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팬지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다면 우선 제인 구달(Jane Goodall)이 쓴 책 두 권부터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In the Shadow of Man(1971)

『인간의 그늘에서: 제인 구달의 침팬지 이야기』, 최재천, 이상임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1

 

Through a Window: 30 years observing the Gombe chimpanzees(1990)

 

이 책들은 어떤 면에서는 심리학 책이기도 하다.

 

영장류학 책 또는 행태학(ethology, 동물행동학) 책을 왜 심리학 책이라고 우기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선 『Through a Window』의 “9 Sex”에서 몇 구절을 인용해 보겠다. 하필이면 영어판에서 인용하는 이유는 집에 『인간의 그늘에서』가 없기 때문이다.

 

Clearly he had persuaded one of the neighbouring females to accompany him on a consortshipan exclusive mating relationship.

(Through a Window, 86)

 

It was about the time of that chance observation that Faben died, bringing an end to Evered’s persecution, as without the support of his elder brother Figan’s power diminished. And so Evered, although he remained submissive to the younger Figan for the rest of his life, was able to return and take up his position in the Kasakela community.

(Through a Window, 86)

 

As the big male approached, Wilkie ran up to greet him, jumping into his arms, then briefly grooming him. Winkle followed more sedately, with a few soft pant-grunts. She was just beginning a sexual swelling, and Evered was immediately interested, examining her posterior carefully, then sniffing his finger.

(Through a Window, 87)

 

밑줄 친 단어들은 다 심리학적 현상을 가리킨다. “설득(persuaded)”은 상대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뜻이다. “괴롭힘(persecution)”은 상대에게 피해를 주는 의도적 행위다. “지원(support)”은 남을 돕는 의도적 행위다. “권력(power)”, “순종(submissive)”, “지위(position)”는 서열에 대한 정보 처리를 가정한다. “따라감(followed)” 역시 의도적인 행위다. “관심(interested)”, “조사(examining)”, “냄새 맡기(sniffing)” 역시 침팬지의 뇌에서 이루어지는 모종의 정보 처리에 대한 추정을 담고 있다.

 

 

 

몇 구절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구달의 책은 소설 같이 침팬지의 심리를 묘사한다. 어떤 구절들은 그것만 따로 떼어 놓으면 침팬지에 대한 이야기인지 인간에 대한 이야기인지 헷갈릴 정도다.

 

지금은 구달이 침팬지 연구 권위자로 인정 받고 있다. 하지만 초창기에는 구달이 이런 식으로 침팬지의 행동을 보고할 때 많은 과학자들이 깔보았다. 이런 소설 같은 이야기는 과학이 아니라는 비판을 받았다. 과학 교육을 제대로 못 받았기 때문에 직관적 해석을 마구 남발했다는 비아냥을 들었다. 구달의 직관적 해석은 엉터리 의인화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별로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상식 심리학(folk psychology, 민간 심리학)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면 특별히 애쓰지 않아도 그냥 직관적으로 해석을 하게 된다. 제인 구달에 비판적이었던 과학자들은 인간에게만 적용해야 할 상식 심리학을 침팬지에게 무리하게 적용했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행동론 심리학자(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인간에게 상식 심리학을 적용하는 것조차 반대한다. 그것이 상식적 해석일 수는 있어도 과학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상식 심리학의 상당 부분이 자연 선택의 산물인 마음 이론 모듈(ToMM, Theory of Mind Module)이라고 본다. 자연 선택의 산물이 완벽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따라서 마음 이론 모듈에 바탕을 둔 상식 심리학이 완벽할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완벽하다면 심리학이라는 과학이 필요 없을 것이다.

 

인간에게 적용할 때에도 잘못된 해석이라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상식 심리학을 침팬지에게 적용한다면 아마 문제가 더 커질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시각 기제도 자연 선택의 산물이며 불완전하다. 시각학자들은 온갖 착시 현상을 발굴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갖 분야의 과학자들은 시각에 엄청나게 의존한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나”라는 속담이 있다. 어차피 인간의 시각 기제도 ToMM도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시각 기제에 의존하지 않고는 과학 연구를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어쩔 수 없이 불완전한 인간의 시각에 의존한다. 물론 착시와 같은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늘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보이는 것을 무조건 믿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ToMM 또는 상식 심리학의 경우도 상황은 비슷해 보인다. 상식 심리학을 완전히 배제하면 인간이나 침팬지의 행동과 심리에 대한 연구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한 번 동물을 관찰하면서 심리학적 함의가 담긴 단어를 몽땅 배제하고 자신의 관찰 사실을 남에게 이야기해 보라. 아마 다음과 같이 될 것이다.

