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글 [이디쉬어에 관한 추억]에 msye neg님이 워낙 좋은 리플을 달아주셔서 리플로만 두기 아까워 게시판에 본문으로 올려 봅니다. 리플저자의 허락 없이 무단으로 본문으로 옮긴 월권 행위임으로 만일 본저자의 요청이 있을 경우에는 바로 삭제 됩니다. 그러니 삭제 되기 전에 얼른 보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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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디시어 하니까 고등학교 영어 교과서에 저 작가(아이작 싱어) 작품 하나가 실려 있었는데 그 때 당시 영어 선생님이 이디시어가 무슨 언언지 몰라서 대충 얼버무리면서 폴란드말이라고 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아무튼 그 때 이후로 이디시어가 뭐지? 싶어서 나름 관심을 가졌었는데
일본에 갔을 때 도서관에 이디시어 교재가 있는 걸 보고 구해서 들어왔습니다. (제대로 공부는 안 해봤지만요)

사실 유대인들은 디아스포라 과정에서 각지에서 수많은 혼종언어(유대제어라고 합니다)를 많이 만들어 썼는데, 그것은 유대인 공동체의 특징(종교공동체의 게토화) 때문에 생긴 것이기도 했습니다.   이디시어는 그 중에서 가장 대표격인데, 간단히 말해서 "유대 독일어"로 생각하시면 되요. 기본 뼈대는 독일어입니다. 중세 어느 시기, 어느 지역의 독일어가 유대인 공동체 안에서 모어로 획득되고 그런 다음 유대공동체안에서만 쓰이면서 독일인이 쓰는 독일어랑 차이가 벌어지고, 그런 유대인들이 슬라브어권 지역(폴란드,러시아)까지 퍼진 결과물이 이디시어입니다. 이디시어 다음으로 유명한 게 라디노어인데, 이건 스페인어가 뼈대고, 스페인에서 대규모 유대인 추방이 있었을 때, 스페인어와 언어적으로 분리되었지요. 이 둘은 나름 네임드라 독자적 명칭이 있고, 나머지는 대부분 유대-OOO어로 부릅니다. 유대-포르투갈어,유대-이탈리아어,유대-체코어,유대-아랍어같이 말이죠. (다만 유대-터키어는 카라임어라고 따로 부르더군요) 이들 유대제어들은 뼈대는 현지주류언어+히브리어계 종교어휘+표기는 히브리 문자라는 삼박자의 특징이 공통적으로 있습니다.

박노자 선생이 정치적으로 히브리어의 부상과 이디시어의 몰락을 시오니즘 관점에서 푸셨는데, 물론 그 말도 맞는 말씀입니다만, 저는 조금 다르게 보는 것이 이디시어의 직접 사인(死因)은 전쟁 중 유럽 유대인의 대량학살때문에 사용인구 자체가 크게 줄어버린 까닭에 있습니다.
논란은 있지만, 전쟁중 유대인 희생자 수를 600만으로 추산하는데, 지금 이스라엘 인구수가 딱 그 정도 되는 걸 보시면, 말 그대로 대량학살이
이디시어 몰락의 주원인이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때 죽은 사람들이 거의 다 아슈케나지=이디시어 사용자들이었으니까요)
유럽 곳곳에 있던 유대인 공동체 자체가 몰락하고 살아남은 유대인들도 예전 살던 곳에서 살기 어려워 뿔뿔이 흩어졌으니, 이스라엘에서 시오니즘때문에 이디시어를 굳이 누르지 않아도 어느 정도 쇠락은 필연이었지요.

