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아무리 과학 기술이 발달한 요즘이라고 해도, 자연의 힘과 정면으로 맞서 싸우면서 자연력을 제압할 수 있는 힘을, 현재의 인류는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만일 사태가 일어나지 않아서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되었다면, 그래서 제주도에서 즐거운 수학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지금쯤 오후의 화창한 봄날씨를 만끽하며 교실에서 수다를 떨고 있을 그 아이들의 어이없는 죽음들에 대해, 그리고 부모가 감당해야 할 평생의 슬픔들에 대해, 경우에 따라서는 정부에게 무조건적인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예컨대, 그네들이 산채로 수몰된 곳이 수심 삼심 미터의 바다가 아니라 삼백 미터나 삼천 미터쯤 되었다면, 그래서 처음부터 구조에 투입할 수 있는 물리적인 수단과 인적 자원이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면, 사태 발생의 사전적 원인이 아니라 사태의 수습, 즉 구조에 관한한, 우리는 정부에게 아마도 책임을 묻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아니, 비단 이런 비현실적인 가정을 하지 않더라도, 만약 수몰된 곳의 조류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접근 불가능할 정도로 세서, 사고 발생 후 열흘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잠수부들중 누구도 선채 내부에 접근하지 못하고 실패를 반복하고 있었다면, 마찬가지로 우리는 아이들의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정부의 구조 활동을 비난하는 것을 되도록 자제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사태 발생후 전개된 구조 상황이 이런 것과 거리가 멀다는 사실이, 정부가 처음부터 할 수 있었던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마디로 정부의 무능이 절망적 상태에 빠진 아이들을 결국 참혹한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인식이, 그리고 그 인식 안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는 어떤 무기력감이, 죄의식과 분노를 함께 불러 일으킨다. 
  
1. 
 전시 상황을 한 번 생각해 보자. 현대의 전시 상황에서 군대의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군인이 아니라 민간인 출신이라는 이유로, 전쟁 수행에 필요한 가장 근간이 되는 전략 수립을 포함한 군대의 종합적 지휘 활동 일체를, 장군들에게 완전히 위임하고 자신은 뒷짐을 진 채 물러나 있는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예컨대 어떤 대통령이 장군들의 조언을 받아 전쟁의 큰 전략을 수립하고 전쟁 수행의 거시적 방침을 결정하지 않은 채, 장군들에게 그냥 <나가서 승리를 가져올 것>을 주문하고, 먄약 그러지 못했을 시 <직위를 박탈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은 장군들의 사기를 진작하기는 커녕 오히려 경직되게 만들 뿐이고, 전쟁에 나가 승리를 거두게 하는데 필수적인 과감한 위험 감수적인 전술적 기동보다는 자리보전을 목적으로한 책임 회피적인 기동을 할 가능성만 증대시킬 뿐이다. 그러므로 다수 국민의 생명이 경각에 달려 있는 크리티컬한 상황에서 <부득이한 경우에 다를 위해 소를 희생해야 하는> 정치적 판단과, 어떤 거시적인 목표를 세워서 승리를 구할 것지에 대한 전략적인 판단은 최고 의사결정권자인 대통령 자신이 직접 해야 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양식을 갖춘 시민들이라면 누구나 수긍할 만한 것이다.  
 
 2. 
 전쟁은 국가과 국가들 사이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국가와 자연 사이에서도 이루어진다. 적어도 세월호 침몰후 최초 3일에 관한한, 실종자들 다수의 생환에 대한 합리적 기대가 실종자 가족들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꿈뜰거리고 있었던 그 72시간 동안, 다수의 국민은 현 정부가 전쟁 상황에 비견할 만한 긴장과 사명감을 가지고 수몰자들의 구조에 나서 주기를 바랐다. 해군이든 해경이든 아니면 다른 주무 부처든, 해난 구조 경험이 풍부하고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 정부 당국자가 구조 작업을 진두 지휘하면서, 지휘 상황을 수시로 구체적으로 브리핑해 주면서 현 상황의 문제점과 앞으로의 구조 계획에 대해 설명해 주기를 바랬다. 그리고 대통령 이하의 정부의 고위 관료들은 신속하게 구조에 관한 종합적, 전략적 계획을 수립하고, 그 계획에 따라 구조 실무를 맡고 있는 당국을 기민하게 서포트해 주기를 바랬을 것이다.  