 

침팬지 A의 손과 침팬지 B의 얼굴 사이의 거리가 점점 더 가까워진다. 약 시속 20km 정도의 속도인 것 같다. 결국 손과 얼굴이 접촉한다.

 

만약 심리학적 용어를 허용한다면 “A가 손으로 B의 얼굴을 때렸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었을 것이다. “때렸다”는 심리학적 함의를 품고 있는 단어다. 손과 얼굴의 접촉이 우연이나 사고가 아니라 의도적이었음을 뜻한다. 그리고 그 의도란 B에게 고통을 주려는 것이다. 이것은 AB에게 분노했음을 암시한다.

 

물론 관찰자가 잘못 해석할 여지는 언제나 있다. A가 열 받아서 B를 때린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장난으로 때렸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때릴 의도가 전혀 없었는데 단순한 사고로 손과 얼굴이 접촉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C를 때리려고 했는데 B가 맞았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결국 손과 얼굴이 접촉한다”와 같은 묘사만 한다면 동물의 심리 상태에 대한 정보가 아예 전달이 안 된다. 중요한 정보를 잃어버리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 부정확한 해석을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물리학에서도 직관적, 상식적 개념에서 출발하여 결국 상당히 정교한 개념으로 이어졌다. 무게 또는 질량 개념을 살펴보자. 옛날부터 무게 개념은 있었다. 그러다가 뉴턴 역학에서는 무게 개념과 질량 개념이 구분되었다. 쇠구슬을 달에 가져가도 질량은 같지만 무게는 크게 달라진다. 뉴턴 역학 시절에는 질량 보존의 법칙이 통했다. 그러다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나오면서 질량 개념은 다시 변신한다. 질량 보존의 법칙이 무너지고 질량-에너지 보존의 법칙으로 대체된다. 그리고 “정지 질량”이라는 새로운 개념도 생긴다. 물체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무거워진다. 이것은 뉴턴 역학의 불변하는 질량과 대비된다.

 

갈릴레오가 무게 개념을 사용하여 열심히 썰을 풀고 있을 때 “잠깐 아직 당신의 무게 개념은 너무 어설프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나올 때까지 그 개념 쓰지 말라”고 말한다면 갈릴레오가 얼마나 황당할까? 어설프지만 쓸모가 있는 무게 개념을 쓰면서 열심히 연구했기 때문에 결국 상대성 이론이 가능했던 것 아니었을까?

 

 

 

침팬지에게 서열을 적용하는 것이 옳을까? 닭과 침팬지가 매우 다른 동물임에도 불구하고 두 종 모두에 서열 개념을 적용하는 것이 옳을까? 애매하게 쓰이는 서열 개념을 어떻게 정식화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리고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늘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서열 개념이 상대성 이론의 질량 개념만큼이나 아주 깔끔하게 정리될 때까지 서열 개념을 쓰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은 갈릴레오에게 무게-질량 개념이 깔끔하게 정리될 때까지 무게 개념을 쓰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 같다.

 

직관에 안주하는 것도 문제지만 직관을 금지하는 것도 문제다. 직관적 해석에서 출발해서 그 해석에 쓰이는 개념을 다듬으면 된다. 사실 직관적 해석을 완전히 금지한다면 개념을 다듬기 위한 연구 자체가 불가능해 보인다.

 

 

 

갈매기 같은 동물을 관찰하다 보면 부부, 결혼, 일부일처제, 간통, 질투 같은 개념을 적용하고 싶은 욕구가 자연스럽게 생긴다. 상식 심리학은 동물을 관찰할 때에도 자동적으로 작동되는 것 같다. 이 때 많은 과학자들이 직관적 해석을 억누르지 못하고 제인 구달처럼 자신의 연구 발표에 끼워 넣는다. 그러면 엉터리 의인화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간통(외도, 바람피우기)”이라는 단어 대신 “extra-pair copulation(짝이 아닌 동물과 하는 교미)”이라는 과학적으로 보이는 단어를 쓴다고 해도 별로 바뀌는 것은 없다. 여기에서 “부부”가 “pair”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 때 “pair”라는 단어로 과학자가 하고 싶어하는 이야기는 결국 “부부” 또는 “부부와 유사한 관계”다. “장기적 짝짓기(long-term mating)”라는 용어도 결국은 “결혼”을 과학적으로 보이게 하는 포장에 불과하다.

