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에 따르면 예수는 “잔” 때문에 겁나게 괴로워한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게쎄마니라는 곳에 가셨다. 거기에서 제자들에게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하는 동안 너희는 여기 앉아 있어라." 하시고 베드로와 제베대오의 두 아들만을 따로 데리고 가셨다.

예수께서 근심과 번민에 싸여 그들에게 "지금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니 너희는 여기 남아서 나와 같이 깨어 있어라." 하시고는 조금 더 나아가 땅에 엎드려 기도하셨다.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하시고자만 하시면 무엇이든 다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주소서.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기도를 마치시고 세 제자에게 돌아와 보시니 제자들은 자고 있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너희는 나와 함께 단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단 말이냐?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여라.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말을 듣지 않는구나!" 하시며 한탄하셨다.

예수께서 다시 가셔서 "아버지, 이것이 제가 마시지 않고는 치워질 수 없는 잔이라면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하고 기도하셨다.

(마태오의 복음서 26:36~42, 공동번역개정판)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마태복음 26:36~42, 개역개정판)

 

 

 

신약의 핵심 테마는 인간의 죄 때문에 예수가 희생된다는 이야기다. 이 때 희생은 죽음을 뜻한다. 이 구절에서 “잔”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을 뜻하는 것 같다.

 

세상에 죽음만큼 크나큰 희생도 찾기 힘들어 보인다.

 

여기까지는 좋다. 인간이 지은 죄 때문에 예수는 죽음이라는 가장 큰 희생을 한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무척이나 괴로워한다.

 

 

 

잠깐만...

 

그런데 예수는 자신이 3일 만에 부활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도중에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불러 조용히 말씀하셨다. "우리는 지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의 손에 넘어가 사형 선고를 받을 것이다. 그리고 이방인들의 손에 넘어가 조롱과 채찍질을 당하며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다."

(마태오의 복음서 20:17~19, 공동번역개정판)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실 때에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시고 길에서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마태복음 20:17~19, 개역개정판)

 

 

 

예수는 자신이 3일 만에 부활할 것이라고 100% 확신했을까?

 

만약 조금이라도 의심을 했다면 메시아로서 자격이 없다. 예수는 제자들이 100% 믿지 못하고 의심을 한다고 늘 투덜댔다. 그런데 만약 자신도 의심했다면 제자들하고 다를 바 없다.

 

만약 100% 확신했다면 예수가 그렇게 괴로워할 이유가 뭐가 있단 말인가? 어차피 3일 만에 부활할 건데 뭐가 그리 괴롭단 말인가? 나 같으면 “며칠 동안 고생 좀 하면 되겠네”라고 쉽게 생각할 것 같다.

 

 

 

자신의 외아들이 희생되었다고 호들갑을 떠는 야훼나, 자신이 죽게 생겼다고 호들갑을 떠는 예수가 정말 생색 쩐다.

 

죽음이 대단한 희생인 이유는 다시는 살아날 수 없기 때문이다. 달랑 3일 만에 부활한다면 치질 수술 하려고 며칠 입원하고 똥 누면서 겁나게 아픈 경험을 하는 것보다 더 괴로울 것이 뭐가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