  그런데 이 크리티컬한 3일간의 초기 상황에서 대통령 박근혜가 한 것은 무엇인가? 내가 과문해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사태가 발생하고 이 주가 지난 지금까지도, 정확히 구조 작업 전반을 실질적으로 지휘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나는 모른다. 즉 박근혜가 누구에게 그 막중한 책무를 맡겼는지, 나는 모른다. (덧 - 정부 조직의 최종 보스인 박근혜가 아니면 누가 그런 책무를 맡길 수 있단 말인가?) 기대를 충족시키는 최초의 구체적인 브리핑이 사건 발생 9일이 지나서야 한 해군 대령에게서 나왔는데, 이 사람이 구조 작업의 실무적인 최종 결정권자인가 했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다. 그러면 일종의 집단 지도 체제에서 <협의>를 통해 결정이 되는 것인가? 또 언딘이라는 그 민간 기업의 김윤상이라는 대표의 역할은 진짜로 무엇인가? 구조에 나서고 있는 당국과 민간 - 혹은 언딘 - 과의 역할 분담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범국민" 대책 본부에서 내리는 결정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인지 등등. .이런 핵심적인 질문들이 아직도 베일에 쌓여 있다. 

  3. 
 이번 사태를 가로지르는 가장 핵심적인 논점은, 어쩌면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었던 시간인 이틀, 최대 3일의 시간동안, 정부가 할 수 있었던 구조 작업을 과연 제대로 수행했는가라는 질문이다. <할 수 있었던 일을 못했다면>, 그 일을 해야 할 의무를 가진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이 질문에 가장 직접적으로 답변해야할 의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국무총리, 무슨 장관들 혹은 해양 경찰청장이나 김윤상이라는 민간 구조업체 대표가 아니라, 박근혜 바로 자신이다. 이는 두 가지 이유에서 그러한데, 첫번째로 이종인 대표의 말마따나 <정부의 구조 역량이 원래부터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에 턱없이 부족했고, 또 그네들이 그러한 사실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허울뿐인 구조 작업을 벌이면서 천금같은 시간을 허비해 버렸다>는 소름끼치는 가정이 사실이라면, 박근혜는 관료조직을 이끄는 최종적인 수장으로서 현 상황에서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실질적인 구조 역량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초보적인 질문과 판단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알파잠수와 언딘 마린 언더스트리, 그리고 정부 조직의 구조 역량중에 어느 것이 더 우수한지 판단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사태 발생후 크리티컬한 시간이 훨씬 지난, 적어도 닷새가 지나서야 정부측 당사자의 입에서 <사실 우리보다 언딘의 구조 능력이 더 뛰어나다>는 실토가 흘러 나왔고, 또 전후 사정이야 어쨌든 그 언딘 대표의 입에서 구조 능력에 있어서 이종인 대표의 전문성을 인정하는 발언이 나왔다는 사실이다. 만일 전문적인 역량의 수준에 관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렇게 이론이 분분했다면, 박근혜가 내렸어야 하는 결정은 어떤 것이어야만 했나? 가정을 하나 해보자: 만일 한달 후 세월호가 침몰한 똑같은 수역에서, 똑같은 규모의 여객선이 좌초되어 침몰한다면? 그러나 이번 경우엔 선장과 선원들이 제대로 움직였고, 그래서 탑승객 500명 중 250명은 구명정이나 기타 구명 수단을 이용하여 탈출에 성공하였으나, 배가 워낙 크고 또 빠르게 가라앉은 통에 나머지 250명은 그대로 배 안에 갇히고 말았다면? 선장은 구조대에게 <되도록 많은 승객들을 데리고 에어포켓이 생기는 쪽에 피신해 있겠으니, 빠른 시일 내에 구조해 달라> 는 말을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이 경우에 대통령이 내려야 하는 결정은 무엇일까? 
  지금이야 다이빙벨을 투입하니 마니 하는 판단이 시기를 놓친, 시쳇말로 <죽은 자식 불알 만지는> 미지근한, 별 의미없는 논제가 되어버렸지만, 만일 다이빙벨이 거센 조류를 견디고 잠수자들에게 안정적인 작업 환경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도구라면, 그러나 그 다이빙 벨 투입으로 인해 줄이 엉킴으로서 구조하러 들어간 잠수사들이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라면, 이렇게 가정된 사태 안에서 이 질문이 갖는 정치적인 차원이 비로소 드러난다. 즉 이것은 단적으로 다음과 같은 의미다:<잠수사의 생명의 위험과 일반 시민의 생명의 위험 중 어떤 것을 우선시 해야 하나?> 다이빙 벨 투입이라는 문제에 내포된 정치적 의미, 즉 전문가들 사이에서의 구조 방법의 충돌이라는 테크니컬한 판단에 가려진 정치적인 의미가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최종 주체는 전문가들이 아니라 대통령이 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실제적인 전시 상황이든 전쟁과 같은 재난 상황이든, 다수 국민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 상황이라면 어떤 결정에 따른 가치가 충돌할 수 있고, 이 경우에 충돌하는 가치 중에 최종적인 결단을 내려야 하는 주체는 국민들 각각의 생명권에 대해 직접적이고 헌법적인 무한 책임을 지는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4. 