그리고 히브리어의 부활과 부상은 나중에는 시오니즘에 의해 활용된 측면이 있지만,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으며, 벤 예후다란 한 개인의 의지와 우연과 정치상황이  절묘히 맞물려서 일어난 매우 보기 드문 사건입니다.
히브리어는 그 당시는 일상어로는 사어였고 종교 의례에만 쓰이고 있었는데, 지금까지 히브리어 말고 이런 언어를 되살려서 국가공용어로 만들고 수백만의 사용자를 확보한 사례는 전례가 없습니다. (좋은 예는 아닌 거 같지만, 북한정권이 갑자기 우리민족은 고구려의 후예로서 신라의 후예인 남한과 다르다며 고구려어를 부활시키자라고 주장하면서 고구려어 살린다고 나서는 거랑 비슷합니다)  영국 식민지배때문에 서부 시골 몇몇 지역 빼고는 아일랜드어를 안 쓰게된 아일랜드같은 나라에서는 1세기 가까이 국가에서 아일랜드어 사용을 장려하고 인센티브를 주고 있지만, 아직까지 효과가 미미하죠.
아무튼, 이 히브리어 되살리기에 처음 주목한 게 현대 히브리어의 아버지인 벤 예후다란 사람입니다. 사실 그 당시 시오니즘 운동의 주류는 언어문제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죽은 언어를 부활시키자란 프로젝트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아 또라이취급 받기도 쉬웠구요. 하지만 벤 예후다는 이 문제에 철두철미하게 천착해서 자기 아들을 부활 히브리어 1호 화자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스라엘로 이주하고 나서, 낳은 아들에게 다른 언어는 일체 들려 주지 않고 아기 때부터 히브리어로만 말을 걸어서 아들이 말을 매우 늦게 깨우쳤다고 하지요. (아내가 러시아어나 이디시어로 말을 걸면 매우 혼냈습니다) 그리고 고대 히브리어에는 현대 생활에 필요한 어휘가 절대 부족했기 때문에, 그러한 단어들도 일일이 직접 만들어 사전편찬작업을 혼자 해나갔습니다. 그가 이 정도 열의로 히브리어 전도사로 활동하면서 그가 추진하던 히브리어 보급운동도 조금씩 사람들에게 이해를 받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는 벤 예후다 개인의 공로이구요,
그 뒤 히브리어가 국가공용어까지  된 정치적 요인은 고대 유다 왕국,유대 민족의 본래 언어라는 점 외에, 신생 이스라엘이 출신과 인종이 다른 여러 계파의 집합체였다는 데 있습니다. 앞서 이디시어가 아슈케나지 유대인의 상징이라는 말을 했는데, 이스라엘에는 유럽계 아슈케나지 말고도 중동에서 생활하던 세파르딤(아랍어를 쓰던)를 비롯한 여러 계파의 유대인들이 섞여 있었습니다. 서로 언어가 다른 집단이 섞인 국가에서 제 3의 언어가 공용어로 지정되는 일이 종종 있는데, 그런 이유에서 어느 계파의 언어도 아닌 히브리어가 공용어로 적합했던 것이지요.
신생 이스라엘이 유럽계 아슈케나지들의 언어인 이디시어를 공용어로 지정했다면 유럽과는 거리가 먼 세파르딤를 비롯한 다른 계파의 유대인들이 반발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히브리어 자체는 언어적으로는 아랍어에 가까운 친척 언어입니다)
그리고 이디시어는 나치의 학살로 유럽에서의 기반을 잃은데다가 유대인말살을 획책한 독일에 대한  혐오때문에 독일어와 뿌리가 같은 이디시어에 자기혐오를 느껴 멀리한 사람들도 있었죠. 아무튼 그런저런 이유로 히브리어는 공용어가 됩니다.
 그 뒤엔 박노자 선생 지적대로 자연히 튀어나오는 이디시어에 대해 불이익을 주는 이스라엘의 정책이 있었고, 지금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이디시어의 중심지는 유럽도 이스라엘도 아닌, 미국 유대인이 가장 많이 사는 뉴욕이라고 하죠.

덤으로 어떤 언어인가 맛보기 하시라고 교재에 나온 속담 몇 구절 적어봅니다. (히브리 문자는 쓸 줄 모르니 로마 알파벳으로)

A halber emes iz a gantse lign.(절반의 진실은 모두 거짓)
Ale kales zaynen sheyn ale meysim zaynen frum. (새색시는 모두 예쁘고 죽은이는 모두 경건하다)
An alter fraynd iz beser vi naye tsvey.(옛 친구 하나가 새로 사귄 친구 둘 보다 낫다)
Oyf nisim tor men zikh nit farlozn.(기적을 기대하지 마라)
Der oreman hot veyneik faynd der raykher hot veyniker fraynd(가난한 사람은 적이 없고, 부자는 친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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