫째로 대통령의 리더십에서 막중하게 요청되는 소통의 양과 질을 충족시키지 못하여 ‘불통’ 논란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둘째로 소통의 기본구도에서 관계 방식이 정상을 벗어나 변칙성을 보이는 것이다. 셋째로 메시지의 수사학에서 내용의 논거가 경시되고 표현은 과도하게 감정을 자극함으로써 ‘상징폭력’의 위험이 가시화되는 것이다. 어떤 대상에 관해 주어지는 내용을 (언어)기호적으로 표현할 때 ‘상징’이라고 하는데 그런 상징의 작용은 사회적 힘의 관여에 의해 자의적으로 조작될 수 있고 그 결과가 폭력에 이르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개성과 장단점을 지니듯이 개인으로서 인간 박근혜도 독특한 습관과 매력과 허물을 지닌다. 공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도 수행자의 개성에 따라 수행방식의 ‘스타일’ 차이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기본과 원칙은 개인차의 용인 범위를 넘어선다. 국가적 필요에 따라 국민이 대통령에게 중대한 권한을 적극적으로 부여했으므로 그 직임을 맡은 사람은 그에 합당한 방식으로 적극 수행해야 한다.


리더십의 소통도 그런 책무에 속한다. 그런 점에서 박대통령이 소통 자체에 소극적이거나 일방적으로 ‘알아서 들으라’거나 메시지가 부실하거나 소통의 방식과 내용에서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리더십에 결격이 생긴다. 민주화-정보화 사회에서 국민과 정치-행정 파트너와 모든 단위의 집단이나 개인들은 지도자로부터 많은 정보와 의사를 투명하게 공유하며 소통하기를 원한다. 봉사자의 리더십에서 소통은 먼저 다가가서 기회의 ‘멍석’을 깔고 경청하며 수렴하는 가운데 필요한 자기 메시지를 설득력 있게 피력해야 하고 소통된 내용은 진정성 있게 실천으로 옮겨져야 한다.


한 나라의 대통령은 정부의 수장으로서 공무원들을 통솔하고, 입법부와 사법부를 필두로 사회의 다양한 단위 주체들과 수평적 관계에서 지도적 역할을 하며, 국가를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그 대표성을 부여하는 주권자 국민을 받드는 일처럼 서로 다른 성격의 임무를 아우르면서 한편으로 통합적인 리더십을 발휘하고 다른 한편으로 영역의 성격에 따라 다르게 적합한 수행 방식을 취해야 한다. 모든 리더십에서 소통이 중요하고 오늘날 그것이 더욱 강조되는 것은 공통인데 소통하는 대상에 따라 합당한 방식이 적용되어야 한다. 관료를 비롯하여 공무원들에게는 대통령이 지시를 하거나 명령할 수 있지만 입법-사법부에는 그럴 수 없고 국민에게는 더 말할 나위 없다. 그런데 국정의 회의나 행사를 통해 지시나 주문 또는 꾸중과 문책 속에 대국민 메시지를 담아 노출시킴으로써 통치적 소통의 중요한 부분으로 삼는 것은 변칙이 된다. 선진국의 대통령들은 국민에게 전해야 하거나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 때에는 언론 기자들 앞에서 국민의 대리자를 대하듯이 진지하게 설명하며 브리핑을 하고 가감 없이 질문에 답한다. 사안에 따라서는 직접 국민 당사자를 만나서 대화하는 일도 종종 실천되는데 인구의 규모 상 일대다의 대국민 직접소통이 보편적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것을 원칙으로 삼기는 힘들다. 그런 이유에서 언론 매체가 차선으로 양해되는 대국민소통 채널로 기능하는 것이다. 박대통령이 국민대중의 대리 기능으로서 언론과의 ‘상호적’ 소통을 소홀히 하고 일방적이거나 우회적인 메시지 노출의 기술적 장치로서 주로 매체를 활용하는 경향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군림이 아니라 설득의 소통 필요