 

“서열 개념을 닭과 침팬지에 적용하는 것이 정당한가?”라는 질문과 마찬가지로 “결혼 개념을 갈매기와 인간에 적용하는 것이 정당한가?”라는 질문을 던져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때 결혼 개념을 어떻게 정식화할 것인가?”라는 질문도 훌륭한 질문이다. 과학자라면 늘 직관을 뛰어넘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직관적 해석을 처음부터 금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직관적 해석에는 아주 많은 정보가 담겨있다. 그런 정보를 바탕으로 연구를 하지 않으면 직관적 해석을 뛰어넘는 정식화된 가설을 만들기가 힘들다.

 

 

 

처음에는 갈매기와 같은 종을 관찰하던 동물학자가 “저들의 관계는 부부와 비슷해 보인다”라는 직관적 해석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갈매기와 인간에게 적용할 수 있는 “결혼” 개념이 어느 정도는 정식화되었다.

 

1. 어느 정도는 장기적인 관계

 

2. 암컷과 수컷으로 이루어진 관계

 

3. 공동 육아

 

4. 수컷이 암컷의 성교를 어느 정도 독점한다.

 

이것은 계약과 비슷하다. 암컷은 수컷에게 성적 독점권을 어느 정도 제공한다. 그 대가로 수컷은 암컷의 자식을 돌본다. 그리고 이런 식의 “계약”이 이루어지는 진화론적 이유가 있다. 수컷의 입장에서 볼 때 암컷의 자식이 수컷 자신의 유전적 자식일 확률이 높아야 돌보는 보람이 있다.

 

결혼에 대한 이런 정식화에 바탕을 두고 “수컷의 성적 질투” 개념을 정식화할 수 있다. “수컷의 성적 질투”는 암컷의 성교를 자신이 독점할 수 있도록 만든다. 질투에 빠진 수컷은 경쟁 수컷이나 자신의 “아내”를 공격함으로써 “아내”가 바람을 피우지 못하도록 한다. 독점이 불가능하다면 수컷은 “이혼”을 하거나 자식 돌보기를 소홀히 한다. 그리고 이런 수컷의 행동은 적응적이다. 자신의 유전적 자식일 확률이 별로 높지 않다면 돌보지 않는 것이 적응적이다.

 

 

 

만약 “갈매기의 관계가 결혼과 비슷하다”는 직관적 해석을 금지했다면 진화론적 논리를 바탕으로 “결혼” 개념을 정식화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위에 소개한 결혼 개념의 정식화에 불만을 품고 약점을 지적하는 것은 환영할 만하다. 그런 정식화가 실증적으로 얼마나 잘 검증되었는지 따지는 것도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그러니까 결혼 개념 또는 ‘pair’장기적 짝짓기같은 결혼 개념의 변주곡을 아예 쓰지 말라”고 금지한다면 갈매기의 행태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기가 거의 불가능할 것 같다.

 

 

 

이론과 개념은 같이 발전한다. 개념을 몽땅 완벽하게 정리한 다음에 이론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과학은 그런 식으로 발전하지 않았다. 일단 직관적 개념에서 출발하여 가설을 만들고 이런 저런 논리적 실증적 검토를 거치면서 개념도 다듬는 식이었다. 그리고 다듬은 개념을 바탕으로 새로운 가설을 만들고 이런 저런 논리적 실증적 검토를 거치면서 개념을 더 다듬는다.

 

 

 

많은 진화학자가 “강간(rape)” 개념은 동물과 인간에 적용한다. “강제 교미(forced copulation)”와 같은 과학적으로 보이는 용어도 사실 포장에 불과하다. 이 때 “강간” 개념은 “상대가 하고 싶어하지 않을 때 강제력을 동원하여 하는 성교(교미)”로 정식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정식화에 시비를 거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예컨대 “밑들이(scorpionfly) 같은 곤충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자발성또는 하고 싶어하지 않음이 무엇인지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와 같은 질문을 던져볼 수 있을 것이다. 강간 개념을 더 정교하게 다듬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아직 강간 개념이 애매하니까 동물에게 쓰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는 식이라면 밑들이나 오랑우탄의 강간 또는 “강간과 비슷한 행동”을 설명하기가 힘들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