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을 둘러싼 양상을 보다 보면 조선조 임진왜란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관군과 의병을 대표하는 세력 간의 충돌. 자격증 소지자와 미소지자의 충돌. 어쩌면 인간 역사라는 게 양자의 끊임없는 충돌이다.
양자 사이에 완충지대를 만들어내서 다른 방향을 끌어낼 수 있다면 좋지만 대개는 실패로 끝난다.
나는 저 풍경을 무리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는 몸부림으로 읽는다.

휴정은 유학을 공부했고 실패해서 절에 들어갔다. 
국가의 인정을 받기 위한 불교계의 노력은 치열했다. 대부분 무위로 끝났지만.
임진왜란에서 승병의 역할은 불교계가 나름의 입지를 다지는데 일조했다.

임란 시절 불가 승병들의 역할은 대단했지만 그 이면에는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으려는 약자들의 욕구 또한 진하게 내포되어 있었다. 그렇게 이어진 정서는 김정한의 소설 수라도에서 유학자와 그 며느리의 입을 빌어나온다. 그게 불과 70-80여년 전의 일이다.

인간은 스스로의 생각보다 과거의 지배를 받는다.

현실에서 나는 자격증 소지자나 전문가가 아닌 터라 전문가와 일반인 양자의 내밀한 속내를 잘 읽어낼 수 있는 처지에 있다. 
개나 고둥이나 나한테는 윽박지른다. 무어를 설명해 달라고. 자기가 이해가 될 때까지 나를 몰아부친다. 정작 전문가 아니 준전문가들 앞에서 그런 이야기 꺼내지도 못하는 이들이. 그네들은 알고 있는 탓이다. 내가 그들에게 해꼬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해꼬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타인능해와도 맥이 닿는 것이다. 자기도 모르면서도 나한테는 중고등학생처럼 상승욕구에 불타 윽박질러도 별 일이 생기지 않으리라는 것. 그 재롱을 받아주는 것이 타인능해이다. 칼로 상대의 목을 쳐버리고 "강한 것은 아름다워'라고 외치고 싶은 욕구들.

내가 겨냥하는 지점은 나같은 모지리 윽박지르지 말고 당사자인 전문가나 일을 맡고 있는 사람에게 따지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