  소통의 목적에 따라 메시지의 성격이 다양해진다. 친지들 사이에 오가는 메시지, 교수가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코미디언의 직업 활동에서 구연되는 메시지 등은 모두 기능이 다르다. 교수가 강의 내용에 기본적으로 충실하면서 소통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코미디언처럼 재미있는 어법을 가미하는 것은 유익한 일이 될 수 있지만 강의 내용 자체를 희화하면서 재미와 인기를 위해 우스갯소리를 남용하는 것은 우려할 일이 된다. 대통령도 마찬가지로 본질과 원칙에 충실하여 국민이나 공직자들과 정론의 메시지를 충분히 소통하면서 덤으로 즐거운 어법까지 보태어 인기를 모으는 것은 나무랄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박대통령의 경우에 평소 소통의 기본에는 소홀히 하면서 잉여적으로가 아니라 정치적 본론의 메시지에서 정론적 논거를 떠나 감정 이입적인 표현들을 인위적이고 다발적으로 남용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것은 우선 수사학 자체의 존재 의미를 상실시킬 수 있어서 위험하고, 더 나아가 사회의 담론을 폭력적으로 교란시킬 수 있어서 위험하다. 예를 들어, 좋은 규제로부터 나쁜 규제까지 혼재하며 이해와 관점들이 엇갈리는 사안에서 문제의 성격을 성급하게 일반화하면서 ‘암 덩어리’라고 표현하는 경우에 그 논거들이 국민의 보편적 이성을 바탕으로 논증된 바 없는데 대통령과 주변에서 자의적으로 상징화함으로써 언어유희를 벌이는 셈이다. 사람들이 모든 규제를 접할 때 그 성격을 가리기도 전에 악성 종양을 대하는 상징적 조건에 놓일 수 있는 것이다. 원래 언어유희는 풍자, 해학, 코미디, 유머 등을 본연의 기능으로서 특별히 요구하는 수사학적 맥락에서만 적합한 타당성을 갖는다. 메시지의 기능적 변칙은 부정적 의미의 ‘말장난’이 되는데 그것이 정치적으로 오용되는 것은 위험하다. 예를 들어, 히틀러가 “국력은 방어가 아니라 정복에 바탕을 둔다”고 선동적인 말장난으로 전쟁을 합리화한 일이 있다. 일본의 정치 지도자가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논거 없이 한국의 어떤 섬을 지목하여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면서 자국민 상당수를 즐겁게 하고 그를 통해 인기를 얻는다면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의적 논거로 메시지를 왜곡하는 일은 상징 작용을 악용한 폭력이 된다. 상징적 폭력은 문화적으로 포장된 억압이고, 정치적으로 위장된 독재와 제국주의를 확대 재생산한다.


앞에서 확인하였듯이 박대통령의 소통 방식과 수사학은 원칙에서 벗어나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변해야 한다. 국가지도자로서 박대통령은 공적으로 부여된 리더십의 정체성을 재인식하면서 기본 원칙에 충실하여 소통을 정상화해야 한다. 대통령 스스로 ‘원칙’, ‘손톱 밑 가시’, ‘정상화’ 등의 수사법을 구사하면서 솔선수범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논거 부재와 불분명의 메시지를 변칙적으로 양산하는 ‘비정상’의 표본이 될 것이다.


모든 정치인을 비롯하여 대통령은 일방적 관계의 우월한 지위에 군림하는 구도의 소통 방식이 아니라 상호 관계의 파트너십을 발휘하는 커뮤니케이터로서 민주적 지도자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최대한 국민과 직접적이고 쌍방적인 소통을 하려는 태도를 지향하면서 구체적으로 가장 생산적이면서 현실적인 방법을 찾아 활용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정례적인 브리핑과 더불어 정파를 초월하여 개방적으로 상시 기자들과 접촉하고 취재에 응하면서 필요한 메시지를 제공하는 식의 언론채널 정상화도 그런 일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마치 PPL(TV나 영화 등에 특정제품 노출로 광고효과를 노리는 간접광고-편주) 같은 우회적 노출 방식을 지양하고 국민의 입과 귀로서 언론의 역할을 재정립하면서 열린 소통을 일상화하는 것이다.


또한, 메시지의 구사에서는 타당한 논거에 바탕을 두면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충실한 수사학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인류의 역사에서 수사학의 궤적에는 이미 논거의 뿌리 없이 혹세무민의 미사여구를 남용하여 부정적 인식을 심어온 전과가 있고, 지금도 ‘수사적’이라는 말에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남아 있다. 한국의 정치 수사학이 그런 ‘트라우마’를 되살리는 데 가세하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 사회적 소통 전반에서 정론의 메시지를 지향하는 풍토가 자리를 잡아야 한다.


대통령의 소통을 정상화하고 민주화하는 길에는 범사회적인 관심과 노력도 필요하다. 언론이 변칙과 위험을 직시하며 비판하지 않고 방관하거나 협력하면서 오히려 부추기는 일은 또 하나의 문제가 된다. 국민이 그런 것들을 방심하거나 묵인함으로써 소통문화를 교착시키는 일도 문제가 된다. 모든 이들이 연대적으로 시대에 걸맞은 민주적 소통 문화를 추동해 나가야 한다.


  글·주경복

전 건국대 교수·커뮤니케이션학. 파리제5대 언어과학박사. 저서에 <프랑스와 언어이론>, <레비스트로스> 등이 있다. 교육 현실의 부조리 타파를 위해 미래지향적이며 희망적인 교육개혁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