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진화 심리학자가 쓴 글 중에 아래 책만큼 사람들을 열 받게 한 것도 찾기 힘들 것이다.

 

A Natural History of Rape: Biological Bases of Sexual Coercion(2000)

Randy Thornhill, Craig T. Palmer

 

강간을 진화 심리학적으로 다룬 이 책에 수 많은 사람들이 분노, 비판, 비난, 조롱을 쏟아냈다. 심지어 이 책을 까기 위해 여러 학자들이 모여서 책 한 권을 냈다.

 

Evolution, Gender, and Rape(2003)

Cheryl Brown Travis 편집

 

 

 

나는 『Evolution, Gender, and Rape』가 쓰레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왜 『Evolution, Gender, and Rape(Travis 편집)』가 쓰레기인가 --- 1

http://cafe.daum.net/Psychoanalyse/83fZ/133

 

왜 『Evolution, Gender, and Rape(Travis 편집)』가 쓰레기인가 --- 2

http://cafe.daum.net/Psychoanalyse/83fZ/134

 

 

 

한국에 위의 책 두 권을 읽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별로 길지 않은 아래 글을 읽어보시라.

 

남자는 왜 강간을 하는가? - 진화 심리학적 전망 (William F. McKibbin , 초벌 번역 마침)

http://cafe.daum.net/Psychoanalyse/Glrk/42

 

Why Do Men Rape? An Evolutionary Psychological Perspective

http://www.toddkshackelford.com/downloads/McKibbin-et-al-RGP-2008.pdf

 

「남자는 왜 강간을 하는가?」보다 사람들을 더 열 받게 하는, 강간에 대한 진화 심리학자의 글이 꽤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남자는 왜 강간을 하는가?」만 보아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역겹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 같다.

 

 

 

나는 사람들이 왜 “강간의 진화 심리학”을 보고 역겨워하는지 잘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면 감도 안 잡힌다. 어쨌든 오늘은 왜 그것을 역겨워하는지 따지는 자리가 아니다.

 

 

 

“강간의 진화 심리학”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도대체 그런 건 왜 연구하냐?”고 따진다. 그러면 진화 심리학자들은 대체로 두 가지 답을 내 놓는다.

 

1. 궁금하니까.

 

2. 강간에 대한 과학적 규명이 강간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니까.

 

 

 

강간에 대해 궁금하다고 이야기하면 어떤 사람은 “변태적 궁금증”이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그런데 여성주의(feminism)의 관점에서 강간을 연구한 Susan Brownmiller의 『Against Our Will: Men, Women, and Rape(1975, 일월서각에서 <성폭력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축약번역했다)』과 같은 책에는 “변태적인 궁금증”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경우가 거의 없다.

 

여성주의자가 강간의 원인에 대해 궁금해하면 정당한 궁금증이고 진화 심리학자가 강간의 원인에 대해 궁금해하면 변태인가?

 

여자 고등학교 앞에서 바바리맨이 진화 심리학 학술지 들고 쇼하면 변태고 여성주의 학술지 들고 쇼하면 괜찮은가?

 

 

 

“강간의 진화 심리학”이 역겹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강간에 대한 과학적 규명이 강간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니까”라는 진화 심리학자의 해명에 뭐라고 답할 것인가? 몇 가지 답변이 떠오른다.

 

A. 나는 강간을 줄이는 데 별로 관심이 없다. 그러니까 괜히 내 성질 건드리면서 강간에 대해 연구하지 마라.

 

B. 나는 강간을 과학적으로 파헤치는 것이 강간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역시 문제 해결에는 미신이 짱이다.

 

C. 나는 진화 심리학이 강간을 과학적으로 파헤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D. 나는 “강간의 진화 심리학”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기존 “강간의 진화 심리학”이 너무 개판이라서 짜증이 난다.

 

 

 

AB라고 답변할 사람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CD가 남는다. 혹시 다른 대안이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시길...

 

 

 

진화 심리학이 강간을 과학적으로 파헤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그 이유를 밝히면 된다.

 

다만 “인간은 신이 창조했으니까 진화 생물학은 뻥이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한다면 과학계에서는 조롱을 받게 된다.

 

혹시 질투는 진화 심리학적으로 연구할 수 있지만 강간은 진화 심리학적으로 연구할 수 없다고 본다면 도대체 강간에 무슨 특별한 것이 있어서 진화 심리학적 연구가 불가능한지 밝혀야 할 것이다.

 

혹시 인간의 질투, 친족애 등도 진화 심리학적으로 연구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침팬지의 질투(으뜸 수컷은 다른 수컷이 암컷과 성교하는 꼴을 못 본다)나 친족애(침팬지 엄마의 자식 사랑 역시 대단하다)도 진화 심리학적으로 연구할 수 없는지 생각해 보시라. 만약 침팬지의 경우에는 진화 심리학적 연구가 가능하지만 인간의 경우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밝혀주시라. 침팬지는 자연 선택의 결과지만 인간은 신이 직접 창조했다는 식의 이야기는 과학계에서 웃음거리가 된다는 점을 명심하시고...

 

 

 

D라고 답한 사람은 강간을 다룬 진화 심리학자들의 기존 논문들이 어떻게 개판인지 이야기해주면 된다. 그런데 진화 심리학을 싫어하는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나는 진화 심리학에 대해서는 개뿔도 모르지만...”이라는 단서를 붙인다는 웃기는 점이 있다. 참 부럽다. 어떤 분야에 대해 개뿔도 모르면서 엉터리인지 여부를 감식할 수 있는 초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나는 그런 능력이 없어도 오늘도 뺑이치면서 진화 심리학자들이 쓴 글을 읽고 있는데...

 

 

 

진화는 여러분의 비위를 맞추면서 일어나지 않는다. 여러분의 비위에 어긋나는 방향으로 진화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본다면 대단한 과대망상이다. 혹시 여러분 중에 신이 있다면 모를까...

 

진화가 여러분의 비위를 맞추면서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을 받아들인다면 진화 심리학의 가설이나 이론이 여러분의 비위를 상하게 할 수도 있다는 점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때로는 그런 가설이 참으로 드러날 수도 있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때로는 여러분의 비위를 상하게 하지만 과학적으로 잘 검증된 이론을 응용하여 강간을 줄일 수도 있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