  사태를 2주 전으로 되돌려 본다면, 박근혜가 정말로 아이들을 구할 실제적인 의지와 지적인 명민성을 가지고 있었다면, 아무리 생각해 봐도 대통령이 내렸어야 할 결정은 단 한가지 였다고 본다. 현장이 워낙 악조건이라 구조 인력이 생명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할지라도, 그러한 방법을 쓰는 것이 현 상황에서 상황을 타개하고 아이들을 구해낼 수 있는 그나마 유일한 방법으로 생각된다면 (실제로 최초 이틀 동안 당국에서 시행한 구조 방법은 하루 네번 있는 정조 때를 이용한, 기껏해야 하루 4시간 이하의 극히 소극적인 구조활동 이었다는 것을 상기해 보라) 들어가면 살릴 수도 있었던, 다수 민간인의 생명을 구하는 것을 우선시 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사지에서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고립된 민간인들을 구출하기 위해 특공부대를 파견하는 것과 유사한 것이다. 그 와중에서 구조원들의 안타까운 죽음이 발생한다고 했을지라도, 그것은 대통령 박근혜가 오롯이 정치적으로 지고 가야할 몫일 수 밖에 없다. 적어도 대통령이 구조의 거시적인 방향성에 대해, 그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가치충돌의 가능성에 대해 미리 지침을 내려주었다면, 구조 당국 또한 책임 회피적인 기동을 하지 않고 모험을 감수하면서라도 적극적으로 자연이라는 적에 맞서 싸울 의지를 세울 수 있었을 것이다. 대통령 노무현은 그런 의미에서도 태안 기름 유출 사태에서 매우 합리적인 판단을 내렸다. 물뚝심송님의 글에서 잘 지적되어 있지만 하나 덧붙여야 할 것이 있는데, 노무현이 대통령으로서 한 일은 사태 수습의 실질적인 키를 쥐고 있는 정부 실무 당국자에게 <가동 가능한 모든 자원을 동원할 수 있도록> 백업을 해준 것으로 그친 것이 아니다. 어떤 분이 관료 사회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직무 수행에 관한 책임을 묻겠다>고 윽박지르는 것도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맞는 말이다. 다만 그 채찍이 통하기 위해서는 그 채찍이 대통령 스스로 전략적인 판단을 먼저 하고 그 전략적인 판단을 실행하는 구체적인 목표를 주는 선상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노무현이 그 당시 태안 사태때 해양 경찰 청장에게 주문한 것이 무엇이었나? 그냥 사태를 잘 수습하라는 것이 아니라,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기름이 남북으로 확산되는 것은 막으라>는 다소 구체화된 지시였고, 말은 하지는 않았지만 노무현의 어조에는 이것이 지켜지지 않을 때 책임을 묻겠다는 경고가 묻어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다시 이번 사태로 돌아가, 박근혜가 어떤 지시를 내렸어야 했나? 사태 발생후 삼일이라는 시간이 핵심적인 변수이고, 자연과의 전쟁이 시간과의 싸움에 맞물려 급박하게 돌아갔던 이번 사태에서, 지휘 콘트롤 타워를 명확하게 설정해 주면서, 그에게 <민이든 관이든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3일 내로 선내로 들어가서 단 한 사람이라도 사람을 살려서 데리고 나오라, 이렇게 하지 못할 때는 책임을 묻겠다..단, 거기에 필요한 모든 자원은 마음껏 가동해도 좋고, 혹시 있을지도 모를 구조 대원 희생의 책임은 내가 지겠다> 이런 지시를 내리는 것이 정답이 아니었을까.. 물론 이 와중에 당연히 참모들, 전문가들 사이에서 구조 방법을 둘러싼 이견과 구조 인력의 안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겠지만, 아까 서술한 대로, 이렇게 생명과 생명의 가치가 충돌하는 급박한 상황에서라도 정치적인 판단을 내려서 앞으로 외롭게 나아가야 하는 것이 대통령이라는 자리인 것이다. 뒷짐을 진 채 물러나 있으면서 사태 돌아가는 것은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관료들만 득달하며 시스템과 관행 탓만 하는 바보 같은 모습이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