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를 지지했고 나치 치하에서 성인이었던 모든 이들은 죽을 때까지 더 이상 즐거운 시간을

갖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아도르노는 조금 더 극단적으로 아우슈비츠 이후에

서정시를 써서는 안되는거 아닌가라고 말한 적이 있다. 오락만이 아니라 예술조차도 삼가야

한다는 것이다. 홀로코스트 앞에서는 예술조차 정당성이 의심된다는 것이다.


사실 마음이 여린 이라면 우울함과 답답함에서 억지로라도 벗어나고 싶어 즐거운 것을 찾아도 

순탄히 즐거울 수가 없다. 시몬느 베이유를 닮은, 타자의 고통에 대한 공감능력이 유난히 쎈

이들은 아예 찾고 싶은 마음이 안난다. 물론 모든 사람이 후자의 범주에 들어간다면 즐거움을 

주는 일로 생계를 해결하는 이들, 즉 우리의 동료시민들 일부의 생활이 힘들어진다.


사람들이 모두 같지 않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한국적인 모든 부정성, 무사안일, 둔감함,

금전만능주의가 집약되어 벌어진 비극 앞에서도 많은 남들한테 전혀 드러나지 않게 즐거움을 

추구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굳이 밖에 나갈 필요는 없다. 냉장고에

안동소주와 오량액이 있고 유튜브와 토렌트에는 재미난 볼거리들이  넘쳐난다. 


그러나 물론 여린 사람들이 충분히 많아야 한다.  특히 힘있고 돈많은 이들 사이에 그런 이들이

많아야 한다. 달리말하면 소시오패스 사촌 정도 되는 이들보다는 그런 이들이 정의롭게 부자가

되고 권위를 얻는 사회가 한국 사회이어야 한다. 한국 사회가 이미 벌써 그런 사회였다면 세월호

사건같은 것은 일어날 수 없다. 


나는 사이버 분향소조차도 들를 생각이 없다. 마음 속으로 그 아이들에게 이게 끝일리가 없어라고 

수없이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기사나 게시물들을 거의 읽지 않았다. 안봐도 비디오이기 때문에, 

제목만 보고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프로젝터를 틀어 영화나 공연물을 감상하지는 않았

다. 냥이들을 못살게 구는 것을 제외하면 그게 '제일' 즐거운 소일거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